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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후 천하제일인이 되어 귀환했다-200화 (200/228)

제200화

제200화 2년 후 (2)

프레디와 체스와 작별한 우리는 마그네트로 향했다.

곧장 갈 생각은 아니었다.

가는 중에 들를 곳이 있다.

모든 일을 마무리하고 귀환하는 길, 지금까지와 달리 여유가 있었다.

지나가는 길이기도 했고.

“하. 베론 녀석 많이 컸겠죠?”

“거의 3년이 흘렀으니.”

베론을 레논 보육원에 맡긴 지 시간이 벌써 그리되었다.

아이니까.

금방 자랄 테지.

“저보다 크진 않았겠죠? 하하.”

재미도 없는 농담은 가벼이 무시했다.

“하. 기억이 새록새록 하네요! 베론이 납치당했을 때 정말 많이 놀랐었는데. 또 그전에 까마귀 기사단과 조우했을 때, 제가 아주 훌륭한 임기응변으로 위기를 멋지게 넘겼었죠.”

알렌이 크테러산맥을 지나며 과거를 추억했다.

체즈웬과는 완전히 반대 방향에서 레논시(市)를 향하고 있었지만, 녀석은 마치 이 길을 지나가기라도 했던 것처럼 향수에 젖어 있었다.

녀석의 말을 들으니 나도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알렌은 계속해서 주절거렸다.

“그때 진짜 힘들었었는데. 저랑 이리엘이랑 정말 거지꼴 아니었습니까. 거지도 저희 앞에서 명함을 내밀지 못했을 거라구요.”

레논시로 향하던 길.

훈련을 시킨답시고 몬스터 처리를 두 녀석에게 맡겼었다.

마땅히 씻을 곳도 없었고, 갈아입어도 옷이 금방 더러워지는 탓에 며칠 동안 몬스터의 피를 뒤집어쓴 몰골로 레논시에 도착했었지.

그들의 몰골은 내가 봐도 인정할 만큼 거지꼴이었다.

“갑자기 또 이리엘이 보고 싶네요. 잘 있겠죠?”

“공주 대접 받으면서 잘 있겠지.”

일국의 공주로서 그에 걸맞은 교양과 품위를 배우고 있을 터였다.

공작가의 자제였으니 쉬이 따라가겠지.

“이리엘한테는 오히려 그 모습이 잘 어울리기는 해요.”

알렌이 아련한 눈빛을 했다.

“그래도 문득문득 이리엘이 생각나는 거 있죠. 혼자서 까탈스러운 제네스 님을 보필하고 있으니 제 몸과 마음이 남아나겠습니까. 이제는 익숙해지기는 했지만. 진짜 이리엘을 만나면 하소연할 일들이 한두 개가 아닙니다.”

나는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금세 본인의 실책을 깨달은 알렌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하하. 그 뭐냐, 그러니까 제 말은 그게 아니라요.”

“됐고, 앞이나 잘 봐.”

“아. 옙!”

빡!

“끄악!”

저 멀리 레논시가 보이고 있었다.

말발굽이 여유로이 바닥을 두드렸다.

그리고 우리는 금세 보육원 앞에 서 있었다.

쇠창살로 이루어진 커다란 문.

기억하고 있던 모습과 그대로다.

문을 지키던 이가 쇠창살 사이로 얼굴을 보였다.

“누구시오.”

“원장님을 만나러 왔습니다.”

“약속하고 온 게요?”

“베론을 보러 왔다고 하면 아실 겁니다.”

문지기가 떠나고 잠시 후.

저 멀리서부터 집사가 부리나케 뛰어오고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이쪽으로 오시지요. 원장님은 기다리고 계십니다!”

과할 정도로 반갑게 맞이하는 그를 따라 도착한 집무실.

복슬복슬한 턱수염을 가진 원장, 클로스가 있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허허. 어서들 오시게.”

전에 봤을 때처럼 건강한 모습이었다.

“이제 함부로 쳐다볼 수도 없는 인사들이 됐군.”

집사가 과할 정도로 우리를 떠받들었던 이유였다.

그들은 내가 흰 사자인 걸 모르지 않았다.

“그간 무탈하셨습니까.”

“나야 덕분에 잘 지냈네. 세상이 참으로 좋아지고 있어. 이렇게 맑고 화창한 프렌치아는 정말이지 오랜만일세.”

그의 눈길이 창가를 향했다.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이 기다랗게 펼쳐져 있었다.

“그 덕분에 아이들의 꿈이 달라지고 있다네. 베론도 마찬가지고.”

그는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

“언젠가는 다들 독립군이 꿈이었거든.”

아이들은 꿈을 잃었다.

이 나라에는 더 이상 독립군이 존재하지 않으니까.

앞으로도 그럴 터였다.

알렌이 말했다.

“베론은 잘 지내고 있나요?”

“물론일세.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네. 많이 밝아졌고, 이제는 또래 아이들하고도 잘 어울리고 있지.”

“다행이네요. 볼 수 있을까요.”

“물론일세.”

원장은 씩 웃었다.

“자리를 마련해 주겠네. 우리는 이따 저녁 식사를 함께 하도록 하지. 자네들이 온 것을 알면 반가워할 사람이 더 있거든.”

우리는 원장과 간단한 인사를 마치고 집사를 따랐다.

도착한 곳은 교실이었다.

아이들이 한곳에 모여 공부를 하고 있었다.

우리는 복도에 난 창가를 통해 그들을 보았다.

“저기 있네요. 짜식.”

알렌이 한 곳을 바라보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나 또한 이미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베론이 반짝거리는 눈망울로 칠판을 바라보고 있었다.

야무지게 펜을 잡고 필기하는 모습이 기특하다.

아홉 살.

또래보다 작았던 베론은 어느새 훌쩍 자라 있었다.

또래와 비교해도 작지 않을 정도로.

하지만 검은색 곱슬머리에 동그란 눈은 여전했다.

우리는 베론의 수업이 끝날 때까지 따로 마련된 방에서 그를 기다렸다.

그리고 잠시 후.

타다다닥!

복도에서 다급한 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오는 이.

“헉…… 헉…….”

베론이 문고리를 잡고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우리를 본 아이의 눈은 못 볼 것이라도 본 것처럼 크게 뜨여 있었다.

“베론!”

알렌이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아, 알렌 삼촌…… 제네스 님…….”

우리를 번갈아 본 녀석의 눈가가 금세 눈물로 가득 차오른다.

“으아아앙!”

울면서 달려온 녀석을 알렌이 품에 안았다.

“너무 보고 싶었어요!”

“나도 보고 싶었어! 잘 지냈지?!”

알렌 또한 베론을 품에 안고는 눈물을 글썽였다.

애나 어른이나.

울보가 둘이었다.

“이리엘은 사정이 있어서 못 왔어.”

“……아쉽지만 어쩔 수 없죠. 그래도 알렌 형님이랑 제네스 님이 오셔서 너무 좋아요!”

“나도! 베론 봐서 엄청 좋아!”

둘은 동시에 나를 바라보았다.

답을 요구하는 눈빛이었다.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

알렌의 물음에 베론은 기다렸다는 듯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재잘거렸다. 그 얼굴에 그늘은 보이지 않았다.

“하하. 진짜?”

알렌은 맞장구를 쳐 주면서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하지만 어느새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건 알렌이었다.

언제나처럼 내 이야기였고, 우리가 지금까지 걸었던 이야기였다.

나는 재미도 관심도 없는 그 이야기를 오랜만에 잠자코 들었다.

마치 전래동화를 듣는 것처럼 흥미진진한 표정의 베론을 가만히 지켜보며.

아이의 꿈은 이제 행정관이라고 했다.

나라를 위해, 국민을 위해 일하고 싶다고.

나는 베론의 이야기를 듣고, 프렌치아가 달라지고 있음을 다시금 선명히 느꼈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해가 저물며 노을이 지고 있었다.

“이제 곧 식사 시간입니다.”

집사가 조심스레 말했다.

지금까지 말하고도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신 알렌이 고개를 끄덕였다. 베론도 아쉬운 듯 입을 모았다.

“못다 한 이야기는 식사 후에 해 줄게!”

“네네! 꼭이에여! 저 안 자고 있을게요!”

알렌은 새끼손가락을 걸며 고개를 끄덕였다.

베론과 헤어지고 식당으로 가는 길.

알렌은 도박장에서 한탕 한 사람처럼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정말 뿌듯해 죽겠어요. 이리엘도 봤으면 좋았을 텐데. 베론이 저렇게나 밝게 자라고 있다니.”

이리엘 또한 베론을 많이 보고 싶어 했으니 그랬을 테지.

달라진 베론을 보고 감격했을 터였다.

나 또한 아이의 달라진 모습이 신기했으니까.

식당의 문을 열자, 익숙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음하하하하! 이거 너무 반갑고만!”

반짝거리는 머리통을 가진 사내가 우리를 보자마자 식당이 떠나가라 웃어 댔다.

얼굴을 보지 않고 웃음소리만 들어도 누군지 알 수 있을 듯했다.

말투만 봐도 그렇고.

“정말이지, 오랜만에 보는 산 남자들이구만! 잘들 지냈나! 자네들의 이야기를 다 듣고 있었네!”

“크래커 씨!”

알렌 또한 그를 보며 화들짝 놀랐다.

“산채는 어쩌고.”

내 물음에 크래커는 호탕하게 웃었다.

“음하하! 산채는 무슨! 산채에서 내려온 지 꽤 되었다네. 이 근방에 정착했지. 농경지도 받았고 말이야. 다들 열심히 경작하고 있다네. 다 자네 덕분이지. 음하하하!”

그의 얼굴은 환해 보였다.

하긴 제국군도 없는 마당에, 굳이 더 이상 깊은 산속에 머물 이유는 없을 테지.

“정말이지 이런 날이 올 줄이야. 황금 들녘을 조만간 볼 수 있을 거라고! 내 꿈이 눈앞에 있달까? 그러니 얼마나 기쁘겠는가. 다들 구름을 걷는 기분이라고. 나와 함께 우리의 들판에 가 보겠나? 다들 자네들이 오면 좋아할 걸세.”

“됐다.”

내가 말했다.

“바쁘다.”

굳이 들를 일은 없었다.

“허. 그거 참 아쉽구만. 대신 오늘 거하게 한잔해야지!”

“엇. 저는 베론이랑 약속이 있어서여.”

알렌이 입맛을 다시며 아쉬워했다.

크래커와 만날 생각을 못 했을 테지.

“하. 그거 아쉽구만. 제네스 자네는 어때?”

“맛있는 술이라도 가져왔나?”

“물론이지! 내가 술 잘 담그는 거 알지 않나. 이제 ‘산’ 남자가 아니라 ‘들’ 남자가 되었지만 말이야. 움하하하하!”

‘들’ 남자가 되더니 어째 더 정신이 사나워진 거 같다. 그렇게 소란스러웠던 식사 자리가 끝나고, 알렌과 원장은 먼저 자리를 떴다.

나는 크래커와 단둘이 술잔을 기울였다.

“다시 한번 고맙다고 말하고 싶구만.”

“쓸데없는 소리는 여전하군.”

“자네 덕분에 얻은 게 너무 많아.”

그의 눈빛은 무언가를 아릿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솔직히 포기하고 싶었으니까.”

막내, 포르틴의 배신.

그에게는 상당한 충격이었을 테지.

그만큼 믿고 의지하던 이였으니까.

“정말이지 힘든 시간이었어. 그전부터 그랬지. 나라를 잃고 보낸 10년. 매일을 전쟁 속에서 살았다네. 끊임없이 죽이고 죽고, 죽어 나가고. 그 끝에서 자네를 만났지.”

술은 사람에게 감정을 더하게 한다.

그는 술과 감정에 취해 있었다.

“정말이지 요새는 매일이 즐거워. 제국 놈들의 꼬라지 보지 않는 것만으로도 웃음이 절로 터져 나온다고. 그놈들의 목이 교수대에 주렁주렁 달렸었다네. 나라를 팔아먹은 놈들, 또 그 밑에서 손바닥을 비비던 놈들, 모조리 목이 주렁주렁 열렸지. 열매처럼 말이야.”

그의 입가가 씩 올라간다.

“어찌나 속이 시원하던지. 가슴 안의 응어리가 뻥 뚫리던 기분이더만. 이츠리엘 그 자식이 뒈졌다고 했을 때도 이렇게 시원하지는 않았다고.”

술병을 기울인 그는 거칠게 입가를 닦았다.

“다들 그래. 이제야 이 나라가 제대로 돌아가고 있다고.”

악한 이가 처벌받는다.

죽어 마땅할 이가 죽어 나간다.

그것이 사람들에게 힘을 주었다.

“제국과의 전쟁이 곧 있을 거 알고 있네. 나도 참전하려고. 가만히 여기서 땅만 파고 있을 수는 없지! 이 들 남자가 말이야! 산 남자였던 이라면 응당 나라를 위해 싸워야 할 게 아닌가!”

나는 가만히 술병을 기울였다.

크래커뿐만이 아니었다.

수많은 이들이 검을 쥘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것이 두려워도, 그랬다.

이제 프렌치아의 국민은 모두 알고 있다.

자신들이 잃어버렸던 게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나라를 잃는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다들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나라를 되찾기 위해 검을 들었던 이들은.

이제 나라를 지키기 위해 검을 들 준비가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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