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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연예계 공략법-14화 (14/250)
  • 회귀자의 연예계 공략법 (14)

    그의 이마에는 가뭄 속 논처럼 찌글찌글 주름이 가 있었다. 게다가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근육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감당 못 할 시련이라는 것이었다.

    그의 귓가에 날 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본부장님, 아니 부사장님 지금 뭐 하세요?”

    “아, 잠시 딴생각 좀 하느라고. 그래, 계속 얘기해 보라고, 한 팀장.”

    그의 앞에는 머리를 질끈 동여맨 2팀장 한유라가 팔짱을 끼고 있었다.

    굽이 없는 단화에 깔끔한 정장 차림의 그녀의 얼굴은 시뻘게져 있었다.

    2팀은 주로 중견급 배우를 관리하는 부서였다.

    그녀가 이렇게 흥분하는 것은 외부에서 날아온 유탄에 그녀가 관리하는 배우가 직격탄을 맞았기 때문이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본부장이었던 김민석은 한유라의 직속 상관.

    가끔은 불만도 털어놓고 의견도 스스럼없이 나누던 사이였다.

    갑자기 직책은 변했지만, 한유라에게는 그저 선배일 뿐이었다.

    기획사 중에는 2군이라 불리는 이곳에서 근무하고 있지만, 그녀에게도 꿈이 있었다.

    언젠가는 자신의 배우와 함께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겠다는 막연한 꿈이었다.

    그런데 그중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배우가 재벌가의 싸움에 튄 파편에 맞아 버린 것.

    그녀는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이렇게 부사장실까지 찾아오게 되었다.

    콧김을 뿜어 대는 한유라가 입을 열었다.

    “본부장, 아니 부사장님 이게 말이 돼요? 어떻게 미라클에서 우리 뒤통수를 쳐요?”

    “한 팀장! 그렇지 않아도 황당한데 너까지 그러면 어떻게 해?”

    “제가 부사장님한테 말하는 게 아니잖아요. 미라클 그 새끼들한테 그러는 거잖아요.”

    한유라가 흥분한 듯 주먹을 불끈 쥐자, 김민석이 살짝 뒤로 물러났다.

    “그래 한 팀장 말이 맞아. 그래서 나도 수습하려고 하잖아.”

    “아니, 같은 계열사끼리 그리고 자기네들이 원해서 우리하고 계약한 정 선생님을 무시하고 다른 모델을 쓰겠다고요?”

    2팀장 한유라가 버럭 소리를 지르나 김민석이 손을 내저었다.

    “워워, 일단 진정해, 한 팀장.”

    “제가 무슨 소예요? 왜 워워거리세요.”

    “일단 진정하라고. 나한테 소리 지른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잖아.”

    “정 선생님이 우리하고 계약한 게 뭐 때문인데. 여기저기 장돌뱅이 생활할 필요 없이 미라클에서 차려 주는 밥상 받으러 오신 거잖아요. 아니, 정 선생님이 차려 준 밥상만 먹었나요? 선생님 때문에 오른 매출이 얼만데요? 그런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요?”

    기관총처럼 뿜어 대는 한유라의 호소에 김민석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단 진정해. 그러지 않아도 자세한 사항을 정리해서 연락해 주기로 했어.”

    김민석이 손바닥을 내보이자, 한유라도 흥분을 가라앉혔다.

    사건의 경위는 간단했다.

    미라클의 계열사인 편의점 프랜차이즈인 MR25에서 광고 모델을 교체하겠다고 통보를 해 온 것이다.

    미라클 그룹과 지금의 유레카 엔터는 지분이 바뀌기는 했지만, 아직은 계열사 관계였다.

    그런데 수도꼭지 잠그듯 이렇게 끊어 버리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한유라가 말했다.

    “대표는 어디서 뭘 하고 있기에 코빼기도 안 보여요? 이거 집안싸움이잖아요. 그러면 지가 나서서 수습해야 할 거 아니에요. 노블레스 오블리주 몰라요?”

    “한 팀장 그러다가 듣겠다.”

    “듣긴 뭘 들어요? 어차피 회사에 나오지도 않잖아요.”

    “우리가 안 본 사이에 나와 있을 수도 있지.”

    김민석은 고개를 돌려 문 너머를 바라봤다.

    아마 진짜 대표는 저 문 너머 어딘가에서 매니저 놀이를 하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자신이 키우고 싶은 배우와 가수를 키우겠다고?

    나머지 회사 일은 알아서 해 달라고?

    지금 보니 그 어린 대표는 이런 일이 터질 줄 알고 있었던 것 같았다.

    안 좋은 일은 자신에게 다 떠넘기고 회사가 잠잠해지면 얼굴을 드러낸다는 계획은 아닐까 하는 의심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물론 그때가 되면 김민석 자신의 목은 날아갈 것이 훤했다.

    순간 그의 눈앞에 토끼 같은 자식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김민석의 심정과는 별개로 한유라의 독설은 계속되었다.

    “대표면 책임을 져야죠. 어떻게 이 사달이 났는데 회사에 얼굴 한번 안 비쳐요?”

    한유라의 말이 맞았다. 이대로 당하고 있을 수는 없기에 김민석도 준비해야 했다.

    결심한 김민석이 답했다.

    “잠시만 기다려 봐, 내가 전화해 볼 테니.”

    “네, 제발 이번 건은 신경 써 달라고 좀 해 주세요. 이번 건 틀어지면 이 바닥에서 손가락질받아요.”

    “알았으니, 일단 나가서 기다려.”

    “네, 꼭 부탁해요. 정 선생님은 1인 기획사가 더 편하신데 미라클 배경 믿고 오신 거라고요.”

    “알았다고 해도. 그만 나가, 한 팀장.”

    “꼭이요, 부사장님.”

    한유라가 악수하자는 듯 손을 내밀자 김민석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게 뭐야?”

    “복사요, 복사해 주셔야죠.”

    김민석은 그제야 이전에 몇 번 경험했던 한유라의 행동이 떠올랐다.

    애들 장난처럼 손으로 복사까지 하자는 건 진짜 절실하다는 뜻이었다.

    김민석은 마지못해 손을 들었다.

    그 손에 한유라가 자신의 오른손을 쓱 흩고 지나갔다.

    김민석은 재빨리 손을 뺐다.

    “한 팀장, 알았으니 그만 가 봐.”

    말을 마친 김민석이 핸드폰을 들었다.

    그 모습을 확인한 한유라는 그제야 조용히 고개를 숙인 후 부사장실에서 나왔다.

    그녀는 지금이 상황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지금 MR25에서 이번 시즌 계약을 보류하겠다고 통보해 온 정여진은 포근한 분위기 덕분에 국민 엄마라는 이미지로 굳어진 대배우였다.

    지금은 많은 작품에 출연을 안 하고 있지만, 그것 나름대로 장점이 있었다.

    그것은 이미지 소모가 적다는 점이었다.

    광고에 있어서 이것은 큰 장점, 미라클과 앞으로 몇 년은 충분히 동행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한유라가 정여진에 대한 생각으로 복잡할 때였다.

    그녀가 지나가는 복도에서 핸드폰 벨 소리가 울렸다.

    고개를 힐끔 돌려 보니 새로 신설된 7팀 쪽이다.

    “7팀이라고? 낙하산은 진짜 싫다니까!”

    한유라는 7팀이 들어온 방을 노려봤다.

    이도훈이라고 했던가?

    얼마 전 인사를 받긴 했는데 이쪽 바닥에서 일해 본 경력은 찾을 수 없었다.

    새로 온 대표와 이름이 같다는 것도 기분이 나빴다.

    뭐, 중저가 브랜드의 후드티에 운동화를 신고 다니는 그가 대표일 리는 없었지만.

    * * *

    7팀의 사무실.

    김민석의 전화를 받고 있던 도훈은 바깥쪽에서 비친 그림자에 고개를 갸웃했다.

    그때 김민석의 다급한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대표님, 집안싸움은 저희가 어떻게 못 합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런데 MR25에서 밀고 있는 친구 이름이 뭐라고 했나요?”

    ―이지유라고 합니다.

    “이지유요?”

    도훈이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떴다.

    도훈의 말투가 이상하다고 여겼는지

    ―좀 흔한 이름이긴 하죠. 아이돌 출신의 그, 있지 않습니까? 요즘 광고에서 잘나가는…….

    “아, 그 이지유요.”

    도훈이 놀란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 김민석의 목소리가 울렸다.

    ―왜 그러십니까?

    “오늘이 며칠이죠?”

    ―그러니까, 오늘이 5월 30일인데 왜 그러십니까?

    “…….”

    도훈은 바로 답하지 않았다.

    컴퓨터의 전원을 켜고 현재를 기준으로 뉴스를 살펴봤다.

    전생의 기억을 떠올리기 위함이었다.

    ―대표님, 지금 목소리가 잘 안 들립니다. 이게 조금 급한 일이라서 그럽니다. 통화가 어려우시면 제가 7팀으로…….

    “됐습니다, 부사장님. 지금부터 제 얘기 잘 들어 보십시오. 미라클이라면 바로 교체하지는 않지 않습니까? 보통 사장단 회의에서 결정하는 거로 아는데요.”

    ―그야 그렇지만, 이미 결정 났다는 듯 교체를 통보해 온 상태라서요.

    “일단 프레젠테이션 준비하세요.”

    ―네? 무슨 프레젠테이션이요?

    “사장단 회의에서 발언할 기회가 있지 않습니까?”

    ―네, 감사합니다, 대표님. 그럼 준비해 놓도록 하겠습니다.

    “네, 철저히 준비하도록 하세요. 가능한 한 내용은 모두 미리 외우시고요.”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대표님이 직접 가시는 거 아니었습니까?

    “무슨 말씀이에요? 부사장님이 하셔야죠. 제가 자료는 오늘 오후에 드리겠습니다. 그러니까 미라클 상황 잘 살펴보시고 준비하십시오.”

    도훈은 그 말을 마지막으로 전화를 끊었다.

    그러고는 재빨리 컴퓨터에서 기사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이번 일은 유레카 엔터의 입장에서는 분기점이 될 터였다.

    피해자는 유레카 엔터와 정여진.

    지금 당장만 봐서는 그러려니 하지만, 정여진이 유레카를 나간다면 상황은 조금 심각해진다.

    정여진이 누구던가?

    연예계의 대모로 불리지만, 누구에게도 손을 벌리고 싶어 하지 않는 자존심이 강한 배우.

    아역부터 시작해서 데뷔 60년 차의 커리어가 빛나는 배우.

    그런데 그녀의 전성기는 몇 년 후부터 시작된다.

    그녀는 칸을 시작으로 각종 영화제의 상을 휩쓰는 등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하게 된다.

    뭐, 지금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현재 정여진은 인자한 선배로 배우들 사이에서는 추앙받고 있었다.

    배우뿐 아니라 가수와 개그맨 등 연예계 전반에 걸쳐 그녀가 쌓아 놓은 인맥은 무시 못 한다.

    계열사에 까인 유레카를 누가 거들떠볼까?

    더욱이 정여진은 자신의 전생에서 마지막을 지켜 준 은인이었다.

    재미있는 것은 이도준이 미는 모델이 이지유라는 점이었다.

    자신의 심장을 뛰게 만들었던 이지유의 목소리가 도훈의 귓가에 아직도 생생했다.

    도훈은 둘이 손을 꼭 잡고 있었던 장면을 아직도 있을 수 없었다.

    물론 전생의 마지막 기억이지만…….

    도훈의 입장에서는 둘 다 버릴 수 없었다.

    잠시 눈을 감고 생각에 빠진 도훈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단 머리를 식히기 위해서였다.

    그때였다.

    도훈의 심장이 다시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도훈은 재킷의 왼쪽 주머니를 살폈다.

    역시가 수첩이 빛을 내고 있었다.

    순간 도훈의 머리가 터보 모터를 달아 놓은 듯 쌩쌩 돌아갔다.

    도훈의 머릿속에 있던 전생의 기억들.

    소속 연예인들의 숨소리와 심박 수까지 기억날 정도로 머리가 돌아갔다.

    예전의 기억들이 도훈의 머릿속에 세계지도처럼 일목요연하게 펼쳐졌다.

    이 순간만은 마치 천재가 된 기분이 들었다.

    기억을 펼쳐놓고 보던 도훈은 자신도 모르게 손가락을 튕겼다.

    딱!

    드디어 이 사건을 해결할 실마리를 찾은 것이다.

    도훈은 그 단서를 바탕으로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일단 급한 불부터 꺼야 했다.

    그리고 둘 다 자신이 잡으면 되었다.

    이로써 무려 3명이나 전생의 인연을 만났다.

    급한 불이라는 것은 발등에 떨어진 현실적인 불이었다.

    이 일의 배후에는 분명 사촌 형 이도준이 있을 터.

    그의 의도대로 넘어갈 수는 없었다.

    그것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으니까.

    현란하게 키보드를 두드리던 도훈의 손이 멈췄다.

    몇 가지 기사를 복사해서 자신의 폰으로 보낸 도훈은 어디론가 전화를 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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