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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연예계 공략법-25화 (25/250)

회귀자의 연예계 공략법 (25)

이건 어찌 보면 시험이고 어찌 보면 벌이었다.

결론을 낼 때까지 밥 먹을 자격도 없다는 것이었다.

순간 이도준의 미간에 골이 파였다.

그가 판단하기에 이 일은 상의할 문제가 아니었다.

도훈의 실수를 이 자리에서 질책하면 끝날 일이었다.

잘못한 것은 도훈인데 왜 자신이 토론을 벌여야겠나?

잘못은 도훈이 했는데 같이 벌을 받는 상황이 이해가 안 된 것이다.

이도준이 눈썹을 꿈틀댈 때였다.

도훈은 가방에서 주섬주섬 뭔가를 꺼냈다.

그것은 노트북이었다.

도훈은 커다란 식탁의 구석에 앉더니 마우스 패드까지 펼쳤다.

그 상태에서 거실에 있는 엄지연 비서를 힐끔 바라봤다.

그러고는 미안한 표정으로 물었다.

“엄 비서님, 여기 와이파이 비밀번호가 뭐죠?”

“와이파이라니…….”

엄지연도 적잖게 당황했다.

* * *

그녀는 와이파이 비밀번호를 가르쳐 준 뒤 조용히 장경자의 침실로 들어갔다.

그때 탁탁 하는 소음이 울리자 엄지연이 피식 웃으며 장경자에게 다가갔다.

“회장님, 이제 TV 바꾸실 때도 됐잖아요.”

“에이, 난 우리 회사에서 TV 만들 때까지는 TV 안 바꾸련다. 왜 경쟁사 놈들 TV를 사 줘.”

“미라클에는 전자 계열이 없잖아요. 그런데 무슨 경쟁사예요?”

“돈 따먹으려는 놈들은 다 경쟁사지, 별거 있나? 그건 그렇고, 여기에 온 거 보니 할 말이 있나 본데, 말해 봐.”

“이도훈 사장님은 이런 일이 벌어질 줄 알고 미리 준비하고 온 것 같아서요.”

“엄 비서야, 자세히 좀 말해 봐라.”

“아니, 출장 온 것처럼 노트북까지 챙겨서 왔더라고요.”

“노트북까지?”

“아예 트레이닝 복까지 꺼내던데요.”

“하하, 그놈이 왜 이렇게 요망하게 변했을고.”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아니다. 엄 비서야, 너는 이리 좀 와서 이것 좀 쳐 봐라.”

장경자는 TV의 뒤편을 가리켰다.

엄지연은 아무 말 없이 TV의 뒤편을 힘껏 쳤다.

순간 치직 하는 소리와 함께 TV가 켜졌다.

“역시, 젊은 피라서 달라. TV도 나이를 알고 날 무시하네.”

“누가 회장님을 무시해요, 제가 한 대 더 칠까요?”

“아니다, 그럼 이놈 허리 부러진다.”

장경자가 TV를 가리키며 웃자 엄지연이 말했다.

“그럼 저는 이만 나가 볼게요.”

“엄 비서야, 이왕 왔으니 같이 TV나 보자.”

장경자는 의자를 가리키며 탁자 위에 상자 하나를 올려놨다.

“이건 또 뭐예요?”

“지난번에 김가 놈이 주고 간 거다, 너도 하나 먹어라.”

장경자가 상자의 뚜껑을 열었다.

순간 엄지연의 눈이 커졌다.

“이건 그때 김 대표님이 주고 간 산삼이잖아요. 회장님이 드셔야지 그걸 왜 저를 주세요?”

“그냥 도라지라고 생각하고 먹어라, 아니면 버릴 테니.”

“아, 알겠습니다, 회장님.”

엄 비서가 막 산삼 한 뿌리를 들었을 때였다.

TV 화면에서 프로그램의 타이틀이 굵직하게 나왔다.

[사건 수첩]

장경자는 팔짱을 끼고 조용히 사건 수첩을 시청했다.

그 옆에 있던 엄지연은 장경자의 무표정한 얼굴과는 달리 연신 입술을 달싹였다.

나오는 내용이 너무 충격적이어서였다.

보통 이런 프로그램에 연예인이 나온다면 갑질이나 스캔들 등 사회적 물의를 빚는 내용이 메인이었다.

그런데 지금 사건 수첩의 내용은 정반대였다.

왕따 당한 친구를 구해 주려다가 도리어 피해를 본 연습생의 이야기였다.

영상 속에서는 제법 많은 친구의 증언이 이어졌다.

그 친구들의 증언은 하나같이 이지유를 피해자로 증언하고 있었다.

이상한 것은 이지유의 친구가 전학을 가고 이지유는 자퇴했는데 정작 학교 기록에는 아무런 기록도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때 화면 속에서 친구 하나의 증언이 나왔다.

-지유 친구를 괴롭히던 애 아빠가 모 언론사의 부사장이래요. 뭐, 하고 다니는 거 보면 그 이상일 수도 있어요.

-그럼, 이지유 씨가 피해자라는 거네요.

-뭐, 나중에 얘기를 들어 보니 그 애가 지유한테 상처 입었다고 하더라고요.

-무슨 상처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자존심에 상처 입어서 언젠가는 복수하겠다고 벼르고 다니던 참이라고…….

인터뷰 내용은 점점 클라이맥스로 치닫고 있었다.

끊임없이 달싹이던 엄지연의 입이 열렸다.

“어떻게 피해자가 가해자가 될 수 있어요? 대체 세상이 어떻게 되려고…….”

“그러게 말이다. 엄 비서야, 소화제 좀 가지고 와라.”

“소화제는 왜요?”

“뭔가 목에 걸린 듯 답답한 게 소화가 안 되는 것 같다.”

“네, 회장님.”

엄 비서는 방을 나오며 장경자의 표정을 바라봤다.

처음에는 무표정한 얼굴로 일관하던 그녀가 지금은 미간을 좁히고 있다.

* * *

도훈은 아무렇지 않게 노트북 화면을 보며 마우스를 툭툭 클릭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이도준이 물었다.

“지금 뭐 하는 거야? 예의 없게.”

“지금 예의라고 하셨나요?”

도훈이 재미있다는 듯 고개를 갸웃하자 이도준이 팔짱을 끼고 거만한 표정으로 노려봤다.

“그래, 지금 할머니가 우리가 싸운 것에 대해 반성하라고 시간을 주신 거잖아. 그럼 일단 미안하다고 서로 사과한 다음에 나머지는 우리끼리 해결하면 될 거 아니야.”

“도준이 형은 그러고 싶으세요?”

“…….”

이도준은 아무 말 없이 도훈을 바라봤다.

물론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할머니에게 밉보이고 싶지는 않았기에 일단 화해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뒤돌아서면 도훈을 바로 물어뜯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이도준은 대답 대신 하얀 이를 살짝 드러냈다.

그 모습에 도훈이 마주 웃었다.

마치 그의 속을 꿰뚫어 보고 있다는 것처럼…….

도훈은 고개를 돌려 계속 화면을 살폈다.

그가 살피고 있는 것은 실시간 검색 순위.

사건 수첩의 방영은 딱 지금 반 정도가 지난 상태.

1위 이지db 사건 수첩.

2위 이지유 MIT.

…….

100위 이지유 발음법.

…….

107위 억울한 이지유.

점점 실시간 검색 순위에 관련 내용이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직은 태풍이 몰아치기 직전.

유능한 선장은 날씨가 변하기 전에 미리 대비해야 하는 법이 아니던가.

도훈은 재빨리 내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앞으로 쏟아질 기사들의 방향과 그로 인한 파생 효과.

물론 이지유가 얻을 동정표였다.

이지유를 어떻게 연기자로 올려놓느냐는 차후의 문제.

이번 방송을 어떻게 잘 포장하느냐가 문제였다.

그때였다.

이도준이 도훈의 곁으로 다가오더니 노트북을 덮었다.

탁.

노트북이 부서질 듯한 소리에 도훈이 고개를 들자 이도준이 히죽 웃었다.

“지금 내가 내민 손을 안 잡겠다는 거지?”

“언제 손을 내밀었는데요?”

“지금 내밀고 있잖아, 아까부터 내민 거 안 보여?”

이도준이 손을 쓱 내밀자 도훈이 고개를 갸웃했다.

“일단 얘기부터 들어 보고 손을 잡죠.”

“무슨 얘기? 그냥 화해했다고 할머니께 말씀드리면 되잖아.”

“도준이 형은 지금 착각하고 계신 거예요.”

“내가 뭘 착각해?”

“할머니는 우리에게 화해하라고 하신 게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럼 뭔데?”

“승부를 내라고 하신 겁니다.”

“나랑 네가 승부를 낸다고? 그깟 딴따라 회사 하나 물려받았다고 세상 다 가진 것처럼 구는데 그건 착각이야. 우리 그룹 지원 없이 JK 아니 유레카가 독립할 수 있겠어?”

“그건 나중 문제고 일단 결판부터 내죠.”

“무슨 결판?”

“누구 얘기가 옳으냐 하는 거로 결판을 내면 되죠.”

“결판이라…… 어떤 방법이 좋을까?”

“도준이 형 트이터에 투표를 올려 보세요. 그럼 그 결과에 따를게요.”

“내 트이터에?”

이도준이 눈을 가늘게 떴다.

트이터는 이도준이 주로 사용하는 sns였다.

팔로워만 해도 일만은 거뜬히 넘어간다.

그것은 칼자루를 자신에게 쥐여 주는 것과 똑같았다.

“네, 형 트이터에 올리세요.”

“설마 결판만 내고 끝내자는 이야기는 아니겠지?”

“결판만 내면 끝이지 더 필요한 게 있나요? 형이나 저나 일단 할머니 손에서 벗어나는 게 먼저죠.”

“그냥 하면 심심하니 내기 하나 할까?”

“먼저 말씀해 보시죠.”

“지는 사람이 할머니가 보는 앞에서 무릎 꿇기 어때?”

“저는 그거 받고 제 차를 걸지요.”

“하하, 차를 걸겠다고?”

“네, 차를 걸겠습니다. 어차피 집에만 세워 놔서 필요도 없으니 걸겠습니다.”

“기사도 포함인가?”

“원하시면요.”

“그건 필요 없을 것 같군. 그래, 그렇게 자신 있다면 그거 받고 내 집까지 걸지.”

“그럼 거기까지만 받겠습니다. 대신에 저는 형님 집 대신에 다른 걸 받겠습니다.”

“뭘 원해?”

“지난번에 회사 기숙사 만든다고 사 놨던 주택을 제게 넘기시죠.”

“유레카 근처에 있는 주택 말이냐?”

이도준이 고개를 갸웃했다.

유레카 엔터가 있는 곳은 JK 유통의 교육관도 같이 있었다.

그런 이유로 만일을 대비해서 사 놓은 주택이었다.

그 표정을 본 도훈이 선심 쓰듯 말했다.

“네, 제집과 비교하면 감정가는 조금 떨어지지만, 주신다고 하면 감사히 받겠습니다.”

“그럼 내기는 성립한 거니, 두 말 없기다.”

“네, 제가 미리 녹음도 해 놨어요. 혹시 녹음에 불만 있으시면 지우고요.”

“그 녹음 나한테도 하나 보내 놔라.”

이도준이 도훈의 핸드폰을 가리켰다.

“물론이죠, 계약은 성립된 겁니다.”

“그러지.”

“저도 콜입니다. 이 구두 계약을 근거로 계약서도 한 부 뽑겠습니다.”

“그럼, 나는 투표를 올리도록 하지.”

이도준은 핸드폰의 화면을 톡톡 터치하기 시작했다.

투표는 간단했지만, 작성자의 의도가 다분히 드러났다.

이지유에 대한 비호감을 나타내며 폭력에 대해 단호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문구로 마무리 지었다.

딱 봐도 피해자와 가해자를 분명히 구분 지었다.

물론 가해자는 이지유.

그 모습을 바라보던 도훈은 재빨리 노트북에 미리 준비한 몇 가지 문구를 바꾸어 계약서를 만들었다.

도훈은 이도준이 발끈할 것을 알고 있었다.

전생과 지금은 아주 판박이었다.

물론 전생에는 자신이 대부분 내기에서 졌었다.

그 내기를 장경자가 몰랐을까?

아마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도훈은 씩 웃으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때마침 아래로 내려온 엄지연에게 고개를 돌렸다.

“엄 비서님.”

“네?”

특유의 건조한 말투로 바라보자 도훈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혹시 프린터 좀 쓸 수 있나요?”

“제 방에 있긴 한데…….”

엄지연이 무슨 일이냐는 표정으로 도훈을 바라봤다.

도훈이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별일 아닙니다. 그냥 프린터 할 일이 있어서요.”

“알겠어요.”

“그럼 파일 하나만 보내 놓을 테니 뽑아 주실 수 있나요?”

도훈이 싱긋 웃으며 엄지연을 바라봤다.

지금 장경자를 제외하면 미라클의 권력 순위가 어떻게 될까?

아마 누구나 엄지연을 꼽을 것이다.

아무 지분도 없고 의결권도 없지만, 장경자가 가장 믿고 의지하는 것이 엄지연이었다.

물론 전생에는 장경자가 세상을 뜬 후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사라졌다.

“네, 잠시만 기다리세요.”

말을 마친 엄지연은 이 층에 있는 자신의 방으로 올라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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