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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연예계 공략법-19화 (19/250)
  • 회귀자의 연예계 공략법 (19)

    한지혜의 말에 도훈이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그게 정말이에요?”

    전생에도 몰랐던 사실이었다.

    그때 기억대로라면 이번 사건으로 이지유는 십 년간 방송에 얼굴을 비치지 못한다.

    사건의 진실이 밝혀지는 것은 십 년 후.

    사건이 밝혀지고 이지유는 다시 컴백한다.

    당시 진실을 밝혔던 것이 바로 도훈이었다.

    그리고 적극적으로 나섰던 것이 한지혜였고 말이다.

    그래서 도훈이 그녀에게 자료를 넘겼던 것이다.

    왜 당시에는 팬이었다고 안 밝혔을까?

    도훈은 한지혜를 힐끔 바라봤다.

    고민도 잠시 도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한지혜의 성격이라면 대충 이해가 간다.

    아마도 취재의 공정성을 훼손시킬까 두려웠을 것이다.

    지금은 너무 당황해서 자신도 모르게 사실을 밝힌 것이고.

    도훈은 조용히 창밖을 바라보며 사색에 잠겼다.

    사실 미리 막을까도 생각해 봤다.

    하지만 이건 질병과도 같았다.

    아무 징후도 없는데 치료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최대한 빨리 맞고 최대한 빨리 치료한다!

    이것이 도훈이 원하는 방향이었다.

    * * *

    이지유의 방.

    모니터에는 요즘 최고로 핫한 기사가 떠 있었다.

    그것은 이지유의 욕설 논란 기사였다.

    모니터의 불빛이 방 안의 조명을 대신하고 그 빛에 초췌한 얼굴 하나가 얼비쳤다.

    물론 이지유의 얼굴이었다.

    그녀는 하루하루가 지옥이었다.

    사건의 전말은 그게 아니라고 몇 번씩 밝혔지만, 마녀사냥은 멈출 줄 몰랐다.

    지금 그녀에게 자신의 편은 없었다.

    끝까지 자신의 편이 되어 줄 줄 알았던 소속사마저도 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완벽한 선 긋기에 나선 것이다.

    SW의 대표에게 온 문자는 딱 하나였다.

    SW에 소속된 다른 연예인을 보호하기 위해 부득이하게 계약 해지를 통보한다는 내용이었다.

    한마디로 대를 위해서 소를 희생한다는 것이었다.

    진실을 밝히기 위한 어떤 노력도 하지 않았다.

    이번 일이 터진 후 벌써 며칠 밤을 새웠는지 몰랐다.

    일단은 모든 것을 잊고 싶었다.

    이지유는 힐끔 고개를 돌려 책상 위에 약통을 바라봤다.

    그것은 며칠 전 처방 받았던 수면제.

    아무래도 수면제라도 먹어야 할 것 같았다.

    오늘 연락 온 피디 하나가 진실을 밝히기 위해 취재하러 온다고는 했지만, 그리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자신의 편에서 취재하겠다고 해서 몇 번 인터뷰를 했지만, 세상 밖으로 나온 기사는 전혀 달랐다.

    이용만 당한 것이었다.

    그냥 모든 것을 잊고 자고 싶었다.

    * * *

    도훈이 탄 검은색 승합차가 한 주택가에서 멈췄다.

    차에서 내린 한지혜는 고개를 갸웃했다.

    눈앞에 있는 주택이 생각보다 너무 낡았던 것이다.

    뭐, 평소라면 그냥 지나쳤을 테지만, 탑은 아니어도 인지도 면에서 그리 뒤처지지 않은 걸 그룹 블랙앤화이트였다.

    그런 걸 그룹 활동을 십 년이나 했는데 이런 집에서 산다는 것이 이해가 안 되었다.

    한지혜는 조심스럽게 반지하로 내려가서 초인종을 눌렀다.

    딩동. 딩동.

    하지만 안쪽에서 돌아오는 반응은 없었다.

    딩동, 딩동.

    아무리 눌러도 응답이 없자 당황한 한지혜가 도훈을 바라봤다.

    “어떻게 하죠? 집에 없나 봐요. 분명히 약속 잡았는데…….”

    한지혜가 굳게 잠긴 문을 초조하게 바라봤다.

    그때 한민국이 고개를 갸웃하더니 손잡이를 돌렸다.

    하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본 한지혜가 물었다.

    “남의 집 문을 그렇게 여시면 어떻게 해요?”

    “그게 아니라, 잘못됐을까 봐 그렇죠.”

    “잘못되다니요?”

    “보통 이런 일이 닥치면 안 좋은 선택을…….”

    한민국이 말끝을 흐리자 한지혜가 미간을 좁혔다.

    그러고는 재빨리 손잡이를 흔들기 시작했다.

    덜컥, 덜컥.

    아무리 흔들어 봤자 문은 꿈쩍도 안 했다.

    그때 뒤에서 누군가가 비명을 질렀다.

    “앗.”

    그 목소리에 셋은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초등학생처럼 보이는 사내아이가 눈을 크게 뜨고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주머니를 뒤지는 거로 봐서 경찰에 신고하려고 하는 것 같았다.

    한지혜는 자기가 한 행동이 있어, 석상처럼 굳었다.

    한민국도 어찌할 줄 모르고 입을 벌리고 있다.

    도훈은 한숨을 쉰 뒤 아이에게 다가갔다.

    “이강민 맞지?”

    도훈이 사내아이를 보고 빙긋 웃었다.

    전생에 만난 것은 녀석이 중학교에 입학하고 나서지만, 그 얼굴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이지유의 사촌 동생으로 같은 집에 사는 아이였다.

    자신의 이름이 나오자 이강민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네?”

    “너, 이강민 맞잖아, 이지유 사촌 동생.”

    “어…… 그러니까 제 이름이 맞긴 해요. 그런데 제 이름을 어떻게 아는 거죠?”

    “우린, 네 누나의 친구들이니까.”

    “친구요? 요즘은 친구도 찾아오지 않던데.”

    “걱정 안 해도 돼, 우린 나쁜 사람 아니야.”

    도훈은 얼굴에 완벽한 접대용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러고는 손을 살살 흔들면서 녀석을 안심시켰다.

    그 모습은 마치 반려견을 길들이는 조련사의 모습과도 같았다.

    뒤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한지혜는 입을 떡 벌렸다.

    인터뷰 대상을 구워삶는 것은 그녀도 자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아이를 자연스럽게 상대할 자신은 없었다.

    물론 한민국은 지금 정신이 없었다.

    이건 도훈이 전에 보였던 모습과는 전혀 달랐기 때문이다.

    치밀함으로 상대를 압도하더니 이제는 상냥함으로 초등학생을 구워삶는다고?

    생각해 보니 이지유의 조카 이름까지 아는 것은 정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지유에게 입덕한 지 십 년 차인 한민국조차 그녀의 조카 이름이 뭔지는 오늘에서야 처음 알았다.

    그렇다면…….

    한민국이 내린 결론은 딱 한 가지였다.

    도훈이 자신보다 더한 지유의 덕후라는 것이다.

    모두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을 때 이강민이 입을 열었다.

    “누나가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나쁜 사람이라고 했어요.”

    “아, 그러니까, 우리는 방송국에서 나왔어. 너 MBS 알잖아.”

    “누나가 방송국 놈들은 다 나쁜 놈들이라고 했는데…….”

    이강민이 뒷걸음치며 탈출 각을 잡았다.

    자리를 피해서 경찰에 신고하겠다는 것이었다.

    뭐, 상황은 억울했다.

    이지유와 인터뷰 약속까지 잡은 상태에서 그 조카한테 오해를 받다니?

    도훈은 재킷을 뒤졌다.

    “잠시만 기다려 봐.”

    방송국으로도 안 되니 기획사 명함을 찾으려는 것이다.

    그 모습을 본 이강민이 외쳤다.

    “꼼짝 마세요.”

    “왜?”

    “지금 권총 찾는 거잖아요.”

    “너 만화를 너무 많이 봤구나. 만화에서 나오는 사람들 잘 봐, 주인공하고 범인의 그림체가 다를 거야. 딱 보기에 내가 주인공 같아 아니면 범인 같아?”

    “범인이요.”

    “아, 됐고. 일단 이거부터 봐.”

    도훈은 자신의 명함을 던졌다.

    명함을 받은 이강민이 힐끔 글자를 확인했다.

    “유레카 엔터테인먼트 이도훈…….”

    “거봐, 나쁜 사람 아니지.”

    “우리 누나가 그랬는데 기획사 놈들이 방송국 놈들보다 더 나쁘대요.”

    이강민이 주춤주춤 물러나자 도훈은 눈매를 좁히며 상황을 파악했다.

    한민국의 말처럼 이지유가 안 좋은 선택을 할 리는 없었다. 그녀는 도훈이 아는 한 멘탈 하나는 확실한 친구였다.

    그렇다고 조카 이강민을 저렇게 보낼 수는 없었다.

    괜히 경찰에 신고했다가는 날파리들이 들끓을지도 모르니까.

    지금 중요한 것은 이지유의 인터뷰를 따고 모든 것을 바로잡는 것이었다.

    모든 일을 신속히 진행하자면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도훈은 표정을 진중하게 바꾼 뒤 입을 열었다.

    “강민아, 너 탐정물 좋아하지?”

    “…….”

    이강민은 아무 대답 없이 고개만 갸웃했다.

    무슨 말을 하느냐는 표정이다.

    도훈은 씩 웃으며 뒤쪽을 가리켰다.

    “저기 보이지?”

    “네, 문이잖아요.”

    “그래, 저 안은 지금 밀실이야.”

    “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저 안은 완벽한 밀실이지. 우리 강민이는 밀실 하면 생각나는 게 있을 거야.”

    순간 이강민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울 듯 말 듯 한 그의 눈.

    그다음 반응한 것은 녀석의 입술이었다.

    “으앙, 누나! 안 돼!”

    울음을 터뜨린 녀석이 문을 따고 신고 있던 신발 그대로 달려 들어갔다.

    먼저 뛰어들어 간 이강민이 소리를 질렀다.

    “여기 큰일 났어요. 119! 119!”

    녀석의 외침에 도훈을 비롯한 나머지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 들어갔다.

    책상에 쓰러져 있는 이지유.

    그녀가 잡은 것은 수면제 통이었다.

    이강민은 그것을 보고 비명을 질렀던 것 같았다.

    누가 봐도 자살이 의심되는 상황.

    한지혜가 다급하게 이지유를 부축해 침대에 뉘었다.

    옆에 있던 이강민이 두 손을 잡고 빌 듯이 외친다.

    “누나 좀 살려 주세요.”

    “잠시만 기다려.”

    한지혜가 이지유의 코에 귀를 갖다 댄다.

    그것도 잠시 울 듯 말 듯 한 표정으로 뒤를 돌아봤다.

    “저…… 호흡이 이상해요, 그런데 저는 심폐소생술 못해요. 이 실장…….”

    한지혜는 말을 맺지 못했다.

    도훈이 아무렇지 않게 핸드폰으로 이 모든 것을 찍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지혜가 화난 목소리로 따졌다.

    “이 실장님, 어떻게 그러실 수 있어요? 이 상황에서 어떻게 촬영을 하고 있어요. 저승사자라는 우리 사건 수첩 팀도 그런 짓은 안 해요.”

    싸해진 분위기 속에 도훈은 핸드폰을 집어넣고 걸어왔다.

    “일단 진정하세요.”

    “어떻게 진정해요?”

    한지혜가 날 선 목소리로 따지자 옆에서 지켜보던 한민국도 거들었다.

    “실장님, 진짜 너무하세요.”

    하지만 도훈은 아무렇지 않게 이지유가 잡은 수면제를 들었다.

    “여길 보세요.”

    “그걸 지금 왜 봐요. 사람부터 살려야죠.”

    “아직 안 땄어요.”

    “네?”

    “수면제 통의 밀봉이 아직 안 열려 있다고요.”

    “그게 무슨…….”

    도훈은 대답 대신 수면제 통을 한지혜에게 휙 던졌다.

    수면제 통을 확인한 한지혜는 입을 크게 벌렸다.

    “정말 밀봉이 안 뜯겼네요. 그런데 왜 호흡이…….”

    “무호흡 증상이요.”

    “무호흡이요?”

    도훈은 고개를 돌려 이강민을 바라봤다.

    “가끔 저럴 때가 있지? 강민아.”

    “이건 비밀인데 가끔 코도 골고 저럴 때도 있어요.”

    이강민이 고개를 끄덕이자 한지혜가 뭔가 기억났다는 듯 눈매를 좁혔다.

    “그런데 왜 이런 상황에서 핸드폰으로 촬영하고 있는 거예요?”

    “이런 상황이 뭔데요?”

    “급박한 상황이죠.”

    “그러니까 찍죠. 물론 이지유 씨에게 동의를 받아야겠지만, 이렇게 급박한 상황이 담겨야지. 민심이 돌아서지 않을까요?”

    “민심이요?”

    “지금 마녀사냥이 뭐라고 생각해요? 그 사람들이 진실에 관심이 있을까요?”

    “…….”

    “올바른 생각을 가진 사람도 있겠지만, 쌓아 놓은 분노를 어딘가 터뜨리고 싶을 뿐인 사람도 있어요. 그냥 거기에 심취해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는 거죠. 그걸 바꿀 만한 영상을 건져야죠. 여의도 한구석에 떠돌아다니는 찌라시는 상대도 안 될 정도로 흥미로운 영상을요.”

    “아…….”

    한지혜는 자신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지금 도훈이 말한 것은 사건 수첩의 방향성과도 맞았다.

    진실을 밝혀야 하지만, 그 전제에는 시청률이라는 기준이 존재한다.

    시청률이 떨어진다면 그것은 망한 프로그램에 불과할 수밖에 없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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