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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연예계 공략법-21화 (21/250)

회귀자의 연예계 공략법 (21)

이지유의 집.

그녀의 방 안은 폭풍우가 휩쓸고 간 것처럼 모두가 널브러져 있었다.

이지유는 설마설마했던 아군이 있었다는 것부터가 놀라웠다.

하지만, 지금은 심신이 지친 상태.

인터뷰에는 얼마나 신경을 쏟았는지 손끝 하나 움직일 힘이 없었다.

그때 사촌 동생 강민이 음료수를 건넸다.

“누나 이거 먹고 힘내요.”

“그래, 고맙다.”

“내가 따 줄까요? 누나?”

“이 정도는 딸…….”

이지유는 말을 멈췄다.

어찌나 신경 썼는지 진짜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동생 강민이 재빨리 뺏어 음료수를 딴 뒤 다시 건넸다.

음료수를 받아 마신 이지유가 한숨을 내쉬었다.

“와, 이제 살 것 같네.”

“그런데 누나.”

“왜? 강민아.”

“아까 그 형이 말한 거 말이에요. 수락하는 게 좋지 않아요?”

“조건도 모르잖아.”

“지금 조건이 문제예요?”

강민은 이지유의 손을 잡고 생떼를 부리듯 흔들었다.

녀석의 마음은 진심이었다.

가장 믿었던 소속사에 버림받은 이지유를 볼 때면 마치 부모에게 버림받은 어린아이를 보는 것만 같았다.

“요놈 봐라. 꼬맹이가 뭘 안다고 그래?”

“저도 알 건 다 알거든요.”

“원래 코너에 몰릴수록 심사숙고해야 하는 법이거든.”

“요즘 들어 누나 웃는 모습 처음 봐요. 헤헤.”

강민이 기분 좋게 웃자 이지유는 조용히 자신의 핸드폰을 들었다.

그때 마침 벨 소리가 울렸다.

띠디딩, 띵.

핸드폰 화면에 이름이 떴다.

[유레카 이도훈.]

순간 이지유의 손가락이 움찔했다.

자신도 모르게 전화를 받을 뻔한 것이다.

이지유는 이를 악물고 참았다.

아까 명함을 받은 순간 이지유는 유레카로 갈 것을 이미 결심했다.

하지만, 시기가 문제라고 생각했다.

지금 들어가 봤자 유레카에서 눈칫밥만 더 먹겠냐는 것이 그녀의 생각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전 소속사인 SW에서 계약 해지 통보를 한 것은 다른 소속 연예인들에게 피해를 준다는 것이 주된 이유였다.

그런데 이번 일도 해결 안 된 상태에서 계약을 한다는 것은 내키지 않았다.

이도훈이라는 사람과는 하고 싶지만, 계약은 내키지 않는 묘한 상황이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요란하게 울리던 벨 소리가 멈췄다.

이지유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이제 두 번 남았네.”

이지유는 핸드폰을 머리맡에 두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

“누나 잘 테니, 너도 쉬어. 강민아.”

“네, 누나.”

강민이 막 방을 나갔을 때였다.

핸드폰에서 메시지 도착음이 울렸다.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핸드폰을 들어 메시지함을 열어 본 이지유의 눈이 한없이 커졌다.

동시에 이지유는 스프링처럼 튀어 올랐다.

옷을 바로 차려입은 이지유는 강민의 방에 대고 소리쳤다.

“누나 갔다 온다.”

“어딜요?”

“갔다 와서 얘기해 줄게.”

화장도 안 하고 모자 하나를 눌러쓴 채 이지유는 밖으로 나갔다.

지도 앱을 켜고 방향을 잡은 이지유는 이를 악물고 뛰기 시작했다.

* * *

7팀 사무실.

도훈은 의자에 몸을 맡긴 채 벽에 걸린 시계를 보고 있었다.

“올 때가 됐는데…….”

“누가 오기로 했어요?”

“이지유.”

“아니, 아까 차 안에서 전화 한 번 했잖아요. 그리고 받지도 않았잖아요.”

“그랬지.”

“그런데, 어떻게 와요? 아까 얘기를 들어 보니 전화를 세 번 하신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그게 왜?”

“그러니까, 어떻게 지유 님이 오냐니까요?”

그때였다.

7팀 사무실의 문이 열렸다.

덜컹!

활짝 열린 문으로 이지유가 눈을 빛내며 들어오고 있다.

표정만 봐서는 성난 황소와 같은 모습이었다.

도훈이 시계를 힐끔 보더니 말했다.

“생각보다 늦었네요. 이지유 씨.”

“실장님, 어떻게 그러실 수가 있어요?”

이지유는 씩씩대며 도훈에게 다가와 핸드폰을 소리가 나도록 내려놨다.

탁!

제법 큰 소리에 옆에 있던 한민국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지유가 일으킨 소란에 한민국은 도훈의 뒤로 빠졌다.

한민국은 이지유가 이러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조금 전에도 그녀를 돕고 오지 않았던가?

저렇게 화낼 일이 있다면 몇 시간 전에 화를 냈어야 정상이었다.

갑자기 이렇게 찾아와 화를 낸다는 건 말도 되지 않았다.

한민국이 고개를 갸웃하며 상황을 보고 있을 때 도훈은 책상에 앉아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민국 씨는 무서우면 잠시 나가 있어도 돼.”

“아, 알겠습니다, 실장님.”

한민국이 재빨리 문을 닫고 나가려 할 때였다.

2팀의 한유라 팀장이 7팀 문 앞에서 눈을 빛내고 있었다.

마치 먹이를 발견한 하이에나의 모습이었다.

한민국이 시선을 피하자 한유라 팀장은 혀를 찼다.

“쯧. 내가 그럴 줄 알았어. 이 바닥 모르는 낙하산들이 들어오면 이렇게 사고를 치지.”

한유라는 한민국을 툭 밀치더니 안으로 들어왔다.

그러고는 이지유의 옆에 섰다.

“지유야, 오랜만이네.”

“아, 언니…….”

이지유가 말끝을 흐리며 고개를 푹 숙인다.

그 모습을 보던 도훈이 고개를 갸웃했다.

2팀장 한유라는 기억에 없는 인물이었다.

그런데 이지유와 안면이 있다니?

이건 의외였다.

한유라가 이지유의 어깨를 토닥였다.

“네가 억울하다는 거 알아. 그러니까 그만 가자, 내가 대신 사과할게.”

사정도 모른 채 한유라는 이지유를 달래기 시작했다.

“그게 아니라…….”

“일단 여기서 나가자, 뭔지는 몰라도 언니가 다 들어 줄게.”

한유라는 이지유의 소매를 잡아끌었다.

하지만 이지유는 자리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 모습에 한유라가 혀를 찼다.

“예나 지금이나 고집은 똑같네.”

“그게 아니라…….”

이지유는 답답한 듯 한유라를 바라봤다.

하지만 한유라는 이지유가 여기에 온 이유를 확신하듯 달랬다.

“사과는 내가 한다니까. 저 사람이 이쪽 업계를 잘 몰라서 실수한 것 같은데, 일단 나가서 얘기하자.”

한유라는 턱짓으로 도훈을 가리켰다.

그때 이지유가 한유라의 손을 뿌리치며 말했다.

“언니, 그게 아니라 실장님과 할 말이 있어서 그래요.”

“휴,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건 여전하네. 내가 지켜보고 있을 테니 할 말 해.”

한유라는 팔짱을 끼고 한발 물러났다.

그 모습에 도훈은 천장을 올려다봤다.

‘이거 오늘 악당이 된 것 같네.’

한유라는 뭔가 오해하고 들어와서 말리는 것 같았다.

그때 다시 이지유가 한유라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도훈에게 다가왔다.

“자, 잠시 얘기 좀요.”

“어디 얘기해 봐요, 이지유 씨.”

“왜 그러셨어요? 실장님.”

이지유가 책상 위에 손바닥을 올려놓은 채 상체를 기울였다.

주변에서는 웅성거림이 조금씩 커졌다.

도훈이 사고라도 친 듯 오해하는 눈빛이었다.

“…….”

도훈은 재미있다는 듯 이지유를 바라봤다.

이지유는 조금 더 상체를 기울이며 울분을 삭이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한테 장난치신 거예요?”

이지유의 발언은 오해할 소지가 다분했다.

아니나 다를까? 한유라가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대체 무슨 짓을 했기에…….”

도훈은 그런 분위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도훈은 팔짱을 낀 채 이지유를 바라봤다.

“아까 말했잖아요, 제갈량을 찾는 유비처럼 삼고초려한다고.”

“그래 놓고 나한테 전화를 한 번밖에 안 하셨잖아요.”

“세 번 한 것 같은데.”

도훈이 고개를 갸웃하자 이지유는 내려놨던 핸드폰을 펼쳤다.

“여기 보세요.”

통화 목록을 보여 주자 도훈이 눈을 가늘게 떴다.

“어, 한 번밖에 안 찍혔네.”

“그쵸? 왜 문자에 전화를 세 번 안 받았으니 계약 의향이 없는 거로 알겠다고 거짓말했어요?”

“나는 분명히 세 번 했는데…….”

“여기 안 찍혔거든요. 무슨 제갈공명 찾은 유비가 그렇게 무성의하게 굴어요. 아니 세 번 했다고 쳐요. 그렇다고 그냥 문자 하나 딱 보내 놓고 포기해요. 삼국지에서 유비가 언제 그랬어요!”

이지유는 핸드폰의 화면을 가리키며 성토했다.

그 뒤 둘은 아옹다옹하기 시작했다.

둘의 대화를 듣던 한유라는 고개를 갸웃했다.

도훈이 사고를 쳐서 이지유가 이곳으로 찾아온 줄 알았더니.

삼고초려니, 제갈량이니 하는 알 수 없는 말이 오고 가니 어질어질했다.

한유라가 조심스럽게 끼어들었다.

“대체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여기 있는 실장님이 제게 계약을 제안했거든요. 그때 분명히 세 번 전화하겠다고 했어요. 그런데 한 번밖에 안 하고 세 번 전화를 안 받았으니 의향 없는 거로 알겠다고 문자를 보낸 거예요. 저 계약하고 싶단 말이에요.”

“계, 계약이라고?”

“네, 계약이요.”

“대체 계약이라니…….”

말끝을 흐린 한유라는 도훈을 바라봤다.

시선이 마주친 도훈이 활짝 웃으며 어디선가 책상에 놓여 있던 서류를 쓱 내밀었다.

서류가 다가오자 이지유가 고개를 갸웃했다.

“이게 뭐예요?”

“계약서.”

“계약서요?”

“계약하고 싶어서 여기까지 달려왔다고 했잖아요?”

“그게…….”

“시간 없으니 빨리 읽어 보고 결정해요, 조건은 SW와 같을 거니까요.”

도훈은 계약서를 딱 펼친 후 이지유의 옆에 의자를 갖다 줬다.

도훈은 조금 떨어져 팔짱을 끼고 이지유를 바라봤다.

생각할 시간을 줄 생각은 애초에 도훈에게는 없었다.

십 년이라는 시간을 사십 년처럼 사용하며 살아야 전생에 한 약속을 지킬 수 있었다.

그래서 전생에 알고 있는 이지유의 성격을 이용해 일을 벌인 것이었다.

이지유의 성격에 떠나는 기차는 어떻게 든 잡을 테니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일 분도 안 되어 이지유의 펜이 움직였다.

사사, 삭.

서명을 마친 이지유는 도훈을 힐끔 바라봤다.

오늘 처음 만난 사람인데 오래전부터 아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사건 수첩의 취재 때도 자신을 돌봐 주는 듯 옆에서 버티고 있을 때 묘한 안정감을 받았다.

매니저가 있다면 저런 사람일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줄다리기를 하고 싶었다.

그런데 갑자기 상대방이 줄을 놓자 정신없이 달려온 것이다.

옆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한유라도 놀랐다.

이지유가 서류에 쉽게 서명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유라가 JK엔터로 이직하기 전 직장이 SW엔터였고.

거기서 관리하던 그룹이 바로 이지유가 속한 블랙앤화이트였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2년을 같이 하며 이지유에 대해서는 속속들이 안다고 자부하는 한유라였다.

이지유는 행동은 빨라도 앞에 놓인 서류는 몇 날 며칠이고 고민하는 성격이었다.

저렇게 빠른 결정을 내리게 만든 도훈이 신기하기도 하지만 한없이 걱정스러웠다.

아무 일도 없다면 괜찮지만 지금 이지유를 영입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상황이다.

한유라는 조용히 자리를 떠났다.

괜히 이상한 싸움이 말려들지 몰라서였다.

이지유는 한유라가 나가는지도 모른 채 도훈에게 집중하고 있었다.

“그런데, 진짜 괜찮은 건가요?”

“뭐가요?”

“이 계약이요? 윗선에서 반대하실 텐데요.”

“사건 수첩에서 제대로 터지면 상황은 바뀔 거잖아요.”

“어떻게 그렇게 확신하세요?”

“느낌이죠. 만약에 아니라면…….”

“아니라면요?”

“회사에서 잘리기밖에 더하겠어요?”

“아.”

이지유는 할 말이 없었다. 태어나서 자신보다 막무가내인 사람은 처음 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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