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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연예계 공략법-29화 (29/250)
  • 회귀자의 연예계 공략법 (29)

    강영웅이 뒷머리를 긁적이며 다가갔다.

    “하하, 그래도 제가 빠지면 조금 섭섭하겠죠.”

    그가 다가오자 산책 모임 회장이 조용히 속삭였다.

    “이거 사진 좀 찍어 줘, 내가 타이머 설정 같은 건 잘 못 해서…….”

    “아, 너무하시네요.”

    강영웅이 허탈한 표정으로 돌아서자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졌다.

    화기애애한 집들이는 몇 시간 동안 이루어졌다.

    다미는 도훈의 옆에서 꼭 붙어 있었고 그 주변을 산책 모임 아주머니들이 에워싼다.

    그들이 이야기꽃을 피울 때 이지유는 조용히 음식을 삭제하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지우개로 지우듯 식탁 위의 음식을 처리했다.

    그러면서도 고개를 계속 갸웃했다.

    눈에 보이는 도훈의 모습이 너무 자연스러웠기 때문이다.

    마치 몇십 년 동안 알던 사람처럼 아주머니들과 강영웅의 어머니 그리고 다미와 함께 녹아들었다.

    그때 강영웅이 이지유의 옆에 앉았다.

    “좋아 보이지?”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이 실장 말이야, 사람 좋아 보인다고.”

    “그죠, 사람 좋죠. 그런데 다미를 구한 건 알겠는데, 저렇게 친한 건 이해가 좀 안 되네요.”

    “나하고 친해지기 전에 우리 엄마하고 먼저 친해졌거든…… 하하.”

    예전 일을 떠올린 강영웅이 너털웃음을 터뜨리자 이지유가 물었다.

    “그럼 혹시 우리 실장님이 선배님 어머님께 계약 때문에 접근하신 거예요?”

    “그건 나도 몰라. 그런데 처음 만날 때부터 편하더라고. 내 딸을 구해 줬다는 거보다 꼭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람 같다고 할까?”

    “정말로요? 저도 그랬는데…….”

    그때 둘의 뒤쪽에서 그림자 하나가 나타났다.

    “둘이서 제 흉보시는 거예요?”

    “헉.”

    이지유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뒤쪽에서 나타난 주인공이 다름 아닌 도훈이었기 때문이다.

    강영웅이 활짝 웃으며 자신의 옆자리에 있던 의자를 뺐다.

    “나도 깜짝 놀랐네, 잠깐 안 보는 사이에 뒤쪽에서 나타나면 어떻게 해. 누가 보면 초능력자로 오해하겠다.”

    “하하, 그런가요?”

    “나는 다미한테 가 볼 테니, 여기서 얘기하고 있어.”

    “다미는 강민이랑 딱 붙어서 놀고 있으니까 염려 마세요.”

    도훈이 건너편 놀이방을 가리켰다.

    “둘이서 잘 노네.”

    “강민이가 다미한테 반했나 보네요.”

    “안 돼, 어디서 아빠 허락도 없이.”

    “하하.”

    “그건 그렇고 말할 게 뭐야?”

    “눈치 빠르시네요.”

    “그렇게 나를 모르다니 좀 섭섭한데, 내가 이래 봬도 눈치 백 단이거든.”

    “하하, 그럼 본론으로 바로 들어가겠습니다. 일단 좋은 소식인데, 지금 형 대박 났어요. 지금 유레카로 광고가 쏟아지고 있어요.”

    “쏟아지고 있다라…….”

    “왜 내키지 않으세요? 좀 더 쉬고 싶으시면 그래도 돼요.”

    “아니 지금 무슨 섭섭한 말을…… 무조건 해야지. 대출 광고만 아니면 다 줘.”

    “그럴 줄 알았어요. 그리고 두 번째는 조금 고민해 봐야 하는 소식이에요.”

    “그게 뭔데?”

    “지금 쏟아지고 있는 광고 모델의 메인이 형이 아니라 다미라는 거예요.”

    “헉, 뭐야? 내가 집에서도 밀리고 광고에서도 밀린 거야?”

    강영웅이 기분 좋게 웃었다.

    “형이야 다음부터 찍을 전속 광고가 꽤 있잖아요.”

    “뭐, 그렇지.”

    “다미 덕분에 블루오션을 개척하신 겁니다. 형한테 학습지 광고가 들어오겠어요?”

    “일단 줘 봐.”

    “여기요.”

    도훈은 핸드폰을 건넸다.

    화면에는 김민석 부사장이 준 업체 목록과 아이템이 잘 정리되어 있었다.

    목록을 보는 순간 강영웅의 눈이 커졌다.

    “아니, 다미가 나보다 훨씬 낫네. 나도 한 번에 이런 대시는 받아 보지 못했는데.”

    “뭐, 그렇죠.”

    도훈이 어색하게 웃었다.

    그때 옆에 있던 이지유가 눈치를 보다가 조용히 일어났다.

    “저는 강민이하고 다미 좀 보고 올게요.”

    “잠깐만 기다려.”

    “왜요? 아무래도 제가 자리를 비켜 줘야 편하게 얘기 나누실 수…….”

    “아니, 지금 나눌 얘기는 본인이 있어야 하거든.”

    “저요?”

    “응.”

    고개를 끄덕인 도훈이 강영웅을 바라봤다.

    “그건 인제 그만 보시고 다른 얘기 좀 해요. 광고는 제가 깔끔하게 정리해서 보내 드릴게요.”

    “음, 무슨 이야기일까?”

    강영웅은 핸드폰을 건네며 눈을 가늘게 떴다.

    “제게는 좀 중요한 건데, 정재웅 감독 아시죠?”

    “혹시 네가 말하는 정재웅 감독이 전에 내 뮤비 찍어 줬던 재웅이 말하는 거야?”

    “네, 그 정재웅 감독요.”

    “재웅이하고는 친하긴 한데……. 그러고 보니 그놈이 요즘 통 연락을 안 하네.”

    “정재웅 감독하고 좀 연결해 주세요.”

    “재웅이는 왜? 지유 뮤비 찍게?”

    “아니요.”

    “그럼…… 아 그렇지, 재웅이가 광고 쪽으로도 꽤 잘나가지. 내가 그 생각을 못 했네.”

    “그것도 아니고 정재웅 감독이 구상 중인 작품에 투자할까 해서요.”

    “그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건너, 건너 들은 얘긴데 정 감독이 요즘 구상하고 있는 독립영화에 관심이 가서요.”

    “독립영화?”

    “네, 독립영화요.”

    “그건 나도 처음 듣는 얘긴데, 잠시만 기다려 봐.”

    강영웅은 호기심이 일었는지 핸드폰을 꺼내 재빨리 메시지를 날렸다.

    답장이 돌아오는 것은 눈 깜짝할 사이.

    답장을 확인한 강영웅이 눈을 크게 떴다.

    “와, 이도훈 실장!”

    “형, 갑자기 왜 그래요?”

    “정보력 장난 아니네. 재웅이한테 물어보니까, 어떻게 알았냐고 깜짝 놀라네. 얼마나 놀랐는지 라면 끓이다가 엎었대.”

    “아, 그럼 제가 들었던 정보가 옳다는 거네요. 그럼 혹시 무슨 집이라는 제목 아니냐고 물어봐 주세요.”

    도훈이 웃으며 핸드폰을 가리켰다.

    “잠시만 기다려 봐.”

    강영웅은 신이 나서 다시 자판을 눌렀다.

    톡, 톡, 톡.

    빠르게 메시지를 주고받는 강영웅의 입꼬리가 점점 올라갔다.

    그러고는 핸드폰을 엎어 놓고는 도훈을 바라봤다.

    “얘 완전히 맛 갔는데, 누구한테 들었냐고 난리네.”

    “제가 한 말이 맞대요?”

    “그래, 초원의 집이라고 가제를 붙였다네. 나보고 혹시 신들린 거냐고 난리야. 지금 바로 전화 걸 기세라서 핸드폰도 무음으로 해 뒀어.”

    “제 얘기는 안 하신 거죠?”

    “그냥 내가 들었다고만 했어. 그런데 어떻게 된 거야?”

    “지나가다 들었던 작품이었는데, 대충 시놉을 보니 끌려서요.”

    “흠, 시놉을 보여 준 사람이 몇 안 된다고 하던데.”

    “그 몇 중 하나가 제게 말을 했겠죠.”

    “그렇게 빠져나가네.”

    “어쨌든 확인해 주셔서 고마워요.”

    “그럼, 네 연락처 줘도 돼?”

    “네.”

    “그런데 왜 우리 이지유 후배님은…….”

    강영웅이 슬며시 그녀를 바라봤다.

    도훈이 본인이 있어야 한다고 한 것을 그제야 떠올린 것이다.

    이지유도 미어캣처럼 목을 쭉 빼고 도훈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모습에 도훈이 말했다.

    “제가 정재웅 감독의 독립영화에 투자하는 조건은 이지유의 출연입니다.”

    “앗.”

    이지유가 입을 벌렸다.

    뭐, 강영웅의 표정도 마찬가지였다.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느냐는 표정으로 도훈을 바라봤다.

    그도 그럴 것이 이지유의 사정은 강영웅도 대충 알고 있었다.

    연기가 하루아침에 되는 것도 아니고 아이돌이 연기자로 변신하기까지는 최소한의 시간이라는 게 있다.

    강영웅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내가 지유를 무시하는 건 아닌데, 도훈이 너 독립영화를 무슨 놀이터처럼 생각하는 건 아니지?”

    질문을 던진 강영웅은 눈을 빛냈다.

    마치 시험문제를 낸 소크라테스 같은 표정이다.

    만약 정답이 틀린다면 자신이 먹을 독약을 도훈에게 던질 기세.

    도훈은 강영웅이 무엇을 말하려는지 알고 있었다.

    비록 완벽하지는 않지만, 재벌 3세라는 겉옷을 걸치고 있는 도훈이었다.

    보통 이 바닥에서 재벌 3세라고 하면 레시피도 없이 이것저것 마음 내키는 대로 던져 넣는 무개념 요리사였다.

    자신이 꽂고 싶은 배우를 넣고 자신의 친구에게 프로듀스를 맡기고.

    모든 것은 술자리에서 결정되고 말이다.

    도훈이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저 못 믿으세요?”

    그 질문에 강영웅은 자신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이렇게 당당하게 나올 줄 몰랐기 때문이다.

    강영웅이 당황하자 도훈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이지유라는 배우의 가능성을 봤거든요. 그것을 꽃피울 수 있는 화단이 필요해요.”

    “그 화단이 정재웅이라는 거지? 그런데 재웅이에 대해서 언제부터 안 거야?”

    “형 뮤직비디오에서부터요.”

    “헉.”

    강영웅이 맥주를 들이켜다가 급하게 입을 막았다.

    도훈의 대답에 먹던 맥주를 뿜을 뻔했다. 순간 맞은편에 앉아 있던 이지유는 얼굴을 다급히 막았다.

    “앗.”

    연속으로 튀어나오는 비명에 다미가 다급하게 달려왔다.

    “아빠하고 언니 왜 그래요?”

    “내가 무서운 얘기를 해 줬거든.”

    “무슨 무서운 얘기요?”

    “우리 다미에게도 해 줄까? 그럼 한 삼 일 정도는 못 잘 텐데 괜찮을까?”

    “음, 그건 나중에 들을게요.”

    “하하, 그래.”

    도훈이 웃자 다미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그 순간에도 강영웅과 이지유는 멍하니 도훈을 바라보고 있었다.

    도훈은 보육원에서의 경험 이후로 이지유의 연기 수업을 담당할 선생님도 알아보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다가 전생의 기억 하나를 떠올렸다.

    그것이 바로 정재웅 감독의 초원의 집이었다.

    초원의 집은 대한민국에서 집을 장만하기 위한 한 가족의 투쟁기를 그린 영화였다.

    무명의 배우와 초짜 제작진이 함께 만든 초원의 집은 일 년 뒤 칸 영화제 비경쟁 부문에 초청을 받게 된다.

    그런데 몇 번의 상영 후, 초원의 집은 경쟁 부문에 진출한 영화보다 더 화제가 된다.

    대한민국의 현실을 가장 잘 나타내는 영화.

    세계인이 공감할 수 있는 영화.

    연기자인지 일반인인지가 헷갈릴 정도의 리얼리티 등 많은 부분에서 시선을 끌었다.

    덕분에 독립영화로서는 이례적으로 세계 각국에 수출된다.

    물론 막대한 흥행 성적을 거두지는 못했다.

    하지만 초원의 집을 기점으로 정재웅 감독은 세계적인 주목을 받게 된다.

    거기에 더해 초원의 집에 출연했던 배우 모두가 그 기점을 기준으로 몇 단계씩 성장한다.

    여기서 성장이란 배우의 성장이 아니라 몸값을 말한다.

    그런 초원의 집에 숟가락을 얻을 기회가 지금 왔다.

    여기서 도훈이 모르는 것이 딱 하나 있었다.

    초원의 집이라는 영화의 시나리오를 누가 썼는지 하는 점이었다.

    엔딩 크래딧에 나오는 이름은 K.

    알파벳 하나밖에 없었다.

    가장 걱정되는 것은 그 K의 존재였다.

    시나리오를 쓴 작가 K가 지금 독립영화의 제작비를 전액 지원했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그 K가 누군지는 아무도 모른다.

    크래딧에 감독 이름을 당당히 밝힌 정재웅이기에 본인이라면 굳이 K라는 가명을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정재웅 감독뿐이 아니라 K까지 염두에 두고 접근하는 것이 맞았다.

    그때 이지유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물었다.

    “지난번에 말씀하신 게 진심이셨네요. 저는 그냥 농담인 줄 알았는데…….”

    “나는 농담 안 해. 영웅이 형한테 물어봐. 사실을 말 안 한 적은 있어도 거짓말은 안 하는 사람이거든.”

    “제가 잘할 수 있을까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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