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의 연예계 공략법 (11)
로열패밀리의 포스를 풍기는 일행의 이동에 막내 직원은 왠지 모를 긴장감을 느끼며 마른침을 삼켰다.
서른 초반의 남자는 주변을 둘러보더니 툴툴대기 시작했다.
“허, 이거 꼬라지가 왜 이래요?”
“그러게 말이야, 도준아 이거 도훈이가 준비한 거 맞지?”
앞서가던 여인이 뒤를 돌아봤다.
“그러게, 능력 없는 놈이 준비하면 이렇게 된다니까요, 어머니.”
서른 초반 남자의 이름은 이도준이였다.
도훈의 존재는 그에게 눈엣가시였다.
자신들의 지분을 미래에 빼앗아 갈지도 모르니 곱게 보일 리가 없었다.
아니, 임원 후보의 자리를 벌써 빼앗겼다.
거기에 도훈은 임원 후보가 아니라 JK엔터의 대표로 임명되었다.
JK엔터가 미라클 그룹의 계륵 같은 존재라지만, 임원은 임원이었다.
떨거지 같은 사촌 동생이 임원의 자리를 얻어 간 것이 영 못마땅한 이도준이었다.
이도준은 티끌만 한 실수라도 잡기 위해 눈이 벌게져 있는 상태였다.
자리로 이동하던 이도준이 바닥을 보며 뭔가를 줍더니 두리번거렸다.
그러더니 열심히 행사를 준비하고 있던 막내 직원을 불렀다.
“여기 책임자, 여기!”
“잠시만요.”
막내 직원이 달려가서 이도준의 앞에 섰다.
이도준은 기다란 머리카락 하나를 그녀의 눈앞에 갖다 댔다.
그러고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여긴 행사를 이렇게 준비하나? 어떻게 머리카락이 떨어져 있을 수 있지?”
“어, 그러니까…….”
막내 직원은 말을 더듬었다.
그 모습에 이도준이 눈을 가늘게 떴다.
“책임자 불러와, 회장님 생신에 이런 업체를 부른 것도 그렇고 이렇게 관리하는 것도 그렇고 도저히 못 봐 주겠네.”
“죄, 죄송해요. 책임자가 그러니까…….”
연신 고개를 숙이며 사과하는 막내 직원의 어깨를 누군가가 가볍게 톡톡 쳤다.
눈물이 글썽하던 막내 직원은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제법 훤칠한 키에 맑은 눈동자를 가진 사내가 웃고 있었다.
사내는 도훈이었다.
현장을 살피다 누군가 목청을 높이자 급하게 이곳으로 달려왔다.
도훈은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웃으며 직원을 바라봤다.
“괜찮아요, 여긴 제게 맡기고 보던 일 보세요.”
“네? 아무리 그래도…….”
“제가 책임자예요.”
그 말에 막내 직원은 뒷걸음치며 자리를 피했다.
하지만 몰래 숨어서 그들의 대화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직원이 떠나자 이도준이 눈을 가늘게 뜨고 머리카락을 들어 보였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할머니가 청결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알잖아! 그런데 이런 긴 머리카락이 떨어져 있다고? 맡았으면 철저히 준비해야지.”
“그거 눈에 익네요.”
“지금 뭐라는 거냐?”
“그 머리카락 눈에 익다고요, 적갈색 5호에…….”
말끝을 흐린 이도훈은 그가 들고 있는 머리카락에 코끝을 갖다 댔다.
그러고는 씩 웃었다.
“향기를 보니 청담동 장 원장님네 제품이네요. 어젯밤 아니면 아침에 들렀다 오셨나 봐요?”
이도훈은 씩 웃으며 턱짓으로 큰숙모를 가리켰다.
순간 이도준은 재빨리 머리카락을 숨겼다.
이도준과 어머니는 이도훈이 말한 미용실에 오늘 오전에 다녀왔다.
어떤 미용실에 다녀왔는지를 이도훈이 알 리가 없었다.
그런데 안다는 것은…….
그의 말이 사실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었다.
그때 도훈이 말을 이었다.
“할머니가 청결에 신경 쓰시는 것을 아신다면 머리카락 관리 못 하는 사람을 제일 싫어하는 것도 알겠네요.”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냐?”
“주머니에 머리카락을 넣으신 이유는…… 혹시 증거인멸?”
“…….”
이도준은 아무 말도 못 하고 연회장을 빠져나갔다.
그 모습에 이도훈은 어깨를 으쓱하고는 돌아서서 행사를 준비하는 직원들에게 걸어갔다.
“신경 쓰지 말고 일하세요, 별일 아니니까요?”
돌아서려는 도훈에게 막내 직원이 어물쩍거리며 물었다.
“혹시 지금 그거 사실인가요?”
“어떤 걸 말씀하시나요?”
“미용실 이야기요. 아, 죄송합니다. 저도 모르게 주제넘게.”
“아니에요, 괜찮아요. 그런데 그건 비밀입니다.”
도훈은 작게 웃은 뒤 최종 점검을 위해 몸을 돌렸다.
물론 이도준에게 했던 말 중 반은 사실이 아니었다.
손자병법에 보면 적을 알고 나를 알아야 한다는 말이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적을 아는 것이 먼저라는 것이다.
어떤 미용실을 다닌다는 것을 미리 파악했을 뿐 그 머리카락이 큰숙모의 것이라는 것은 이도훈도 몰랐다.
원래 정치라는 게 이런 것이 아니던가.
코에 걸면 코걸이고 귀에 걸면 귀걸이였다.
젊은 날 거기에 당했던 것이 자신이고 말이다.
* * *
두 시간 후.
드디어 무대의 막이 올랐다. 할머니의 잔치를 무대라고 하긴 뭐하지만, 이도훈에게는 숙제이자 데뷔 무대였다.
그날 강영웅과의 대화를 떠올린 이도훈은 피식 웃었다.
그때였다.
사회자가 앞으로 나왔다.
사회자의 이름은 김웅.
무명 개그맨이지만, 장경자의 눈에 들어 오 년째 사회를 보는 친구였다.
사회자에 대한 결정권은 이도훈에게는 없다는 말.
김웅은 준비된 진행표를 보곤 축하 인사를 시작으로 포문을 열었다.
그러고는 주변을 둘러보더니 말을 이었다.
“장경자 어르신의 생신을 축하드리며 첫 번째 순서를 진행할까 합니다. 행사의 포문을 열 순서는 머니 머니 해도 머니가 필요한 선물 증정 순서겠죠. 자자!”
그는 손뼉을 치며 사람들의 시선을 모았다.
그러고는 말을 이었다.
“큰아드님 어디 계시죠?”
김웅은 다 알면서도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이세훈을 찾았다.
딱 봐도 몇십 년은 되어 보이는 진행 스타일.
장경자는 이런 레트로 스타일을 좋아했다.
할머니의 취향을 떠올린 이도훈은 자신도 모르게 웃었다.
이세훈이 선물을 드리고 나오자 주변이 웅성대기 시작했다.
이세훈이 장경자에게 준 선물은 목걸이와 반지, 팔찌 세트.
그냥 세트가 아니라 이탈리아의 장인 카말라야 끌리에르의 수공품이었다.
그런데 이세훈의 설명이 압권이었다.
이 선물을 준비하기 위해서 2년 전부터 예약했다는 것이었다.
저 세트의 가치가 얼마나 될까?
적어도 3억 이상은 나갈 것이었다.
현재 도훈으로서는 도저히 구할 수 없는 선물.
둘째는 현대 미술가인 오마르의 작품을 선물로 드렸다.
가격으로는 큰아들의 선물을 넘어섰다.
그때 김웅이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막내 손자님도 준비한 선물이 있으면 가지고 나오시죠.”
김웅의 미소에 이도훈이 조용히 걸음을 옮겼다.
사실 원래 도훈의 선물 증정 순서는 없었다.
하지만 이 집안의 행사에서 오랜 시간 구른 김웅은 숙부들의 편이었다.
도훈을 바라보는 집안 식구들의 시선에는 비웃음이 담겨 있었다.
천천히 걸어가던 이도훈은 슬쩍 방향을 바꾸었다.
할머니 쪽이 아닌 음향 장비가 있는 쪽에 선 도훈이 음향 버튼을 눌렀다.
그가 만진 것은 MR을 트는 장비였다.
너무도 능숙한 동작에 모두가 고개를 갸웃할 때 전주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왔다.
땅, 따, 당! ♪♬!
동시에 멀리서 들리는 탬버린 소리.
모두의 시선이 탬버린 소리가 나는 쪽을 향했다.
챙챙, 챙! 따다단!
탬버린 소리는 실내의 모든 사람들을 갸웃하게 만들었다.
선물을 전달하기 위해 장경자에게 걸어가던 이도훈이 방향을 튼 모습은 F1 레이싱카의 드리프트보다 더 현란했다.
거기에 복잡한 음향 장비 중 정확히 재생 버튼을 찾아 눌렀다.
그때까지만 해도 장내의 손님들은 멍하니 이도훈의 행동을 지켜봤다.
그런데 입구에서 누군가가 탬버린을 치기 시작한 것이 아니던가?
음악에 맞춰 흥겹게 탬버린을 치는 사람은 아직 얼굴을 보여 주지는 않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이도준이 미간을 좁혔다.
지금 들려오는 MR은 다름 아닌 현재 최고의 트로트 스타 강영웅의 ‘너만 아니면 돼!’의 인트로였다.
이도준은 피식 헛웃음을 토해 냈다.
이도준은 할머니의 취향에 대해 꿰뚫고 있었다.
사실 그도 강영웅을 섭외하려고 부단한 노력을 했다.
하지만, 모든 연락을 끊고 잠적한 트로트 스타를 찾기란 쉽지 않았다.
지금 저곳에서 탬버린을 치며 흥겹게 어깨를 흔들고 있는 자는 짭영웅이라 불리는 장영웅이 분명했다.
가수에 짝퉁이 어디 있으랴마는 그의 이미지를 비슷하게 베껴서 먹고살다 보니 짭이라는 말을 붙인 것이다.
할머니 장경자가 제일 싫어하는 것 중 하나는 짝퉁, 고상하게 말하면 이미테이션.
장경자는 누군가가 쌓아 올린 명성에 기대어 사는 것을 가장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짭영웅을 데려왔다고?
헛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이도준은 주변을 살폈다.
모두가 앞에 있는 이도훈을 향해 비웃음을 보내고 있었다.
자신의 아버지 이세훈도 작은아버지 이세형도.
그리고 자신의 사촌들 모두가 말이다.
그런데 뭐지?
할머니 장경자만은 입가에 미소를 짓고 있었다.
할머니가 이미테이션 가수를 좋아한다고?
그럴 리가 없었다.
이도준의 머릿속에 의문이 점점 쌓여 갈 때 탬버린을 치던 가수가 몸을 돌렸다.
인트로가 끝나자 거기에 맞추어 마이크를 들어 올렸다.
그는 깔끔한 무대용 의상과 함께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다.
한 손에는 마이크를 들고 한 손에는 탬버린을 든 가수는 천천히 앞으로 걸어왔다.
하지만 흔들리지 않는 음정.
누군가가 말했다.
“와, 립싱크 진짜 잘하네.”
“립싱크뿐만이 아니야, 얼굴도 강영웅이랑 똑같아.”
그 옆에 친구로 보이는 여자가 말을 받았다.
그들의 수다는 계속 이어졌다.
“하하, 저 사람이 그 유명한 장영웅 아니야?”
“그건 아닌 것 같아, 내가 전에 봤는데 조금 달라. 저 가수는 진짜 강영웅하고 정말 똑같이 생겼어.”
“어쨌든 정말 잘하네. 얼마나 연습해야 저 정도로 할 수 있는 거야?”
“혹시 진짜 강영웅 아니야?”
“그건 아닐걸, 연예가 풍문에서도 강영웅 잠수 탔다고 나왔잖아, 그리고…….”
“쉿, 노래 좀 듣자.”
그녀는 입술에 검지를 갖다 댔다.
뭐, 다른 쪽의 분위기도 비슷했다. 가짜지만 행동이나 모습이 진짜 강영웅과 너무 비슷하다 보니 모두 그의 공연을 즐기는 분위기였다.
그때 첫 번째 곡이 클라이맥스로 치달았다.
―너만 아니면 돼! 너만 아니면 돼!
―사랑도 우정도…….
―너만 아니면 돼!
귀에 착착 달라붙는 후크송 부분이 이어지자 탬버린을 흔드는 속도는 더욱 빨라졌다.
―다시 생각하니, 너 아니면 안 돼!
정말 중독성이 강한 가사와 리듬이었다.
그 후에도 가수는 쉴 새 없이 탬버린을 치며 노래를 이어 갔다.
마지막 소절이 끝나고 여운을 줄 틈도 없이 사운드가 끊겼다.
사람들이 손뼉을 치기 시작했다.
짝짝.
“와, 싱크로율 백 프로다.”
“진짜 잘하네.”
모두가 박수를 보내는 순간 가수가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그러고는 장경자가 있는 쪽을 보며 말했다.
그의 목소리가 다시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온다.
―너 아니면 안 돼!
―정말로!
원곡에는 없는 가사까지 추가되자 사람들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들의 분위기와는 달리 이도준은 인정사정없이 미간을 찌푸렸다.
왠지 불길한 예감이 스멀스멀 등줄기를 타고 올라왔기 때문이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