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의 연예계 공략법 (31)
그 모습에 우시원이 화들짝 놀랐다.
“아무리 그래도 손님이 계산을 하게 만들면 안 될 것 같은데요.”
“계산할 동안 우린 잠깐 얘기나 하죠.”
“무슨 이야기요?”
“거기 음료수나 하나 집어 와요.”
“뭘로 드실래요?”
“시원 씨 즐겨 먹는 거로 가지고 와요.”
말을 마친 도훈은 밖에 아직 접히지 않은 파라솔 아래에 앉았다.
도훈이 앉아 있자 우시원이 콜라 두 캔을 가지고 온다.
“이거 드세요.”
“잘 먹을게요. 이건 우리가 계산 대신해 주는 대신 얻어먹을게요.”
“네, 그런데 제 이름은 어떻게 아신 거죠?”
“거기 쓰여 있잖아요.”
“앗, 그러고 보니…….”
말끝을 흐린 우시원이 자신의 명찰을 바라봤다.
그러고는 눈을 크게 떴다.
“생각해 보니 이건 며칠 전 그만뒀던 알바생 옷인데요.”
“아, 명찰이 아니라 포스기에서 봤어요.”
도훈이 편의점 안쪽을 가리켰다.
물론 거짓말. 대충 둘러댄 것뿐이었다.
“아, 그렇군요.”
우시원이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우시원은 이런 식으로 정신을 쏙 빼놓으면 대화 자체가 편해진다.
조금 짓궂긴 해도 지름길만을 찾아가야 하는 도훈의 입장에서는 적절한 방법이다.
우시원이 뭔가 기억났는지 물었다.
“참, 하실 말씀이 뭔데요?”
“일단 이거 받아요.”
도훈이 아무렇지 않게 명함을 우시원 쪽으로 밀었다.
“명함이네요, 그런데 유레카요?”
“JK엔터 아시죠?”
“네, 알아요. 생각해 보니 JK에서 사명 변경하신 거 맞죠?”
“네, 맞습니다. JK가 유레카로 새로 태어났죠.”
“그런데 왜 제게 명함을 주시는지요?”
“길거리 캐스팅 정도라고 해 두죠. 그런데 SW에 있던 것으로 아는데…….”
도훈이 슬쩍 우시원의 얼굴을 살폈다.
아니나 다를까 우시원의 표정이 조금씩 바뀌었다.
“뭐, 비밀도 아니죠. SW에 있다가 계약 해지됐어요.”
“혹시 오라는 곳 없었어요?”
“뭐, 기획사 쪽에 제 소문이 다 나서요.”
우울한 표정으로 기억을 곱씹는 우시원을 본 도훈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설마 했는데 우시원 개인의 역사가 바뀐 것이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표정을 보자니 뭔가 감추고 있는 분위기였다.
“진짜 스카우트 제의 들어온 곳이 한 곳도 없었어요?”
“아는 형이 같이 일하자고 해서 합류하기로 했는데 그쪽도 망해서요.”
“흠.”
도훈이 팔짱을 끼며 대충 상황을 정리해 봤다.
그것도 잠시 도훈이 상체를 기울이며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유레카하고 다시 시작해 보는 건 어때요?”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제가 어떻게 다시 시작해요?”
“그냥 시작하면 됩니다.”
“저에 대해서 잘 모르셔서 그러시는데 제가 능력 부족이라는 건 유레카에서도 다 알고 있을 거예요. 아마 윗선에서 자를 거예요.”
“아직 무대에 설 생각은 있죠?”
“그건 그렇지만, 항상 민폐 캐릭터라는 말을 들어서…….”
우시원의 코알라처럼 동그란 눈이 촉촉해졌다.
바로 이런 이미지였다.
저런 우수에 찬 눈.
그것이 우시원의 무기였다.
그가 말한 민폐 캐릭터란 말도 어느 정도 들어맞았다.
우여곡절 끝에 데뷔하더라도 퍼포먼스에서 있어 블랙홀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니니 말이다.
녀석이 성공하는 건 앞으로 솔로로 데뷔했을 때였다.
탑티어급 외모에 풍부한 감성을 목소리에 담아내는 법을 아는 친구였다.
그리고 그 감성을 넘어서는 파워풀한 가창력이 녀석의 무기가 될 것이었다.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였다.
갑자기 도훈의 가슴이 뜨거워졌다.
힐끔 가슴 쪽을 바라보니 수첩이 다시 빛나고 있었다.
물론 이유는 간단했다.
우시원은 도훈의 빈소를 지켰던 사람 중 하나.
즉, 도훈이 끌고 가야 할 친구였다.
물론 도훈이 늦은 밤 우시원을 찾은 것은 인연 때문은 아니었다.
하지만, 섣불리 덤비는 것은 시기상조.
일단 녀석의 사정부터 알아내야 했다.
도훈은 입술을 달싹이는 녀석을 바라봤다.
아마 녀석은 머뭇거리면서 스카우트 제의에 관한 결정을 미룰 것이다.
도훈은 턱을 괴고 녀석의 입이 떨어지기를 기다렸다.
“저…….”
녀석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말끝을 흐리며 미안한 표정으로 도훈을 바라보는 우시원.
도훈은 사람 좋은 얼굴로 말했다.
“괜찮으니 편하게 말해 봐요.”
도훈은 아무 기대감 없이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하지만, 녀석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뜻밖이었다.
“죄송하지만, 거절하겠습니다.”
“거절하겠다고?”
도훈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녀석을 바라봤다.
전생에는 무대 위에 다시 서고 싶다고 울기까지 했던 우시원이었다.
그런데 단번에 거절이라니!
역사가 바뀐 것이 아니라 사람이 바뀐 것 같았다.
도훈이 뚫어져라 보고 있자 우시원이 입을 열었다.
“더는 민폐를 끼치기 싫어서요.”
“그게 무슨 말인지 알 수 있을까?”
“괜히 아이돌 된다고 헛바람만 들어서 부모님께도 폐를 끼치고 저를 감싸 주던 동료들한테 손해를 입힌 것 같아서요. 지금부터라도 부모님도 돕고 학교 공부도 열심히 해서 공무원 시험 준비하려고요.”
유난히 공무원이라는 단어에 힘을 준다.
긴장하던 도훈이 바람 빠진 풍선처럼 살짝 늘어졌다.
그것도 잠시, 도훈이 사람 좋은 얼굴로 말했다.
“참, 말 놔도 되지? 내가 한 열 살은 많을 테니까.”
“네, 그러세요.”
“이름을 불러 주는 게 나을까? 아니면 예명을 불러 줄까?”
“이제 연예인도 아니니 그냥 이름을 불러 주세요.”
“알았어, 그럼 앞으로 원이라 부를게.”
“네? 그게 무슨 말씀…….”
그의 말이 끝나기 전에 도훈이 다음 말을 이었다.
“괜찮지. 그런데 공무원 시험 볼 거라고 했지?”
질문을 던진 도훈이 설마설마하는 마음으로 눈을 가늘게 떴다.
도훈이 모르는 공부에 대한 재능이 원에게 있던 것은 아니었다.
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 건데, 모의고사는 봤어?”
“공무원 시험이요?”
“대입 모의고사.”
“아, 제가 모의고사는 연습 때문에 대부분 빠져서요.”
“그렇구나, 그럼 아직 실력을 모르는 거지?”
“전 소속사에서 학교에 보낸 공문이 있어서 잠시 빠지고 편의점에서 엄마 일 돕는 중이었어요.”
“그래, 알았다.”
도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동안 사람이 바뀐 건 아닌지 착각한 자신의 머리를 후려갈기고 싶은 도훈이었다.
노래 가사도 힘들게 외우는 놈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다는 자체가 착오였다.
‘원’이라는 예명은 이름인 우시원의 끝자에서 에서 따왔지만, 동료들 사이에서는 무시원으로 불리던 녀석이었다.
항상 결말이 시원하지 않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다.
그런데 난데없이 공무원 시험이라니!
그때 우시원이 미안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 그만 정리해야 해서요. 그만 들어가 볼게요.”
“그래, 알았다.”
“그럼…….”
“잠깐.”
“왜, 그러세요?”
“명함은 넣고 가야지.”
“앗, 죄송합니다.”
우시원의 허리가 폴더폰처럼 접혔다.
예의 하나는 확실한 녀석이었다.
도훈은 녀석의 뒤를 따라갔다.
한민국은 포스기로 자기가 가져갈 물건을 결제한 뒤 봉투에 알뜰하게 다 담았다.
대충 보니 우시원하고 대화 도중 온 손님 응대까지 한 모양이었다.
한민국을 바라보는 우시원의 눈이 편의점 간판보다 더 반짝인다.
“헉, 진짜 빠르시네요.”
“뭐, 이 정도야…….”
“아니에요, 저보다 열 배는 빠른 것 같아요, 형.”
“하하, 뭐, 이런 거 가지고.”
한민국이 실없이 웃었다.
뒤에서 보고 있던 도훈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한 매니저는 좋겠네.”
“뭐가 좋아요?”
“오랜만에 인정받았잖아.”
“헉.”
“잘려도 직장 구할 걱정은 없겠어.”
“아니, 왜 그런 농담을 하시고 그래요, 실장님.”
한민국이 재빨리 계산대에서 벗어나 도훈에게 달려왔다.
도훈은 우시원을 바라보고 눈을 찡긋했다.
녀석이 다시 허리를 90도로 숙였다.
도훈은 아무렇지 않게 돌아서서 편의점을 나왔다.
뒤따라오던 한민국은 생선을 본 고양이처럼 찰싹 달라붙었다.
“실장님, 거긴 왜 들르신 거예요?”
“아까 그 친구 보러 갔지.”
“그런데 왜 그냥 오세요?”
“공무원 준비한다고 하잖아. 그런데 내가 뭐라고 해.”
“아, 공무원 좋죠. 딱 보니까 모범생에 공부도 잘할 것 같은데 어울리네요.”
“내가 이런 말 하기는 그런데, 아까 그 친구가 공무원 되는 것보다 한 매니저가 이 업계 탑 찍는 게 빠를 거야.”
“그럼 저 친구도 공부는 웬만큼 한다는 거네요.”
“우리 한 매니저는 기사 하지 말고 방송국 공채나 알아보는 게 어때?”
“방송국 공채라면…… 혹시 기자요?”
“아니, 개그맨.”
“앗, 실장님!”
한민국의 외침에 도훈은 그의 어깨를 토닥이며 앞서 나갔다.
앞서가는 도훈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그 모습에 한민국이 억울한 표정으로 물었다.
“왜 웃으세요?”
“한 매니저 보고 웃는 거 아니야.”
“그런데 그렇게 왜 웃으십니까?”
“당연히 일이 잘됐으니까 웃지.”
“무슨 일이요? 혹시 저 친구 데리고 오려고 하던 일이요?”
“그럼, 지금 그 일 말고 뭐가 있어?”
“그 친구 공무원 시험 준비할 거라고 실장님이 방금 말씀하셨잖아요.”
“아마 일주일 안으로 연락 올 거야.”
“표정을 보니 고집이 보통 아닐 것 같은데요. 제가 보기에는 절대 먼저 연락 올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못 믿겠으면 내기하든지.”
“내기요? 뭘 걸까요?”
“흠, 한 달 월급?”
“그건 제 손해 아닙니까? 돈의 가치가 다르잖아요.”
“흠, 그럼 한 매니저가 이기면 한 달 월급. 내가 이기면 시간 외 근무 수당은 없는 거로 하지.”
“진짜로요?”
“새끼손가락이라도 걸어 줄까?”
도훈이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새끼손가락을 내밀자 한민국이 번개처럼 손가락을 걸었다.
“정말 약속한 겁니다, 실장님.”
한민국의 표정은 하늘에 뜬 보름달만큼이나 밝았다.
물론 도훈도 그만큼이나 밝게 웃었다.
* * *
다음 날 아침 7팀 사무실
한민국은 고개를 갸웃하면서 도훈을 바라보고 있었다.
도훈이 마치 마감에 닥친 과제물을 처리하듯 미친 듯이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타다닥.
키보드 소리가 기분 좋게 사무실에 퍼졌다.
한민국은 저렇게 키보드를 두드리는 이유를 도저히 알 수 없었다.
저리 급히 키보드를 두드리는 것을 보면 분명히 큰일이 날 것 같은 느낌이었다.
도훈은 미친 듯이 일하고 있는데, 자신은 아무 할 일이 없자 점점 불안해지고 있었다.
그때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가 멈췄다.
도훈이 노트북에서 눈을 떼자 한민국이 자라가 게 눈 감추듯 고개를 숙인다.
그 모습에 도훈이 물었다.
“한 매니저, 왜 날 감시하고 그래?”
“들켰어요?”
“그렇게 빤히 쳐다보는데 어떻게 몰라?”
“궁금한 게 있어서요.”
“말해 봐.”
“무슨 일을 그렇게 열심히 하세요. 괜히 저만 놀고 있는 것 같잖아요.”
“놀고 있는 거 맞잖아.”
“아, 실장님이 제게 시킨 일이 하나도 없으시잖아요.”
“한 매니저!”
“네, 실장님.”
“그렇게 수동적으로 일하면 어떻게 하려고.”
“아니, 일이 있어야 움직이죠.”
“흠, 그렇다는 거지…….”
도훈이 의미심장한 눈으로 한민국을 바라봤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