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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연예계 공략법-24화 (24/250)

회귀자의 연예계 공략법 (24)

더욱 놀라운 것은 자신이 내는 정확한 딕션과 상대를 흔들어 놓는 톤이었다.

이건 단순한 책 읽기가 아니라 수준급 연기였다.

도훈은 계속 책을 읽어 나갔다.

“늑대가 첫 번째 아기 돼지의 집에 오더니, 후 하고…….”

마치 늑대가 빙의한 듯한 도훈의 표정에 아이들이 깜짝 놀라 입을 벌렸다.

어떤 아이는 뒤로 주춤주춤 물러나기도 했다.

드디어 도훈의 짧은 이야기가 끝났다.

“……그렇게 아기 돼지 삼 형제는 막내 아기 돼지 덕분에 목숨을 구하고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도훈이 책을 덮었다.

순간 방금까지 몸을 감쌌던 누군가의 능력이 알코올 날아가듯 사라졌다.

도훈을 바라보고 있는 아이들은 아무 말 없이 침만 꼴깍 삼키고 있었다.

그만큼 도훈의 구연동화에 집중한 것이다.

아이들은 마치 최면에서 깨어난 듯 도훈을 바라보며 입을 벌렸다.

누군가 말했다.

“진짜 슈퍼맨 아저씨네, 못 하는 게 없어.”

“그럼, 원더우먼 누나도 진짜야?”

“그건 모르지.”

아이들이 웅성대기 시작했다.

도훈은 씩 웃으며 아이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하지만 그는 딴생각을 하고 있었다.

도훈은 지금 그 능력이 누구 것인지 궁금했다.

대본을 넘길 때 보면 분명 구릿빛 반지가 있었는데…….

혹시?

도훈은 문 쪽을 바라봤다.

때마침 주원영 원장이 이지유와 함께 들어왔다.

돌아온 이지유는 아이들과 눈을 맞추며 미안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언니가 늦어서 미안.”

“괜찮아요, 슈퍼맨 아저씨가 재미있게 해 줬어요. 우리 원장 선생님보다도 동화책을 더 잘 읽어 주셨어요.”

“마자, 마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자 이지유는 고개를 갸웃했다.

옆에 있던 주원영은 아이에게 물었다.

“진짜 그렇게 잘해?”

“네, 맞아요.”

그때였다.

도훈의 눈이 커졌다.

이지유의 손에서 구릿빛 반지를 본 것이다.

생각해 보니 전생에는 못 본 반지였다.

그렇다면 전생에 이지유에게 있던 능력을 자신이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도훈이 이지유에게 다가가 말했다.

“노래 말고 그냥 동화책 읽어 주는 게 어때?”

“아니에요, 제가 다른 사람한테는 저도 리나한테는 지고 못살아요.”

이지유는 핸드폰에 저장된 MR을 틀었다.

전주가 흘러나오자 도훈의 고개가 살짝 기울어졌다.

블앤의 앨범에는 없는 곳이었다.

그것도 잠시 도훈의 입에서 웃음이 튀어나왔다.

“푸.”

이지유가 준비한 것은 자신의 곡이 아니었다.

그녀가 준비한 것은 동요 메들리.

지금 나오고 있는 것은 곰 세 마리였다.

이지유는 앙증맞게 동요에 맞춰 군무를 추고 있다.

묘한 밸런스가 웃음을 자아낸다.

아이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의 옆에 모인 아이들이 이지유의 군무를 따라 한다.

아이들의 순수함이 본능에 따라 움직이는 모습은 심장을 두근거리게 했다.

도훈은 주먹을 꽉 쥐었다.

그때 주원영 원장이 도훈의 곁으로 다가왔다.

“이 실장님.”

“네, 원장님.”

“아까 보니까 화장실에 없더라고요.”

“그럼 어디 있었나요?”

“벽 뒤쪽에서 계속 같은 말만 되뇌고 있었어요.”

“무슨 말이요.”

“지유는 할 수 있어, 할 수 있어, 아이 캔 두 잇. 뭐 이런 말만 계속하더라고요.”

“감사드립니다. 생각보다 마음이 약한 편이라서요. 그래도 이곳에 와서 많이 치유된 것 같네요.”

도훈이 고개를 숙이면서 아이들과 어울리고 있는 이지유를 바라봤다.

그때 주원영 원장이 말했다.

“이번 일로 마음고생이 심했던 것 같아요. 혹시 계속 이러면…….”

주원영 원장은 뒷말을 삼켰다.

하지만 도훈은 그녀가 무엇을 말하려는 건지 안다는 듯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참고하겠습니다.”

* * *

보육원에서 봉사 활동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창문을 열자 시골 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맞은편에 앉은 이지유를 바라보니 살짝 눈이 풀려 있다.

아마 졸음이 쏟아지는 듯했다.

졸았다가 눈을 떴다가를 반복하자 도훈이 말했다.

“그냥 푹 자, 앞으로 바빠질 수도 있으니까.”

“바빠져요? 아직 문제는 해결도 안 됐는데요.”

“흠, 일단 준비부터 해야지. 새가 날려면 날갯짓부터 배워야 할 거 아니야.”

“날갯짓이요?”

“그래, 날갯짓. 그래서 하는 말인데 혹시 연기 해 보고 싶은 마음 없어?”

“저 연기는 젬병이라는 얘기만 들어서요, 헤헤.”

이지유가 어색하게 웃자 도훈이 턱을 괴고 아까의 기억을 다시 떠올렸다.

자신의 눈이 틀릴 수가 없었다.

그것은 연기 천재의 기억이었으며 능력이었다.

도훈이 물었다.

“어떻게 그렇게 확신하지?”

“전 연기는 안 돼요.”

“가능한 한계를 알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불가능한 영역에 살짝 발을 들여놓는 거지.”

“네?”

“내가 한 말이 아니라, 유명한 물리학자인 아서 클라크가 한 말이야.”

“클라크면 슈퍼맨의 본명 아닌가요?”

“일단 안 해 봐도 될 분야는 알겠네.”

“그게 뭔데요?”

“개그, 너는 개그는 하지 마라.”

“헤헤, 좀 썰렁했죠.”

이지유가 뒷머리를 긁적인다.

그 모습에 도훈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개그 말고 연기 쪽 재능을 한번 확인해 보지 않을래?”

“사실, 창피하긴 한데 안 해 본 건 아니에요.”

“안 해 본 게 아니라니? 언제 연기에 도전해 본 적이 있어? 내 기억에는 없는 것 같은데.”

“그러니까…….”

이지유는 자신이 SW에서 연기 수업을 받았던 사실을 털어놨다.

이야기는 간단했다.

블앤이 해체되고 연기자로 전향해 보라는 권유에 SW에서 붙여 준 연기 선생님에게 지도를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레슨 한 달 만에 연기 선생님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나갔다고 한다.

거기까지 이야기했을 때 도훈이 물었다.

“그 선생님이란 작자 누군지 물어봐도 돼?”

“아, 그런 표정 짓지 마세요. 좋은 분이었어요. 꽤 자상하고 친절하게 가르쳐 주시던 분이에요.”

“자상한 사람이 그렇게 나가?”

“가능성 없는 학생에게 돈 받으면서 레슨하는 건 죄악이라고 하셨어요. 모른 척 그냥 레슨할 수도 있는데 그건 양심을 파는 일이라고 하신 분이에요.”

“그러니까, 그게 누군데?”

“한국대의 김정수 교수님이요.”

“아, 김정수 교수였구나.”

“아세요?”

“아직은 모르는데 알아봐야지. 그런데 왜 내가 이름을 한 번도 못 들어 봤지?”

“러시아에서 돌아오신 지 얼마 안 돼서 못 들어 보셨을 거예요. 그쪽에서 학위까지 따신 분인데…….”

이지유가 말끝을 흐렸다.

도훈은 대충 어떤 상황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가능성은 두 가지.

하나는 선무당이 사람 잡았을 수도 있고.

또 다른 하나는 누군가의 계획일 수도 있었다.

지금 중요한 것은 이지유가 자신의 능력을 깨닫게 하는 것이었다.

그때였다.

도훈의 핸드폰이 울렸다.

띠딩.

도훈은 재빨리 핸드폰 화면을 확인했다.

[싸가지 이도준]

도훈의 사촌 형이었다.

통화 거절로 돌리려던 도훈이 피식 웃으며 마음을 바꿨다.

“이도훈입니다.”

―난데

“누구시죠?”

―왜 모른 척해?

“용건만 말씀하시죠?”

―이 새끼가, 자꾸! 지난번에 할머니한테 칭찬 좀 받았다고 기고만장해서…….

“용건을 말씀 안 하시면 끊습니다.”

―너 이번 실수는 그냥 넘어가지 못할 거야.

“실수는 용건을 말씀 안 하시는 분이 하신 거고요.”

―이지유 건은 조만간 할머니 댁에서 보고 얘기하자고.

“용건을 말씀 안 하신 관계로 차단하겠습니다.”

도훈이 통화를 종료시키고 바로 수신 차단을 눌렀다.

통화음이 새어 나왔는지 이지유는 안절부절못하고 있다.

한참을 고민하던 이지유가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실장님, 혹시 대표님이 뭐라고 하세요? 저 계약 무르라고 해요? 지금 보니까 혼나시는 것 같던데요.”

“그거 오해야, 우리 대표님이 그렇게 나쁜 사람 아니야. 그리고 나랑 얼마나 친한데 혹시 못 들었어?”

“뭘요?”

“내가 대표님 낙하산이라는 거.”

“듣긴 했는데, 지금 걸려 온 전화가 좀…….”

“잡상인이니까 신경 쓰지 마.”

“아닌 거 같은데요. 너무 무리는 하지 마세요. 괜히 저 같은 애 지키려고 하시다가 잘리시면 안 돼요. 대표님이 뭐라고 하시면 계약 그냥 무효로 하세요. 저도 말 안 할 테니까요.”

“나는 신경 쓰지 않아도 돼.”

도훈은 손을 휘휘 저었다.

* * *

이틀 후.

미현동의 장경자 자택.

식탁을 가운데 두고 도훈과 사촌 형 이도준이 마주 앉아 있었다.

상 위에 차려진 음식은 된장찌개와 밥 그리고 나물 두세 개가 전부였다.

하지만 장경자는 밥공기의 뚜껑도 열지 않은 채 둘을 번갈아 봤다.

그녀의 시선만으로도 김이 솔솔 나는 찌개가 식는 것만 같았다.

그 중압감을 견디지 못한 듯 이도준은 넥타이를 매만지며 조금씩 풀었다.

그때 장경자가 입을 열었다.

“내가 왜 불렀는지 아나?”

그녀가 물었지만, 섣불리 입을 여는 사람은 없었다.

장경자는 도훈을 바라봤다.

“네가 먼저 말해 봐라.”

“정확한 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누군가의 고자질 때문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뭐, 고자질인지 제대로 된 정보인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겠지만요.”

“고자질이라…… 도준이는 어떻게 생각하나?”

장경자가 이번에는 도준을 바라봤다.

도준은 그 어느 때보다 밝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고자질이 아니라, 미라클의 미래가 걸린 정보라고 생각합니다. 할머니도 미라클의 얼굴을 뽑을 때 가장 신중하게 생각하시지 않습니까?”

“그래, 계속 말해 봐라, 너도 할 말이 있으면 편히 해라.”

장경자가 힐끔 도훈을 바라봤다.

그 눈빛에는 평소 회의를 진행할 때와는 확연히 달랐다.

사실 그녀가 바뀐 것은 강영웅이 보여 준 영상 이후였다.

막내아들의 몫을 막내 손자에게 그대로 물려주고 싶었다.

그런 이유로 이제까지 조금은 강하게 압박했었다.

그런데 그 영상을 보고 나니 그런 자신의 행동이 잘못되었음을 알았던 것이다.

도훈의 그날 행동이 아이를 위해 몸을 던진 게 아니라 장경자를 위해 몸을 던진 것으로 보였던 것이다.

가족, 아니 미라클을 통틀어도 자신을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는 이가 있을까?

하지만 한없이 풀어놓을 수도 없는 것이 막내의 몫을 물려받자면 그만한 능력이 있어야 했다.

장경자의 눈이 다시 바뀌었다.

그녀는 턱짓하며 도준의 의견을 재촉했다.

남들이 보면 집안싸움으로 보이겠지만, 장경자의 눈에는 지금 사소한 일 하나하나가 손자들의 테스트 과정이었다.

“지금 어떤 시대인데 이슈가 터진 애를 영입할 수 있습니까?”

“처음 계약하시려던 건 형님이셨죠.”

“그건 그 일이 터지기 전이고.”

“그럼 원인이 없어진다면요?”

“원인이 없어질 것 같아? 지금 이지유 때문에 우리 회사가 입은 피해가 얼마인데.”

“정확히 말씀하셔야죠, 우리가 아니라 형님 회사겠죠.”

그때였다.

장경자가 짝짝 하고 손뼉을 쳤다.

그 소리에 도훈과 이도준이 고개를 돌렸다.

장경자가 다시 말을 이었다.

“너희 둘이서 결론 내어라. 지금 여기 있는 밥이 오늘 저녁이 될 건지, 아니면 내일 아침이 될 건지, 그것도 아니면 모레 먹을 밥이 될지는 너희들이 정하거라.”

장경자가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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