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의 연예계 공략법 (7)
굴비 꼬리에 먹을 게 있던가?
굴비 꼬리 대신 회사 하나를 받았으니 남는 장사는 맞았다.
도훈의 표정에 한민국이 어색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렇죠, 대표님.”
“우리 맛있는 데로 가지, 이쪽 지리 잘 알지?”
“네, 대표님.”
“어서 가자, 한 기사. 뭐 해 안 밟고.”
조용히 운전하던 한민국이 조심스럽게 밟은 오른발에 힘을 주었다.
차가 속도를 내자 도훈은 조용히 밖을 바라봤다.
풍경들이 휙휙 지나가자, 이도훈은 미소를 피웠다.
그의 눈에 지나가는 것은 풍경이 아니라 지난 인생이었다.
‘키울 놈만 키우며 조용히 살자. 아주 빡세게!’
* * *
삼 일 후.
올림픽 공원이 인접한 대로변 지상 20층 규모의 빌딩.
가장 위쪽에는 JK엔터테인먼트라는 명칭이 뚜렷이 보였다.
JK엔터테인먼트가 쓰는 것은 2개 층.
나머지는 미라클의 다른 계열사의 교육관으로 쓰고 있었다.
오늘 JK엔터테인먼트는 술렁이고 있었다.
대표 없이 사업부 형태로 운영되던 JK엔터테인먼트에 날벼락이 떨어진 것이다.
그것은 새로운 대표가 온다는 소식이었다.
가장 긴장하고 있는 것은 경영 지원실.
누군가가 한숨을 내쉬며 물꼬를 텄다.
“휴, 이번 대표는 낙하산을 타고 내려왔다면서?”
“나이가 얼마라더라?”
“서른도 안 됐다는 거 같던데.”
“솔직히 걱정되네. 대표님 없어도 본부장님 혼자 잘하셨잖아. 그런데 왜 낙하산이 내려온대? 혹시 조용한 회사에 쓰나미라도 덮치는 게 아닌지 몰라.”
“뭐, 우리야 무슨 상관 있겠어?”
“그렇지 중간에서 컨트롤해야 하는 본부장님이 문제지.”
“그나저나 본부장님이 안 보이네.”
“아까 제이기획하고 광고 협의하러 가셨잖아, 이제 오실 때 됐는데…….”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저기 오셨다.”
대화를 나누던 직원은 멀리서 휘청이며 걸어오는 중년 사내를 가리켰다.
그 사내의 이름은 김민석.
미라클 그룹에서의 직급은 부장.
하지만, 이곳 JK엔터테인먼트로 발령을 받아 본부장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인물이었다.
정수리가 휑한 머리카락과 피곤함에 찌든 눈만 봐도 그가 얼마나 고생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
게다가 지금은 대표가 새로 온다는 소식에 긴장을 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때 김민석 본부장의 벨이 울렸다.
디디딩.
재킷에서 핸드폰을 꺼내 상대를 확인한 김민석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화면에 뜬 이름에는 새로 부임할 대표의 이름이 떴다.
이도훈.
분명 본사에서 전달받은 대표의 이름이었다.
김 부장의 소원은 딱 한 가지였다.
자식 둘이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이 회사에 붙어 있는 것.
그때까지만 버틸 수 있다면 다른 소원은 없었다.
그것이 사별한 아내와의 약속이니 말이다.
하지만 새로 부임할 대표가 문제였다.
새로 부임해 온 대표의 존재는 잔잔한 연못에 날아온 돌멩이였다.
김민석은 연못이 아닌 개구리.
날아올 돌을 두 눈 뜨고 잘 관찰해야 했다.
마른침을 삼킨 김민석이 말했다.
“JK엔터테인먼트의 김민석입니다.”
* * *
통화를 마친 김민석이 향한 곳은 회사 건물과는 한 블록 정도 떨어져 있는 커피숍이었다.
슬쩍 고개를 들어 간판을 확인한 김민석은 심호흡부터 했다.
“휴, 긴장하지 말자, 긴장하지 말자.”
자기최면을 건 김민석은 안쪽을 슬쩍 살폈다.
이렇게 긴장하는 이유는 새로 부임한 대표의 호출이 이상했기 때문이다.
새로 부임한 이도훈 대표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고 이곳으로 오라고 했다.
이유가 뭘까를 생각해 보면 해답은 간단했다.
남들 모르게 자신에게 할 말이 있을 것이 분명했다.
김민석은 주먹을 꽉 쥐고 커피숍으로 들어갔다.
그가 들어가자 중간쯤 앉아 있던 젊은 친구 하나가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흔들었다.
그것을 본 김민석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자신의 얼굴을 안다는 것은 이력서를 확인했다는 것이었다.
멀쩡하게 잘 다니는 사람의 이력서를 확인한 이유는 뭘까?
결론은 하나였다.
자리에 앉은 김민석이 먼저 말했다.
“안녕하십니까? 대표님. 제게 조금만 시간을 주십시오.”
김민석의 목소리는 간절했다.
“그게 무슨 말씀인가요? 김 본부장님?”
“저를 여기까지 부르신 이유 알고 있습니다. 시간을 조금만 더 주시면…….”
“아신다니 다른 얘기는 하지 않겠습니다.”
말을 마친 도훈은 옆자리에 있는 서류 가방을 들었다.
김민석은 올 것이 왔다 생각하고 마른침을 삼켰다.
저기서 꺼낼 서류는 뻔했다.
새로 부임해 오면 자신의 사람을 심기 위해 기존 사람을 자르기 마련인 것은 알았다.
하지만 한직 중 한직인 JK엔터에서까지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은 몰랐다.
김민석이 질끈 눈을 감았을 때 테이블에는 스윽, 하는 서류 미는 소리가 들려왔다.
“확인해 보세요. 김 본부장님. 시간을 달라는 걸 보면 대충 내용은 알고 계실 것 같으니 설명은 안 드리겠습니다.”
“네, 예상은 하고 있었…….”
김민석은 말을 맺지 못했다.
서류의 제목이 예상과는 너무 달랐기 때문이었다.
“팔순 축하 계획서요?”
“알고 계신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저는 이게 아니라…….”
김민석은 재빨리 표정을 수습했다.
대놓고 잘릴 줄 착각했다고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혹시 퇴사나 이직을 준비하고 계시는 건 아니죠?”
“아, 절대 아닙니다.”
“그럼 됐습니다, 거기 나와 있는 그대로 해 주십시오.”
“그런데 여기 인원이?”
“가족하고 친구분들만 모일 겁니다. ‘최대한 조용하게’가 콘셉트거든요. 뭐, ‘화려하게’라는 말도 추가하셨지만 그건 제가 따로 준비하겠습니다.”
“대체 어떻게 준비하신다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대표님.”
“그건 비밀입니다.”
“아, 비밀이요…….”
“그리고 이것도 부탁드립니다.”
도훈은 제법 묵직한 서류 하나를 건넸다.
서류를 받은 김민석의 눈이 한 단계 커졌다.
<조직개편안>
서류의 제목만 보고 김민석을 올 게 왔구나 하며 첫 장을 넘겼다.
하지만 그의 손은 목각 인형처럼 첫 장에서 굳었다.
그 모습에 이도훈이 말을 이었다.
“그 개편안은 회장님의 팔순 잔치 이후에 적용될 겁니다.”
“대표님, 대체 이게 무슨 뜻인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보시는 대로입니다. JK는 부사장 체제로 갈 겁니다.”
“아니, 그게 아니라 부사장이 왜 저인 겁니까?”
“그럼 다른 분을 임명할까요?”
“그런 말씀이 아니라 대표님은 어떻게 하고…….”
“다음 장을 넘겨 보십시오.”
“네, 알겠습니다, 대표님.”
김민석은 조용히 서류를 넘겼다.
이번에는 얼마나 놀랐는지 그의 동공이 시계추처럼 흔들렸다.
그의 표정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이도훈이 말했다.
“시간 없으니 첫 회의는 여기까지 하고, 저는 회장님이 내 준 숙제하러 가 봐야겠습니다.”
“아, 알겠습니다, 대표님.”
“다음에 볼 때는 마주치더라도 그 조직도에 나온 대로 …… 알죠?”
“네, 알겠습니다.”
“그럼, 팔순 잔치 때 뵙겠습니다. 조금이라도 준비가 미흡하면 아시죠?”
“네, 그건 걱정하지 마십시오.”
“네, 그럼 일어나겠습니다.”
말을 마친 이도훈은 자리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김민석은 바로 일어날 수가 없었다.
지금 이도훈이 주고 간 조직개편안은 대외비라 적혀 있었다.
제목만 보면 대부분의 직원이 우수수 떨어져 나갈 것 같지만, 그 반대였다.
구조조정은 일절 없었고 도리어 팀이 하나 늘어났다.
그것도 족보에도 없는 7팀.
중요한 것은 7팀을 이도훈 대표가 직접 맡는다는 것이었다.
대표직은 비워 두고 자신을 부사장 자리에 앉힌 후 결재 머신으로 만들고 자신은 직접 연예인을 케어하겠다는 건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게다가 자신의 신분까지 숨기고 직접 현업에서 뛰겠다니?
과연 속셈이 무엇일까?
연예계 사업에 진심인 것일까? 아니면 이 바닥을 장난쯤으로 생각하는 것일까?
생각을 이어 나가던 김민석은 어깨를 가볍게 떨었다.
그가 생각하기에 이렇게 조직을 꾸미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그것은 구조조정의 밑밥.
김민석은 핸드폰을 들어 통화 목록을 확인하다가 다시 화면을 껐다.
대외비라는 조직개편안의 문구가 유난히 굵게 보여서였다.
살아남자면 비밀은 지켜야 했다.
이것은 대표와 자신만 아는 내용이니 말이다.
* * *
검은색 세단이 강변북로를 달리고 있었다.
한민국이 물었다.
“본부장님, 아니 대표님. 아 호칭을 뭐라고 불러야 할지…….”
“그냥 실장이라고 해.”
“네? 실장이라니요?”
“옆자리에 서류 하나 올려놨으니 앞으로 숙지하면 좋겠어.”
“서류라니…….”
힐끔 옆을 보던 한민국이 고개를 갸웃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두툼한 서류봉투가 있었던 것이다.
그때 이도훈이 말했다.
“한 기사, 세단 말고 승합차도 자신 있죠?”
“네, 저야…… 그런데 왜 그건 물어보시는 거죠?”
“읽어 보면 알 거야.”
“네, 그런데 대, 아니 실장님, 일산에는 무슨 볼일이신 거죠?”
“회장님이 내 준 숙제하러.”
“그 숙제라는 게 대체 뭔가요?”
“그건 비밀, 아니다 별일 없으면 한 기사도 같이할래?”
“제가 무슨 능력이 있다고요?”
“한 기사 뜀박질 좀 하는 편이인가?”
“저야, 체력 빼면 남는 게 없습니다.”
“잘됐네요, 혼자 하려니 심심했는데.”
도훈은 활짝 웃으며 뒷좌석의 창문을 열었다.
순간 강바람이 차 안에 휘몰아쳤다.
도훈은 머리가 엉망이 되는 대도 활짝 웃으며 바람을 만끽했다.
물론 앞에서 룸미러로 도훈의 모습을 확인하고 있는 한민국은 불안할 따름이었다.
사람이 죽을 때가 되면 변한다고 하지 않던가?
도훈의 며칠간 행보를 보면 묘하게 불안했다.
도훈만 변하면 상관없었지만, 왠지 그 변화에 자신도 말려들 것만 같았다.
잠시 후.
한민국의 불안은 현실이 되었다.
지금 그들은 일산 호수 공원의 산책로 서 있었다.
사람들은 산책을 하며 근처에 핀 꽃을 구경하기에 바빴다.
산책로에서 지나가던 사람들을 구경하던 한민국은 자신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꽃가루가 입속으로 들어가도 인식하지 못한 채 정신 줄을 놓은 상태였다.
회장님의 숙제라고 해서 잔뜩 긴장하고 있었는데 이도훈이 들른 곳은 백화점이었다.
백화점에서 회장님의 선물을 사나 했더니 그것도 아니었다.
백화점에서 사 온 것은 도훈과 한민국의 트레이닝복과 운동화였다. 거기에 압박붕대까지 쇼핑백에 넣었다.
그러고는 물통과 수건에 줄넘기까지 한 번에 구입하더니, 마지막으로 향한 곳이 일산 호수 공원 옆에 있는 JH메리어트 호텔이었다.
그곳에 짐을 풀고 바로 이곳 호수 공원으로 나온 것이었다.
나오면서 도훈이 한 말은 그야말로 의미심장했다.
‘이곳에 있을 동안은 여기가 태릉선수촌이라고 생각해.’
아직까지는 태릉선수촌의 ‘태’자도 느끼지 못했다.
그저 따스한 햇볕만이 느껴질 뿐.
뭐, 조금 이상한 건 한민국에게 보랭 백을 메게 한 것이었다.
이온 음료를 가득 넣은 다음, 보랭 팩까지 가득 채운 백팩은 꽤나 무거웠다.
하지만 이 정도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때 이도훈의 목소리가 한민국의 귓가를 때렸다.
“이제 서서히 뛸까?”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