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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연예계 공략법-16화 (16/250)

회귀자의 연예계 공략법 (16)

김민석의 장담에 정여진은 입을 살짝 가리고 웃었다.

농담인 줄은 알지만, 그녀는 이렇게 자신의 편을 들어주는 부사장 김민석이 고마울 수밖에 없었다.

“호호, 이 나이에 어떻게 달려요? 부사장님도 승진하시더니 농담이 늘었네.”

“아, 농담 아닙니다. 이제부터는 연기에 전념하시도록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그러니 일단 연기 말고 다른 일은 저희에게 맡기십시오.”

“네, 그럼 저는 그만 일어날게요.”

“이렇게 오셨으면 점심이라도 같이…….”

그때 정여진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인자한 웃음과 함께 말을 이었다.

“아니에요, 한 팀장하고 약속 있어요. 이렇게 말씀하실 줄 알았으면 괜히 와서 귀찮게 해 드렸네요. 참, 제 후배 중에 유레카에 관심 있는 친구들 있는데…….”

“감사합니다, 선생님.”

김민석이 웃자 정여진은 손을 내저으며 밖으로 나갔다.

밖으로 나간 정여진이 한숨을 내쉬었다.

“휴, 다행이네.”

한숨을 뱉은 정여진은 주변을 바라봤다.

자신의 한숨을 들은 이가 없나 해서였다.

남들은 국민 엄마니 강철 가슴을 가진 부처니 하는 말로 그녀를 치장하지만, 실제 그녀는 새가슴 그 자체였다.

어찌 보면 모두가 만들어진 이미지.

그녀의 지금 상황은 그리 녹록하지 못했다.

그런데 여기에서 광고까지 끊긴다면?

생각만 해도 까마득했다.

* * *

이틀 후.

삼성동 미라클 본사 30층 회의실.

오늘은 한 달마다 열리는 사장단 회의가 있는 날이었다.

기다란 테이블에 계열사의 사장들이 앉아 막 자대 배치받은 신병처럼 각을 잡고 있었다.

평소라면 편안하게 의자에 등을 기대고 다리를 꼬고 앉아 있었을 테지만, 오늘은 회장 장경자가 온다는 통보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비서진들이 그들의 앞에 회의 자료를 배부하기 시작했다.

회의 자료를 보던 이세훈이 고개를 갸웃했다.

“이건 뭐지? 유레카 엔터에서 여기에 왜 와?”

이세훈이 가리킨 곳에는 순서가 적혀 있었다.

그 순서의 발표자 중에는 유레카 부사장이 있었다.

그 옆에 있던 이세형이 말했다.

“형님, 아무래도 모델 교체 때문에 어필하려고 온 것 같습니다.”

“다 결정 난 사항에 무슨 할 말이 있다고?”

“아마 도훈이가 보냈을 겁니다. 한 방 먹고 그냥 가만히 있으면 꼴이 뭐가 되겠습니까? 그렇다고 그놈 주변머리에 지가 직접 나설 수도 없는 상황이고요.”

“그래서 부사장을 대타로 내세웠다고?”

“네, 백이면 백 깨질 것이 뻔한데도 말입니다. 그런데 좀 찝찝하네요.”

“뭐가 찝찝한데?”

“지난번 팔순 잔치에서 한 행동을 보면 무슨 꼼수 같은 게 있을 수 있지 않습니까?”

“꼼수는 무슨 꼼수. 우리 도준이가 추진한 일이야. 그놈 보고를 보니 한 치의 틈도 없었어. 돈 계산은 칼 같은 놈인데 그걸 어떻게 반박해.”

“혹시라도 어머님의 감정을 건드려는 건 아닐까요? 정여진 배우가 나이가 있다 보니 그쪽을 건드리면…….”

“어머님이 감정에 좌지우지될 분이야? 그놈 자금줄을 끊는 건 내가 할 테니, 너는 가만히 있으라고.”

“그렇게 말씀하신다면야 저도 안심하고 있겠습니다, 하하.”

그때였다.

갑자기 공기가 냉랭해졌다.

대기하고 있던 계열사의 대표들이 일제히 표정을 굳힌 것이었다.

그때 장경자가 조용히 들어왔다.

그 옆에서 보조를 맞춰 걷고 있는 엄 비서는 오늘따라 더 검게 보이는 옷을 입고 왔다.

그 모습은 모두의 눈에 저승사자로 보였다.

그녀가 저승사자라면 장경자는 염라대왕이었다.

장경자는 자리에 앉자마자 테이블을 탁탁 치며 말했다.

“시간 끌 거 없이 시작하자고, 다들 긴장 풀고.”

그녀의 말에 회의는 바로 시작되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차례가 오자 이세훈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번 발표는 저 대신 유통 부분 사업부를 맡고 있는 이도준 본부장이 하겠습니다.”

이세훈이 신호를 보내자 앞쪽에서 대기하고 있던 이도준이 자리에서 나왔다.

단상에 선 이도준은 뒤쪽에 신호를 보냈다.

동시에 불이 꺼지고 뒤쪽 스크린에서 그가 준비한 자료가 나타났다.

미라클이라는 글자가 점점이 깨지더니 다시 합쳐져서 물음표를 만들었다.

영상이 바뀌자 이도준은 준비했다는 듯 마이크를 잡았다.

“제가 오늘 준비한 것은 미라클의 다음 세대를 위한 얼굴입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여러 그래프와 숫자가 화면을 채우자, 이도준은 계속 설명을 이었다.

그의 요지는 간단했다.

변화하는 세대에 맞춰 미라클의 이미지를 바꾸자는 것이 논제였다.

그중 자신이 맡고 있는 편의점 사업부터 이미지를 혁신하겠다는 것이다.

그 첫 번째로 제안한 것이 광고 모델의 교체였다.

“……제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풋풋함입니다. 이제까지 보고 드린 것처럼 모델 교체에 성공한 프랜차이즈의 경우 평균 성장률은 20% 이상으로…….”

십 분이 넘는 발표가 끝나자 계열사 대표들은 흡족하다는 듯 웃으며 손뼉을 쳤다.

짝, 짝.

그러다가 모두 동작을 멈췄다.

장경자가 손뼉을 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아챈 것이었다.

하지만 웃는 표정으로 호기심을 나타내고 있었다.

앞쪽에서 표정을 굳힌 이도준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인사를 했다.

“여기까지입니다, 감사합니다.”

조용히 들어가는 이도준은 주먹을 꽉 쥐었다.

할머니 장경자가 저 정도로 호기심 어린 표정을 지은 적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모델 교체 카드를 꺼내 든 이유는 간단했다.

할머니 장경자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기업의 이미지였다.

어설픈 이미지를 가지고 장사할 거면 다 집어치우고 돈놀이나 하라는 것이 장경자의 지론이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신경을 쓰는 것은 기업의 얼굴이라 할 수 있는 광고 모델.

다른 기업들도 지금 젊은 얼굴을 섭외하며 기업의 이미지 변화를 모색하는 시기였다.

미라클도 변화를 꾀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중요한 것은 눈엣가시 같은 유레카를 줄 끊어진 연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이도준의 주장이 통과된다면 유레카는 자금줄이 끊기고 할머니의 관심 밖에서 벗어나게 된다.

지난번 팔순 잔치에서의 복수를 제대로 하는 것이었다.

거기에 더해 할머니의 눈에 들어 자신의 입지를 더욱 굳히는 일.

즉, 후계 구도에 한발 다가서게 되는 것이었다.

모든 것은 자신의 계획대로 순조롭게 끝났다.

이도준은 편안한 표정으로 단상 옆에 준비된 의자에 앉았다.

그러고는 여유 있는 표정으로 사람들을 살피며 질문을 받을 준비를 하려 할 때였다.

비서실에서 나온 진행자가 마이크를 들었다.

“유레카의 김민석 부사장의 발표를 듣고 두 분에게 질문할 기회를 대표님들에게 드리고자 합니다. 김민석 부사장님 나와 주십시오.”.

엄지연의 말에 옆에서 준비하고 있던 김민석이 단상으로 걸어왔다.

그런데 힘이 하나도 없는 것이 금방 쓰러질 것처럼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이틀 밤을 새워서 도훈이 준 자료를 숙지했다.

자료에 대해서 동의하지는 못하지만, 도훈이 하라 하니까 그냥 따른 것이었다.

사실 김민석은 발표를 하고 장경자에게 미움을 살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그런데 묘하게 목이 한 번에 달아날 것 같지는 않은 기분이 들었다.

김민석은 미라클이라는 정글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오기인지 아니면 착각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의 귓가에 젊은 대표, 도훈의 목소리가 꽂혔다.

‘우리 한번 화려하게 살아 보죠, 길고 굵게 살아 봅시다.’

‘가늘고 길게’란 말은 많이 들어 봤어도 ‘굵고 길게’란 말은 처음 들어 본 김민석이었다.

도훈의 말을 떠올리자 갑자기 몸에 엔도르핀이 도는 착각마저 들었다.

순간 굳었던 김민석의 얼굴에 살짝 미소가 맴돌았다.

스크린에서 자료가 나오자 김민석은 조심스럽게 마이크를 들었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김민석은 차분한 어조로 발표를 시작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그의 발표에 회의장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김민석이 들고나온 자료는 정여진이 이제까지 높여 준 도시락 파트를 중심으로 한 점유율이었다.

거기까지는 괜찮았지만, 그다음 자료가 문제였다.

모델 교체를 잘못해서 피해 본 사례들이었다.

“모 건설 회사에서 본 피해는 무려…… 그리고 모 음료 회사의 경우는 그해 피해액이 자그마치 50억입니다. 검증 안 된 모델을 잘못 쓸 경우 피해를 보게 되는 것은 MR25가 아니라 미라클의 계열사 전체가 될 것입니다.”

말을 마친 김민석은 조용히 좌중을 노려봤다.

시선이 마주친 계열사 대표들은 고개를 갸웃했다.

이건 미라클이 잘못되라, 고사를 지내는 듯한 기조의 발표였다.

이세훈이 나지막이 속삭였다.

“혹시 뭐 잘못 먹은 거 아니야?”

“형님 일단 들어 보시죠.”

“아니 저 정도면 미친 거지, 좋은 말만 해도 자리를 보전할까 말까인데, 저러면 제발 자기를 쳐 내 달라고 기도하는 거잖아. 본사에 있을 때는 멀쩡하더니 한직으로 좌천되고 나더니…….”

이세훈은 말을 급히 멈췄다.

서늘한 기운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장경자의 시선이었다.

이세훈은 재빨리 숨을 멈췄다.

김민석은 좌중의 술렁임과는 달리 침착한 목소리로 물었다.

“모델 교체를 위해서 벌써 계약은 진행하셨겠지요?”

누가 봐도 이도준에게 던지는 질문이었다.

이도준은 들고 있던 마이크의 전원을 켰다.

“네, 계약은 무사히 끝냈습니다.”

“그렇다면 계약서에 모델이 일으킬지 모르는 불미스러운 일에 대한 위약 조항은 충분히 넣으셨겠죠?”

질문을 던진 김민석은 레이저 포인트로 스크린 위에 마이너스로 표시된 부분을 강조하며 이도준을 바라봤다.

김민석이 가리키는 것은 모델을 잘못 써서 매출이 가파르게 감소한 최악의 상황을 적어 놓은 사례였다.

김민석과 마주한 이도준은 미간을 좁혔다.

갑자기 급박했던 며칠 전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대기업 중 편의점 프랜차이즈에 손을 뻗지 않은 기업은 거의 없었다. 기업 순위 30위에 위치한 태청 그룹도 미라클과 마찬가지로 편의점 프랜차이즈에 뛰어든 재벌 중 하나였다.

태청과 미라클은 편의점 분야에서 요즘 들어 묘하게 서로 으르렁대는 관계였다.

그런데 이틀 전 문제가 생겼다.

이도준이 낙점해 놓은 이지유를 태청이 가로채려 한다는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지유의 기획사 SW의 대표는 태청에서 제의한 계약서를 내밀었다.

그가 내민 계약서는 개런티도 미라클보다 높았고 위약금 조항도 황당했다.

위약금은 보통 3배에서 10배 사이로 정해 놓고 기업의 권위를 실추시키는 부분을 세부적으로 규정해 놓는다.

그런데 태청에서 내민 것은 법원의 결정이 나기 전까지는 위약금에 대해서 보류한다는 것이었다.

조금 찝찝하기는 해도 이지유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킬 가능성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녀는 10년간 아이돌 활동을 하며 분자 단위까지 까이고 까이면서 검증된 연예인이었다.

태청에게 빼앗기는 것보다는 나았기에 재빨리 계약을 마무리 지었다.

그런데 지금 김민석이 그것을 비집고 들어온 것이다.

김민석은 속으로 욕을 했다.

‘비겁한 새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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