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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연예계 공략법-17화 (17/250)

회귀자의 연예계 공략법 (17)

이를 악문 이도준이 억지 미소를 지었다.

“모든 사항에 대해서는 완벽하게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혹시 즉시 해지 및 위약금 즉시 요구 조항도 다른 계약서와 똑같겠지요?”

“…….”

이도준은 답할 수 없었다.

이 계약서는 아버지 이세훈과 마케팅 팀장 그리고 자신밖에는 모른다.

그런데 어떻게 김민석이 알고 재를 뿌린다는 것인가?

그렇다고 할머니 앞에서 거짓말을 할 수는 없었다.

이도준은 지금 결심했다.

유레카를 무너뜨리고 부사장 김민석의 목도 날려 버리기로.

짧은 침묵이지만, 잡음을 일으키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 침묵을 깬 것은 김민석이였다.

“혹시 위약 조항에 법원의 판결 후에 결정한다는 조항을 넣으신 것은 아니겠죠?”

“…….”

“이 경우에는 문제가 생겼을 때 법원의 판결 전에는 같이 두드려 맞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계약 해지를 할 수 있지만, 그 경우에는 해당 연예인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겠죠.”

“…….”

이도준은 아무런 목소리도 내지 못했다.

그저 일그러진 표정으로 김민석을 쏘아볼 뿐이었다.

이 회의 이후에 장경자의 호통이 날아올 것이 분명했다.

아니나 다를까.

이도준을 바라보던 장경자의 호기심 어린 표정은 냉랭하게 바뀌었다.

이후 잠시 동안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

회의실의 테이블 위는 마치 살얼음이 낀 듯 차가운 기운이 감돌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어색한 침묵 뒤 김민석이 버튼을 눌렀다.

화면은 아역에서부터 시작한 정여진의 필모로 채워졌다.

그 필모와 함께 성장한 MR25의 매출이 그래프를 그려 나간다.

그 그래프의 끝에 느낌표 하나가 뜬다.

이도준의 프레젠테이션이 물음표라면 김민석은 느낌표로 화두를 던지고 있었다.

모두가 고개를 갸웃할 때 김민석이 말을 이었다.

“여기 계시는 회장님 이하 대표님께 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저는 정여진 배우에 대한 광고비가 너무 저렴하게 책정되어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명품 배우에는 그에 맞는 광고비가 책정되어야 미라클과 유레카가 서로 윈윈하며 역사를 만들 수 있다고 봅니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김민석이 주장하는 것은 간단했다.

정여진을 계속 쓰고 싶으면 그에 합당한 개런티를 보장하라는 것이었다.

그것이 바로 이지유에 준하는 몸값이었다.

지금 정여진을 자르려고 하고 있는데, 오히려 몸값을 높여 달라는 요구에 계열사 대표들은 실소를 터뜨렸다.

“미친 거 아니야?”

“그러게 말일세.”

“지금 상황에서 저 말이 나와?”

웅성거림이 계속 커지자 장경자가 엄지연에게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엄 비서야, 에프 킬라 좀 가져와라.”

“네?”

“모기가 웽웽거려서 시끄러워서 그런다.”

그 말에 계열사 사장들이 재빨리 입을 닫았다.

장내가 진정되자 김민석이 말을 이었다.

“저희 유레카와 계약한 배우와 가수들에게는 합당한 몸값이 있습니다. 같은 계열사라도 그 수준은 명확히 지켜 주셨으면 합니다. 이것을 마지막으로 이만 줄이겠습니다.”

말을 마친 김민석은 단상에서 내려왔다.

김민석은 지금 미칠 것만 같았다.

자신을 향한 조소와 증오 어린 눈길들을 마주하니 다리가 풀릴 것만 같았다.

사고를 쳐도 단단히 친 것 같은 분위기였다.

회장 장경자와는 눈을 마주칠 엄두도 내지 못했다.

당당했던 발표와는 달리 자리로 돌아온 김민석은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쥐 죽은 듯 웅크리고 상황을 살폈다.

자신을 여기까지 몰아넣은 젊은 대표, 즉 도훈이 얄미울 뿐이었다.

회의가 막바지로 치달았을 때였다.

얼음 마녀 같았던 엄지연이 당황하며 뛰어오더니 장경자에게 귓속말을 전했다.

그와 동시에 다른 계열사 대표들도 핸드폰을 꺼냈다.

그때 고개 숙이고 있는 김민석의 귓가에 이지유란 이름이 유난히 많이 들려왔다.

김민석은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었다.

순간 김민석의 눈이 커졌다.

회의장은 지금 아수라장이 되었다.

모두가 기사를 검색하기에 바빴다.

김민석은 조용히 핸드폰을 꺼내 포탈의 메인을 바라봤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실시간 순위였다.

<1위. 이지유 욕설!>

순간 김민석은 빛의 속도로 핸드폰 화면을 터치했다.

* * *

그날 오후.

유레카의 부사장실.

김민석의 얼굴은 스팀팩 맞은 마린처럼 상기되어 있었다.

맞은편에는 한유라와 정여진이 앉아 있었다.

남의 불행을 보고 기뻐할 수는 없겠지만.

자신에게 돌아온 행운을 모른 척할 수는 없었다.

이지유에게는 불행.

유레카와 정여진에게는 행운이었다.

하지만 정여진은 조금 불편한 듯 우울한 눈빛으로 김민석을 바라봤다.

“후배가 그런 일을 당했는데 제가 마냥 좋아할 수는 없을 것 같네요. 그런데 감사하다는 이야기는 드려야 하니 이렇게 찾아왔어요. 부사장님.”

“그런 표정 지으실 필요는 없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욕설이라는 게…….”

김민석은 말끝을 흐렸다.

어제 각종 포탈의 실시간 검색어 순위를 장식한 것은 이지유의 욕설이었다.

사건의 전말은 간단했다.

전에 이지유가 출연한 예능 프로그램을 어떤 네티즌 중 하나가 정밀 분석했다.

그 결과 이지유가 후배 아이돌에게 욕설을 했다는 것.

그 당시에는 무명이었던 아이돌 멤버가 이제는 탑 그룹이 되어 있어 막강한 팬덤을 바탕으로 벌어진 일이었다.

이 사건은 순식간에 온라인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경찰에서 수사한 것도 아니고.

과학적인 근거도 없다.

문제는 그 아이돌의 팬덤이 들고일어난 것이다.

그리고 이어진 ‘묻지 마 테러’.

이지유의 욕설이 사실이라고 해도 그렇게 비판받아야 할 일인가?

누가 김민석에게 묻는다면 그는 아니라고 할 것이었다.

하지만 아이돌에서 시작해서 청순한 이미지를 쌓아 올린 이지유에게는 치명적이었다.

미간을 좁힌 김민석을 본 정여진도 그 마음을 안다는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 이미지 때문에 벌어진 일이죠. 욕을 해서 먹고사는 이도 있잖아요.”

“뭐, 청순한 이미지가 강하다 보니 대중의 입장에서는 용납할 수 없었겠죠.”

“그야 그렇지만요.”

“그건 그렇고. 이번 일은 제 능력이라고 하기보다는 새로 오신 대표님의 도움이 컸습니다.”

“새로 오신 대표님이시라면?”

정여진이 고개를 살짝 기울이자 김민석이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이 대표님이 만들어 놓으신 판입니다.”

“혹시…….”

뭔가 걱정하는 듯 정여진이 눈매를 좁혔다.

판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도훈이 꾸민 일이 아니냐고 묻는 것이었다.

김민석이 손을 내저었다.

“거기까지는 아닐 겁니다, 그저 돌아다니는 소문을 듣고 판을 짜신 것 같습니다.”

그때 가만히 듣고 있던 한유라가 급하게 끼어들었다.

“그게 정말이에요? 부사장님? 새로운 대표님이 그렇게 능력이 뛰어나요?”

“흠, 뛰어난 건 맞아.”

“그럼, 그 젊은 대표가 광고 계약도 유지, 아니 광고 개런티까지 올려놨단 얘기예요?”

“뭐, 이 대표님의 도움이 컸지.”

“이 바닥을 모르는 대표가 어떻게…….”

한유라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말끝을 흐렸다.

“거기까진 나도 몰라. 어쨌든 상대가 가진 패까지 모조리 읽은 건 사실이니, 나도 할 말이 없네.”

그때였다.

정여진이 김민석의 손을 잡았다.

깜짝 놀란 김민석이 놀라 물었다.

“앗, 선생님! 왜 그러세요?”

“고맙다고 전해 줘요. 그 젊은 대표님한테요.”

“네, 알겠습니다. 참, 대표님이 선생님께 전해 드리란 말이 있었습니다.”

“그게 뭔가요?”

“국제 영화제에 우뚝 선 선생님의 모습이 보고 싶으시다고 하시네요.”

“제가 무슨 재주로…….”

둘의 대화에 한유라가 끼어들었다.

“선생님은 해내실 수 있어요.”

“그래, 한 팀장 말 믿고 작품 골라 볼게. 그러고 보니 내가 부사장님 시간을 너무 빼앗았네요.”

“그럼 일어나실까요? 선생님.”

한유라가 정여진과 함께 일어났다.

둘이 막 문을 나갔을 때였다.

김민석의 책상 위에 있던 핸드폰이 거칠게 진동음을 토해 냈다.

드드득, 드드득.

진동 소리에 뒤를 힐끔 돌아본 한유라는 정여진의 팔짱을 끼고 다시 복도를 걸었다.

복도를 걷던 한유라는 곁눈질로 7팀 사무실을 바라봤다.

한유라는 이상하게 7팀이 거슬렸다.

“한 팀장, 왜 그래?”

“아무것도 아니에요, 선생님. 오늘은 맛있는 거 먹어요. 제가 살게요.”

“아니야, 내가 사야지.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뭐든 말해.”

“정말로요 선생님?”

“당연하지.”

정여진의 웃음은 그 어느 때보다 밝았다.

* * *

다음 날 오전.

유레카에서 한 블럭 떨어진 커피숍.

김민석은 여유 있게 커피를 즐기고 있었다.

처음 이곳에 올 때는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절망적이었지만, 어제 사장단 회의를 기점으로 김민석은 희망을 보게 되었다.

김민석은 오늘은 도훈이 어떤 제안을 할지 기대가 되었다.

어제 사장단 회의 이후 그는 장경자와 자리를 가졌다.

그때 장경자는 미라클에 지분 투자를 약속했다.

지분을 손자한테 주고 자신의 지분을 또 투자한다라?

정에 이끌려 그런 행동을 할 사람은 아니었다.

분명 유레카와 젊은 대표의 미래를 보고 결정한 행동이었을 것이다.

거기에 더해 장경자는 김민석의 똑 부러진 프레젠테이션을 칭찬했다.

그러고는 제법 쓸만한 놈이라는 평가를 내렸다.

장경자에게 평가를 받은 것은 미라클 입사 25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거기에 그 평가가 호의적이라는 것은 그의 가슴을 뛰게 만들었다.

이 모든 것이 새로 온 젊은 대표, 도훈의 덕분이었다.

김민석은 재빨리 커피를 내려놨다.

저 멀리서 도훈이 걸어오는 것을 봤기 때문이다.

김민석의 앞에 온 도훈이 말했다.

“편히 앉으세요, 왜 부담스럽게 일어나고 그러세요.”

“하하, 아무리 그래도 대표님이신데.”

“에이 편하게 하시라니까요. 어제 갔던 일은 잘되었다고 들었어요. 맞죠?”

도훈이 활짝 웃자 김민석이 마주 웃었다.

“네, 장 회장님께서 지분 투자를 약속하셨습니다. 승리자에게는 마땅히 상이 따라야 한다고 그러시더군요.”

“상은 무슨 상이에요? 할머니도 욕심은 많으셔서. 돈 될 거 보면 그냥 안 놔두신다니까요, 그렇죠?”

“저는 잘…….”

김민석은 뒷머리를 긁적였다.

처음에는 몰랐지만, 도훈과 이야기하면 꼭 나이 든 기업가랑 이야기하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자신의 기준으로는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젊은이지만, 말투라든지, 거기에 담긴 뜻 그리고 대화를 이어 나가는 스킬이 마치 노련한 고수를 보는 듯했다.

“어쨌든 어제 고생 많으셨어요.”

“아닙니다. 그런데…….”

“표정이 왜 그러세요?”

“혹시 이도준 본부장의 패를 어떻게 아셨습니까?”

“흠, 그건 역시 비밀이라고 할까요?”

도훈은 씩 웃었다.

사실 비밀이라고 할 것도 없었다. 이도준이 그런 계약서에 도장을 찍은 것은 모두 도훈의 계책이었으니 말이다.

도훈은 지난번 태청의 박경민을 만나 한 가지 부탁을 했었다.

그것은 이지유에게 밑밥을 던지라는 것이었다.

뭐, 대기업이 광고 모델 섭외를 미끼로 자리 한번 만드는 것은 식은 죽 먹기.

사실 그것은 이지유의 소속사인 SW에게 던진 것이 아니라 이도준에게 던진 미끼였다.

예상대로 이도준은 말도 안 되는 계약서를 덥석 물었고 말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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