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의 연예계 공략법 (27)
한유라의 재촉에 곽수정은 도넛을 기분 좋게 씹으며 손을 내저었다.
“그걸 제가 어떻게 알아요, 한 팀장님. 솔직히 기사 낸 것도 부사장님이 써 준 대로 하나도 안 고치고 무지성으로 전화 돌린 거예요.”
“부사장님이?”
“네.”
“그럼, 강영웅 가수가 몇 팀으로 간다는 건 아예 모른다는 거네.”
그들은 계속해서 둘만 들을 수 있는 작은 목소리로 대화를 이어 나갔다.
“그럼요, 저야 기사만 받아 적은, 아니 그냥 붙여 넣기를 해서 돌린 것밖에 없어요. 이따 오후에 나올 기사는 직접 처리하신다고 하셨어요.”
“오후에 나올 기사가 뭔데?”
“그건 저도 몰라요.”
둘은 계속 귓속말을 이어 나갔다.
“뭐, 다른 정보는 없고?”
“제가 알면 이러고 있겠어요?”
“그래, 그럼 수고했어.”
말을 마친 한유라는 도넛 박스를 닫았다.
“왜 그래요? 언니.”
“지금 그 정보가 도넛 한 상자 값을 한다고 생각해?”
“아, 그렇다고…….”
“이건 그냥 내가 다 먹을래.”
“와, 정보 얻어 갈 때는 언제고 그렇게 가져가시면 어떻게 해요?”
“나머지는 뒤에 사람에게 얻어먹어.”
한유라는 뒤쪽에서 눈을 빛내는 팀장들을 가리켰다.
2팀장 한유라가 사라지자 곽수정이 어색하게 웃었다.
“하하, 하나만 주고 가시네요. 블루베리 도넛 하나 더 먹고 싶었는데…….”
“도넛이면 되는 거야? 곽 대리.”
뒤쪽에서 서 있는 3팀장이 묻자 곽수정이 뒷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혹시 여유가 되시면 캐러멜 마키아토, 휘핑 크림 좀 넉넉하게 얹어서 부탁드려요.”
“알았어, 곽 대리. 이따 나한테도 가르쳐 주는 거야.”
“당연하죠, 팀장님. 제가 팀장님을 얼마나 존경하는데요.”
3팀장이 나가자 곽수정 대리 앞에 다른 사원이 나타났다.
순간 곽수정 대리의 입가에는 진득한 미소가 피어났다.
* * *
강영웅의 영입으로 유레카 전체가 들썩이는 가운데 가장 조용한 사무실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7팀 사무실.
그곳에는 이지유가 시무룩한 표정으로 도훈과 마주 앉아 있었다.
“실장님, 분위기가 이상한 것 같아요.”
“왜? 혹시 누가 너보고 뭐라고 그래?”
“그게 아니라, 저는 여기 오면 사람들이 난리 날 줄 알았거든요.”
“음, 난리는 안 나도 계약 전부터 떠들썩했잖아.”
“실장님 덕분에 오해도 다 풀리고 해서 계약 발표하면 새로 지은 따끈따끈한 밥 대우를 받을 줄 알았는데 사람들이 전부 강영웅 선배님한테 쏠려서…… 졸지에 찬밥이 된 것 같아요.”
“아참, 그렇지. 올 때가 됐는데, 왜 연락도 없지?”
도훈은 이지유의 이야기를 듣는 둥 마는 둥 시계를 바라봤다.
이지유가 조르듯 말했다.
“아니, 제 얘기 좀 들어 주세요.”
그때였다.
문이 덜컹 열리고 누군가가 들어왔다.
들어온 사내가 도훈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잘 지냈어?”
친근한 목소리에 도훈이 빙긋 웃었다.
“형도 잘 지냈어요?”
“그나저나 회사가 썰렁하네.”
“그러게 말이에요. 아마 홍보팀 쪽으로 우르르 몰려갔을 거예요.”
“홍보팀에는 왜? 무슨 일 있어?”
“아니, 본인이 이유를 모르면 어떻게 해요.”
“내가 왜? 나 요즘 이사하느라고 정신없어서. 뉴스도 못 봤어.”
“제가 말씀드렸잖아요. 형하고 유레카 계약 오늘 오피셜로 띄운다고요.”
“아, 그 일로 왜 홍보팀으로 몰려간 거야?”
그때였다.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이지유가 슬쩍 끼어들었다.
“죄송하지만, 이분은 누구세요?”
이지유가 사내를 가리키며 말하자 도훈이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형, 이제 마스크 벗어요. 우리끼리 무슨 마스크예요.”
“그런가? 요즘 하도 시달려서 그러지. 그래서 이사까지 왔는데 말이야.”
“그냥 벗어요, 무슨 소속사 왔는데 마스크에 모자까지 눌러써요?”
“알았어. 잠깐 이게 왜 안 풀리지.”
“거기 고정핀 했잖아요.”
“아, 다미가 해 놨구나.”
사내가 마스크를 벗었다.
옆에 있던 이지유가 손을 들어 그를 가리켰다.
“헉, 강영웅! 아니, 선배님.”
“안녕.”
“그런데 선배님이 왜 여기에 오신 거예요?”
“이 실장 보러 왔지.”
“우리 실장님은 왜요?”
“여기 소속이니 당연히 보러 와야지.”
“아, 그게 아니라…….”
“무슨 말인지 알겠다. 그러니까 난 오늘부터 7팀 소속이거든.”
그때였다.
팔짱을 끼고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도훈이 급하게 나섰다.
“형이 왜 우리 팀 소속이에요?”
“그럼, 내가 어디를 가?”
“제가 말씀드렸잖아요. 6팀 만들어 드릴 테니 그곳에서 편하게 매니저 형이랑 활동하시라고요. 그래야 불협화음도 없어요.”
“그야 내 마음이지, 이사도 너 때문에 온 건데, 내가 7팀으로 들어오지 않으면 여기 온 이유가 없잖아, 안 그래? 이 실장.”
“지금 여기 팀장들이 탑 티어 가수 왔다고 지금 난리 났는데, 이건 안 됩니다.”
“여기에 우리 매니저 형 책상이나 하나 놔줘, 그냥 우리가 알아서 움직일게.”
“아, 이 형이…….”
“그럼 약속한 거다.”
둘의 대화에 이번에는 이지유가 끼어들었다.
“선배님, 그런데 우리 실장님 때문에 여기로 이사 왔다는 건 또 뭐예요?”
“우리 어머니하고 우리 딸이 이 실장 팬이거든.”
“딸이요?”
“아, 아직은 모르겠구나, 나 귀여운 딸이 있거든. 오후에 발표 나갈 거야. MBS 단독으로…….”
“MBS라면 혹시 한지혜 기자님이요?”
“맞아, 이 실장이 한지혜 기자라고 했던 것 같아.”
강영웅의 대답에 이지유는 고개를 돌려 도훈을 바라봤다.
마치 탐정이 용의자를 찾는 듯한 눈길로 한참을 보던 이지유가 다시 강영웅을 바라봤다.
“대체 우리 실장님이랑 무슨 관계예요?”
“우리 집안을 구해 준 은인.”
“네?”
이지유의 눈이 한계까지 커졌다.
이지유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할 때 강영웅이 핸드폰을 꺼내 사진 하나를 보여 줬다.
그 장면은 이지유도 익히 아는 장면이었다.
어린아이를 구하는 도훈의 모습.
그 사진 덕분에 보육원에서 영웅 대접을 받지 않았던가?
하지만 그 사진과 강영웅이 무슨 관계인지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때 강영웅이 씩 웃으며 말했다.
“이 애가 바로 내 딸이야.”
“이 아이가 정말…….”
이지유가 말끝을 흐렸다.
이 사진 속의 아이가 강영웅의 딸이었다니?
물론 딸이 있다는 자체도 놀랍지만, 더 놀라운 것은 그 딸을 도훈이 구했다는 것이었다.
이지유는 힐끔 고개를 돌려 도훈을 바라봤다.
도훈은 무표정하게 핸드폰으로 기사를 검색하고 있었다.
이지유는 도훈의 등 뒤에 날개라도 달려 있는 건 아닌가 하고 살폈다.
천사가 아니고서는 사람을 구하는 게 취미일 수는 없었다.
나중에 한지혜에게 들은 거지만, 자신을 구한 것은 도훈이었다.
그런데 강영웅을 구한 것도 도훈이라니!
이지유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을 때 강영웅이 말을 이었다.
“예쁘지?”
“아, 예뻐요.”
이지유의 영혼 없는 대답에 강영웅이 당황했다.
“아, 이 사진은 예쁜 사진이 아니지.”
강영웅은 재빨리 화면을 넘겨 다미의 다른 사진을 보여 줬다.
“어때?”
“예쁘네요. 그런데 진짜 선배님 딸이에요?”
이지유가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응, 전 소속사에서는 계속 총각 행세하라고 했는데, 유레카는 내 마음대로 하라네, 하하.”
강영웅은 뭐가 좋은지 활짝 웃으며 도훈을 바라봤다.
그리고 입 모양으로 말했다.
‘아직 모르는 거야?’
‘비밀입니다.’
둘이 주고받은 대화는 간단했다.
강영웅은 도훈이 유레카의 주인이라는 것을 아는 상황.
하지만 도훈은 그것을 비밀로 해 달라고 했고 강영웅도 흔쾌히 비밀을 지켜 주기로 했다.
그런데 뜻밖에 7팀에 먼저 들어와 있는 이지유를 보자 혹시나 하고 물어본 것이었다.
둘 사이에 은밀한 신호가 지나가자 이지유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혹시 제가 모르는 게 더 있나요?”
“그건 영업 비밀.”
도훈이 씩 웃자 이지유가 눈을 치켜떴다.
“비밀은 나빠요.”
그 모습에 강영웅이 웃었다.
“왠지 재미있는 후배님이 같은 배를 탄 것 같네.”
“앗, 그러고 보니 선배님하고 같은 배를 탄 거면 목적지도 같은 거네요.”
“그럼 목적지가 같지. 아마 선장만 믿고 따라가면 될 거야.”
의미심장한 눈빛에 도훈이 씩 웃었다.
“믿고 따라오시면 됩니다.”
“그래, 그럼 기념으로 오늘은 내가 한턱낼게.”
“오우, 법카를 두고 형이 쏘시게요?”
“집들이에 무슨 법카?”
“헉, 집들이요?”
도훈이 눈을 동그랗게 뜨자 강영웅이 근엄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럼, 여기로 이사 왔는데 당연히 집들이해야지, 오늘은 비즈니스가 아니라 순수하게 동생으로 놀러 와.”
“그럼, 점심 굶고 달려가겠습니다.”
도훈이 기분 좋게 고개를 끄덕였다.
강영웅이 왜 도훈의 옆으로 이사 왔는지 대충 상황은 안다.
그날 이후 강영웅의 딸 다미는 극도의 불안 증세를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도훈의 사진을 보여 주면 그때마다 안심하고 잠이 든다고 한다.
그 정도의 사고를 당할 뻔했으니 그것은 당연했다.
덕분에 도훈은 가끔 강영웅의 집에 다미를 보러 놀러 가곤 했다.
요즘 다미의 불안 증세는 많이 좋아진 상태.
강영웅은 이 김에 그냥 도훈이 사는 곳과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오게 된 것이다.
강영웅이 씩 웃는다.
“오케이, 그럼 기다리고 있을게.”
“네, 맛있는 거 많이 준비해 두세요. 제가 싹싹 비울 테니까요.”
“그것도 접수. 나는 그만 가 볼게.”
강영웅이 방을 나가려는 듯 마스크를 다시 썼다.
그때 이지유가 손을 번쩍 들었다.
“저도 가도 되나요?”
“응, 당연하지, 딱 둘밖에 없는 7팀 식구잖아. 그럼 의무적으로 참석해야지.”
“흠, 그런데 죄송하지만…….”
“말해 봐, 혹시 보증 서 달라고? 뭐, 그 얘기만 아니면 돼.”
“헉, 설마요. 저를 어떻게 보시고…….”
“아, 그것만 아니면 되니 편하게 말해 봐.”
“동생 데리고 가도 돼요?”
“동생이라? 다미도 집에 있으니까 좋아하겠네, 데려와.”
“고맙습니다, 선배님. 제 동생이 선배님 팬이거든요.”
“이거 고맙네, 꼭 데려와.”
“감사합니다.”
이지유가 머리가 땅에 닿도록 허리를 숙이자 강영웅이 뭔가 생각났다는 듯 손가락을 딱 튕겼다.
“그러고 보니 그전에 나랑 같은 SW였잖아.”
“앗, 그러게요. 저도 SW였죠. 그러고 보니 전 소속사도 같고 현 소속사도 같네요.”
“하하, 이거 출발이 좋은데.”
강영웅이 기분 좋게 웃었다.
* * *
그날 오후.
도훈은 이지유와 한민국을 데리고 조금 일찍 회사를 나왔다.
강영웅이 7팀으로 들어오게 되면서 회사 내부에서 공공의 적이 된 것이었다.
몇몇 팀장들은 팀장도 없는 7팀에 탑티어 가수를 어떻게 맡길 수 있냐며 날뛰었지만, 강영웅이 직접 해명하자, 모든 논란이 쏙 들어갔다.
강영웅이 한 이야기는 간단했다.
“제가 있을 곳은 제가 알아서 정합니다.”
그 말 한마디에 모두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대신에 지나가는 사람마다 7팀 사무실을 쏘아봤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