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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연예계 공략법-12화 (12/250)

회귀자의 연예계 공략법 (12)

지금 음성은 분명 조금 전까지 ‘너만 아니면 돼’를 열창했던 목소리와 똑같았다.

그렇다면 립싱크가 아니라 지금 앞에 서 있는 가수의 목소리라는 말이었다.

설마…….

이도준이 눈매를 좁힐 때였다.

가수가 선글라스를 벗었다.

언제나 불길한 예감은 맞는 법.

그는 역시 강영웅이었다. 선글라스를 벗자 적나라하게 드러난 얼굴을 사람들이 몰라볼 리는 없었다.

“어, 진짜 강영웅이네!”

“뭐야? 지금 어디에도 안 나오잖아.”

“와, 강영웅을 여기서 보네.”

그들이 웅성대고 있을 때 강영웅은 탬버린을 어디론가 휙 던진다.

그곳에는 이도훈이 스피커에 아무렇지도 않게 기대어 있었다. 그는 재빨리 날아오는 탬버린을 낚아채더니 짧은 지팡이 하나를 강영웅에게 던져 줬다.

지팡이를 받은 강영웅이 마치 신사처럼 장경자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그러고는 활짝 웃으며 입을 열었다.

“제가 젊어지는 마법을 걸어 드리겠습니다.”

말을 마친 강영웅이 지팡이를 한 바퀴 돌렸다.

순간 지팡에서 팡 하고 폭죽이 터졌다.

푹죽이 가라앉자 강영웅의 손에 남은 것은 꽃 한송이.

강영웅은 천천히 걸어가 장경자에게 꽃을 건넸다.

장경자는 떨리는 손으로 꽃을 받았다.

강영웅의 팬클럽까지 가입한 장경자였다.

기업의 이름으로 강영웅을 부르지 못할 리는 없겠지만, 회장이 아닌 순수한 팬으로서 소통하기를 원했다.

덕분에 이렇게 가까이에서 본 것은 지금이 처음이었다.

장경자가 겨우 표정을 수습했을 때 강영웅이 말했다.

“제가 도훈이 선물입니다.”

“호호, 선물 감사히 잘 받을게요.”

장경자가 평소답지 않게 웃음을 터뜨렸다.

강영웅이 물었다.

“저, 한 곡만 하고 내려가기에는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아서 그러는데 몇 곡 더 하고 가도 될까요?”

“어머, 가문의 영광이에요, 호호.”

장경자가 웃음을 터뜨렸다.

평소에 얼굴에 돌던 만년한설은 사르르 흔적도 없이 녹아 버렸다.

그녀의 허락에 강영웅이 돌아서서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제가 요즘 백수거든요. 그래서 남는게 시간입니다. 잠깐 동안 저와 함께 신나게 놀아 보시죠.”

말을 마친 강영웅은 딱 하고 손가락을 튕기며 이도훈을 바라봤다.

도훈이 재빨리 다음 곡의 MR을 재생했다.

빠라빰, 빰!

처음부터 튀어나오는 강렬한 사운드에 스피커가 흔들렸다.

퉁퉁!

동시에 연회장의 모든 사람들이 어깨를 들썩였다.

뭐, 그건 조금 과장이고 무표정한 얼굴로 서로 눈빛을 교환하는 이들도 있었다.

이도훈은 그들을 보며 눈치채지 못할 만큼 고개를 흔들었다.

남보다는 나아야 할 친척이 저런 표정을 보인다?

그것도 장경자의 생일 잔치에서?

아마 장경자가 그들을 지금 보고 있다는 건 아마 꿈에도 생각 못 할 터다.

죽기 직전 삶에서 배신자에게 돈을 댄 것이 아마 두 숙부 중 하나였을 것이라 이도훈은 생각하고 있었다.

도훈은 표정을 지우고 다른 이들에 맞춰 어깨를 들썩였다.

강영웅은 그로부터 정확히 한 시간이 지나서야 공연을 끝마쳤다.

콘서트도 아니고 한 이벤트 섭외만으로 한 시간 이상 공연을 펼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

조금 이상하다고 눈치를 챈 참석자들은 소곤대기 시작했다.

“대체 얼마를 줬기에?”

“아니, 강영웅은 어딜 가도 2곡 이상 안 부른다고 하던데.”

“맞아, 그랬지. 혹시 회장님과 원래 아는 사이 아니야?”

“아, 그럴 수도 있겠네.”

모두가 웅성대고 있을 때 강영웅은 활짝 웃으며 자리로 돌아갔다.

그곳에는 이도훈이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나 꽤 하지?”

“하하, 역시나 최고네요. 정말 감사드려요.”

“그런데 공연 팁은 어디서 배운 거야?”

강영웅이 물어본 것은 아까 중간에 끼워 넣었던 마술이었다.

“다 형님 공연에서 배운 거죠.”

이도훈이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에 강영웅이 고개를 갸웃했다.

“난 저런 마술 한 적 없는데.”

“꿈에서 봤나? 어쨌든 그건 그렇고 이렇게 하셔야겠어요?”

“그날 약속해 놓고 왜 자꾸 그래?”

“네, 알았어요.”

말을 마친 도훈은 강영웅에게 봉투 하나를 건넸다.

그 봉투를 받아 든 강영웅인 살짝 윙크를 하며 포크를 들었다.

잠시 후, 사회자 김웅이 마이크를 들었다.

“이것으로 장경자 회장님의 팔순 파티를 마치겠습니다. 회장님의 만수무강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모두 건배하겠습니다.”

마지막 건배를 끝으로 모든 행사가 끝났다.

연회장을 빠져나가는 참석자들은 모두가 고개를 갸웃했다.

강영웅이 아직도 자리를 빠져나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강영웅 옆에 있는 도훈이 누군지를 몰라 눈을 가늘게 뜨기도 했다.

그만큼 이도훈은 가문에서 철저히 감춰진 상태.

그때 이세훈의 아들인 이도준이 둘이 앉은 테이블로 다가왔다.

이도준은 기분 나쁜 웃음소리와 함께 말을 이었다.

“할머니께서 최대한 조용하게 하라고 했는데, 이게 조용한 거면 뭐…….”

어김없이 나오는 꼬투리 잡기.

이도훈은 대답할 필요가 없다는 듯 강영웅을 바라봤다.

“형님, 저 때문에 불편하실 텐데…….”

“아니야, 난 괜찮아.”

강영웅이 손사래를 치자 이도준이 곱지 않은 시선으로 둘을 번갈아 봤다.

그때였다.

뒤쪽에서 헛기침 소리가 들렸다.

“흠.”

그 소리에 셋은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장경자가 서 있었다.

강영웅을 한번 쳐다본 장경자는 시선을 바로 이도훈에게 돌린 후 말했다.

“도훈아, 수고했다. 내가 원하는 대로 준비했구나. 그런데 화려함이 오늘은 조금 지나쳤다. 뭐, 언제든 환영하지만 말이야.”

“감사합니다, 회장님.”

이도훈은 자리에서 일어나 장경자에게 목례를 했다.

그때 이도준이 장경자에게 슬쩍 붙었다.

“이게 어떻게 조용한 게 되나요?”

“조용한 건 내가 미리 정했다. 저 정도의 좌석이면 충분히 조용하다고 생각하지 않느냐? 도준아. 그리고 중요한 건 화려함이었다. 난 화려함에 합격점을 준 거다.”

“화려하기는 저희가 준비한 보석이…….”

“그게 누구 돈이더냐?”

“그야…….”

“저 그림도 똑같다. 그게 호주머니에서 나온 돈이냐?”

“그야 우리 회사…….”

“그래 그 회사가 누구 것이더냐?”

“그렇게 치면 도훈이의 선물도 똑같은 거 아닙니까?”

“네가 노력해서 준비할 수 있었던 선물인지를 생각해 보거라.”

“아까 보니 도훈이가 강영웅 씨에게 엄청나게 두툼한 돈 봉투를 건네던데 그건 할머님 돈 아닙니까?”

이도준이 따지듯 묻자,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강영웅이 어색하게 웃으며 재킷 안주머니에서 봉투를 꺼냈다.

“이거 말씀하시는 것 같은데 이건 돈이 아닙니다. 저는 이번 행사로 도훈이에게 돈 한 푼 받은 적 없습니다.”

강영웅의 말에 이번에는 장경자까지 눈을 크게 떴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말씀드린 대로 이번 행사로는 돈 한 푼 받지 않았습니다. 도훈이가 그러더군요. 화려함은 돈으로 사는 게 아니라 마음으로 전하는 거라고요.”

“돈이 아니라면 왜 여기에 오셨나요?”

“제가 도훈이에게 갚을 빚이 조금 많아서요.”

“빚이라…… 그럼 이건 대체 뭔지 물어봐도 될까요?”

장경자가 팬이 아닌 사업가의 눈빛으로 봉투를 바라봤다.

그 눈빛에 강영웅이 말했다.

“도훈이 말대로라면 이건 일급비밀이라서 회장님께만 말씀드리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강영웅은 최대한 정중하게 물었다.

장경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좋아요. 그런데 팬과 스타의 자리인가요? 아니면 업무?”

“업무에 가깝겠군요.”

강영웅의 말에 장경자가 뒤쪽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언제나처럼 비서 엄지연이 검은 복장으로 서 있었다.

엄지연은 다급히 자리를 준비하려는 듯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러고는 불과 1분도 안 되어 다시 나타나 장경자와 강영웅을 안내했다.

그들이 향한 곳은 연회장 옆쪽에 마련된 사무실이었다.

총총히 사라지는 모습을 도훈은 황당하다는 듯 바라보며 그날의 기억을 떠올렸다.

강영웅은 도훈의 섭외 제안을 단칼에 거절했다.

단순한 섭외 가지고는 안 될 일이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

“참, 저 형도 못 말린다니까.”

도훈이 혼잣말을 뱉자 옆에 있던 이도준은 못마땅한 듯 고개를 저었다.

* * *

잠시 후.

강영웅은 장경자와 독대한 자리에서 입을 열었다.

“사람들이 딴따라라고 해도 저는 의리 빼면 시체입니다.”

“모를 리가 없죠.”

“사실 여기서 회장님을 뵙고 깜짝 놀랐습니다. 콘서트 때면 맨 앞줄에서 왼쪽에 앉아 계시지 않았습니까?”

“허, 어떻게 그걸…….”

“제가 죽어도 팬은 안 까먹는 편이라서요. 뭐, 서론이 길었는데 이것부터 보시죠.”

강영웅은 자신의 핸드폰을 내밀었다.

핸드폰에는 하나의 화면이 재생되고 있었다.

순간 장경자의 눈이 커졌다.

그것도 잠시 장경자는 표정을 수습하고 물었다.

“이걸 내게 보여 주는 이유는 뭡니까?”

“거기 나온 아이가 제 딸입니다.”

“흠…….”

장경자가 미간을 좁히자 강영웅이 말을 이었다.

“그다음 날 잘생긴 사내놈이 내게 와서 그러더군요. 부탁할 게 있다고요. 그런데 저는 싫다고 했습니다.”

“그 부탁이라는 게…….”

“네, 지금 이곳 행사에 대한 섭외였습니다. 그런데 제가 싫다고 했습니다.”

“싫다고 했는데 여기에는 어떻게 온 건가요?”

“그냥 섭외는 싫다고 했습니다. 같이 일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자신은 해 줄 게 없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도훈이가 해 줄 게 없으면 제가 해 주겠다고 했습니다.”

말을 마친 강영웅은 재킷에서 도훈이 준 봉투를 꺼냈다.

누가 봐도 두둑해 보이는 봉투.

장경자는 그것이 이도준이 말한 봉투임을 알아챘다.

강영웅은 그 봉투를 열었다.

봉투에서 나온 것은 뜻밖에 서류였다.

강영웅은 서류를 곱게 펼쳐서 장경자 앞에 내밀었다.

서류는 계약서였다.

그런데 조금은 특이한 양식의 계약서.

거기에 JK가 아니라, 유레카 엔터테인먼트라 적혀 있었다.

강영웅이 떠나자 장경자는 입가에 웃음을 머금은 채 혼잣말을 뱉었다.

“요물이네, 요물.”

그녀의 말에 엄지연이 물었다.

“강영웅 씨가 요물이라고요?”

“아니, 그놈 말이야, 그놈.”

“그놈이라면…….”

“내 손자 이도훈. 사람을 저렇게 사로잡다니 요물이야, 요물.”

장경자는 강영웅이 사라진 자리를 흐뭇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그 웃음에 무표정한 엄지연 비서도 같이 웃었다.

장경자가 보이는 흔치 않은 웃음이었다.

* * *

강영웅이 나왔을 때는 모든 손님들이 자리를 떠난 후였다.

활짝 미소 짓고 나온 강영웅의 모습에 도훈이 물었다.

“무슨 얘기를 하신 겁니까?”

“사업 이야기지.”

“무슨 사업이요?”

“네 회사랑 계약하기로 했다.”

강영웅이 어깨를 으쓱하자 도훈이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

“그거 말씀하시러 간 거예요?”

“오해도 풀겸, 아까 돈봉투니 헛소리 하는 인간이 있으니 억울하잖아.”

“아니, 그렇다고 우리 회장님한테 그러면 어떻게 해요?”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할 말은 해야지.”

“역시 형님도 그 속담을 아시나 보네요?”

“무슨 속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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