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 후 천하제일인이 되어 귀환했다-208화 (208/228)

제208화

제208화 작은 전장 (2)

우리를 바라보는 이들의 입이 분주해졌다.

“저들이 프렌치아?”

“흰 사자는 안 온 거 같은데?”

“저자가 용 사냥꾼이라더군.”

“토벌대에서 본 적 있지.”

하나, 지대한 관심과 달리 우리에게 다가오는 이들은 없었다.

모두 한 사내의 눈치를 살피기 바빴다.

후작, 베솔로인 메로안.

제국의 5대 명가 중 하나인 메로안 가문의 수장.

그의 눈 밖에 난다는 의미는 제국의 심기를 거스르는 일과도 같다.

현재 대륙에서 제국이 가진 전력은 가히 압도적이었다.

어느 왕국도 그들의 뜻을 반하고 싶지 않을 터였다.

하물며 프렌치아와 교류하기 위해서 그 위험을 감수하고 싶은 이들은 더더욱 없었다.

우리가 제국의 그림자를 걷어 냈다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누가 보면 우리가 전염병이라도 몰고 온 줄 알겠고만.”

네더만이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뜨거웠던 관심과 달리 우리는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없는 사람 취급을 당하고 있었다. 아니, 오히려 슬금슬금 피하고 있다. 정말이지 우리가 역병이라도 몰고 온 듯한 취급이었다.

“쳇. 옷도 예쁘게 입었는데.”

이리엘이 입을 삐죽였다.

하나, 이들의 이런 반응은 모두 예상한 바이기는 했다.

어차피 즐길 수 있는 분위기도 아니었고.

마치 식탁에 올라온 바퀴벌레 취급을 당하던 우리에게 가장 먼저 다가온 건, 아르에리아 왕국의 대신관이었다.

“안녕하십니까, 프렌치아 귀빈 여러분. 아르에리아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신께서도 여러분의 걸음을 진정으로 축복하고 계시답니다. 저는 대신관, 아로엘이라고 합니다.”

아로엘은 사제복을 입은 노신사였다.

“환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리엘 세어 프렌치아라고 합니다.”

우리는 그와 짧게 통성명을 했다.

그가 말했다.

“파티장 좀 소개해 드려도 될까요?”

“아, 물론이죠.”

대신관은 앞장서서 이 연회장에 담겨 있는 깊은 의미들을 설명해 갔다.

테이블의 배치며 종업원들의 동선, 내온 음식들과 주변을 채우고 있는 크고 작은 조형물까지.

어느 하나 신의 뜻이 담기지 않은 것이 없었다.

정말이지 지루한 시간이었다.

“그럼 편히 즐기십시오.”

대신관은 모든 설명을 끝낸 뒤에 드디어 우리를 놓아주었다. 그제야 우리는 편안히 음식을 즐길 수 있었다.

“정말이지 없던 졸음도 쏟아지는 이야기였네.”

“제가 네더만 씨 조는 걸 깨우느라 얼마나 식은땀이 나던지. 어떻게 서서 주무세요?”

알렌이 사색에 질린 채로 말했다.

“이미 지나간 일 아닌가. 이 빵이나 먹어 보게. 혀에서 녹는 느낌이군.”

“음. 진짜 너무 부드러운데요?”

대신관이 떠나자 우리는 또다시 외딴 섬처럼 파티장을 떠다녔다.

슬금슬금 피하는 이들을 붙잡고 인사를 건네는 것도 우스운 일이었다.

목마른 자가 먼저 우물을 팔 테지.

예상대로 얼마 지나지 않아 한 무리의 사내들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그들의 걸음을 따라 장내가 일순 고요해졌다.

“반갑소. 베솔로인이라고 하오.”

불쑥 다가와 인사를 거는 중년의 남자.

희끗한 새치를 가진 갈색 머리칼의 사내였다.

걸음걸이와 턱을 살짝 치켜든 모양새, 깔보는 눈빛 그리고 말투까지.

그저 마주한 것만으로도 그의 마음속에 뭉쳐 있는 자부심과 오만을 느낄 수 있었다. 이리엘은 드레스 자락을 쥐며 공손히 예를 표했다.

“반갑습니다. 이리엘 세어 프렌치아라고 합니다.”

“하아. 어디서 왔나 했더니, 프렌치아에서 오신 분들이셨군.”

그는 마치 몰랐다는 척 시치미를 떼며 말을 이었다.

“이거 섭섭하기 짝이 없소. 진즉에 찾아오지 않고 어찌 내가 먼저 인사를 하게 한단 말이오.”

“대신관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인사가 늦었습니다.”

“허어. 어버이가 먼저 인사하는 법도는 대륙에 없다지만, 내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 주겠소.”

어처구니없는 말이었다.

면전에서 프렌치아를 속국 취급하고 있었다.

프렌치아를 깔아뭉개는 무례한 태도인 동시에 우리를 깡그리 무시하는 태도였다.

이리엘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그럼요. 대륙에 어버이가 먼저 인사하는 법도는 없지요.”

네더만이 그 말을 듣고는 술잔을 들며 픽 웃었다.

어버이가 아니니 먼저 인사하지 않았다는 의미였다. 이리엘은 제법 부드럽게 대응하고 있었다.

후작은 아무렇지 않게 말을 이었다.

“그래도 법도는 아는가 보오.”

“무슨 말씀이신지요?”

후작의 적나라한 모욕에 이리엘은 화를 꾹꾹 눌렀다.

“말 그대로요. 나는 프렌치아 사람들이 기본적인 법도도 모르는 자들인 줄 알았거든.”

후작의 입꼬리가 싸늘하게 가라앉는다.

조금이나마 체면치레하던 낯빛과는 전혀 다른 얼굴.

오만했던 표정 위로 혐오의 감정이 실린다.

우리를 하찮은 벌레 보듯 바라보는 시선이었다.

이리엘 또한 그것을 느끼고 낯빛을 굳혔다.

“말씀이 지나치시군요.”

“지나치기는. 제국과 프렌치아의 합병은 합법적인 절차로 이루어졌소. 그런데 법도를 모르는 작자들이 아직도 프렌치아가 제 나라라며 강제 점거하고 있지 않소. 그것이 법도를 아는 자들이 할 만한 행위란 말이오? 그렇다면 참으로 파렴치한 작자들이 아닐 수 없지 않소.”

적나라한 멸시에도 이리엘은 입꼬리를 억지로 올려 보였다. 저들이 무뢰배처럼 굴더라도 우리 쪽에서는 평정심을 유지해야 했다.

“목에 칼을 들이밀고 한 합병이 합법적인 절차라는 이야기는 처음 듣는군요.”

“하. 천민도 아니고 어느 왕족이 목에 칼을 들이민다고 합병을 하겠소. 프렌치아의 왕가는 지조도 없단 말이오?”

이리엘의 어깨가 움찔거린다.

“합병의 동의는 프렌치아의 왕족의 뜻이 아니었지요.”

당연한 이야기였다.

합병 이전에 모두를 처형했으니.

그 또한 그것을 모르지 않았다.

“그렇다면 당신은 진짜 왕족이 아니겠군.”

“제국의 폭정으로부터 봉기하기 위해 세운 새로운 왕가입니다. 기존의 프렌치아의 뜻을 그대로 잇고 있지요.”

“푸하하하하.”

후작은 별안간 커다랗게 폭소했다.

그러고는 이내 웃음을 뚝 그치며 말을 이었다.

“출신도 불분명한 자들이 왕족을 참칭하다니. 도적 떼가 나라를 차지한 것과 다르지 않은 상황이구려.”

“제국을 밀어낸 봉기를 도적 떼라 치부하신다면 제국의 얼굴에 침을 뱉는 행위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제국을 밀어냈다? 녹색의 오로라로 인해 얻은 행운에 취해 머리가 어떻게 되었나 보군. 세계 정상회담이 끝나는 동시에 아르에리아 조약 또한 끝이 나는 것을 알고 있을 거라 믿소. 과연 도적 떼가 차지한 나라가 제국의 힘을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을는지 궁금하구려.”

대륙의 모든 왕국의 인사들이 지켜보고 있음에도 그는 멸시를 멈추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적나라한 태도는 귀족으로서 제 얼굴에 침을 뱉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하나, 그것은 제국의 힘을 증명하는 일이기도 했다. 지금의 제국은 그만큼 무소불위의 힘을 갖고 있었다.

그 누구도 그의 무례를 탓하지 못할 만큼.

“제국은 그간 있었던 패배는 기억하지 못하는가 봅니다.”

이리엘이 끝까지 미소를 머금은 채 말했다.

“과오를 반추하지 못하면 같은 결과를 얻으실 수 있으니 경계하시지요.”

조금의 물러섬 없는 설전.

칼만 뽑지 않았지 두 나라는 명백한 적의를 주고받고 있었다.

일대의 분위기가 급격히 냉각되자 상황을 파악한 대신관이 저편에서 다급히 걸어왔다.

후작을 호위하던 자가 그런 대신관의 움직임을 힐끗 보더니 앞으로 나섰다.

“제가 나설 자리는 아니지만, 프렌치아의 검이 날카롭다는 이야기는 무수히 들었습니다. 허락해 주신다면 이번 기회에 한번 견식해 보고 싶군요.”

사전에 후작과 약속된 행동임이 분명했다.

수가 빤히 보였다.

감정적으로 도발한 뒤 건네는 대련 요청은 피하기 어려운 덫일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팽팽히 대립하고 있던 상황.

이 제안을 거절하고자 한다면, 지금까지 고개를 빳빳이 든 꼴이 단번에 우스워지는 일이었다.

그들이 우리를 어떻게 망신을 주려는지가 한눈에 보였다.

우리 중 흰 사자가 없다고 판단했기에 본인들의 전력이 앞선다고 생각했겠지.

사실이기는 하다.

나와 네더만을 제외한다면 그들의 전력이 압도적이니.

프렌치아에서 고르고 골라 정예를 데리고 왔다지만, 제국의 정예들에 비할 바는 될 수 없었다.

물론 지금 우리 상황에서는 오히려 쌍수를 들고 환영할 제안이었다.

본인들이 제 발로 구렁텅이로 들어오겠다는데 말릴 이유가 있나.

“친선을 위해 간단한 검술 대련 정도는 괜찮지 않겠습니까.”

베솔로인 후작이 말했다.

우리에게 한 말이 아닌 대신관에게 한 말이었다.

마침 자리에 도착한 대신관은 난감한 미소를 지었다.

“두 나라가 합의한다면 제가 왈가왈부할 사안은 아닌 거 같군요. 하나, 혹시나 과열될 수 있으니 저희 쪽에서 돕도록 하겠습니다.”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과열될 일은 없을 겁니다. 박수도 손뼉이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법 아닙니까. 어떻습니까? 프렌치아의 검을 견식시켜 주시겠습니까?”

후작의 싸늘한 시선이 우리를 향한다.

적나라한 도발.

거절할 테면 거절해 보라는 의미였다.

승낙하면 승낙하는 대로, 거절하면 거절하는 대로 그들은 우리를 짓밟을 준비가 되어 있을 터였다.

이리엘이 말했다.

“제국의 검을 견식할 수 있는 기회를 거절할 수는 없지요.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습니다.”

* * *

다음 날.

성기사들이 사용하는 연무장에는 각국의 인사들부터 아르에리아 왕국의 성기사들과 사제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제국에서 오늘 있을 대련을 아주 열심히 홍보해 준 탓이다.

“이거 뭐 난리도 아닌데?”

네더만은 빼곡하게 들어찬 관중석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무슨 축제라도 벌일 작정인가?”

그의 말대로 검투장에라도 온 것 같았다.

이번 친선 대련에 관해 모르는 이가 없게 할 작정인가 본데.

자신들의 승리를 백이면 백으로 보고 있는 듯했다.

“하 참! 우리를 무시해도 정도가 있지!”

이리엘은 그런 그들의 확신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눈에 불을 켰다.

하나, 그들의 자신감이 터무니없지는 않았다.

현재 제국의 호위대장을 맡고 있는 자는 파케 오슬란.

‘광란의 검’이라 불리는, 제국의 정점에 선 기사라고 한다.

세간의 평가는 그를 네더만보다 몇 수 위로 보고 있었다.

그러니 전승을 자신할 수밖에.

내가 말했다.

“알렌, 네가 가장 먼저 나간다.”

“예? 제가요?!”

난데없이 지목당한 알렌이 기함을 토했다.

본래는 데리고 온 기사단 중 한 녀석을 뽑을 생각이었지만, 불현듯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저들의 콧대를 더욱 잘근잘근 짓밟을 만한.

“제네스 님, 아까 점심을 잘못 드신 건 아니-.”

빡!

“끄악!”

“어차피 누가 나가도 못 이겨.”

냉정하게 판단했을 때 그랬다.

전체적으로 보면 제국의 기사들의 실력이 월등했다. 어차피 누가 나가도 질 거, 이왕이면 확실히 하는 게 좋겠지.

“호오! 아주 작정하고 버리는 패구만.”

내 생각을 이해한 네더만이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을 토했다.

“하긴 이왕 버릴 거면 제대로 버려야지. 그래야 상대가 눈이 회까닥 돌아서 따라오는 법이거든.”

* * *

프렌치아의 대진표를 확인한 후작은 미간을 찌푸렸다.

“이 자식들이 쓸데없는 수를 썼군.”

적들의 순서가 예상과 달랐다.

가장 강한 용 사냥꾼의 대련 순서가 두 번째였다.

파케를 이길 수 없음을 직감하고 초반에 승부를 볼 작정인 듯했다.

“한심한 놈들. 그런다고 이길 수 있을까.”

후작은 그 모습이 오히려 기껍게 느껴졌다.

어떻게든 이기려는 그들의 발악이 우스운 탓이다.

그것들이 발버둥을 치면 칠수록 짓밟는 맛이 살 터였다.

“어디 한번 발악을 해 보거라.”

녀석들이 아무리 기를 써 봐야 전력의 차이는 확연하다.

이 대련의 결과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