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 후 천하제일인이 되어 귀환했다-217화 (217/228)

제217화

제217화 제국 종단 (1)

흰 사자가 남하하며 제국을 빠르게 종단하는 동안, 제국 쪽에서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흰 사자의 목적지가 황궁이란 것이 밝혀진 상황.

그가 목적지에 다다를수록 그의 행동반경을 예측하기는 점차 편해졌다.

사전에 방어선을 구축할 수 있을 만큼.

“준비는.”

“예. 완료했습니다.”

긴장된 낯빛의 기사들이 그의 앞으로 늘어서 있었다.

제국의 여러 가문에서 차출된 정예들.

그들이 협곡을 틀어막고 단단한 저지선을 형성하고 있었다.

흰 사자의 이동 경로를 가늠했을 때, 황궁으로 가기 위해서는 이 길목을 지나가야 했다.

“녀석은 지쳐 있을 것이다.”

저지선을 구축하고 있는 사령관의 목소리에 확신이 어렸다.

지금껏 이와 같은 저지선이 형성된 것은 처음이 아니었다.

흰 사자는 그 저지선들을 계속해서 뚫고 내려오고 있었다.

그것도 미친 듯이 빠르게.

인간인 이상 체력적으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우리가 여기서 녀석을 막는다.”

사령관의 확언에 다들 낯빛에 힘을 주었다.

흰 사자의 검은 과연 위명에 걸맞은 검이었다.

단신으로 적국을 가로지를 생각을 하다니.

발렌시아 대륙의 모든 역사를 통틀어도 들어 본 적 없는 없는 일이었으며, 앞으로도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소드 마스터가 하나의 군단이라 불린다지만. 아무리 그들의 압도적인 무력 앞에 병력의 머릿수가 무의미해진다지만.

혼자의 힘으로 하나의 국가를 상대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건 인간이 벌일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까.

하나, 지금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제국의 명예와 위엄은 땅바닥에 처박혔다.

다들 이번 전투에서 그것을 되찾고자 하는 결연한 의지를 다잡았다.

지금까지와 달리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내가 녀석의 목을 벨 것이야.”

이 저지선을 세운 사령관이 바로, 제국의 또 다른 소드 마스터인

휴레인 바스티스였으니까.

무한의 속검보다는 아래로 평가되었지만, 무한의 속검과 같은 세대를 살지 않았다면 대륙 제일검이라 칭해졌을 사내.

무한의 검속을 잃은 현재의 제국에서 그는, 명실공이 최강의 검이었다.

하얗게 센 백발이 흩날린다.

나이가 들어 정점의 기량이 깎여 나가는 보통의 기사들과 달리 그는 여전히 정점에 올라 있었다.

그것은 소드 마스터의 힘이자, 여전히 타오르는 검에 관한 열정 때문이었다.

그리고 바로 그 열망이 그를 이 자리에 서게 만들었다.

그는 고개를 들어 청명한 하늘을 바라보았다.

대륙에서 손에 꼽히는 재능을 가지고 태어났음에도 평생을 바르안의 등만 보고 걸어왔다.

한데 그 평생의 숙적이 변방의 소국, 프렌치아에서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대륙 제일검의 자리를 자신이 아닌 다른 자에게 양도했다.

참을 수 없는 일이었다.

바르안이 없다면 대륙 제일의 자리는 응당 자신의 것이어야 했다.

그렇기에 그는 이 자리에 섰다.

비겁하지만 적당한 시점이었다.

흰 사자의 체력이 적당히 빠져 있다고 판단되는 지점.

쓰러지기 직전의 흰 사자를 벤다고 해도 대륙 제일검이란 위명은 가져오지 못할 터였다.

하나, 지금은 그것이 가능한 시점이었다.

‘비겁하다고는 하지 않겠지.’

이 또한 전략.

항시 최선의 상태를 유지하는 것 또한 기사의 소양이기에.

제 발로 적진에 뛰어들어 놓고 그런 변명을 늘어놓지는 않겠지.

하늘을 올려다보던 그의 시선이 내려간다.

저 멀리서부터 거대한 존재가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두꺼운 저지선이 세워져 있음을 모르지 않을 텐데도 그 속도에는 변함이 없다.

과연, 현 대륙 제일검.

바람에 실려 오는 은은한 존재감의 무게가 벌써부터 일대의 대기를 긴장시킨다.

휴레인은 그 존재를 정면으로 응시하며 입을 굳게 다물었다.

* * *

나는 앞쪽에 두껍게 쌓여 있는 전열을 보았다.

그들이 피워 낸 전장의 비장함이 코끝에 아른거린다.

적막에 잠긴 협곡은 폭풍이 깔린 듯 무겁고 어두웠다.

그들이 나를 향해 품은 적의가 일대의 공기를 무겁게 했다.

병력의 수가 많은 건 아니었다.

하나, 모두 하나같이 정예.

거대하고 아득한 벽이 앞에 세워진 듯하다.

점차로 저지선의 강도가 단단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지금까지보다도 특별했다.

하나의 거대한 존재감이 전열 사이에 묻혀 있었다.

홀로 우뚝 선 산맥 같아, 그것을 확인하기 어렵지 않았다.

“휴레인 바스티스.”

아마 그자일 테지.

이 정도의 존재감을 가질 수 있는 자는 이제 제국에 그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하나, 그렇다고 달라질 건 없다.

빠르게 뚫고 지나간다.

내가 제국을 종단하는 사이, 제국의 병력들은 동쪽으로 끊임없이 이동하고 있었다.

동부 해안선에 있는 항구들로 적들의 병력이 집결하고 있었다.

프렌치아로 향하는 병력의 이동.

내게는 아무런 의미를 갖지 않는 머릿수지만, 프렌치아에게는 달랐다.

저 병력들을 막아 내지 못할 거다.

그렇기에 나는 최대한 빠르게 황제의 목을 베어야 했다.

내가 여기 있다는 건, 제국의 입장에서 위협이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손쉽게 프렌치아를 먹어 치울 기회이기도 했다.

나 또한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프렌치아가 아닌 이곳에 있었다.

‘잘 해내겠지.’

세계 정상회담이 마무리되는 순간부터 가능해진 병력 집결.

제국 또한 프렌치아를 침략하기 위해 바로 움직일 터였지만, 병력의 규모가 크다 보니 그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 시간을 이용하고자 했다.

어차피 내가 프렌치아에 있다 한들, 그 많은 병력을 혼자서 막아 낼 수는 없다.

지금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황제의 목을 베는 것.

나는 뇌운검을 단단히 움켜쥐었다.

어느새 적들이 눈앞에 있었다.

번-쩍!

손아귀에서 빛이 폭발하는 순간 지축을 뒤흔드는 굉음이 터져 나왔다.

섬광으로 화한 검기 다발이 적들의 전열을 일거에 쓸어버린 것이다.

나는 핏물이 흐드러지게 핀 적진을 향해 빨려 들어가듯 쏘아졌다.

그런 내게 사방에서 검격이 쏟아진다.

하나 병력의 수가 백이든, 천이든, 만이든 방어할 방위는 같다.

단지 그것이 머릿수만큼 끊임없이 이어질 뿐이지.

그들과 다른 시공간에 머무는 내게 그것을 막아 내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압도하지.

칼날이 다시금 번쩍인다.

천령신공 검법편.

제4장 광휘폭검(光輝爆劍).

일순 검기의 장막이 전방위를 겹겹이 휘감으며 그 크기를 부풀린다.

지반에서 태양이 솟아나듯 반구체의 발광체가 떠오르며 일대를 밀어 버렸다.

쿠과과과과과과광-!

일대의 널찍한 반경을 그대로 집어삼키는 폭발.

주변의 소음이 일순 사라진다.

시야가 잠깐이지만 훤히 트였다.

하나, 그것도 잠시일 뿐.

열렸던 공간이 금세 다른 병력들로 채워진다.

사방에서 섬광이 번쩍였다.

마력을 품은 선명한 궤적들.

그리고 그것을 찢어발기는 꽃잎들이 있었다.

천령신공 검법편.

제3장 낙화유검(落華流劍).

폭설처럼 날리는 무수한 검기들이 꽃잎처럼 흩어진다.

그 몸짓을 따라 곳곳에서 붉은 핏물이 치솟았다.

마치 단풍이 물들듯 전장이 울긋불긋 물든다.

그리고 그 꽃잎의 비가 그칠 때쯤,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뇌전이 있었다.

천령신공 검법편.

벽력의 장(章) 뇌정(雷霆).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굉음과 함께 찢어진 벼락 줄기들이 전방을 쓸어버린다.

적들의 몸을 짓이기며 밀고 들어가는 강렬한 뇌력.

나는 힘을 아끼지 않았다.

모두를 죽일 필요도 없다.

적의 저지선의 중심부를 관통하면 될 일.

나는 그저 적들이 세운 벽을 뚫고 나아갈 뿐이었다.

* * *

휴레인은 흰 사자가 날뛰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정녕, 대륙 제일을 의심할 수는 없겠군.’

그는 흰 사자의 검을 순순히 인정했다.

이 광경을 보고 누가 인정하지 않을 수 있을까.

참으로 압도적인 검력이었다.

눈앞에서 낙엽처럼 쓸리고 있는 자들이 제국의 기사들이란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제국의 기사들의 수준은 대륙 제일을 자랑했다.

한데, 그런 이들로 쌓아 올린 저지선을 흰 사자는 정면으로 뚫어 버리고 있었다.

어른과 아이의 싸움만큼이나, 아니 그보다 더 큰 압도적인 전력 차이가 있었다.

하나, 아직 자신이 나설 때가 아니다.

흰 사자는 생각보다 건재했다. 그를 더욱 물고 늘어져야 한다. 저 맹수를 지치게 할 필요가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방도가 없다.

‘대체, 저 나이에 어떻게 저런 경지에?’

적이지만 그의 검을 가만히 들여다보게 된다.

흰 사자의 검이 제국의 명예를 짓밟고 제국의 전력을 무참히 박살 내고 있음에도 그런 사실들은 마음에서 멀어진다.

오직 그의 검만이 보인다.

‘허.’

휴레인은 이내 깊은 탄성을 터트렸다.

평생을 바라보던 길이, 평생을 추구했음에도 닿을 수 없던 길이.

지금 눈앞에 선명히 있다. 자신이 도달하고자 했던 검도의 끝이 눈앞에 있었다.

검의 흐름은 물이 흐르듯 자연스럽고 조금의 끊김도, 조금의 망설임도 없다.

마치 자연의 일부인 양, 모든 것이 정해진 운명인 양.

그리 자연스레 흘러간다.

압도적인 검격도, 폭발하듯 번쩍이는 섬광도, 천지를 울리는 굉음도.

그 모든 것이 순리처럼 느껴질 지경이었다.

재앙을 품은 하나의 세계.

그것이 앞에 놓인 것들을 집어삼키며 부드럽게 휩쓸고 사정없이 감아 온다.

대체 무엇이 다른 것일까.

대체 무엇이 그의 검을 아득하게 하는 것일까.

‘나는 무엇이 부족한 것인가.’

평생 검을 휘둘러 왔다.

그리고 지금의 그는 대륙의 정점에 가까이 올라 있었다.

검을 긋기 위해 필요한 신체의 근섬유부터 체내를 흐르는 마력 줄기까지.

그 모든 것이 손아귀에 있었다.

검을 휘두르는 것은 이미 완숙의 경지에 올랐다.

더 나아갈 길도 없고, 나아갈 수도 없다.

그런데.

흰 사자의 검은 분명 그보다 앞에 있었다.

자신은 더 이상 나아갈 길이 없다고 여기던 막다른 벽, 그 너머에 그의 검은 존재했다.

그것은 단언컨대 검이 아니었다.

검의 궤적과 올바른 검로, 신체의 움직임과 마력의 운반과 분배 등, 하나의 궤적을 긋기 위해 필요한 모든 작용.

단순하게 그것만으로 판단할 수 있는 검이 아니다.

사실 소드 마스터가 되는 순간, 그 부분에 대한 발전은 극에 이른다.

아니, 최상급에 이르렀을 때 이미 완숙에 이른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기사들은 그 벽을 넘지 못한다.

그것은 넘어설 수 있는 벽이 아니라, 세계의 끝을 의미하니까.

하지만 누군가는 그 세계의 끝을 지나 새로운 세계를 맞이하게 된다.

휴레인 또한 그 벽을 넘어선 자.

그리고 다시금 그 세계의 끝에 다다른 자.

그는 지금 그 세계의 너머를 간접적으로나마 지켜보고 있었다.

‘그랜드 소드 마스터.’

거짓인 줄 알았으나, 그것이 아니었다.

소드 마스터를 넘어서는 경지가 실제로 존재하고 있었다.

흰 사자의 검에는 새로운 세계가 담겨 있다.

그것은 더 이상 검이 아니었다.

그것은 하나의 의지였고, 하나의 세계였고, 검의 완성이었다.

모든 세계가 칼끝을 따라 흐른다.

검이 현재를 휘젓고 그 궤적을 따라 그의 세계가 그려진다.

그 위대한 검 앞에서 세계를 품지 못한 자신의 검은 한없이 초라해진다.

분명 보았지만, 다가갈 수 없다.

보이지만 그 벽을 넘어갈 수가 없다.

아직 그곳에 발을 디딜 때가 아닌 것이다.

그저 격의 두께만을 가늠할 수 있었다.

휴레인은 그 압도적인 검 앞에서 순순히 인정했다.

“내가 어리석었군.”

저 검은 누구도 막을 수 없다.

자신의 목숨을 던져도, 여기 있는 모두의 목숨을 던져도.

흰 사자 앞에서는 모두 삼켜질 뿐이다.

검을 맞대지 않고도 그는 본인의 패배를 수긍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검을 굳건히 잡는다.

그는 그저 한 명의 기사로서, 검도를 추구하는 순수한 감정만으로 그 앞에 선다.

자신보다 한참 앞선 이에게 그저, 자신의 검을 보여 주고 싶은 호기만이 남았다.

그 검을 직접 겪어 보고 싶다는 열망만이 남았다.

그런 그의 앞으로 마침내 흰 사자가 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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