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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후 천하제일인이 되어 귀환했다-224화 (224/228)

제224화

제224화 종착 (2)

황제가 몸을 일으키자 마치 세계가 일어서는 듯했다.

그는 검을 늘어뜨린 채 천천히 계단을 내려와 나와 마주 보았다.

그와 나의 간격은 현재 이십 보.

서로에게 허용할 수 있는 최소한의 간격이었다.

온몸이 저릿할 정도의 강맹한 기파가 밀려온다. 그저 마주한 것만으로도 마치 칼끝이 살갗을 스치고 지나는 듯하다.

이능에 기대어 쌓아 올린 검이 아니었다.

무수히 반복되는 삶을 통해서 홀로 단단히 빚어낸 검력.

제국의 소드 마스터였던 바르안과 휴레인처럼 온전히 자신의 재능과 노력으로 위대해진 검이었다.

게다가 그들보다도 윗줄이다.

심지어 지금껏 만나 왔던 적 중 가장 강했던 천마보다도 윗줄에 서 있는 듯했다.

“그럼 어디 한번 이 몸을 막아 보거라.”

무표정의 얼굴 위로 서늘한 위엄이 흐른다.

무지막지한 검력을 떠나, 인간 자체에 흐르는 존재감 또한 세계를 발아래 둔 것처럼 묵직하다.

전투의 긴장감이 아주 오랜만에 체내를 질주한다.

나는 뇌운검을 단단히 움켜잡으며 입을 열었다.

“유언은 그걸로 끝인가.”

“오만하구나. 네가 어찌 그 정도의 격에 올랐는지는 모르겠으나, 스스로 쌓아 올린 힘과 이능에 기대어 쌓아 올린 힘이 무엇이 다른지 알게 해 주마.”

나는 황제의 말에, 그가 무언가 단단히 착각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내가 이능에 기대어 검력을 쌓아 올린 줄 아나 본데.

그렇게 생각할 만도 하다.

겉모습도 어려 보이고, 내가 환생 후 귀환한 것이라고는 꿈에도 알지 못할 테니.

내가 본인이 모르는 이능을 얻었다고 판단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었을 터였다.

나는 굳이 정정하지 않았다.

어차피 곧 느낄 수 있을 터였고, 이 작은 착각의 빈틈이 승부를 가를 찰나의 틈을 만들어 줄지도 모를 일이었다.

구구구구구구!

가파르게 치솟는 기세에 황궁 전체가 흔들린다. 그 후폭풍을 버티지 못한 내부의 벽들이 쩌저적 갈라지며 돌가루를 우수수 떨어트렸다.

그리고 성난 기파 간의 맞물림이 정점에 이르러 비틀어졌을 때.

나와 황제는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서로를 향해 치달았다.

손끝에 단단히 힘을 주며 허리를 비튼다.

그 회전을 따라 그어지는 횡베기.

벼락처럼 쏘아지던 섬광이 그 궤적을 따라 흩어진다.

황궁이 터져 나가는 굉음과 함께.

콰아아아아아앙-!

단 일격이 맞부딪쳤을 뿐인데 그 충격파에 홀 전체가 폭발하듯 터져 나갔다.

눈처럼 쏟아지는 크고 작은 돌 조각들.

나와 황제는 마치 그런 것들이 존재하지 않는 양 움직였다.

떨어지는 커다란 돌덩이에 황제의 모습이 가려졌으나, 흐르는 검격은 그것마저도 함께 베어 낸다.

감각이 활짝 열려 있었다.

보지 않고도 보였다. 사고의 가속으로 늘어진 시간은 멈춘 듯 고요했다.

그 안에서 나와 황제만이 제 속도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의 칼날이 금빛 섬광을 토해 낸다. 빛살처럼 번지는 궤적이 곳곳에서 섬전을 뿜어냈다.

나는 빠르게 휘어져 들어오는 그것들을 모두 쳐 냈다. 일격을 받아 낼 때마다 뇌운검이 세차게 떨었다.

그의 검은 세계를 짊어진 듯 무거웠다.

위에서 떨어져 내리던 검격을 튕겨 낸 뇌운검이 황제의 옆구리를 향해 휘어져 들어간다.

튕겨져 나갔던 검이 어느새 그 앞에 있었다.

서로를 향해 들이미는 송곳니가 얽히고, 막힌다.

한 치의 비틀림 없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리는 교전.

무너져 내리는 잔해들은 허공에 떠 있는 것처럼 정지해 있었다.

우리가 가속하는 속도에 비하면 세계는 흐르지 않는 듯했다.

콰르르르르르릉-!

검이 부딪칠 때마다 강맹한 충격파가 일대를 휩쓴다. 창졸간에 오가는 공방에 수십 개의 충격파가 동시다발적으로 폭발했다.

투명한 공기의 파동이 주변에 떨어지던 잔해들은 물론이거니와 간신히 형태를 유지하고 있던 주변의 구조물들까지 깡그리 밀어 버렸다.

일대가 폐허가 되는 건 순식간.

나와 황제의 전투가 벌어지는 격전지의 주변은 이미 개활지처럼 훤히 트여 있었다.

일순, 천지를 가리는 칼끝이 있었다.

세계를 가로지르는 검이었다.

칼날에 담긴 힘이 전해진다.

그 검로 앞에 놓인 것들은, 하늘에 닿을 듯 뻗은 태산일지라도, 깊고 너른 해협일지라도 갈라지고 말 터였다.

황제가 뿜어낸 금빛의 참격엔 만물을 벨 수 있을 예기가 담겨 있었다.

나 또한 그것을 갈라내기 위해 칼날에 진력을 담았다.

구와아아아앙!

상, 중, 하로 나뉘어 있는 3개의 단전이 동시에 반응한다. 전신을 질주하던 내력의 흐름이 찰나에 가속된다.

광활한 혈도를 타고 대주천을 이루는 내력의 고리가, 육체에 담길 수 있다고 믿기지 않을 만큼의 거력을 창졸간에 태동시켰다.

세계의 법칙에 분리되어 세계를 내려다보는 듯한 고양감이 세차게 타올랐다.

하나의 세계가 체내에 담긴 듯하다.

스스로 전능하다 착각할 만큼의 힘이 칼날을 향해 치달았다.

의념을 가지는 동시에 검은 이미 흐르고 있었다.

산과 바다를 가를 만큼의 거력을 품은 적의 검이 그 칼끝에 갈라진다.

세계를 잠식하고 있던 금빛의 커튼이 잘려 나가고, 그 너머에 선 황제가 보였다.

그때, 그의 검이 다시금 뻗어졌다.

콰아아아아아-!

하나의 세계가 밀려드는 듯했다.

그가 쌓아 온 의념이 칼날을 타고 풀어진다.

하늘마저 뚫고 자라난 금빛의 탑이 보였다.

붉은 핏물로 잠식된 세계에서.

수많은 영혼이 절규하듯 흐르는 그 세계에서.

금빛의 탑은 홀로 찬란하게 빛났다.

그 거대한 금탑이 햇살처럼 창공을 덮으며 떨어져 내린다. 빛의 조각들이 장대비처럼 쏟아지며 세계를 덮는다.

빈틈은 존재하지 않았다.

온 세계가 그 빛무리에 젖을 듯했다.

하늘을 뚫을 구멍이 필요했다.

천령신공 검법편.

벽력의 장(章) 뇌정(雷霆).

푸른 뇌전이 하늘을 향해 작렬했다.

청룡이 승천하듯 거대한 푸른 벽력이 거꾸로 솟구쳐 하늘을 찢어발겼다.

일순 먹구름이 걷히듯 빛의 장막에 구멍이 뚫렸다.

가려졌던 하늘이 제 모습을 보였다.

하나 그것은 시작일 뿐이었다.

쿠르르르르르릉-!

검과 검이 부딪치고 세계와 세계가 격렬히 자웅을 겨룬다.

2개의 검은 각자의 삶과 각자의 신념을 품고 있었다.

그것에 옳고 그름은 중요하지 않았다.

누구의 신념이 더 정당하고 올바른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누군가의 신념이 정답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나도 그렇고 그도 그렇고, 서로 자신의 검을 확신하고 있었다.

자기가 옳다고 믿고 있었고, 각자의 승리를 자신하고 있었다.

2개의 세계는 조금의 굽힘도 없이 확신에 차 있었다.

쿠와아아아아아앙-!

세계가 종말의 울음소리를 내는 듯했다.

전력과 전력이 그 비명 속에서 가열하게 맞부딪치고 있었다.

서로의 칼날은 정확히 서로의 급소를 향했다.

서로의 검을 견주어 보고 맞댈 여유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서로를 집어삼키고 찢어발기기 위해 검을 쥐었다.

한 치의 물러섬 없는 적의.

사납고 거센 검격이었다.

뇌운검에서 불꽃이 일었다가 뇌전이 터져 나가고, 바람이 휘몰아쳤다가 새하얗게 얼어붙기도 했다.

나의 검은 다양한 속성의 내력을 방출하며 적의 검격을 자르고 꿰뚫고 찢어 냈다.

하나, 황제의 검력은 예견했던 대로 강했다.

무수한 회귀를 통해 얻은 경험들이 그의 검 위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의 생애는 참으로 묵직했다.

검을 마주할 때마다 뼈마디가 울렸다.

마력의 후폭풍으로 머리칼과 옷깃이 세차게 날렸다. 의복 이곳저곳이 잘리고 핏물이 튀었다. 검에 닿지 않았음에도 그랬다.

나와 그 사이에는 무수한 칼날들이 도사리고 있었다.

수십, 수백, 수천 개의 칼날이 우리 주위를 회전하고 있었다.

기파에 담긴 의념을 품은 칼날들.

그 중심에서 2개의 칼날이 맞부딪쳤다. 지반이 너울거릴 정도의 강력한 반동이 지나가고, 한 점에서 만난 칼날이 서로를 밀어냈다.

“이능이 아니었나.”

황제의 눈썹이 사납게 비틀린다.

나의 검이 예상외인 듯했다.

그럴 만도 한 게, 나는 외성부터 내성을 뚫고 이곳에 다다랐다.

그럼에도 나의 검은 여전히 건재했다.

그의 입장에서는 이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을 터였다.

여러 삶을 지나며 쌓아 올린 검력으로도 하나의 생애 동안 쌓아 올린 검력을 누르지 못하고 있었으니.

나를 정확히 모르는 상태에서는 더욱 놀라운 일이었다.

하나 검력의 무게는 단순히 세월로 계산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가 무수한 삶을 살았기에 도달할 수 있었던 경지가, 내게는 두 번의 삶으로도 족했을 뿐.

그런데 그는 그것을 너무 늦게 알았다.

나는 한순간에 힘을 폭발시켰다.

콰과과과과과과-!

강기가 흐드러지게 피어나며 일대를 집어삼킨다.

서로를 밀어내던 검격이 폭발한 결과였다.

그 후폭풍이 걷히고 드러나는 장내.

황제는 그 중심에서 내게 호기심을 품은 시선을 던졌다.

“대체 어떻게 그렇게 강해질 수 있었던 거지?”

그의 왼팔이 날아가 있었다.

“네가 하늘을 거스른 대가일 뿐이다.”

“하긴. 그렇군.”

작게 숨을 뱉은 그가 다시 검을 단단히 움켜쥐었다.

동시에 일대의 대기가 금방이라도 폭발할 듯 팽팽히 당겨진다.

묵직한 공기가 저변에 깔렸다. 나는 우리의 결전이 막바지에 다다라 있음을 본능적으로 알았다.

일순, 지반이 폭발하듯 터져 나가며 황제의 신형이 흐릿해진다.

활짝 개방된 감각 속에서도 그의 신형은 쏘아진 화살처럼 빨랐다.

나는 곧장 측면으로 검을 뿌렸다.

칼날에 묵직한 충격이 전해진다.

왼팔을 잃더니 오히려 더 날이 세워진 듯하다.

그 또한 서서히 자신의 결말을 느끼고 있을 터였다.

필사적인 궤적이 사방에서 공간을 옥죄어 온다.

나는 그것들을 하나하나 완전하게 지워 갔다.

검을 맞대어 보니 그의 경지를 보다 정확히 가늠할 수 있었다.

그랜드 소드 마스터의 초입에 이르러 있던 무한의 속검과 달리, 황제는 완숙의 경지에 머무르고 있었다.

콰아아아아아앙-!

나는 들이치는 검격을 그대로 찍어 눌렀다.

여전한 내 검력에 황제의 낯빛이 굳는다.

나는 그의 검을 받아 내는 동시에 몰아쳤다.

황제의 검이 더욱 저돌적으로 변모한다.

측면에서 휘어져 들어오는 검격이 있었다. 마치 세계가 수평으로 양단되는 듯했다.

나는 그 기다란 궤적을 올려 쳐 튕겨 냈다.

그의 검이 쏘아지던 궤도를 잃고 흐트러진다. 하나, 금세 반듯한 궤적을 연거푸 그려 낸다.

검과 검이 부딪친다.

찰나에 수없이 많은 교전이 오간다.

그에 맞춰 온 세계가 진동하는 듯했다.

검과 검이 톱니바퀴처럼 조금의 틈도 없이 맞물려 돌아갔다.

빈틈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칼끝을 비튼다. 궤적을 흩트린다.

비틀어진 칼날이 적의 궤도를 비틀고, 흐트러진 궤적이 적의 단단한 방벽을 헤집는다.

그 사이로 실낱같은 빈틈이 창졸간에 명멸했다.

그렇게 하나를 지나 보낸다.

그리고 또 하나의 빈틈을 만들어 낸다.

또 하나를 지나 보낸다.

나는 적의 숨통을 일검에 가를 수 있는 완벽한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다 한순간 빈틈과 그것을 꿰뚫고 지나가는 하나의 궤적이 눈가에 잡혔다.

그리고 판단한다.

벨 수 있다.

천령신공 검법편.

극의(極意) 파천(破天).

의념이 이는 순간, 하늘마저 갈라 버리는 검이 그 빈틈을 비집으며 빨려 들어가듯 쏘아진다.

찰나의 찰나의 찰나를 쪼개며 가속하는 빛줄기.

그것이 마침내 대륙의 정점에 있는 황제의 목을 가르며 지나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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