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4화
제194화 세계의 그림자 (2)
떠들썩한 연회가 이어지고 있었다.
도시 중앙의 공터에서 모두 연회를 즐겼다. 모험가들을 환영하는 연회라는데 본인들이 제일 신났다.
나는 그 광경을 구경하는 아스라낙을 가만히 보았다.
루시안과 비슷한 또래였다.
나이가 서른쯤 되었으려나.
그가 말했다.
“너무 뚫어지게 보는 거 아닌가. 내가 인물이 어디서 빠지지는 않지만, 남자에게는 관심이 없어서.”
“소해에는 왜 온 거지?”
“의심이 많은 친구로군. 말했잖은가. 프렌치아로 가는 중이었네. 여행길이었지. 와중에 태풍에 휩쓸린 것이고. 왜? 여기 내가 노릴 만한 먹음직스러운 거라도 숨겨 놓았나?”
유독 날이 선 내 태도가 오히려 그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듯했다.
이들의 전반적인 대화를 보면 태풍에 휩쓸려 우연히 도착한 건 맞는 듯했다.
함께 온 이들의 면면도 그렇고.
한 가닥 하는 이들이라지만 기사의 수가 고작 열세 명.
회귀의 권능이 가지는 무게를 생각했을 때, 병력의 질과 양이 현저히 떨어졌다.
만약 그 힘을 강제로라도 얻을 생각이었다면 더 많은 병력을 데리고 왔을 테니.
하지만 섣불리 단정할 수는 없다.
이자는 곧 회귀의 권능을 얻을 것이고, 그 일을 족장이 자의에 의해서 할 거 같지는 않으니.
어쩌면 추가 병력이 오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제네스라고 했지? 자네는 여기 어찌 온 겐가. 나야 태풍이 데려다줬다지만 말일세.”
“알 거 없다.”
“하. 이거 대화할 맛이 영 안 나는 친구로군. 나를 꼬시려면 좀 더 적극적이어야 하지 않겠어?”
그는 히쭉 웃었다.
“황제가 될 생각은 접은 건가?”
“내가 되고 싶다고 될 수 있는 건 아니지.”
“되고 싶기는 한가 보군.”
“누군들 안 그럴까.”
그의 눈동자에서 일순 불꽃이 일렁였다.
“만들고 싶은 나라라도 있나?”
“갑자기 그런 질문을 하는 이유는?”
“그런 거 없다. 그저 황제에 가장 가까이 올라 있던 자이니 궁금했을 뿐.”
“우리가 그 정도로 깊은 이야기를 할 사이는 아닌 거 같은데.”
사실이었고, 당장 들을 생각도 없었다.
내가 말했다.
“언제쯤 떠날 생각이지?”
“한 열흘은 있을 셈이야. 온 김에 주변도 좀 둘러보고 천천히 갈 생각이라. 자네는?”
“네가 떠나고.”
나는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괜한 짓은 안 하는 게 좋을 거다. 목이 달아나고 싶지 않다면.”
“참 예민한 친구군.”
그는 별말 없이 술잔을 들이켰다.
내 무례함에도 낯빛 하나 바꾸지 않을 정도로 그의 얼굴은 두꺼웠다.
* * *
“저 자식, 너무 내버려 두는 거 아닙니까.”
에로인은 멀어지는 제네스를 쏘아보며 이를 갈았다.
황자의 정체를 알고 있음에도 반말을 찍찍 내뱉고 고개를 빳빳이 세우고 있었다.
“수상하기 짝이 없는 자입니다. 전하의 정체도 단번에 알아보지 않았습니까.”
“그렇기는 하지만, 이곳에 온 건 우리야. 제네스는 먼저 와 있었지. 단순히 내 얼굴을 안다고 저자를 의심하기는 섣부르다고. 그가 태풍을 일으킨 게 아닌 이상 말이야. 건방지기는 해도 우리에게 적의는 없잖나. 열흘은 머물러야 하는데 괜히 껄끄러워질 필요 없지. 그 또한 이곳의 손님이니.”
아스라낙은 근심이라고는 하나 없이 웃으며 춤추는 움파움파족을 바라보았다.
괜한 분란으로 그들의 웃음을 지우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수상한 자라는 건 변함없습니다. 우리가 우연히 왔듯 그 또한 우리 뒤를 쫓다가 우연히 왔을 수도 있죠.”
“그럴 수도 있지만, 확률은 낮아. 그랬다면 굳이 저런 식으로 행동할 이유가 없을 테니.”
그는 자신을 경계하는 티를 팍팍 내고 있었다. 말하는 투나 태도만 봐도 쉬이 짐작할 수 있는 사안. 자신을 죽일 암살자였다면 친밀하게 다가오는 게 훨씬 나았을 거다.
“물론, 그렇다고 제네스를 신뢰하라는 건 아니야. 단지 적대하지 말자는 거지.”
경계 대상 정도로만 보라는 이야기였다.
“에로인. 나는 황궁 바깥에서까지 숨 막히게 살아가고 싶지는 않아.”
“……알겠습니다.”
에로인은 깊이 고개를 숙였다.
숨조차 쉬이 내쉴 수 없는 황궁에서 평생을 외줄 타듯 살아온 황자였다.
이렇게 편안한 표정의 황자는 그 또한 처음이었다. 그의 시선은 여전히 움파움파족을 바라보고 있었다.
“특히나 오늘은 더 즐겁지 않나.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해져.”
건망증이 상당하기는 하지만, 재밌는 자들이었다.
아스라낙은 세상에 동떨어진 이곳에서 편히 쉬고 싶었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아무런 긴장도 없이.
“그래서 나는 이곳이 마음에 들어.”
* * *
나는 다시 제단의 입구로 돌아와 앉았다.
잠시 지켜본 아스라낙은 이곳에서 살육을 벌이거나 허튼짓을 할 것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딱히 회귀에 대해 알고 있는 바도 없는 것 같고.
그렇다면 그는 어떻게 회귀의 권능을 얻게 되는 걸까?
녹색의 오로라가 피어난다고 해도 지금은 인류의 힘으로 충분히 막아 낼 수 있었다.
그러니 그 부분은 아니다.
아마 당시 족장이 그에게 회귀의 권능을 주게 만드는 사건이 있을 터였다.
천천히 기다리면 자연스레 수면 위로 떠오르겠지.
그때까지 나는 이곳에서 그들의 시간이 본래의 흐름대로 흐르도록 가만히 둘 생각이었다.
그리고 9일이 지났다.
어느새 오늘이 가짜 왕세자 녀석이 말했던 기한의 마지막 날이었다.
그것도 이제 몇 시간 남지 않은.
“자네는 매번 여기서 뭐 하나.”
아스라낙은 내 옆에 앉아 말린 고기를 뜯고 있었다.
“움파움파족의 비법이 녹아 있다는군. 맛이 꽤 그럴듯해.”
그는 내게 육포를 내밀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나는 그동안 이 자리를 망부석처럼 지키고 있었다.
지금까지 별다른 일은 없었다.
기파의 파동을 넓게 펼쳐서 마을의 잡음을 잡아내고 있었으나, 어떤 소란도 없이 평화로운 나날이었다.
녀석들은 주변의 숲을 돌며 섬의 생태를 관찰하고 둘러볼 뿐, 별다른 낌새는 보이지 않았다.
움파움파족과도 살갑게 지내고 있고.
그 어디에도 회귀의 권능과 연관된 사건이 벌어질 기미는 보이지 않고 있었다.
가짜 왕세자가 알려 준 제한 시간을 의심했지만, 그가 잘못 알려 줬을 리는 없다.
아무리 멍청해도 그랬다.
그래도 그간의 소득이 아무것도 없던 건 아니었다.
“그래서 황제가 되면 어떤 나라를 만들고 싶은데.”
“정말이지 끈질긴 친구로구만.”
그는 내게 호기심을 느꼈는지 이런 식으로 자주 놀러 와 내 옆에서 알짱거렸다.
덕분에 우리는 9일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깊은 교류를 나눈 건 아니었지만, 최소한 하나의 사실은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위협이 되지 않을 거란 거.
그 또한 내가 자신을 죽이기 위해 온 것이라 생각지 않게 되었고.
나 또한 그가 회귀의 권능을 노리고 이곳에 온 게 아니라는 건 알게 되었다.
하지만 녀석은 틀렸다.
나는 언제든 녀석을 죽일 수 있으므로.
그러나 아스라낙은 생각보다 정신이 제대로 박힌 놈이었다.
부하들을 배려할 줄 알고, 손님으로서 예의를 지킬 줄 아는 자다.
황족으로서 오만한 콧대보다 황족으로서의 묵직한 기품을 간직한 자.
솔직히 황궁에서 치열한 서열 다툼을 겪어 냈음에도 인성의 마모 없이 친절한 사람이 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흐음.”
그는 고민하는 듯했다.
그래서 나는 그것을 덜어 주었다.
“하나의 제국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지?”
“하나의 제국?”
“대륙의 모든 나라를 정벌하는 것이지.”
할렌트의 말을 따르면, 그는 하나의 제국을 추구하고 있었다.
“하나의 제국이라……. 그로 인해 흐를 피를 생각하면 그게 얼마나 가치 있는지는 잘 모르겠군.”
그는 고심하며 말을 이었다.
“하나, 기회가 된다면 가 보고 싶은 길이기는 하지.”
“얼마나 많은 이들이 죽어야 되는지 잘 알 텐데.”
“모르지 않지.”
아스라낙은 흔쾌히 동의했다.
“하지만 지금껏 모든 문명의 성장은 핏물 위에 세워졌지. 몬스터를 몰아내기 위해, 현재의 왕국들이 생겨나기 위해 얼마나 많은 피가 흘렀는지는 너도 알 거 아냐.”
모를 리가 없었다.
인간의 문명은 인간이 흘린 핏물의 깊이만큼 발달했을 터였다.
“그러니 잘 가늠해 봐야겠지. 그것이 그만한 희생을 통해서도 얻을 만한 것인지는.”
그는 생각보다 확고한 의견을 내놓지 않았다. 아직 그가 하나의 제국을 바라보고 있지 않음을 나는 쉬이 알 수 있었다.
“그럼 네가 원하는 나라는 뭔데?”
그는 고개를 돌려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마치 내 의중을 가늠하듯이.
“전부터 그게 왜 그렇게 궁금한 건데.”
“그냥. 황제의 자리를 꿈꿨던 자니까. 어떤 마음이었는지, 어떤 나라를 그렸는지 궁금할 뿐이다.”
“생각보다 정치에 관심이 많나 보군.”
“그냥 네 생각을 묻는 것뿐이야. 그래도 황제가 된다면 어떻게 해야겠다는 생각은 있었을 테니. 없으면 말고.”
그는 픽 웃더니 말을 이었다.
“생각보다 호기심이 왕성한 친구였구만. 있지. 생각했었지. 비록 막내 황자였으나 나 또한 황제의 자리를 꿈꿨으니까.”
아스라낙의 눈빛이 하늘로 향했다.
그의 눈빛이 별을 품은 듯 반짝인다.
이상을 바라보는 자의 눈.
나는 그가 이제야 진심을 말하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나의 제국도 큰 꿈이겠지만, 그보다 만들고 싶은 나라가 내게 있었지.”
왜일까.
나는 닿지 못한 아득한 별을 바라보는 녀석에게서 루시안이 겹쳐 보였다.
“국민이 우선인 나라.”
먼 곳을 좇던 시선이 내게 내린다.
“쉽게 말하면, 국민이 주인인 나라를 만들고 싶었다.”
마음속에 원형의 파문이 인다.
고요한 수면 위로 어디서 날아왔는지 모르는 돌 하나가 떨어졌다.
이 녀석에게 들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말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프렌치아에 온 이유는 따로 있어. 너도 알겠지만, 로드르 헤이어서. 프렌치아의 재상. 그자가 쓴 저서를 봤지. 「국민을 위한 나라는 없다」라는.”
그는 진중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고뇌와 의지가 짙게 묻어났다.
진심을 의심할 수 없을 정도로.
“그것을 보고 많이 배웠어. 그 책을 읽고 처음으로 황제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지. 그런 나라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 가슴이 뛰더군.”
그는 루시안과 로드르 헤이어서와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스라낙 윈 크레본.
그가 대륙을 통일하고 싶은 진정한 이유가 이것에 있었을까?
모르겠다.
그건 알 수 없었다.
눈앞에 있는 이자와 본래의 세계에 있는 황제는 전혀 다른 사람이라고 봐도 무방할 테니까.
눈앞에 이 녀석과 황제를 동일하게 볼 필요는 없었다.
회귀를 통해 본인의 삶을 여러 번 살았다지만, 하나하나 모두 다른 삶이었을 거다.
전생을 한 번 겪은 나 또한 전생의 나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상황은 다르지만 황제 또한 무수한 회귀로 눈앞의 이 녀석과는 완전히 다른 인간이 되어 있을 터였다.
“어때. 이제 내 답이 되었나?”
나는 그것을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그것이 내가 녀석의 목을 베지 않은 이유이기도 했으니까.
그리고 나는 그제야 또 하나의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녀석이 어쩌다 회귀하게 되었는지.
그것이 가늠됐다.
“왜 그러는가?”
아스라낙이 자리에서 일어난 나를 보았다.
내 시선은 저편의 숲을 바라보고 있었다.
도시 너머에서 시끄러운 소음이 빠르게 밀려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