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 후 천하제일인이 되어 귀환했다-201화 (201/228)

제201화

제201화 2년 후 (3)

네더만은 루시안과 정원을 걷고 있었다.

루시안이 말했다.

“준비는 잘 돼 가고 있습니까.”

“물론이지요. 전하의 오른팔인 재상께서 두 눈을 어찌나 시퍼렇게 뜨고 지켜보시는지 동전 한 닢 빼돌릴 수가 없지 뭡니까.”

현재 레오니랜서의 기사단장인 네더만은, 세계정상 회담으로 떠나는 여정에 관한 준비 또한 함께 맡고 있었다. 최대한 적은 인원으로 움직일 생각이었음에도 여정이 길다 보니 일정에 관해 준비할 일이 많았다.

“다행히 잘 진행되고 있군요.”

“예. 이제 그 자식만 오면 될 듯합니다.”

네더만이 말한 그 자식이 누군지 루시안 또한 잘 알았다.

“곧 도착할 때가 됐을 겁니다.”

임무 완수 서신을 받았다. 거리를 생각했을 때 슬슬 도착할 때가 다가오고 있었다.

네더만은 깊게 한숨부터 내쉬었다.

“하. 이제 좋은 날도 다 갔군요. 아마 성질이 더 더러워졌을 게 분명합니다. 준비를 단단히 해 놔야겠습니다.”

루시안이 씩 웃으며 말했다.

“세실리아도 간혹 찾아 주세요. 근래 네더만 씨를 찾더군요.”

“아. 왕비께도 문안 인사를 드린 지가 꽤 됐군요. 떠나기 전에는 들르겠습니다.”

둘은 정원을 산책하며 계속해서 대화를 이어 갔다.

회담 이후에는 정세가 급변하게 될 터였다.

미리 나눠야 할 이야기들이 많았다.

“그럼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이야기는 정원을 두 바퀴 돌고 나서야 모두 끝이 났다.

네더만은 공손히 묵례하며 걸음을 물렸다.

루시안과 헤어지고 걷는 왕궁.

과거 총독부의 잔재는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이곳에 총독부가 있었다는 것도 믿기지 않을 정도.

패망하기 전의 왕궁의 분위기가 떠오를 정도로 따뜻하고 평안한 분위기다.

그 안락함 속을 걷고 있던 네더만은 누군가에게 손을 흔들었다.

“공주께서 여기는 어쩐 일이십니까?”

이리엘이 황당하다는 듯 그를 바라보았다.

“그건 제가 할 말 아닌가요? 여기는 제 정원인데요.”

“아, 그렇군요.”

네더만이 능글맞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사실 좋은 소식 좀 전해 드리려고 왔습니다.”

“기대는 안 되네요.”

“제네스가 곧 도착한다는군요.”

“피. 그게 무슨 좋은 소식이라고.”

이리엘은 점잔을 빼며 콧대를 높였다.

하지만 무심한 태도와 달리 그녀는 재빨리 되물었다.

“그래서 언제쯤 온다는데요.”

“레논시에서 마지막으로 서신을 보냈다고 하더군요. 이제 도착할 때쯤 되지 않았겠습니까.”

“레논시요?!”

이리엘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왜요? 레논시에서 떼먹힌 돈이라도 있습니까.”

“베론이요! 베론이 거기 있어요! 나만 빼놓고 자기들끼리!”

이리엘은 볼을 부풀리며 눈을 사납게 떴다.

“아. 그 아이요.”

베론을 실제로 본 적은 없지만 네더만 또한 베론에 대해 잘 알았다.

알렌이 나불거리는 이야기를 듣다 보니 자연스레 알게 된 사실이었다.

“네! 하. 나도 진짜 보고 싶은데. 아르에리아로 가는 길에 레논시를 들를 수는 없을까요?”

“안타깝게도 불가합니다.”

이리엘은 입술을 꾹 물었다.

“칫. 그 소식 전해 주려고 여기까지 온 거예요?”

“허. 언제는 제네스 님이 지금 어디 있는지 좀 알아봐 달라고 그렇게 닦달을 하시더니, 이제 와 왜 그러십니까. 공주님께서 봄바람을 탄 깃털처럼 이랬다가 저랬다가 팔랑거리시니 제가 심히 당혹스럽습니다.”

“제, 제가 뭘요!”

이리엘은 벌겋게 물든 얼굴로 소리쳤다.

지금까지 네더만에게 했던 말들이 떠오른다.

하긴. 자신이 생각해도 굉장히 집요하게 물었었지.

이미 체통을 지키기에는 한참이나 늦은 걸 깨달은 그녀는 재빨리 말을 돌렸다.

“뭐, 제 생각을 해 줬다니 고맙네요. 그럼 호위 인원은 다 꾸려진 건가요?”

“물론이죠. 제가 누굽니까.”

“그 누구도 아닌 네더만 경이라서 물어보는 거예요.”

“제가 그렇게 신뢰가 없는 사람이었나요?”

“몰랐어요?”

“생전 처음 듣는 얘기로군요. 뭐, 여정이 길고 험난한 탓에 최대한 적은 인원으로 구성할 겁니다. 제네스 녀석이 함께 가는 한 기사들의 머릿수는 의미가 없기도 해서요. 공주님께서도 공주님을 보필할 시녀는 한 명으로 준비해 주십시오.”

“그렇게 하죠.”

세계정상 회담.

이리엘은 프렌치아 왕가의 대표로 그 회의에 참석하게 될 터였다.

네더만의 말을 듣고 시녀 하나가 손을 번쩍 들었다.

“저요! 제가 함께 갈게요!”

이제 소녀티를 막 벗은 듯한 주황 머리칼의 시녀.

유리아였다.

그녀는 궁정 집사를 맡게 된 하라브를 따라 궁에 들어와 생활하고 있었다.

이리엘이 말했다.

“위험할 텐데 괜찮겠어?”

“어휴, 걱정 마세요! 제가 아니면 누가 우리 공주님을 보필하겠어요!”

유리아가 두 주먹을 가슴 앞에서 쥐며 의욕을 보였다. 이리엘이 불안한 눈빛으로 네더만을 보았다.

“제국에서 움직이겠죠?”

“사실 그럴 확률이 높습니다.”

세계정상 회담에 프렌치아가 참석하려는 걸 제국 쪽에서 보고 있을 리만은 없었다.

어떤 식으로든 방해하려 할 터였고, 그것에 가장 좋은 방법은 대표인 이리엘을 암습하는 것.

사실 매우 위험한 일정이었다.

그럼에도 이리엘이 이 여정에 선택된 건, 그녀가 가진 상징성 때문이었다.

지금의 그녀는 루시안을 대신해 프렌치아 왕가의 뜻을 대변할 수 있는 사람이니까.

“그래도 제네스가 있지 않습니까.”

하지만 호위 기사에는 제네스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 누가 그를 넘어 이리엘에게 검을 들이밀 수 있겠는가.

“그렇기야 하죠.”

“하지만 그렇다고 안심할 수는 없습니다.”

제국 또한 제네스의 무력을 잘 알고 있다.

그 누가 모르겠는가.

무한의 속검을 벤 대륙 제일검이자, 대륙 최초의 그랜드 소드 마스터.

현재 제네스의 위명은 온 대륙을 뒤흔들고 있었다.

만약 그들이 이리엘에 대한 암습을 마음먹는다면, 결코 호락호락한 전력으로 덤벼들지는 않을 터였다.

“아군에게도 적군에게도 괴물 같은 놈 아닙니까.”

“네더만 경에게는 그렇겠지요.”

이리엘이 씩 웃으며 말했다.

네더만에게나 괴물 같은 놈이지, 프렌치아에서 그는 하늘과 다름이 없었다.

“허. 많이 달라지셨습니다. 그 녀석의 고약한 성격을 벌써 잊으신 겁니까.”

“잊을 리가요.”

틈만 나면 추억하는 날들이었다.

함께 설거지하며 제네스를 욕하던 그날들.

지금 생각하면 참 그립다.

“동의하는 바예요. 아군에게도 적군에게도 아주 괴팍한 사람이죠.”

“역시 기억하고 계시군요. 이제야 제가 아는 공주님답네요.”

간만에 의기투합하는 둘이었다.

“알렌 형님도 함께 오고 있겠죠. 보고 싶네요.”

“그 녀석 이야기를 들어 주려면 최소 이틀은 고생해야 할 겁니다.”

“그렇겠죠. 혼자 얼마나 고생이 많았겠어요.”

혼자서 제네스의 까탈을 감당하고 있을 알렌만 생각하면, 등골이 오싹해지는 그들이었다.

* * *

“너는 더 쉬다 와.”

내가 말했다.

우리의 앞으로는 페르펜시가 놓여 있었다.

알렌이 죽고 못 사는 데이지가 머무는 도시였다.

“예? 저, 정말이십니까?”

알렌이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래도 일주일 후에는 출발해야 할 거다.”

“……제네스 님.”

알렌이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눈을 글썽였다.

“제네스 님이 저를 이렇게나 생각해 주실 줄이야.”

“허구한 날 비루먹은 강아지처럼 골골대는 걸 보는 게 더 고역이다.”

페르펜시가 가까워져 올수록 어찌나 감상에 빠져드는지.

그 꼴을 보기 싫어서라도 보내 줄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마그네트로 돌아가면 얼마 안 있어 세계정상 회담을 위해 아르에리아로 떠나야 한다.

그때까지 우리가 따로 준비할 일은 없었다.

조금이라도 데이지와 시간을 보내라지.

“간혹 이렇게 사람의 심금을 울려 주시니 제가 제네스 님의 괴팍한 성격도 다 감수할 수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정말 사-.”

빡!

“끄악!”

쯧. 하여간 꼭 맞을 짓을 해요.

알렌은 제 머리통을 부여잡은 채로도 히쭉히쭉 웃어 댔다.

얼마나 좋은지 입이 귓가에 걸려 내려오지를 못한다.

“적당히 놀고 돌아가겠습니다. 아직 제가 있어야 할 곳은 제네스 님 옆이니까요.”

나는 손을 휘휘 저으며 녀석을 쫓아냈다.

“좋은 말로 할 때 가라.”

“혼자 갈 수 있으시죠?”

“가기 싫으냐?”

“그럼 수도에서 뵙겠습니다아-!”

알렌이 꼬리에 불붙은 말처럼 순식간에 멀어지고, 나 또한 마그네트로 말 머리를 돌렸다.

그렇게 도착한 마그네트.

2년 만에 돌아온 수도는 떠나기 전과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전쟁의 잔상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고, 도시에는 생동감이 흘러넘쳤다.

“어때? 많이 달라졌지?”

루시안의 말이었다.

나는 왕의 집무실에서 루시안과 대면하고 있었다.

“좋아 보이더군.”

정말 정신없이 흘러간 2년이었다.

하지만 달라진 건 생각보다 많았다.

프렌치아가 빠르게 과거의 모습을 되찾고 있는 건, 나 외에도 수많은 이들이 각자의 역할을 위해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내가 말했다.

“제국의 움직임은 어때.”

“아직은 조용해. 수상할 정도로.”

황제는 더 이상 회귀할 수 없음을 알게 되었을 터였다.

확실히 전보다 신중히 움직이겠지.

“세계정상 회담에 이리엘을 보낼 생각이야.”

“쉽지 않은 결정이었겠네.”

제국 쪽에서 프렌치아의 행보를 탐탁지 않게 여길 게 빤한 일.

분명 방해 공작을 해 올 터였다.

그럼에도 여동생 바보인 녀석이 이리엘을 선택했다.

그만한 적임자가 없었겠지.

프렌치아의 왕가를 호위하는 흰 사자.

그것에 관한 상징성이 더욱 무거워질 수 있을 터였다.

그 누구도 대륙 제일검이 받드는 왕국을 쉬이 대할 수는 없을 테니.

“네가 있으니까. 이번에도 잘 부탁한다.”

“어련할까.”

“세부적인 일정은 네더만 경과 대화를 나누면 될 거야. 모두 그에게 일임했으니.”

“그렇게 하지.”

나는 루시안에게 세계정상 회담의 전반적인 일정에 대해 들었다.

그리고 그 이후에 벌어질 이야기들에 대해서도.

점차 나라의 명운이 갈릴 전쟁의 그림자가 밀려오고 있었다.

내가 말했다.

“회담이 끝나면 곧장 제국 쪽으로 가려고.”

“가능하겠어?”

언제나처럼 돌아오는 물음이었다.

내 대답 또한 한결 같았다.

“물론.”

적어도 이제 프렌치아의 내부에서 문제가 발생할 일은 없다.

나라를 팔아먹은 것들의 목은 모두 베었다.

내가 살아 있는 한 제국 쪽으로 변절할 놈은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이대로 루시안이 왕위를 이어 간다면 프렌치아는 금세 과거의 영광을 넘어설 수 있을 거다.

이로써 프렌치아에서의 내 역할은 마무리가 되었다.

이제 나의 칼끝은 나라 밖을 향하게 될 터였다.

내가 말했다.

“황제의 목을 베고 올게.”

나는 왕의 집무실을 나섰다.

거처로 가는 길.

왕궁의 정원이 널따랗게 깔려 있다.

나는 과거 루시안에게 검이 되어 주겠다고 다짐했다.

이제 그 길의 끝이 다가오고 있었다.

황제는 지금까지 만났던 산 중에 가장 높은 산이 될 터였다.

하지만 그뿐.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처음 발렌시아 대륙에 떨어졌을 때, 마음만 먹었다면 바로 황제의 목을 벨 수 있었다.

하나 그렇게 하지 않은 건, 황제의 목을 베는 것보다 프렌치아가 홀로 우뚝 서는 것이 더 우선이었기에 그리하지 않은 것뿐이었다.

내 목적은 단순한 복수가 아닌, 국민들에게 나라를 되찾아 주는 것이었으니까.

그런 나의 무력은 진즉에 하늘에 닿아 있었다.

하지만 태산은 아무리 드높아도 하늘에 닿지 못한다.

황제의 목은 이 걸음의 끝에서 바닥에 떨어지게 될 터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