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의 연예계 공략법 (9)
놀리는 듯한 임영희의 표정에 도훈이 어색하게 웃었다.
“하하, 제가 어릴 적 물린 트라우마가 있어서요. 조그만 강아지였는데 제법 상처가 깊더라고요.”
도훈은 어색하게 웃으며 자신의 팔을 가리켰다.
그 모습에 나들이의 회원들은 웃음을 참기에 바빴다.
“아니, 운동 좋아하는 총각들인 줄 알았더니 왜 이렇게 겁이 많아.”
“제가 조금 그렇죠, 어릴 적 기억이…….”
도훈은 말끝을 흐리며 조용히 하늘을 올려다봤다.
어릴 적 기억 중 반은 사실이었다.
물리긴 물렸지만 개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때 아주머니 하나가 핸드폰을 들고 고개를 갸웃했다.
“아, 이거 어떻게 해야 해?”
“에이, 그건 나도 몰라.”
“총각들은 알 것 같은데.”
모두의 시선이 도훈과 한민국에게 쏠렸다.
동시에 도훈이 다가가 물었다.
“왜 그러세요?”
“사진 찍으려고 하는데 이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네.”
“저희가 찍어 드릴게요.”
“그게 아니라 총각들하고 찍으려고, 그래야 집에 가서 신입 들어왔다고 자랑도 하지.”
“하하, 자랑하시게요?”
“그럼, 자랑해야지. 총각들 덕분에 우리 평균 연령도 낮아졌잖아.”
“그럼 저쪽에 세워 놓고 이렇게…….”
이도훈은 셀카를 찍는 법을 상세하게 설명했다.
정자에 핸드폰을 세워 놓고 타이머를 맞춰 놓은 이도훈이 재빨리 뛰어왔다.
“어서 와, 총각.”
“네.”
찰칵.
허겁지겁 자리를 잡은 이도훈의 모습이 겨우 화면에 담겼다.
그렇게 회원들과 사진을 남긴 이도훈은 오늘도 수확 없이 숙소로 돌아갔다.
터덜터덜 걸어가는 도훈은 핸드폰을 꺼내 날짜를 확인했다.
[2012 4월 25일]
4월에 사고가 났다고 했으니 딱 5일 남았다.
그게 오늘일 수도 있고 5일 뒤에 일어날 일일 수도 있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늦었으면 어떻게 하나하고 플랜B를 짜 놨었다.
그런데 아직 멀쩡한 강영웅 어머니의 모습을 보니 차선책은 필요치 않을 것 같았다.
그때 옆에서 걷던 한민국이 말했다.
“비가 올 것 같은데요, 실장님.”
“비?”
도훈은 손을 내밀어 봤다.
순간 손바닥에 툭 떨어지는 물방울.
고개를 들어 보니 가랑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 빗줄기가 도훈의 머릿속에 기억의 조각을 맞췄다.
도훈이 재빨리 몸을 돌려 호수 공원 쪽으로 걸어갔다.
처음에 걷던 도훈은 뛰기 시작했다.
마치 사이렌을 켠 앰뷸런스처럼 다급하게 달려가는 도훈을 향해 한민국이 외쳤다.
“어디 가세요?”
“…….”
도훈은 답할 시간이 없다는 듯 정신없이 뛰었다.
뛰다 보니 건널목의 빨간불을 마주하고는 호흡을 다듬었다.
“휴…….”
그때 누군가가 말을 걸어왔다.
“아저씨, 같이 쓸래요?”
자세히 보니 노란 우산을 쓴 여자아이가 해맑게 웃고 있었다.
주변을 보니 모두가 우산을 들고 있었다.
빗줄기와 땀방울이 섞인 채 정신없이 뛰고 있었다.
도훈이 사람 좋은 얼굴로 손을 흔들었다.
“괜찮다, 아저씨는 급하게 가야 할 때가 있어서.”
“그래도 비 맞으면 머리 벗어진다는데…….”
여자아이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때 마침 파란불이 들어왔다.
도훈은 건너편을 바라봤다.
뭐지?
강영웅의 어머니인 임영희가 회원들과 헤어졌는지 이쪽을 보고 손을 흔들고 있다.
그녀가 파란불이 켜진 건널목을 달려왔다.
도훈은 싸한 기분에 재빨리 그녀 쪽으로 달려갔다.
그때 클랙슨 소리가 천둥처럼 울렸다.
빵, 빵.
그녀 쪽으로 달려가려던 도훈이 멈칫했다.
재빨리 소리가 들려오는 쪽을 확인했다.
폭주 기관차처럼 달려오는 덤프트럭.
주변을 확인해 보니 뒤쪽에 여자아이가 노란 우산을 쓴 채 달려오고 있었다.
덤프트럭의 방향은 강영웅 어머니 임영희가 아닌 여자아이 쪽이었다.
무엇 때문인지 몰라도 뭔가 사건이 변한 듯싶었다.
도훈은 달려가던 것을 멈추고 뒤로 돌아 여자아이 쪽으로 뛰어갔다.
하지만 여자아이를 구하기에는 아슬아슬한 시간.
그렇다고 그냥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도훈은 여자아이를 구하려는 데 주저할 마음은 없었다.
도훈의 심장이 뜨거워졌다.
추상적인 의미가 아니었다.
실제로 심장이 뜨거워졌다. 하지만, 자신의 심장을 확인할 여유 따위는 없었다.
도훈의 심장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그것은 도훈의 윗주머니에 넣어놨던 수첩이 빛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수첩이 마치 횃불처럼 일렁이고 있었다.
파바박!
자신의 발소리만이 귓가에 울릴 때 도훈의 눈에 노란색 우산이 들어왔다.
도훈은 여자아이를 덥석 잡았다.
그때 귓가에 느껴지는 쌩한 바람.
덤프트럭이 다가온 것이다.
그때 도훈의 시야에 한민국이 보였다.
도훈은 재빨리 여자아이를 던졌다.
한민국이 여자아이를 받는 모습을 확인한 도훈은 재빨리 몸을 날렸다.
이어서 들리는 소리.
쾅!
덤프트럭이 지하 도로의 경계선을 박고 전복된 것이다.
그제야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꺅!”
“여기 좀요.”
“빨리 119!”
그 소란 속에 도훈은 한민국을 바라봤다.
한민국은 여자아이를 앉은 채 어깨를 떨고 있었다.
건널목 중간에는 노란색 우산이 마른오징어처럼 붙어 있었다.
도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부상을 막으려던 대상은 아니지만, 자신이 아니었다면 어린아이가 저 꼴이 되었을 것으로 생각하니 머리가 아득해졌다.
그때였다.
저 멀리서 임영희가 달려왔다.
도훈은 고개를 갸웃했다.
미친 듯 달려온 그녀가 향한 곳은 자신이 아닌 한민국의 쪽이었다.
“다미야!”
목이 메 외친 그녀는 한민국의 품에서 여자아이를 받아 들었다.
여자아이도 울먹이며 말했다.
“하, 할머니.”
둘의 모습에 이도훈이 고개를 갸웃했다.
자신은 생각지도 못한 전개였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 보니 임영희는 자신에게 손을 흔든 게 아니었던 것 같았다.
뛰어오는 손녀를 보고 손을 흔들었던 것이 분명했다.
강영웅은 외아들이라고 했는데 손녀라면?
그들을 바라보던 도훈은 자신도 모르게 미간을 좁혔다.
어깨 쪽에서 통증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윽.”
때마침 들리는 사이렌 소리.
가만 보니 119에 경찰차까지 한두 대가 아니었다.
잠시 뒤, 도훈은 가벼운 치료를 받고 병원을 나왔다.
도훈을 부축하고 있던 한민국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왜, 왜 그러셨어요? 대, 아니 실장님.”
“그럼, 너 같으면 그냥 보고만 있겠냐?”
“아니 그래도, 잘못하면 쥐포가 될 뻔했다고요.”
한민국은 자신도 모르게 성질을 냈다. 요즘 변한 도훈의 모습에 정이 가는 한민국이었다.
“살아 있으면 됐지, 뭘 그래?”
“그리고 그렇게 구해 줬으면 기다리셨다가 원하는 걸 말하고 오셔야지 왜 그냥 나왔어요?”
“나중에…… 지금 손녀를 보고 얼마나 놀라셨겠어?”
“아, 대체 정체가 뭡니까?”
한민국은 자신의 역할도 잊고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도훈은 아무렇지 않게 말을 이었다.
“민국아, 택시나 잡아라. 나는 좀 쉬어야겠다.”
“아, 알았어요.”
한민국은 손을 내밀어 택시를 잡았다.
그들을 태운 택시는 빗줄기를 뚫고 사라졌다.
* * *
두 시간 뒤 일산 천 병원 응급실.
모자를 깊숙이 눌러쓴 사내가 두리번거리며 입구를 찾았다.
그때 마주친 원무과 직원.
“어떻게 오셨습니까?”
“강다미 보호자인데, 여기 있다고 해서…….”
“아, 그러지 않아도 할머니께서 기다리시더라고요. 저희도 보호자님 오시기를 기다렸습니다. 할머니가 충격을 받으셨는지 쓰러지실 것 같아서 걱정했죠.”
“안내 부탁드려도 될까요?”
“지금 응급실에서 병실로 이동했습니다.”
“그렇게 위중합니까?”
“아, 그게…….”
원무과 직원은 제법 긴 설명을 해야 했다.
설명한 뒤 병실을 알려 주자 모자를 눌러쓴 사내는 재빨리 뒤돌아 달려갔다.
그가 사라지자 옆에 있던 직원이 사내와 말했던 원무과 직원의 옆구리를 콕콕 찔렀다.
“저 사람 어디서 본 것 같지 않아?”
“에이, 너는 모자 쓴 사람만 보면 수배 전단에서 본 것 같다느니 하면서 헛소리를 하더라.”
“그게 아니라 방송에서 본 것 같아서.”
“방송?”
직원들의 대화를 뒤로하고 사내는 천 병원 15층에 있는 병실로 향했다.
아까 통화를 하면서 병원에 자리가 나면 VIP실도 상관없으니 옮겨 달라고 한 것이 자신이었다.
그런데 급하게 오다 보니 벌써 까먹고 있었다.
조용히 병실의 문을 열고 들어간 사내는 모자를 벗었다.
그를 본 임영희가 눈을 크게 떴다.
“영웅아, 일은 어떻게 하고 이렇게 온 거야?”
“어머니, 그런데 어떻게 된 거예요? 아까는 다미가 다쳤다고 하더니, 왜 엄마가…….”
“다미는 괜찮다고 하네, 털끝만큼도 다치지 않았으니 걱정하지 말아.”
“그런데 왜 엄마가?”
“목소리 좀 줄여라, 다미 깨겠다.”
임영희는 엎드려 잠든 손녀를 가리켰다.
“네, 죄송해요. 그런데 왜 다미가 아니라 엄마가 누워 계신 거예요?”
“놀래서 잠깐 정신을 잃었나 보더라고, 의사 선생님이 다미는 괜찮으니 나를 진찰하더니 이렇게…… 이거 내가 주책맞지? 호호.”
“엄마, 지금 웃을 때예요?”
“아, 그러고 보니…….”
임영희는 말끝을 흐리며 아까의 기억을 떠올렸다.
“왜 그러세요?”
“아까 다미를 구해 준 총각은 괜찮은지 모르겠네?”
“총각이요?”
“내가 아는 총각인데, 엄청 착해. 그 총각이 우리 다미 구해 줬거든. 그러고 보니 차에…….”
임영희는 말끝을 흐리며 눈을 크게 떴다.
손녀에게 정신이 팔려 은인이 어떻게 되었는지 상황도 살피지 못했던 것 같았다.
그가 다미를 던지고 피한 것까지는 기억하지만, 그 이후는 머릿속이 깜깜했다.
만약에 다치기라도 했다면?
임영희는 자신도 모르게 도리질 쳤다.
그 모습에 강영웅은 어머니를 끌어안으며 진정시켰다.
“일단 쉬세요.”
“그래, 참, TV 좀 켜 봐, 우리 이거 뉴스에 나올 수도…… 어떻게 된 일인지 좀 알아야겠다.”
“설마 몇 시간 전 일어난 사건이 벌써 나왔겠어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강영웅은 TV 리모컨을 눌렀다.
그때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럼 일산 호수 공원 근처 차도에서 벌어진 덤프트럭 전복 사고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현장에 나가 있는 김대기 기자를 연결하겠습니다.
―네, 김대기 기자입니다. 이곳은 잘못하면 큰 인명 피해가 벌어질 뻔한 교차로 사거리입니다. 오후 6시경 덤프트럭의 브레이크 고장으로 지나가려던 행인을…….
―네, 감사합니다. 지금 막 저희 뉴스팀에서 영상을 입수했는데 함께 보시겠습니다.
아나운서의 멘트가 끝나고 화면에서는 누군가 핸드폰으로 촬영한 듯한 영상에 자막이 입혀져 흘러나오고 있었다.
노란 우산을 쓴 소녀와 행인.
빵빵대는 클랙슨 소리는 그때의 긴박감을 그대로 보여 주고 있었다.
행인들은 모두 뒤로 빠지고 노란 우산을 쓴 소녀만 어찌할 줄 모르고 있다.
그때 누군가가 번개처럼 달려와 아이를 끌어안았다.
아이는 구했지만, 영상으로만 봐서는 그 청년이 덤프트럭과 충돌했는지도 정확히 판단이 안 되는 상태.
병실에서 TV를 보던 강영웅과 임영희의 눈이 점점 커졌다.
병상에 누워 있는 것이 누군지 모를 정도로 둘은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