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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후 천하제일인이 되어 귀환했다-225화 (225/228)

제225화

제225화 종착 (3)

정지해 있던 세계가 제 속도를 찾으며 무거운 적막이 인다. 귓가에서 천둥처럼 울리던 굉음들이 한순간에 뚝 그치자 세상의 소리가 사라진 듯했다.

황제는 가만히 선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입가가 작게 꿈틀거렸다.

“이것이 나의 종착이었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의 목에서 피 분수가 일었다.

그렇게 대륙의 정점에 올라 있던 사내가 힘없이 허물어졌다.

황제의 목이 땅에 떨어졌다.

살아 있을 적 천하가 발밑에 깔리고, 그 어깨 위로는 무소불위의 권력이 얹어져 있었다지만, 목이 베여 쓰러진 시체는 촌부와 하나 다를 게 없었다.

나는 간만에 깊게 심호흡을 했다. 팔이 잘게 떨려 온다. 꼴도 말이 아니었다.

의복 곳곳이 해어져 있었고, 살갗이 갈라져 흐른 피가 이곳저곳을 적셨다.

깊은 상처는 없었지만, 그랜드 소드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황제는 강했다.

하나 그럼에도 그는 내게 목이 베였다.

그가 나를 이길 수 없었던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째로, 나는 그랜드 소드 마스터의 극의에 다다라 있었다. 완숙의 경지에 올라 있는 그는 애초에 나를 이길 수 없었다. 외성부터 뚫고 들어왔음에도 그렇다. 그것은 명백한 전력의 차이였다.

그리고 둘째로, 그는 나 이외의 그랜드 소드 마스터와 겨뤄 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종이 한 장의 미세한 차이였지만, 이미 검의 정점에 오른 나와 그 사이에 있어서는 만년설처럼 두꺼웠다.

좀처럼 승패가 바뀌지 않을 정도로.

철컥.

할 일을 모두 끝낸 뇌운검이 허리춤으로 빨려 들어갔다.

원하는 종착에 다다랐음에도 별다른 감흥은 없었다.

내게는 언제든 쥘 수 있는 결과물이었으니까.

이제 프렌치아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 * *

황궁에서 들려오던 굉음이 멎었다.

그것을 쫓던 기사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마치 세계가 멸망하는 듯한 폭발음들. 그리고 창공으로 솟아오르던 찬란한 섬광들.

결전의 잔해들만 보아도 인간의 한계를 아득히 넘어선 검격이었다.

그들은 황제가 어떻게 저 검력을 버티고 있는 것인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자신들이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적이란 확신은 들었다.

저런 자와 마주하고도 이렇게 숨을 쉬고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괜히 목덜미가 서늘하다.

그런데 그토록 시끄럽던 황궁에 적막이 찾아들었다.

세계가 숨을 죽인 듯했다.

그 고요 속에서.

저벅저벅.

흰 사자가 걸어 나왔다.

머리칼과 옷가지가 헝클어지고 군데군데 자상이 보였으나, 일대를 압도하는 그 존재감은 여전했다.

그가 멀쩡히 돌아왔다는 것의 의미를, 여기 있는 누구도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 앞을 막아서는 자들은 없었다.

조금 전 하늘을 수놓던 섬전과 세차게 울리던 천둥소리를 들었다.

어찌 그의 걸음을 막기 위해 몸을 던질 수 있겠는가.

자신들의 몸을 던져 봐야 흰 사자를 막을 수 없을 것임을 누구나 잘 알았다.

제국에 대해 충성심으로 똘똘 뭉친 기사들도 물론 있었다.

황제의 목을 벤 적을 자신이 죽더라도 이대로 돌려보내지 않겠다는 심경을 가진 자들도 있었다.

하나, 그 모두가 멀어지는 흰 사자를 그저 바라보고만 보았다.

그의 앞을 막고자 하는 의지가 있든 없든, 발이 떼어지지 않는 건 매한가지였다.

그렇게 흰 사자가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야 정신을 추스른 이들은, 다급히 황궁을 향해 달려갔다.

“…….”

더 이상 황궁이라 부를 수 없는 잔해가 그곳에 남아 있었다.

마치 토네이도가 휩쓸고 간 것 같은 풍경이 펼쳐져 있다. 검격의 격돌로 만들어진 경관이라고 여겨지지 않는다.

창공을 가로지르던 섬광과 우렛소리를 보고 듣지 못했다면, 이 광경이 검의 격돌로 일어난 일이란 걸 믿지 못했을 거다.

그들은 그 잔해들을 헤집으며 천천히 결전의 중심지로 향했다.

쪼개지고 뒤틀린 지반은 악명 높은 산악의 형세처럼 들쑥날쑥했다.

그렇게 그들은 흰 사자와 황제가 검격을 나누었던 중심에 다다랐다.

그리고 할 말을 잃었다.

“…….”

바닥에 꽂힌 기다란 막대가 그들을 반기고 있었다. 거기에 매인 프렌치아 국기가 일렁이는 바람을 따라 살랑거린다.

그리고 그 앞에 목이 베인 황제의 시체가 있었다.

그것을 본 기사의 입가로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침통한 음성이 흐른다.

“모두에게 전하라…….”

무력감과 슬픔과 상실과 그 무수한 감정들이 하나의 목소리에 담겨 있었다.

“황제 폐하께서 서거하셨다고.”

대륙의 역사에 커다란 획이 그어지는 순간이었다.

* * *

황제의 목이 바닥에 떨어지던 때, 프렌치아의 서해는 제국군의 군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바다를 가득 메운 군함에서 끊임없이 내리는 제국의 병사들.

수없이 많은 병력이 내렸음에도 여전히 내려야 할 병사들이 많았다.

수가 가늠이 안 될 정도로 많은 대군이었다.

이전 프렌치아 원정대의 패배와 세계 정상회담에서의 굴욕.

거기에 제국을 종단하는 만행을 벌이고 있는 흰 사자까지.

프렌치아를 향한 제국의 적대감은 이미 극에 이르러 있었다.

흰 사자로 인해 무너진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서 제국에게는 압도적인 승리가 필요했고, 지금 이 상황은 그로 인해 만들어진 것이었다.

“……프렌치아도 이걸로 끝인 건가.”

“빌어먹을. 좋은 날은 다 갔구만!”

“아무리 흰 사자가 대륙 제일검이라 한들 저들을 어찌 막는단 말인가…….”

제국군을 바라보는 프렌치아 국민들의 시선은 회의적이었다.

적의 수가 많아도 너무 많았다.

바닷속의 물고기들만큼이나 많은 듯했다. 하지만 그에 반해 프렌치아의 해안가에는 그들을 막아서는 병력도 없었다.

마치 안으로 들어오라는 듯 경계병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프렌치아의 병사들은 모두 내륙으로 집결했기 때문이다.

제국군이 애꿎은 시민들을 학살하지 않을 거란 걸 알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제국이 이번 전쟁에 내세운 명분은 합병을 통해 얻은 본국의 영토를 되찾는 것.

그러니 프렌치아의 국민들은 자연스레 자국민이나 다름없게 되는 셈이고, 프렌치아의 왕국군은 본인들의 영토를 불법 점거한 도적놈들이 되는 셈이다.

과거의 침략 전쟁과는 결이 달랐다.

명분과 되찾을 명예를 위해서라도 시민들은 건드리지 않을 터였다.

그렇기에 프렌치아의 방어선은 내륙에 집중되어 있었다.

어차피 적들의 목표는 수도, 마그네트.

대군이 이동할 수 있는 경로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더럽게도 많이 왔네.”

“끝이 보이지 않는 행렬이군…….”

“저거 막을 수 있는 거 맞겠지?”

산 중턱에 선 정찰병들이 손차양을 한 채 널따랗게 펼쳐진 평야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직사각형의 형태로 정렬한 제국군이 평야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마치 개미 떼가 줄지어 이동하는 듯했다. 그런 형태의 대오가 한눈에 담기지 않을 정도로 많았다.

프렌치아에 상륙한 제국군의 일부일 것임에도 입이 떡 벌어지는 머릿수였다.

전체적인 병력은 대략적으로 추산해도 50만을 훌쩍 넘어간다지.

그에 반해 프렌치아의 병력은 깡그리 긁어모았음에도 10만이 채 되지 않았다.

수배에 이르는 병력의 숫자.

하나 머릿수로만 구분할 비교할 아니었다. 병력을 이루고 있는 기사와 병사들의 질을 생각하면 그 차이는 더욱 아득해질 터였다.

“아무래도 X된 거 같은데…….”

한눈에 전장의 승패가 가늠될 정도로 규모의 차이에 불안감이 드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누군가 약한 소리를 내뱉자 그것을 들은 다른 누군가가 강하게 말했다.

“방법이 있나. 무조건 막아야지! 다시 제국 새끼들 밑에서 원숭이 새끼처럼 살 수는 없다고!”

모두 공감하는 바였다.

적은 두렵지만, 이 전쟁에서는 결코 질 수 없는 이유가 있었다.

제국군은 마그네트를 향해 빠르게 진군했다.

하나, 프렌치아에 상륙하고 2주가 훌쩍 지나가도록 제국군과 왕국군 간의 교전은 단 한 번도 벌어지지 않았다.

그저 계속되는 행군.

그런 이들의 앞으로 드디어 하나의 성벽이 놓였다.

“드디어 전쟁인가?”

“프렌치아 놈들. 꽁무니 빼며 도망치기에만 바쁘더니만.”

“고작 저딴 걸로 뭘 어쩌려는 작정이지?”

지형지물을 이용해 지어진 단단한 성벽.

프렌치아는 지난 3년간 이 시간을 대비해 왔다.

그들이 쌓아 올린 벽은 결코 허술하지 않았다.

하지만 전쟁을 단단히 준비한 건 프렌치아뿐만이 아니었다. 제국군 또한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이 자리에 와 있었다.

그런 이들에게 눈앞의 견고한 성벽은 작은 둔덕에 지나지 않았다.

“개X끼들!”

화렌카는 저 앞에 주둔지를 펼치고 있는 제국군을 보며 이를 갈았다.

정말 끝도 없이 늘어서 있다.

어려운 전장을 여러 번 겪어 왔지만, 이번만큼은 답이 없다.

그것이 알 수 없는 불안으로 다가온다.

지금껏 필사적이지 않은 전쟁이 없었고, 간절하지 않은 전쟁도 없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또 다르다.

잃을 것 하나 없었던 그때와 달리 지켜야 할 것들이 많아졌으니까.

그래서 더 나약해졌냐고?

모르겠다.

하지만 확실한 건 패배에 대한 두려움은 더 커졌다는 거다.

지난 3년. 고생스러웠지만 평화로웠다.

그 단꿈이 이 전쟁의 승패에 따라 꿈결처럼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이 솔직히 두렵다.

절대 잃고 싶지 않은 소중한 것들이 생긴 탓이다.

“표정이 아주 보기 좋아.”

갑작스러운 음성에 소리를 쫓자 하트웬이 한심하다는 듯 고개를 내젓고 있었다. 화렌카의 얼굴이 순식간에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그런 그를 향해 우르노 또한 말을 보탰다.

“정말이지, 꼴 보기 싫은 얼굴이군. 불꽃이란 이명이 얼굴을 붉히는 것 때문에 생긴 이명이었나 봐.”

“무슨 개소리들이야!”

화렌카의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 버럭 소리를 질렀지만, 우르노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제네스 님한테도 황소처럼 돌진하던 녀석이 꼬리만 개새끼처럼 그러고 있으니.”

“그때의 무모함은 어디다 버렸는지. 쯧.”

하트웬도 얄밉게 말을 보탰다.

화렌카가 침까지 튀기며 강하게 항변했다.

“이 자식들이! 누가 애새끼처럼 겁먹은 줄 알아!”

하나둘, 듣는 둥 마는 둥 한쪽 귀로 흘릴 뿐이었다.

함께한 지도 벌써 10년을 훌쩍 넘겼다.

이곳저곳을 쏘다니며 서로 볼꼴 못 볼 꼴 다 봤다. 표정만 봐도 서로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훤히 알 수 있었다.

“나 불꽃의 화렌카야. 전장에서 가장 뜨거운 사나이라고!”

화렌카가 가슴팍을 두드리며 강하게 말했다.

하지만 그 또한 자신이 나약한 생각에 잠겼었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 찰나의 순간을 이 녀석들에게 들켰다는 게 수치스러워 성벽에서 뛰어내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 지경이다.

하나 자신이 나약해진 건 분명한 사실이었다.

병사들 중에서도 자신과 같은 이들이 많겠지.

지난 3년 사이 행복과 안정에 취한 자들.

죽음과 공포로 가득 찬 전장에서 금세 멀어져 버린 자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국군이 두려운 건 결단코 아니었다.

“내가 고작 저딴 놈들한테 쫄 거 같아?”

반드시 막아 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이번 전쟁에서의 패배가, 프렌치아에 어떤 결과를 가지고 올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으니까.

비록 가진 것이 많아진 덕에 잃을 것도 많아졌지만.

그 모든 걸 잃었을 때의 두려움의 크기만큼, 적들을 향한 적의 또한 확고했다.

독립을 위해 싸우던 때와는 조금 다른 감정이었을 뿐이다.

당시에는 나라를 되찾기 위해 싸웠다면, 지금은 나라를 지키기 위해 이 자리에 서 있었다.

투쟁하는 것과 지키는 것.

그 차이에서 오는 마음가짐의 차이일 뿐이었다.

아마 전장에 선 모든 국민의 마음도 마찬가지일 거다.

그 누구도 다시는, 나라를 잃고 싶지 않을 테니까.

나라를 잃는다는 게 얼마나 X같은 건지 이미 뼈저리게 느껴 버렸거든.

화렌카는 적들에게 돌린 시선 위로 세찬 불길을 피워 냈다.

“X발! 한번 뜨겁게 불살라 보자고!”

제국과 프렌치아 간의 첫 번째 전장이 막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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