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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연예계 공략법-10화 (10/250)
  • 회귀자의 연예계 공략법 (10)

    다시 화면이 바뀌고 아나운서의 멘트가 이어졌다.

    “자신의 몸을 바쳐서 타인을 구하는 모습이 행인의 핸드폰 카메라에 잡혔는데요. 자신만을 생각하는 요즘, 보기 드문 의인이 아닐까 합니다. 따뜻한 봄날만큼이나 따스한 장면이었는데요. 이 장면을 마지막으로 MBS 뉴스데스크를 마칩니다.”

    아나운서의 멘트가 끝나자 화면은 아까의 장면을 다시 보여 줬다.

    그리고 이어지는 광고.

    강영웅은 어머니 임영희를 바라보며 입을 벌렸다.

    임영희도 마찬가지였다.

    둘의 시선은 텔레비전 화면에서 잠든 강다미에게로 옮겨졌다.

    한참을 바라보던 강영웅은 여러 감정이 얽힌 듯 한숨을 내쉬었다.

    “휴.”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쉰 그는 천장을 올려다봤다.

    천장에는 그동안의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강다미는 그의 딸이 맞았다.

    철없던 시절 생긴 딸.

    엄마는 집을 나가서 연락이 끊겼고.

    혼인신고도 안 된 상태에서 일단은 자신의 호적에 딸을 올려놓은 상태였다.

    사실 강영웅은 자신의 딸의 존재를 밝히고 편하게 활동하고 싶었었다.

    하지만 전 소속사에서는 이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트로트 가수로서는 젊은 세대에 속하는 강영웅의 포지션이 묘하게 아이돌과 겹친다는 판단에서였다.

    중년과 장년을 아우르지만, 10대와 20대 팬들도 제법 많이 차지하는 터라 딸의 존재를 밝힌다면 인기는 급락할 수밖에 없다는 예상을 내놓았다.

    대신에 소속사는 딸을 철저히 보살펴 주기로 했었다.

    하지만 소속사는 그저 약속만 했을 뿐 행동으로는 옮기지 않았다.

    행동으로 옮긴 것이 아니라 돌봐 준다고 하고는 딸아이를 철저히 방치했다.

    그 때문에 소속사와 결별을 한 것이었다.

    강영웅은 어떤 기획사도 믿을 수 없는 상태였다.

    그래서 딸 강다미는 어머니에게 맡겨 놓고.

    앞으로의 진로를 탐색하기 위해 휴식 기간을 가지기로 했다.

    이 기간 동안 선배들에게 조언을 듣기 위해 만남을 갖던 도중 오늘과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었다.

    만약에 딸이 크게 다쳤다면?

    강영웅은 상상만으로도 어깨가 가늘게 떨렸다.

    감정을 수습한 강영웅이 물었다.

    “아까 뉴스에 나온 그 친구 아신다고 했죠?”

    “아, 그 친구 잘 알지 우리 산책 모임 회원이야.”

    “그럼 연락처도 아시겠네요.”

    “흠, 연락처가…… 잠깐, 생각해 보니 회원 가입을 받긴 했는데 연락처는 잘 모르겠네. 그런데 사진은 있어!”

    말을 마친 임영희는 충전 중인 자신의 핸드폰을 들었다.

    “여기 봐.”

    임영희는 사진을 화면에 띄우고는 손가락으로 한곳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한 사내가 해맑게 웃고 있었다.

    “아, 이분이군요, 어디 가야 만날 수 있나요?”

    “뭐, 우리 모임 장소에 하루도 빼먹지 않고 왔으니…… 뭐, 내일도…… 아니다, 다쳤으니 못 올 수도 있겠네. 어떻게 하나 연락처라도 받아 놓을걸, 휴.”

    임영희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 모습에 강영웅이 손을 내저었다.

    “내가 만나서 충분히 사례할게요.”

    “어떻게 만나게?”

    “……저도 잘 모르겠네요.”

    강영웅은 뒷머리를 긁적였다.

    * * *

    이틀 후.

    일산 호수 공원.

    강영웅은 산책 모임의 나들이 회원들이 모여 있는 공원 벤치에 앉아 있었다.

    이틀 전의 사건 때문인지 회원들은 잠시 모임을 중단한 상태.

    장소만 알아내고는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어제도 이곳을 온종일 지키고 있었다.

    자신의 모든 것을 지켜 준 은인을 찾는 일이었다.

    그는 핸드폰도 무음으로 바꿔 놓은 채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그의 핸드폰 화면에는 딸 다미의 사진 대신에 한 사내의 얼굴이 띄워져 있었다.

    그가 딸을 구해 준 은인이었다.

    뭐, 경찰과 흥신소에까지 이미 연락을 취해 둔 상태였지만, 이 은인만큼은 자신이 직접 찾고 싶었다.

    매의 눈으로 주변을 살피던 중 낯이 익은 사내의 모습이 들어왔다.

    강영웅은 몇 번이나 자신의 핸드폰 화면을 확인했다.

    분명 그 핸드폰 속 인물이었다.

    그는 깁스를 한 채 자신이 있는 곳으로 걸어왔다.

    강영웅이 재빨리 달려갔다.

    그는 눌러쓴 모자를 벗고 허리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상대의 인사에 도훈은 뜻밖이라는 듯 눈을 크게 떴다. 물론 계산된 표정은 아니었다. 강영웅을 여기에서 만날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것도 잠시, 재빨리 표정을 수습한 이도훈이 말했다.

    “죄송한데 무슨 일이십니까?”

    “혹시 저 모르시겠습니까?”

    강영웅은 검지로 자신의 얼굴을 가리키며 물었다.

    스타가 아닌 한 아이의 부모로서 보이는 애틋함.

    솔직히 그를 껴안고 반가움을 표시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는 일이었다.

    현재 그와 도훈은 접점이 전혀 없었다.

    도훈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혹시, 강영웅…….”

    “네, 맞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이 구해 주신 아이의 아빠이기도 합니다.”

    “네?”

    이도훈이 눈을 크게 떴다.

    뭐 진짜 감정도 반쯤은 숨겨져 있었다. 추측이 사실로 변한 순간이기 때문이다.

    “일단 자리를 좀 옮기시죠, 괜찮으시죠?”

    “네, 알겠습니다.”

    일산의 번화가에서 조금은 벗어난 주택가 거리.

    아무도 오지 않는 실내 포장마차.

    둥그런 양철 테이블에 이도훈은 강영웅과 마주 앉았다.

    자리에 앉은 강영웅이 주방 쪽을 힐끔 보더니 외쳤다.

    “이모, 여기 늘 먹던 거로 주세요. 술은 같은 거로 하고 음료수도 두 병이요.”

    주문을 마친 강영웅은 이도훈을 바라봤다.

    “많이 다치신 것 같아서 음료수로 주문했습니다. 저기 메뉴판 보시고 드시고 싶은 거 아무거나 주문하세요. 이래 봬도 맛은 이 동네에서 으뜸입니다.”

    “네, 알겠습니다.”

    이도훈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옆에 있던 한민국은 두 손으로 물잔만 만지작거릴 뿐이었다.

    둘 사이에는 한동안 그날 사건에 관한 이야기가 오갔다.

    “도훈 씨는 나이가 어떻게 되죠?”

    “저는 스물여덟입니다.”

    “흠, 나는 서른둘인데, 말 놔도 될까?”

    “그러시죠, 형님.”

    “역시 젊은 피가 좋아, 진도 빠른데.”

    “뭐, 네 살 차이 가지고 젊은이 소리 듣다니…… 고맙습니다.”

    도훈이 넉살 좋게 웃었다.

    이 웃음은 진심이었다.

    이도훈이 대표가 아닌 실장 직책으로 조직을 구상한 이유 중의 하나였다.

    지금 상태에서 JK엔터테인먼트의 대표에 회장의 손자라는 것까지 털어놓으면 어떻게 될까?

    백이면 백 진솔한 이야기는 저 뒤편으로 숨기게 된다.

    자신이 일선에서 뛰며 스타를 키우기에 가장 적합한 포지션.

    말을 트고 나니 강영웅의 표정이 변했다.

    뭔가 털어놓고 싶은 듯 입술을 달싹인다.

    “동생한테 개인적인 이야기 좀 해도 될까?”

    “네, 하시죠. 얼마든지 들어 드리겠습니다.”

    “그러니까…….”

    강영웅은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그것은 이전 삶에서도 들을 수 없던 이야기였다.

    말을 마친 강영웅이 말했다.

    “여기까지가 내 얘기야, 난 다 솔직히 털어놨어, 그러니 나도 하나 물어봐도 되겠지?”

    “네, 얼마든지요.”

    “왜 산책 모임에 들어온 거지?”

    “비밀이라고 하시면 화내실 건가요?”

    “내가 화를 왜 내! 혹시 기획사 관계자?”

    갑자기 훅 치고 들어온 질문.

    물론 이도훈은 당황하지 않았다.

    “반 정도는 맞습니다.”

    “역시 그랬군, 젊은 남자 둘이 아주머니들밖에 없는 산책 모임에 들어왔다고 하니 조금 의아했어.”

    “정식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

    미리 준비했다는 듯 명함 하나를 내밀었다.

    명함을 확인한 강영웅이 고개를 갸웃했다.

    “유레카라? 처음 들어 보는 기획사군.”

    “네, 맞습니다. 아직 존재하지도 않는 기획사입니다.”

    말과는 다르게 이도훈의 목소리에는 힘이 들어가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유레카는 전생에 자신이 세운 회사였다.

    비록 배신자에게 빼앗겼지만 말이다.

    “그럼 본론을 말해 봐, 동생. 이 자리에 나오겠다는 건 은혜를 갚기 위해서지 얼굴만 비치고 가려는 건 아니야. 연예인을 돈만 보고 뛰는 한철 메뚜기라고 하지만, 난 은혜를 잊는 파렴치한 놈은 아니야.”

    “사실 계약에 욕심이 있어 온 건 아닙니다.”

    “응? 계약 이야기가 아니라고?”

    “그럼, 대체 무슨 부탁을 하려고…….”

    “단순한 섭외입니다.”

    “섭외라…… 조금만 더 자세히 들을 수 있을까?”

    “자세히 말씀드리자면…….”

    이도훈은 자신의 계획에 대해서 자세히 털어놨다.

    오해가 없게 하기 위해 자신의 집안 이야기도 양념처럼 뿌리면서 말을 잇자 강영웅은 마른침을 삼켰다.

    그만큼 도훈의 과거가 순탄치 않았던 것이다.

    잠시 둘 사이에는 침묵이 오갔다.

    음료수를 들어 입술을 축인 이도훈이 다시 말을 이었다.

    “이게 제 계획입니다, 그러니 그날 시간이 되시면…….”

    “미안한데 안 되겠어.”

    갑자기 딱 잘라 말하는 강영웅.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한민국이 다급하게 끼어들었다.

    “지, 지금 무슨 말을 하시는 거예요? 우리 대, 아니 실장님 그날 죽을 뻔했단 말이에요. 은혜 갚으러 나왔다면서 어떻게 그럴 수가!”

    한민국의 목소리는 어느 가수의 삼단 고음처럼 실내를 꽉 채웠다.

    얼마나 놀랐는지 도훈이 그 자리에서 석상이 되었다.

    한민국이 이렇게 고음을 냅다 지를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때 강영웅이 웃으며 말했다.

    “그깟 섭외 한 번에 되겠어?”

    * * *

    며칠 후 5월 2일.

    송파구의 르와르 호텔 3층 연회장.

    3층 연회장에는 정경자의 팔순 잔치 준비가 한창이었다.

    팔순 잔치는 JK엔터가 아닌, 전문 이벤트 회사가 준비했다.

    JK에서 준비한 것은 빵빵한 음향 장비.

    물론 새벽에 김민석 부사장이 이곳으로 와서 진두지휘하며 세팅을 끝내 놓은 상태였다.

    대부분의 세팅은 끝났지만, 아침부터 팔순 잔치 준비 때문에 정신이 없었다.

    팔순 잔치를 위해 준비된 좌석은 고작해야 50여 개.

    직원 중 하나가 좌석을 배치한 후 말했다.

    “이거 너무 좌석 수가 적게 배치된 거 아니야? 명단 확인해 봐.”

    “정 선배, 맞아요. 딱 오십 개에 여유분 네 자리요.”

    “오늘 주인공이 미라클의 장경자 회장님이라면서?”

    “네, 맞아요.”

    “혹시 동명이인 아니야?”

    “아니에요, 제가 몇 번씩 확인해 봤어요.”

    “아, 이거 괜히 찜찜하네. 명단하고 물품 다시 확인해 봐. 힘은 힘대로 들이고 모가지 댕강할 수도 있다고.”

    “네, 알았어요, 선배.”

    말을 마친 후배 직원은 조용히 행사장을 둘러봤다.

    콘셉트가 ‘조용하면서도 화려하게’라는 것은 전달받았지만, 이건 조용한 게 아니라 소박한 것에 가까웠다.

    거기에 더해 화려함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그룹 책임자라는 사람에게 전달받은 대로 하긴 했지만, 이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더 긴장하고 있었다.

    어떤 꼬투리도 잡히지 않으려고 말이다.

    그때였다.

    누군가의 구두 굽 소리가 들려왔다.

    또각또각.

    소리가 멈추고 푸석대는 소리가 울렸다.

    행사장으로 들어온 것이다.

    막내 직원은 조심스럽게 고개를 돌렸다.

    한눈에 보기에도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장신구로 번쩍이는 여인이었다.

    그 옆에는 깔끔한 정장 차림의 중년 사내.

    그 뒤에 서른 초반의 사내 하나가 뒤를 따랐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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