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의 연예계 공략법 (18)
박경민과 도훈은 이도준이라는 공통의 적을 가지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도훈은 미래에 자신의 목에 칼을 들이대는 것이 누군지 확실히 알고 있었다.
그것은 박경민이 아닌 이도준과 그의 사촌들.
그리고 도훈의 숙부들이었다.
일단 이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누구든지 끌어들이는 것이 맞았다.
일단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이런저런 회사 이야기들로 몇 분이 흘렀다.
살짝 분위기가 무르익자 도훈은 이전처럼 서류 가방을 들었다.
그러고는 그 안에서 준비한 서류를 꺼냈다.
김민석도 이제는 단련이 된 듯 아무렇지 않게 서류를 받았다.
“이게 이번 주 업무인가요?”
“이번 주는 아니고 조금 시간이 걸릴 수도 있을 겁니다.”
“하하, 그럼 큰 건이겠군요.”
“유레카로 봐서는 그다지 구미가 당기는 건수는 아닐 겁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봐서는 상당히 남는 장사니 신경 좀 쓰셔야 할 겁니다.”
“대체 어떤 프로젝트이길래…….”
“직접 보시죠.”
“네, 그럼 지금 확인하겠습니다.”
말을 마친 김민석은 활짝 웃는 얼굴로 서류를 펼쳤다.
그만큼 기대를 하고 있었다.
솔직히 정여진을 퇴출시키려던 MR25에게 이런 식으로 한 방 먹일 수 있을지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거기에 돌아온 보상은 장경자의 신임과 지분 투자 그리고 입사하고서 회장에게 처음 들었던 칭찬.
김민석은 이번에 도훈이 준 서류만으로도 심장이 뛰었다.
지금 같아서는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서류는 펼쳐 든 김민석은 얼마 안 가 눈을 크게 떴다.
그 떨림이 점점 내려오더니 이제는 수전증에 걸린 사람처럼 손을 떨어 댄다.
덜덜덜.
그 모습에 도훈이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이, 이게 왜 여기에 있습니까?”
“왜 있긴요? 제가 영입할 친구입니다.”
“그,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지금 욕설 논란 때문에 기존 소속사에서 쫓겨나기 직전인 연예인을 왜 유레카에서 떠안습니까?”
“쫓겨났으니 지금이 적기 아니겠습니까?”
“허허, 아무리 그래도…… 미라클에서도 계약금까지 포기하면서 바로 손절 한 사람을 왜…….”
김민석은 손을 얼마나 떨었는지 잡고 있던 서류를 놓쳤다.
툭.
서류가 살짝 나풀대더니 테이블 위에 멈췄다.
서류의 상단에는 영입 계획서라는 제목과 함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이지유, 영입 후 7팀으로…….]
김민석이 이렇게 떨고 있는 이유는 간단했다.
도훈이 던져 준 영입 계획서에는 어제 욕설 논란으로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궜던 연예인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 덕분에 정여진의 재계약도 이루어지고 장경자에게 칭찬도 받지 않았던가?
그런데 그 문제의 중심에 있던 이지유를 영입한다고?
김민석은 진짜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뭐, 접촉은 제가 할 테니, 준비만 해 두십시오.”
말을 마친 도훈은 해맑은 미소를 보이며 자리에서 사라졌다.
김민석은 자리에 남아 멍하니 영입 계획서를 바라보고 있었다.
검은색 승합차로 돌아온 도훈이 고개를 갸웃했다.
평소 같으면 검색 삼매경에 빠져 있어야 할 한민국이 주인을 기다리는 강아지처럼 목을 길게 빼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민국 왜 그래?”
“실장님, 아니 대표님. 솔직히 말해 주십시오.”
“뭔데 그렇게 심각해?”
“전에 사건 수첩 피디 만나신 거 말입니다.”
“그게 왜?”
“혹시 지금 이지유 님한테 터진 욕설 논란 실장님이 터뜨리신 겁니까? 지유 님은 그러실 분 아니에요.”
한민국의 얼굴이 벌게져 있다.
자신이 지금 이렇게 따지는 자체가 하극상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도훈은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네? 그렇게 생각하시다니요?”
“이지유가 욕설 논란 같은 이슈에 연관될 리 없지. 그 반대면 몰라도.”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회사 내부 얘기 들어 보니 새로 온 젊은 대표가 이지유한테 욕설 논란이 터질 거 예상하고 판을 짜셨다던데…….”
“조금 오해가 있네, 십분의 일 정도는 맞는데 내가 짠 판은 그게 아니야.”
“그게 무슨 말이에요?”
한민국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도훈을 바라봤다.
그때였다.
도훈의 재킷 속에서 핸드폰이 울렸다.
디리링, 디리잉.
화면에 나온 이름을 본 도훈이 낮게 속삭였다.
“잠깐만 조용히 해, 기다리던 전화가 왔네.”
“네?”
한민국이 눈을 끔뻑이자, 도훈이 검지를 입술에 한 번 갖다 댄 뒤 통화를 시작했다.
“한지혜 피디님!”
도훈의 목소리에 한민국은 자신의 입을 막았다.
그만큼 지금 긴장하고 있었다.
한민국은 지난번 도훈이 사건 수첩의 한지혜 기자를 만난 뒤 계속해서 ‘왜?’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 후 터진 것이 이지유의 욕설 논란 이슈였다.
그리고 쓰나미처럼 쏟아진 욕설 관련 기사들.
논란의 시작은 SNS에서부터 비롯되었다.
한국형 SNS인 도토리월드에 이지유가 출연한 예능 중 한 장면을 편집해서 올린 것이 시작이었다.
그 답글에 적은 것이 누군가의 음성 분석.
말이 음성 분석이지 과학적 근거는 없었다.
그것을 시작으로 순식간에 이슈가 된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 기사는 기사를 낳기 마련.
비슷한 유형의 기사들이 대한민국을 뒤덮었다.
처음에는 설마설마했는데 그 뒤 이익을 본 것은 도훈과 유레카.
아무리 생각해도 도훈이 의심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도훈이 한 점 망설임도 없이 관계가 없다고 하자 이해가 안 되는 한민국이었다.
거기에 더해 도훈의 말을 들어 보면 이지유의 편을 드는 듯했다.
그는 길게 목을 빼고 도훈의 통화에 집중했다.
도훈이 고개를 끄덕이며 통화를 이어 나갔다.
“원래 정보가 이 바닥 생명 아닙니까?”
도훈의 태도에는 흐트러짐이 없었다.
웃는 얼굴에 항상 같은 톤으로 목소리를 유지했다.
“네, 그럼 거기서 뵙겠습니다, 기자님.”
도훈이 통화 종료를 터치하며 한민국을 바라봤다.
눈이 마주친 한민국은 뭔가 훔쳐 먹다 걸린 것처럼 깜짝 놀란 표정으로 마른침을 삼켰다.
도훈이 씩 웃으며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민국아, 여의도로 가자.”
“여의도라면?”
“한지혜 기자 보기로 했다. 지금 출발해.”
“네, 실장님.”
실장이란 호칭이 입에 붙은 한민국의 모습에 도훈이 만족스러운 듯 웃었다.
* * *
잠시 후.
여의도의 커피숍 스타박스 앞에 검은색 승합차가 멈췄다.
차에서 내린 도훈은 방송 장비를 허리 높이까지 쌓아 둔 한지혜에게 다가갔다.
“진짜 여기 계셨네요.”
“네, 우리 팀장님이 딱 여기까지만 옮겨 주겠다고 하셔서요. 지금 다른 취재 때문에 다들 바쁘거든요.”
“일단 타세요, 장비는 저희가 옮길게요.”
말을 마친 도훈은 승합차 쪽을 향해 손짓했다.
그 손짓에 한민국이 스프링처럼 튀어 왔다.
취재 장비를 싣고 나자 한지혜가 입을 열었다.
“진짜 죄송해요.”
“일단 달려오긴 했지만, 다른 피디님들은 엄청 바쁘신가 봐요.”
“네, 선배님들이 이번 건 취재할 거면 저 혼자 진행하라고 하셔서…….”
“그런 표정 지으실 필요 없습니다. 어차피 한배를 탄 사람들 아닙니까?”
“한배라…… 하하.”
한지혜가 어색하게 웃자 도훈이 뭔가 기억난 듯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제가 말한 정보들은 미리 취재해 두셨나요?”
“그건 운 좋게 미리 인터뷰 땄어요.”
“다행입니다.”
도훈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차 안에는 잠시 정적이 맴돌았다.
그때 한지혜가 뭔가 기억난다는 듯 물었다.
“여긴 이지유 씨 주소에요, 오늘 좀 부탁드릴게요.”
한지혜는 주소가 적힌 포스트잇을 전했다.
“네, 알겠습니다.”
포스트잇을 받은 도훈은 재빨리 한민국에게 전달했다.
“여기로 좀 가 줘.”
“아, 그러니까. 여기로……. 여기가 이지유 님 댁이라는 거죠?”
“일단 출발!”
“네, 실장님.”
한민국이 액셀을 밟자 검은색 승합차가 천천히 나아갔다.
한민국은 지금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도훈과 한지혜 사이에 오가는 이야기는 그가 상상도 하지 못할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운전에 집중해야 할 한민국은 몇 번씩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정말로요?”
“한민국! 너는 앞이나 제대로 봐.”
“아니, 말이 안 되니까 그렇죠. 지금 하신 말씀은 지유 님이 욕설 논란의 가해자가 아니라는 거잖아요.”
“그래, 그러니까 운전이나 제대로 해.”
“이것만 물어볼게요, 도토리월드에 사진 뿌린 놈이 가해자라는 거잖아요.”
“그래, 거기까지는 맞아. 마지막 질문 끝났으니 앞이나 봐.”
도훈이 검지로 전방을 가리켰다.
“아, 실장님 제발요. 궁금한 게 너무 많아서 운전을 못 하겠어요.”
“그럼 내려, 내가 할 테니.”
“제발요, 실장님. 다른 사람도 아니고 지유 님과 관계된 일이라고요. 양보 못 해요.”
“그럼 내리라니까.”
한지혜는 아옹다옹하는 그들을 조용히 바라봤다.
그것도 잠시 그녀의 시선은 도훈에게 멈췄다.
그들이 나눴던 이야기는 간단했다.
도훈이 얼마 전 한지혜에게 전달한 자료는 욕설 논란에 관한 것이 맞았다.
하지만 이지유를 변호하는 내용이었다.
어떻게 보면 이지유는 피해자.
도토리월드에 올라온 음성도 사실 왜곡되었다는 것이다.
그녀가 처음에 이 자료를 받았을 때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도토리월드에 있는 답글 하나가 그렇게 이슈가 될 줄은 몰랐었다.
이것을 들춘다면 방송 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는 이지유에게는 마이너스인 사건.
이것을 굳이 들출 필요가 없다 생각했다.
그런데 마침 이번 이슈가 터진 것이다.
그 사건이 터지자마자 한지혜는 국내 전문가들의 인터뷰를 땄다.
대부분이 그 음성이 조작된 것이라고 했다.
한 네티즌의 장난으로 시작된 마녀사냥.
그 마녀사냥으로 인해 요즘 떠오르는 스타가 소속사에 계약 해지까지 당한 사건이었다.
이지유가 무고하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었다.
문제는 결론을 내고 덤벼드는 여론을 어떻게 잡느냐였다.
그것에 대한 대책도 바로 이도훈 실장이 전해 줬다.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을 예상했다는 듯 그는 미국 실리콘밸리에 있는 음성 공학 교수에게 분석을 맡겼다.
그것도 2만 달러라는 막대한 금액을 주고 말이다.
도훈의 이야기는 간단했다.
국내 전문가의 이야기는 믿지 않아도 MIT의 교수 이야기는 국민이 신뢰하리라는 것이다.
거기에 더해 욕을 먹었다는 해당 아이돌에게도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야말로 완벽한 증거.
하지만 도훈은 거기에 그치지 않았다.
국내 최대 로펌인 리앤장에 의뢰를 한 것이다.
방송이 나가고 손가락만 까딱하면 그동안 온라인을 후끈하게 만들었던 키보드 워리어들은 모두 인생은 실전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것이 도훈의 계획이었다.
일련의 과정들을 머릿속에 떠올린 한지혜는 못 참겠다는 듯 물었다.
“실장님, 저도 궁금한 게 있어요.”
“한 기자님은 뭐가 궁금하신데요?”
“혹시 점쟁이세요?”
“점쟁이요? 대체 그게…….”
“아니, 점쟁이가 아니고서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줄 알고 자료를 제게 주신 거예요? 지유와 제 관계도 알고 계시는 거 맞죠?”
“무슨 관계요?”
“제가 지유 씨 팬이라는 거요.”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