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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연예계 공략법-32화 (32/250)

회귀자의 연예계 공략법 (32)

눈이 마주치자 한민국은 다급하게 손을 내저었다.

“기획사가 처음인데 제가 어떻게 알아서 해요. 차라리 지유 씨나 영웅이 형 로드라도 시켜 주세요.”

“그건 걱정하지 마, 조금만 있으면 수액 맞으면서 달려야 할 정도로 바쁠 테니까.”

“정말로요?”

“뭐, 일만 잘되면!”

큰소리를 치는 도훈을 한민국은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봤다.

도훈은 그 눈빛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리 밥 먹자.”

“구내식당에서 드시게요?”

“그럼 당연하지, 돈 아깝게 왜 밖에 나가서 먹어?”

“헉, 그게 실장님이 하실 말씀입니까?”

“당연히 할 말이지, 아껴야 잘 살잖아.”

도훈이 씩 웃었다.

그때였다.

디디링, 디디딩.

도훈의 핸드폰이 울음을 토해 냈다.

핸드폰을 본 도훈이 고개를 갸웃했다.

아무리 봐도 모르는 번호였기 때문이다.

도훈은 재빨리 통화 버튼을 눌렀다.

“유레카의 이도훈입니다.”

―이도훈 실장님이시죠?

핸드폰 스피커 너머로 귀에 익은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누구지?

도훈은 잠시 고개를 갸웃했다.

귀에는 익은데 누군지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표정을 수습한 도훈이 재빨리 답했다.

“네, 유레카의 이도훈 맞습니다. 실례지만 누구신가요?”

―저, 초원의 집 각본 쓴 작가 케이예요.

순간 도훈의 눈이 커졌다.

전생에도 몰랐던 케이와 이렇게 통화를 하다니!

초원의 집 말고도 케이가 남길 명작은 세 개가 더 있다.

이 모든 작품을 정재웅 감독하고만 작업했던 케이였다.

그때 수화기 너머로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이도훈 실장님…… 목소리가 안 들리네요.

“아, 죄송합니다, 가끔 내 전화기가 말썽이네요.”

―다름이 아니라. 혹시 시간 되시면 볼 수 있을까 하고요. 제 각본을 그렇게 진정성 있게 봐 주신 분은 처음인 것 같아서 한번 뵙고 싶어요.

“언제가 좋을까요? 저는 언제든 좋습니다. 오늘 점심이나 저녁도 좋고요.”

―정말로요?

“물론이죠.”

―제가 보니 회사 위치…….”

“네, 알겠습니다.”

케이와 약속을 잡은 도훈은 통화 종료 버튼을 눌렀다.

옆에서 통화 내용을 듣던 한민국이 눈을 크게 떴다.

“뭡니까? 실장님. 혹시 어제 소개받았던 감독님께 전화가 온 거예요?”

“대충 비슷해.”

“비슷하다니요?”

“뭐,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오늘 점심은 밖에서 먹자.”

“밖에서요?”

한민국의 입꼬리가 기분 좋게 올라갔다.

* * *

잠시 후.

검은색 승합차는 다시 올림픽대로를 달리고 있었다.

도훈은 창문을 열며 작가 케이를 떠올렸다.

생각지도 못한 반응이었다.

정재웅 감독에게 자료를 보내자마자 10분 만에 케이 작가에게서 연락이 온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되었다.

전생의 기억으로는 케이 작가는 콧대가 높기로 유명했다.

사실 케이 작가의 콧대 높이를 아는 사람도 없었다.

케이 작가가 여자라는 것도 지금 처음 알았으니까.

도훈이 아침부터 눈에 불을 켜고 만든 자료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주 간단했다.

초원의 집이 해외에서 호평받았던 이유는 도훈의 기억 속에 또렷하게 남아 있었다.

도훈은 최대한 기억을 떠올려서 그 극찬받았던 포인트와 아쉬웠던 점을 나름대로 각색해서 보냈던 것이다.

시놉만 보고 그 정도의 비평을 할 수 있는 것은 보통의 애정 가지고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것이 관심을 끌어냈을 것이다.

그리고 말미에는 자신이 사회생활에서 모은 돈을 투자하고 싶다고 했다.

뭐, 번은 거짓말이지만, 일단 상대를 낚는 것이 중요했다.

이번에 이지유의 포텐을 제대로 터뜨리기 위해서는 초원의 집만큼 적당한 작품이 없으니까.

하지만 이렇게 빠른 반응은 아무리 생각해도 의외였다.

중요한 점은 그녀의 목소리가 귀에 익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전생에 분명 마주친 기억이 있는 사람일 것이 분명했다.

그때 한민국의 목소리가 귀가에 들려왔다.

“실장님,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세요?”

“뭘 먹을까? 메뉴 생각하고 있었지.”

“아.”

한민국이 실망한 듯 탄성을 터뜨렸다.

잠시 후…….

강남의 한 한정식집.

고풍스러운 한옥 스타일의 오 층 건물.

가장 위쪽에는 만향정이라는 고풍스러운 간판이 붙어 있었다.

이 음식점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바로 미슐랭 스타였다.

서울에 몇 안 되는 별 세 개짜리 미슐랭의 맛집.

차 키를 직원에게 맡긴 한민국이 따라오다가 멈칫하며 도훈을 불렀다.

“저는 여기 있겠습니다, 실장님.”

말을 마친 한민국은 뒤로 주춤주춤 물러났다.

아마 미라클에서 임원을 수행하던 버릇 때문인 것 같았다.

비서는 임원과 상대가 독대하는 자리에는 동석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었다.

하물며 기사가 이렇게 문 앞까지 올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이곳은 예약하기도 힘들다는 만향정.

아마도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은 것처럼 몸이 뻑적지근 할 터였다.

그 모습에 도훈이 씩 웃었다.

“그냥 들어와.”

“뭔가 제가 들어가면 안 될것 같은 분위기네요.”

“그 분위기라는 게 뭔데?”

“꼭 공룡이 입을 벌리고 있는 것 같아서요.”

고풍스러운 한옥 모양의 건물을 가리키며 쭈뼛거리는한민국.

도훈이 황당하다는 듯 그를 바라봤다.

“민국아, 네가 무슨 기사야? 이제부터는 엄연한 매니저야. 그런데 이런 자리에 빠지겠다고? 이렇게 일 년만 지나면 자연스럽게 네 자리는 없어질 거다. 그러니까 네가 알아서 해.”

“앗, 가겠습니다.”

“솔직히 그것보다도 더 중요한 이유가 있지.”

“그 이유가 뭔데요?”

“나도 평소라면 여기 예약하기도 힘들어. 여긴 돈 있다고 예약할 수 있는 곳이 아닌 거너도 알잖아. 오늘 아니면 기회 없다.”

“그럼 큰맘 먹고가겠습니다.”

한민국이 비장한 각오로 고개를 끄덕였다.

* * *

도훈이 들어가자 문 앞에 있던 매니저가 조심스럽게 묻는다.

“안녕하세요, 혹시 예약은 하셨습니까?”

“케이라는 이름으로 예약을 하셨다고 하더라고요.”

“아, 제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매니저는 앞장서서 복도를 걸어갔다.

그녀가 멈춘 곳은 복도의 가장 끝에 있는 방이었다.

복도의 끝 방에서 멈춘 매니저가 문을 열고 안쪽을 가리켰다.

“들어가시죠.”

“네, 감사합니다.”

살짝 고개를 숙인 도훈이 안으로 들어갔다.

안쪽에는 어디선가 본 듯한 여자가 도훈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어디에서 봤지?

도훈은 고개를 갸웃했다.

목소리에 얼굴까지 눈에 익다니?

도훈이 살짝 당황하자 옆에 있던 한민국은 인사도 못 하고 멀뚱히 서 있었다.

그런 그들의 모습이 재미있다는 듯 여자가 웃었다.

그 웃음소리가 새어 나오자 여자는 황급히 손으로 입을 가렸다.

당황한 듯 고개를 돌리는 여인.

그녀의 옆에는 정재웅이 앉아 있었다.

뭐, 정재웅 감독은 전생에도 자주 봤던 인물이었다.

정재웅은 전생의 얼굴 그대로였다.

통통한 스타일에 검은 테안경.

정재웅 감독이 황급하게 일어났다.

“안녕하세요, 정재웅이라고 합니다.”

정재웅 감독이 손을 내밀자 도훈이 기분 좋게 그 손을 맞잡았다.

“저는 메일 드렸던 이도훈입니다.”

“네, 그러지 않아도 영웅이 형한테 얘기 많이 들었습니다.”

“혹시 무슨 얘기를…….”

도훈이 슬쩍 눈치를 봤다.

혹시나 자신의 실체에 대해 이야기를 했으면 어쩌나 해서였다.

그때 정재웅 감독이 활짝 웃으며 답했다.

“유능하신 분이라고 들었습니다.”

“아, 그거 빈말이에요. 유능하지는 않습니다. 유능해지려고 노력할 뿐이지요. 그런 그렇고 작가님 맞으시죠?”

도훈이 아무렇지 않게 시선을 돌리자 작가 케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네, 맞아요. 제가 케이예요.”

“만나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도훈이 재빨리 명함을 건네자 작가 케이가 고개를 숙인다.

“앗, 제가 영광이죠. 제 작품에 대해서 그렇게 관심을 가져 주신 분이 안 계셔서…….”

살짝 말끝을 흐리는 케이는 뒷머리를 긁적였다.

예상과는 수더분한 스타일의 이십 대 중반의 단발머리 여인이었다.

얼굴보다 조금 더 큰 검은 뿔테 안경 때문인지 묘하게 얼굴이 더 작아 보였다.

딱 보면 문예창작과나 국문과를 졸업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듯한 외모.

한 삼 일 밤낮은 새운 것 같은 초췌한 모습으로 마치 방송국 작가 사무실 앞 커피 자판기 앞에서 봐도 어색하지 않을 모습이었다.

말끝을 흐리던 그녀가 힐끔 한민국 쪽을 바라본다.

그녀가 의자를 가리켰다.

“일단 앉으세요.”

“네.”

고개를 끄덕인 도훈이 자리에 앉아서 말했다.

“아, 죄송합니다. 이상하게 낯이 익어서 어디서 뵌 분 같기도 해서요.”

“어, 유명한 사람이 아닌데요.”

“제가 너무 흥분했나 봅니다.”

“아니에요.”

작가 케이가 손을 휘휘 내젓자 도훈이 말을 이었다.

“제가 보내 드린 메일 읽어 보셨죠.”

“네, 그래서 이렇게 뵙자고 한 거예요.”

“그럼, 제가 말씀드린 투자도 긍정적으로 검토하셨다는 이야기네요.”

“사실 투자는 필요 없어요.”

말을 마친 케이가 힐끔 정재웅 감독을 바라본다.

정재웅 감독은 알았다는 듯 그녀 대신 말을 이었다.

“저희는 투자는 필요 없습니다.”

“그럼, 저를 보자고 한 이유가 대체 뭔가요?”

“저희 작가님이 공동 작업을 하셨으면 해서요.”

“공동 작업이라니요? 흠…….”

도훈이 눈을 크게 떴다.

이건 생각도 못 한 돌발 상황이었다.

잠시 헛기침으로 도훈이 숨을 돌리고 있을 때 이번에는 케이가 다시 말을 이었다.

“아까 보내 주신 자료 읽어 봤는데요. 마치 제 머릿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어요.”

“진짜요?”

“네, 몇몇 코멘트는 제가 못 풀고 끙끙댔던 전개 방식을 제시해 주신 거였거든요.”

“그거 다행이네요.”

“그런데 그걸 그냥 날로 먹는다는, 아니 그냥 아무런 대가 없이 제가 작품에 반영한다는 건 아무래도 양심에 어긋나서요. 그러니까…….”

케이는 작품 이야기가 나오자 입에 엔진을 달아 놓은 듯 쉬지 않고 말을 이었다.

케이의 말은 간단했다.

앞으로 같이 초원의 집 각본을 공동 집필하자는 것이었다.

조금은 황당한 제안.

그때 도훈이 주변을 둘러봤다.

왠지 지금의 상황이 아주 익숙했다.

뭐지?

한참 동안 눈앞에서 느껴지는 기시감에 고민하던 도훈이 자신도 모르게 손가락을 튕겼다.

딱!

갑작스러운 상황에 설명을 이어 가던 케이와 그 옆에 있던 정재웅 감독이 눈을 크게 떴다.

둘은 조용히 도훈을 바라봤다.

도훈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케이 작가님 본명이 김다솜 아닌가요?”

“네?”

깜짝 놀라는 그녀를 도훈은 손바닥을 보이며 진정시켰다.

“일단 진정하시고, 다솜 씨 오빠 이름이 김진표 맞죠?”

“그걸 어떻게…….”

말끝을 흐리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케이.

도훈은 재빨리 그녀를 따라 일어났다.

그러고는 자리에서 빠져나가려는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한민국과 정재웅 감독은 석상이 되었다.

도훈이 재빨리 말을 이었다.

“김진표 친구 이도훈.”

“네?”

“어렸을 적 한남동에 있던 집에 자주 놀러 갔었는데…….”

“지, 진짜 그 도훈 오빠?”

“휴, 하도 많이 커서 못 알아봤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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