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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연예계 공략법-13화 (13/250)
  • 회귀자의 연예계 공략법 (13)

    강영웅이 고개를 갸웃하자 도훈이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돈이 매너를 만든다!”

    “처음 들어 보는데…… 대체 누가 한 얘긴데?”

    “흠, 유명한 영국의 시인이 그랬잖아요.”

    “허, 그게 누군데?”

    “그건 비밀입니다.”

    도훈이 씩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리 생각해도 강영웅의 지금과 같은 모습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의 딸을 구해 준 것은 맞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회사와 계약을 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되었다.

    사적인 인연은 인연이고 비즈니스는 비즈니스니까!

    하지만 계약금도 필요 없다고 계속 덤벼드는 강영웅을 말릴 수 없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강영웅을 성장시키는 데 쏟을 시간이 없다는 것이었다.

    강영웅은 벌써 탑의 자리를 찍었으니 이제부터는 수성만 하면 되었다.

    그가 수성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까?

    도훈은 자문해야 했다.

    고민도 잠시 도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해답은 간단했다.

    강영웅이 이제 오를 곳이 없다면 국내 탑이 아니라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올려 놓으면 될 일이었다.

    * * *

    팔순 잔치로부터 십 일 후.

    한번 결심한 장경자의 행동은 일사천리였다.

    도훈은 팔짱을 끼고 올림픽 공원 옆에 위치한 사옥을 바라보고 있었다.

    장경자는 완벽하게 JK엔터테인먼트를 넘겼다.

    이전 생에는 없던 일이기에 감회가 새로웠다.

    남은 시간 십 년 중 벌써 한 달이 흘렀다.

    밑바닥부터 시작해서는 도저히 답이 안 나오는 상황.

    장경자의 도움으로 십 년의 시간을 앞당긴 것이나 다름없었다.

    지금 JK엔터테인먼트의 간판이 내려가고 ‘EUREKA’라는 간판이 올라가고 있었다.

    장경자에게는 새 발의 피에 불과하겠지만, 도훈에게는 없어서는 귀중한 발판이었다.

    그렇다고 미라클과 모든 연이 끊긴 것은 아니었다.

    장경자는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투자까지 진행했다.

    이제 유레카란 사명이 사옥에 완벽히 붙었다.

    잠시 후.

    유레카 엔터에서 한 블록 떨어진 커피숍.

    도훈의 앞에는 김민석이 앉아 있었다.

    살짝 눈치를 보는 듯한 그의 모습에 도훈이 손을 내밀었다.

    “축하드립니다, 부사장님.”

    “아, 축하라고 할 것까지는 모든 게 대표님이 만들어 주신 자리 아니겠습니까?”

    어색하게 웃으며 휑한 뒷머리를 긁적이는 김민석.

    도훈은 그런 김민석을 보면서 미소 지었다.

    미라클의 인물 중 가장 생명력이 강한 인물이었다.

    특출 나게 능력을 보이지는 않았지만, 있는 듯 없는 듯 장경자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미라클에서 지내다가 정년퇴직한 인물이었다.

    만약 도훈이 부사장 자리에 앉히지만 않았다면 몇 년 뒤에는 본사로 다시 돌아가는 인물.

    도훈의 행동이 그에게 이익인지 아닌지는 가늠이 안 되었다. 하지만, 도훈에게 그는 반드시 필요한 인물이었다.

    현재는 있는 듯 없는 듯, 무리수를 두지 않는 인물이 필요했다.

    무리수는 도훈이 둬야 했으니까!

    뭐 미래를 아는 상황이니 무리수라고 하기보다 과감한 선택이라고 하는 게 맞았다.

    도훈은 서류 가방에서 서류뭉치를 꺼냈다.

    제법 두꺼운 서류 뭉치가 자신의 앞에 놓이자 김민석은 눈을 크게 떴다.

    분명 이럴 줄 알았었다. 대기업의 로열패밀리라는 것들은 예상에서 벗어나는 일이 없었다.

    젊은 대표가 던진 것은 분명 살생부.

    월급까지 올려 주고 부사장 자리에 앉힌 이유를 지금에서는 알 것 같았다.

    그 이유는 하나였다.

    자신의 손에는 피를 묻히기 싫기 때문이 분명했다.

    숙청이 끝나면 분명히 자신의 목도 자를 인물이었다.

    사실, 7팀을 만들고 실장 자리에서 놀겠다고 했을 때 조금 지켜보고 살생부를 정리할 줄 알았었다.

    그런데 빨라도 너무 빨랐다.

    지금 사명까지 바꾸고 들뜬 분위기에서 직원들은 축배를 들고 있을 텐데…….

    칼을 빼어 드는 시기 참 교묘했다.

    그때 비정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안 보고 뭐 하십니까? 김 부사장님.”

    뚝뚝 끊어서 말하는 도훈의 목소리는 김민석의 귓가에 송곳처럼 파고들었다.

    “아, 봐야죠, 보겠습니다.”

    “조금 힘든 일이 될 겁니다.”

    “네, 힘들어도 해야겠지요, 암요.”

    김민석은 고개를 끄덕이며 서류를 넘겼다.

    서류의 첫 장에는 제법 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뒷장을 넘겨 보니 첫장에 적힌 인물들의 신상명세가 좌악 정리되어 있었다.

    조금 이상한 것은 모든 나이가 약 XX세라고 부정확하게 표시되어 있었다.

    한술 더 떠 주소도 불분명했다.

    김민석은 위쪽의 이름을 살펴봤다.

    [이지유]

    [정여진]

    …….

    그다음 장을 넘겨도 상황은 모두 비슷했다.

    김민석의 눈이 바삐 움직였다.

    그중에는 눈에 익은 이름이 몇 있긴 했다.

    하지만 그들이 연예인이라고는 생각조차 못 했다.

    김민석은 서류와 도훈의 눈을 번갈아 보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 회사의 대표인 도훈의 진의를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도훈의 눈은 백조가 헤엄치는 호수처럼 잔잔했다.

    어떤 갈등도 독기도 없었다.

    뭐지?

    거기에 더해 연령대도 중구난방이었다.

    구조조정 대상이라고 보기에는 어리거나 나이가 너무 많은 이들도 끼어 있었다. 그렇다면 가족까지 조사한 것일까?

    아무리 그래도 이름이 겹치는 직원이 하나도 없었다.

    참다못한 김민석이 물었다.

    “대표님, 이 사람들은 우리 회사 직원이 아닌데요?”

    “네, 맞습니다. 우리 회사 직원이 아닙니다. 아직까지는 말이죠.”

    “그런데 왜 구조조정 명단에 이름을…… 다른 회사 사람이라면 제 권한 밖입니다. 죄송합니다, 대표님. 저도 애들이 있는 터라 무리한 일은…….”

    “지금 무슨 말 하시는 거예요? 구조조정 명단이라니요?”

    “여기 있는 사람들 구조조정 명단에 있는 사람들 아니었습니까?”

    “무슨 구조조정이요?”

    “그러니까. 저에게 부사장을 맡기고 몰래 현업을 살피러 가신 게 구조조정을 위해서가 아닌가, 하고 조심스럽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하하, 그런 거 아니에요. 하던 일 편히 하세요. 제가 앞으로 데려올 사람들입니다.”

    “…….”

    “미리 부사장님께 말씀드리는 거예요. 이 사람들이 오면 특별히 관리해 주세요.”

    “네? 관리할 연예인도 별로 없는데 여기서 직원을 늘리시는 건 조금 조심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역시 무리수는 두지 않는 김민석이었다.

    길고 가늘게.

    그게 김민석의 신조니까.

    도훈이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

    “직원이 아니라 연예인이에요.”

    “헉, 대체 그게 무슨…….”

    “계획은 미리 세워야 회사를 빨리 키우죠.”

    도훈이 씩 웃자 김민석이 재빨리 서류를 정리해서 가져갔다.

    “네, 당연하죠.”

    “그리고 회사에서 마주쳤을 때 잘 좀 부탁드립니다. 괜히 대표님이라고 하시면 제 입장이 난처해집니다. 제가 할 일에도 막대한 피해가 있고요.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도훈을 말끝을 흐리며 시선을 돌렸다.

    순간 김민석은 자신의 목을 어루만졌다.

    사람 좋던 도훈의 눈빛이 갑자기 변했기 때문이다.

    고개를 살짝 숙인 김민석의 시선은 서류 쪽으로 향했다.

    서류를 바라보던 김민석이 고개를 갸웃했다.

    “여기 정여진이라는 이름 말입니다.”

    “문제라도 있나요?”

    “혹시 정여진 선생님 아닌가요?”

    “맞아요, 왜 그러시죠?”

    “우리 회사에 계십니다.”

    “와우.”

    도훈이 눈을 크게 떴다. 어쩐지 일이 잘 풀리는 것만 같았다.

    그때였다.

    갑자기 다시 심장이 뜨거워졌다.

    도훈은 슬쩍 고개를 돌려 자신의 심장을 바라봤다.

    순간 도훈의 눈이 한계까지 커졌다.

    자신의 심장이 불타는 것처럼 밝게 빛나고 있기 때문이었다.

    수첩이 빛을 내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도훈은 수첩을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놨다.

    순간 언제 그랬냐는 듯 수첩에서 나오던 빛이 사라졌다.

    도훈은 힐끔 김민석을 바라봤다.

    수첩에서 나오는 빛은 다른 이에게는 안 보이는 것 같았다.

    순간 도훈은 강다미를 구할 당시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 당시도 심장이 뜨거웠었다.

    아무래도 수첩이 자신에게 능력을 주는 것만 같았다.

    회귀도 감지덕진데 능력이라…….

    그때였다.

    도훈의 머릿속에 환청이 울렸다.

    ―잘 사용하게.

    도훈은 눈매를 좁혔다.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저승사자였다.

    그때 저승사자의 목소리가 다시 머릿속에 울렸다.

    ―내 후손을 구해 줘서 고맙네. 내가 능력을 좀 숨겨 놨으니 찾아서 쓰게.

    그 말을 마지막으로 저승사자의 목소리는 사라졌다.

    도훈은 수첩을 다시 재킷의 안주머니에 넣었다.

    * * *

    다음 날 아침, 승합차 안.

    운전대를 잡은 한민국이 힐끔 옆을 보며 물었다.

    “실장 형, 이 차는 대체 뭐예요?”

    “뭐긴? 너 업무 매뉴얼은 확인한 거냐?”

    “아니, 가져왔어요.”

    “오늘부터 너는 로드매니저라고 생각하고 움직여라, 급여도 유레카에서 나올 테니 그리 알고.”

    도훈이 씩 웃자 한민국이 눈을 크게 떴다.

    “네?”

    “싫으면 할머니한테 말해서 미라클에 자리 마련해 줄 테니 지금 말해.”

    도훈이 엄지를 들어 뒤쪽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아, 그게 아니라, 믿기지 않아서요.”

    “그게 무슨 말이지?”

    “회사가 잘 되면 방송국도 가고 그러는 거 아닌가요?”

    “뭐, 그렇겠지?”

    “그러면 걸그룹도 눈앞에서 볼 거 아니에요? 저는 프리티걸즈의 레이첼이 제일 좋더라고요. 아니다. 베이버버즈의 소라가 최고인데……. 아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건…….”

    도훈은 눈을 가늘게 떴다.

    갑자기 봇물 터지듯 터진 말문.

    뭐 일단 커다란 변화 없이 일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다행이었다.

    그때 도훈의 핸드폰이 울렸다.

    지잉, 지잉.

    상대를 확인한 도훈이 고개를 갸웃했다.

    <박경민>

    화면에는 뜻밖의 이름이 떠 있었다.

    박경민은 가끔 어울리는 대학 동창 중 하나였다.

    끼리끼리 모인다고 비슷한 배경에 비슷한 학벌을 가진 친구 중 하나.

    뭐, 집안에서 떨거지 취급받는 것도 도훈과 비슷했다.

    문제는 그들 중에서도 서열이 존재한다는 점이었다.

    도훈은 재빨리 통화 버튼을 눌렀다.

    “이도훈입니다.”

    ―나 경민이다.

    “무슨 일이지?”

    ―차갑게 대하지 말고, 고맙다는 말 하고 싶어서 전화한 거니까. 일단 내 얘기 좀 들어 봐.

    전화를 끊고 난 도훈은 고개를 갸웃했다.

    박경민은 은밀한 정보를 도훈에게 전했다.

    거기에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말하라고도 했다.

    녀석이 전한 정보가 맞을지 틀릴지는 반반.

    여러 가지 상황을 머릿속에 그려 본 도훈이 피식 웃었다.

    도훈의 표정을 본 한민국이 물었다.

    “표정이 왜 그러세요?”

    “내 친구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더라고.”

    “재미있는 이야기라고요? 무슨 이야긴데요?”

    “거기까지, 나머지는 영업 비밀.”

    “요즘 들어 비밀이 많아지신 것 같네요. 갑자기…….”

    한민국은 말끝을 흐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도훈의 성격이 많이 달라졌다.

    그전에는 주눅 들어 있었다면 지금은 생각지도 못할 일을 마구 벌이고 있었다.

    물어볼 건 많지만, 지금은 안전이 최고.

    피식 웃은 한민국은 조용히 운전대를 잡았다.

    * * *

    유레카의 부사장실.

    김민석은 조각상처럼 턱을 괴고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조직도에도 없던 부사장직에 앉은 지 딱 일주일 만에 일이 터져 버렸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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