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의 연예계 공략법 (30)
제법 심각한 이지유의 표정에 도훈이 답했다.
“그럼, 당연하지, 나 못 믿어?”
순간 옆에서 대화를 듣던 강영웅이 마시던 맥주를 뿜었다.
“푸웁.”
“앗! 형, 왜 그래요?”
“야, 너 때문에 그러잖아, 보이는 사람마다 나 못 믿어? 내지는 나 믿지? 그런 멘트를 계속 던지면 누가 봐도 수상하잖아. 이거 완전히 사기꾼 기질이 있네.”
“흠, 사기 좀 쳐 봤으면 좋겠네요. 이제까지 너무 선량하게 살아서요.”
도훈이 웃자 강영웅도 마주 웃었다.
“그건 그래.”
강영웅이 고개를 끄덕이자 이지유가 끼어들었다.
“선배님은 진짜 사기에 홀딱 넘어가겠어요. 금세 그렇게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그때였다.
뒤쪽에서 아주머니들이 다가왔다.
도훈은 고개를 힐끔 돌렸다.
아주머니들은 모두 접시를 들고 있었다.
다가온 아주머니들이 접시를 식탁 위에 올려놨다.
이지유가 비웠던 식탁이 음식들로 다시 가득 찼다.
도훈이 막 입을 열려고 할 때였다.
산책 모임 회장이 먼저 접시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거 우리가 도훈 총각 주려고 일산에서 준비해 온 거야.”
“네? 음식이라면 아까도 많이 먹었는데…….”
“그건 영웅이 엄마가 준비한 거고 이건 우리가 준비한 거니 사양 말고 들어.”
“아, 지금은 배가 꽉 차서.”
“이거 섭섭한데.”
그때 이지유가 손을 번쩍 들었다.
“제가 흑기사 해도 되나요?”
순간 모두가 입을 딱 벌렸다.
물론 도훈은 다른 의미에서 눈을 가늘게 떴다.
배우로 나갈 것이 아니라 먹방으로 인터넷 방송을 평정할 수 있는 인재 같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먹방이 그다지 유행하지 않는 시점이었다.
역시 사람은 시대를 잘 타고나야 했다.
아쉬워할 것은 없었다. 능력만 되면 배우도 시키고 먹방러도 시키고.
재능이야 많으면 많을수록 좋았다.
그러고 보면 이런 좋은 능력을 전생에는 왜 꼭꼭 숨겼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때였다.
이지유가 조심스럽게 강영웅을 바라봤다.
그 모습에 강영웅이 물었다.
“왜 그래? 혹시 여기 있는 음식으로도 모자란 거야? 뭐 더 시켜 줄까? 요 앞에 잘하는 중국집 있는데.”
“앗, 선배님, 저를 뭐로 보고 그래요.”
“그렇게 간절한 눈빛으로 나를 보니까 그렇지.”
“그게 아니라 SW에서 엔디스도 해체됐어요?”
“엔디스? 그게 뭔데? 조금 자세히 말해 줘, 내가 SW 나오기 전 몇 달은 아예 발길을 끊었잖아.”
“아, 그랬죠. 흠 어떻게 설명해야 하지…… 맞아 그때 월말 평가 때 선배님이 칭찬했던 데뷔조 있잖아요. 남돌이요.”
“이제 기억이 나네. 그런데 그 친구들이 왜?”
“그 친구 중의 한 명이 요 앞 편의점에서 일하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아까 깜짝 놀랐거든요.”
“뭐, 데뷔하기 일주일 전에도 대표 마음에 안 들면 전면 백지화시키는 게 그쪽 시스템이잖아.”
“그건 그렇지만, 얼마 전까지 연습실에 있는 걸 봤는데 지금은 편의점 계산대에 있으니 좀 이상해서요. 괜히 안타깝고 그런 기분 있죠.”
“이름이 뭔데?”
“그때 원이라는 이름을 썼을 거예요. 본명은 시원이던가?”
순간 도훈이 눈을 크게 뜨며 다급하게 끼어들었다.
“지금 원이라고 했어?”
이지유가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앗, 깜짝이야. 실장님 왜 그래요?”
“혹시 그 원이라는 친구 이름이 우시원이야?”
“네, 맞아요. 우시원이요. 이상하게 연예계의 바닥까지 쫙 꿰뚫고 계시네요.”
이지유가 신기하다는 듯 눈을 가늘게 뜨자 도훈이 씩 웃으며 말했다.
“기본이지, 뭐.”
말투나 표정과는 달리 도훈의 머릿속에는 의문이 쓰나미처럼 몰아치기 시작했다.
SW에서 데뷔조로 있던 우시원은 마지막 고비를 넘기지 못하고 탈락하게 된다.
그런 도중 다른 기획사로 스카우트되어서 다시 연습생 시절을 거친 후 파란만장하게 데뷔하게 된다.
물론 성공적인 데뷔는 아니었다.
그는 그저 그런 아이돌로 지내다가 지금부터 칠 년 후에 도훈과 만나게 되는 것이 전생의 기억.
지금쯤이면 아직 SW에 남아 있어야 할 시기였다.
그런데 왜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하고 있다는 말이냐?
도훈은 겨우 한숨을 삼켰다.
사실 도훈이 가장 걱정하는 것이 나비효과였다.
도훈이 한 사소한 행동이 연예계에 미칠 영향이 분명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도훈은 시간 날 때마다 전체적인 흐름에 대해서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이제까지는 별다른 변화가 없기에 안심하고 있었다.
그런데 소소한 개인의 역사는 바뀐 것 같다.
도훈의 표정이 시시각각 바뀌자 강영웅이 물었다.
“혹시…….”
“혹시라니요?”
“표정을 보니 돈이라도 떼인 것 같아서 하는 말이지.”
“돈 떼인 거 맞아요.”
“풉!”
이번에는 이지유가 음료수를 뿜었다.
그 모습에 도훈이 자리를 피하며 말했다.
“아니, 이 양반들이 돌고래도 아니고 왜 그래요.”
도훈은 농담을 던지며 다미에게 다가갔다.
도훈을 보자 강민과 같이 놀던 다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달려왔다.
다미를 번쩍 안아 든 도훈이 씩 웃었다.
* * *
도훈이 편의점으로 출발한 것은 밤 10시가 넘어서였다.
도훈은 이지유와 강민은 보내 놓고 한민국과 함께 편의점으로 가는 중이었다.
편의점에 거의 도착할 때쯤 한민국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지금 가 봤자 없을 거예요.”
“일단 가 보고.”
“에이, 실장님이 평민의 세계를 너무 모르신다. 보통 편의점 아르바이트는 보통 2교대예요. 아까 오후에 있던 친구인데 밤까지 있을 리가 없죠.”
한민국이 장담하자 도훈이 씩 웃었다.
“저기 있는데.”
도훈이 편의점 앞 파라솔을 정리하는 사내를 가리켰다.
한민국이 놀란 듯 외쳤다.
“와, 무슨 기계도 아니고 아까 두 시부터 오후 열 시까지 있네요. 아까 얘기 들어 보니 오전부터 근무했다고 하던데요. 분명히 늦어도 아홉 시 정도면 교대 시간인데…….”
“아깝네.”
“뭐가 아까워요?”
“우리 민국이하고 내기라도 할 것 그랬어.”
“와, 요즘 재벌이 이렇게 무섭다니까요. 어떻게 기사 주머니를 털 생각을 하세요.”
한민국의 말에 도훈이 씩 웃었다.
처음에는 도훈의 얼굴을 보기만 해도 쩔쩔매던 한민국이였다.
그런데 지금은 이렇게 농담도 곧잘 던지곤 한다.
만약 전같이 도훈을 대했다면 아마 한민국과 같이 일을 못 했을 수도 있었다.
바짝 굳은 자세로 매니저 노릇을 할 수는 없을 테니까.
그런 면에서는 나름대로 생존 본능을 타고난 녀석이었다.
도훈의 표정을 본 한민국이 살짝 기어들어 가는 소리로 물었다.
“혹시 제가 오버한 건 아니죠. 실장님.”
자신의 안위가 걱정되는 듯 확인하는 한민국.
그 모습에 도훈이 다시 웃었다.
“괜찮으니까. 지금처럼 편하게 해. 잘하고 있어. 대신에 미라클 쪽하고 일할 때는 바싹 긴장하고.”
“네, 알겠습니다. 대표, 아니, 실장님.”
한민국이 힘차게 대답했을 때 도훈은 우시원의 앞에 도착했다.
기척을 느낀 우시원이 슬쩍 고개를 들었었지만, 도훈은 아무렇지 않게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한민국은 고개를 갸우뚱하고 도훈의 뒤를 따랐다.
편의점 안에 들어선 도훈이 아무렇지 않게 한민국에게 말했다.
“아무거나 골라 봐.”
“물건을 고르라고요?”
“편의점에 왔으면 물건을 사야 할 거 아니야.”
“저 밖에 있는 친구 때문에 오신 거잖아요.”
“낚시를 하려면 떡밥을 던져야지.”
도훈이 의미심장한 표정을 던졌다.
고개를 갸웃하던 한민국이 뭔가를 깨닫고 흥분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럼 사 주시는 거예요?”
“응, 최대한 많이 사.”
“진짜죠? 저 한 달 치 생필품 다 삽니다.”
“사고 싶은 거 다 사.”
“정말이지요? 저 쌀도 사요.”
“그건 알아서 하고.”
“감사합니다, 평생 충성하겠습니다.”
경례까지 하며 눈을 빛내는 한민국을 뒤로한 채 도훈은 계산대에서 기다렸다.
힐끔 밖을 보니 우시원은 가끔 안쪽을 보며 플라스틱 테이블을 정리하기에 여념 없었다.
딱 보니 얼굴이 초췌한 게 연습생보다 더 고생하는 듯 보였다.
얼마나 지났을까.
우시원이 계산대로 돌아올 때에 맞춰 물건을 쓸어 담은 한민국이 돌아왔다.
도훈은 한민국이 내려놓은 물건에 입을 벌려야 했다.
“우리 한 매니저.”
“네, 실장님.”
“아니 쌀은 사라고 했지만, 생수까지 살 줄을 몰랐네.”
“헉, 제가 잘못한 거라도…….”
“아니, 차도 안 가져왔잖아. 이거 산 거 다 한 매니저가 가지고 가야 하는 거 알지?”
“그럼, 생수는 놔두고 올게요.”
“낙장불입.”
“그게 뭐예요?”
“한번 고른 건 무를 수 없다는 얘기지. 이건 한 매니저가 짊어지고 가야 할 삶의 무게야.”
“헉, 실장님 그런 게 어디 있어요? 분명히 사고 싶은 거 다 사라고 하셨잖아요.”
“그러니까. 사는 건 자유지만, 가져가는 것도 본인이 책임져야지.”
씩 웃은 도훈은 우시원을 바라봤다.
“내 말 맞죠?”
“아, 그게…….”
슬쩍 말끝을 흐리는 우시원의 모습에 도훈이 씩 웃으며 카드를 내밀었다.
“아니, 이거 다 계산해 줘요.”
우시원은 슬쩍 한민국의 얼굴을 바라봤다.
뒤쪽에 있던 한민국이 죽어라, 손을 크게 흔들자 우시원이 다시 말했다.
“손님, 쌀이나 생수는 제가 제자리에 둘 테니 들고 가실 수 있는 거만…….”
“에이, 이렇게 착하면 사회에서 못 살아남아요.”
“아무리 그래도…….”
“괜찮아요, 그냥 다 계산해 줘요.”
카드를 건넨 도훈은 턱을 괴고 우시원을 바라봤다.
분명히 전생에 알던 우시원이 맞았다.
사실 도훈이 강영웅의 집에서 놀랐던 것은 우시원이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고 해서 놀란 것이 아니었다.
정확히는 편의점에서 일하고 있다고 해서 놀란 것이었다.
우시원은 선천적으로 긍정적인 사고방식의 소유자였다.
그런데 그 긍정적인 사고방식이 극심한 건망증에서 나온다.
마음은 여리고 건망증은 심하고.
오죽하면 노래 가사 하나 외우는 데 며칠 밤을 새워야 했다.
그 건망증 덕분에 계산에도 상당히 약하다.
힐끔 눈치를 살피니 삐죽삐죽 땀을 흘리고 있다.
한민국이 셀 수 없이 많은 물건을 올려놓는 바람에 지금 진땀을 빼고 있는 것이다.
진땀을 빼던 우시원이 말했다.
“죄, 죄송한데 제가 어디까지 계산했는지 몰라서 다시 계산해야 할 것 같은데 괜찮으시죠?”
“괜찮아요.”
도훈이 고개를 흔들자 우시원이 다시 바코드를 찍기 시작했다.
아마 이 녀석한테 맡겨 놓으면 이틀이 걸려도 계산을 다 못 끝낼지도 몰랐다.
아니나 다를까.
다시 눈치를 본다.
다시 계산해야 한다는 말이 입에서 떨어지지 않는 듯하다.
도훈이 말했다.
“도와줄까요?”
“네?”
“잠깐 이리 나와요.”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계산이 오늘 밤이 지나도 안 끝날 것 같아서 그래요. 일단 나와요.”
“그래도…….”
“이래 봬도 편의점 알바 경력 삼 년이에요.”
“그럼, 부탁드릴게요.”
그때 뒤에서 지켜보던 한민국이 물었다.
“실장님이 편의점 알바를 하셨다고요?”
“나 말고 너. 일단 들어가서 계산 좀 하고 있어.”
도훈은
한민국을 계산대로 밀어 넣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