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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후 천하제일인이 되어 귀환했다-182화 (182/228)

제182화

제182화 도착 (1)

내성의 성문은 외성과 달리 네 방향이 아니라, 남쪽에만 위치해 있었다.

적들은 그 한 곳에 쭉 나열된 성문을 뚫기 위해 전력을 퍼붓고 있었다.

프렌치아 왕국군 또한 필사적이었다.

아직 프렌치아에는 내성의 다섯 개 성문이 남아 있었지만, 사실상 이미 승부의 추는 기울어져 있었다.

이대로라면 내성이 뚫리는 건 시간문제였으니.

오호른은 그 전장을 멀찍이서 지켜보고 있었다.

“흰 사자의 소문이 사실인가 보군.”

마그네트에 당도한 지도 벌써 일주일이 넘었다.

외성을 뚫고 여기까지 밀어붙였음에도 흰 사자의 얼굴은 코빼기도 볼 수 없었다.

테이난가에서의 결전 이후 그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큰 부상을 입었다는 소문과 죽었다는 소문이 함께 나돌았다.

적어도 둘 중 하나는 진실인 듯했다.

“힘을 아껴 봐야 별 의미 없겠어.”

이 정도까지 왔는데 반응이 없으니, 전장을 빠르게 마무리하는 게 낫겠다.

“이제 전면에 선다.”

오호른의 말과 함께 그의 뒤로 서 있던 글리머 기사단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후방에서 전장을 지켜보고만 있던 그들이었다.

흰 사자를 위해 대기하던 전력이었으나 턱밑까지 검을 들이밀었음에도 녀석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더 이상 그를 기다릴 이유가 없었다.

이제 이 의미 없는 소모전을 끝내고 프렌치아의 국기를 끌어 내려야 한다.

“우와아아-!”

“글리머-! 글리머-!”

글리머 기사단이 출전하자 그를 본 제국군들이 일제히 함성을 내질렀다. 그와 반대로 성벽 위에서 분투하고 있던 프렌치아 왕국군의 낯빛은 딱딱하게 굳었다.

“드디어 움직이는구나, 이 빌어먹을 것들. 가만히 구경이나 하고 있을 것이지.”

리포드가 송곳니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옆에 있던 드라칸이 어깨를 풀었다.

“잘됐지. 안 그래도 몸이 근질거리던 참이니.”

여태 적들과 정면으로 부딪치지 않았다. 이대로 허무하게 무너지느니 차라리 화끈하게 붙는 게 드라칸의 성미에 맞았다.

“방심들 하지 말라고. 잠깐의 틈만 보여도 목이 날아갈 수 있으니까.”

네더만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개인적인 역량이야 자신들이 우위에 있지만, 적들은 대륙에서 손꼽히는 전력을 가지고 있었다. 셋이 힘을 모아도 막아 내는 건 불가능하다.

“일단 내려가자고.”

네더만이 체념한 듯 말했다. 저들이 나선 이상 성문은 뚫릴 것이다. 그 아래서 그들을 맞이하며 퇴각을 준비해야 했다.

콰과과광-!

성벽 앞에서는 몬스터 형태의 석상들이 제국군들을 상대하며 분전하고 있었다.

성벽을 지키는 가디언들.

극상의 보안 마법이었다.

제네스가 그들을 맞이하지 않고 지나간 덕분에 그것들은 다행히도 제대로 작동하고 있었다.

하나, 그것도 잠시일 뿐.

쿠과과과광!

글리머 기사단이 나서자 석상들은 맥없이 으스러지기 시작했다. 그 모습만 봐도 적들의 검세는 매서웠다. 여유를 간직하던 네더만의 얼굴에도 짙은 그림자가 일었다.

“더럽게 팔팔하네. 이거 가능한 거요?”

“모르지.”

리포드의 물음에 네더만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리포드가 송곳니를 드러내며 쓰게 웃었다.

“이거 자칫하면 여기서 뒈질 수 있겠구만.”

* * *

“곧 성문이 무너질 겁니다……. 더 이상은 무리일 것 같습니다.”

혁명의 칼의 간부였던 스타치의 말이었다. 그 보고에 루시안은 고개를 묵묵히 끄덕였다.

결단이 필요했다.

“여기서 물러서야 하는가…….”

제네스가 언제 올지 기약을 알 수 없는 데다 이미 다들 지친 상태. 더 이상 시간을 끌다가는 모두 죽는다. 하나, 그렇다고 여기까지 와서 도망친다면 다음을 기약하기는 어려웠다.

“흰 사자가 있으니, 다시 되찾을 수 있을 겁니다.”

“그럴 수는 있겠지.”

제네스가 있다면 언젠가는 다시 마그네트를 수복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느 세월에?

이대로 수많은 이들을 버리고 살아남아 무엇을 이룰 수 있을까?

프렌치아에서 다시 이만한 전력을 모을 수 있을까?

사실 불가능한 일이었다.

네더만부터 드라칸, 리포드를 포함한 기사들.

그리고 지금까지 죽은, 또 앞으로 죽어 갈 병사들.

역전의 동력은 힘을 잃고 말 것이다.

제네스의 무력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한들, 그랬다.

다시 그 불꽃을 일으킬 힘을 소실할 터였다.

애초에 그것을 감수한 작전이기도 했다.

“일어나자.”

루시안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여기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아도 레이크는 루시안이 어떤 결단을 내렸는지를 알았다.

“일단 다들 다음 성문으로 퇴각하라고 해. 함께 싸운다.”

루시안의 표정은 굳건했다.

“우리에게 다음은 없어. 여기서 버티자. 죽더라도 이 자리에서 죽을 거야.”

“네, 알겠습니다.”

제네스가 언제 올지 모른다. 어쩌면 그가 올 때까지 버티지 못할 수도 있다. 아니, 그가 와도 이미 돌이킬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나, 루시안은 이곳에 남기로 했다.

뒤는 없었다.

“마그네트를 지켜 보자.”

이 마그네트를 수복하기 위해 수많은 피가 흘렀다. 그리고 이 마그네트를 지키기 위해 지금도 수많은 피가 흐르고 있다.

프렌치아는 다시 이 정도의 힘을 가지지 못할 터였다.

승부를 건 이상, 확실히 맺어야 했다.

적어도 아직은 마그네트를 버릴 때가 아니었다.

당장에 방도는 하나.

버티는 것뿐이다.

“여기가 우리의 마지막이라도.”

“마지막은 무슨.”

낯선 목소리가 끼어든 건 그때였다.

회의실 내부가 아닌 밖에서 들려온 목소리.

모두의 시선이 문가로 모였다.

얼굴 위로 모여 있던 비장함이 빠르게 흩어지고 있었다.

끼익.

문이 열리며 등장하는 이를 보며 루시안은 하마터면 아이처럼 소리를 지를 뻔했다.

“……제네스.”

목이 빠져라 기다리던 존재가 그 앞에 있었다. 제네스는 언제나처럼 못마땅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이군. 왕이란 녀석이 그리 체통이 없어서야.”

“지금 이 상황에 내 체통보다 중요한 게 많아서 말이야.”

루시안은 그 어느 때보다 밝게 웃었다.

“내가 너무 늦었나?”

“아니, 제때 왔다.”

“그거 다행이네.”

제네스가 시큰둥하니 말을 받았다.

“괜찮겠어?”

루시안의 물음에 제네스는 코웃음을 쳤다.

“바보같이 싸울 힘 하나 남기지 않고 달려왔을까.”

루시안은 쉽사리 답할 수 없었다.

검은 숲에서부터 마그네트까지.

그 거리를 이렇게 짧은 시간에 주파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잠시도 쉬지 않고 달려왔을 거다.

전력을 다했을 테지.

먼지를 뒤집어쓴 그의 몰골이 그랬다.

체력적으로 부담이 될 수밖에 없음을 알았다.

그럼에도 그에게 기댈 수밖에 없었다.

제네스는 언제나처럼 꼿꼿했다.

“하늘에 프렌치아 국기가 걸려 있더라.”

“덕분이지.”

제네스가 이전에 국기를 걸었던 그 자리에 프렌치아 국기가 펄럭이고 있었다.

“두 번 내릴 수는 없지.”

제네스가 슬쩍 미소 지으며 말했다.

“회포 풀어야지. 기다리고 있어. 불청객들은 쫓고 올 테니.”

“그래.”

루시안은 미안하다는 말을 삼키며 마주 웃었다.

그에게 너무 많은 기대를 거는 것 같아서.

그에게 기대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미안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웃었다.

녀석이 원하는 말은 사과가 아니니까.

“부탁한다.”

“다녀오마.”

그가 몸을 돌렸다.

그런 제네스를 보며 루시안은 안도감을 느꼈다.

여전히 수없이 많은 병력이 성문 앞에 깔려 있음에도 그랬다.

이 기분은 뭘까?

어떻게 한 사람의 존재감이 이리 거대할 수 있을까?

그 어떤 풍파도 이 남자를 지나 자신에게 불어닥치지는 못할 것 같았다.

어떤 재앙도 그를 넘어서지는 못할 것 같았다.

치열했던 현실이, 지독히 무거웠던 현실이 한 폭의 그림을 보듯 멀어진다.

마치 들이친 폭풍을 창 안에서 구경하듯.

적들의 위협이 아득히 멀게만 느껴졌다.

* * *

콰아아앙-!

폭발하듯 쏘아진 오러가 성문을 세차게 두드렸다.

풍차가 돌아가듯 기사들의 전열이 시계 방향으로 회전하며 오러를 쏘아 대고 있었다.

쿠구구구구!

성문이 그 충격을 버티지 못하고 세차게 떨렸다. 금방이라도 터져 나갈 것처럼 잘게 떨리는 성문을 보며 리포드가 말했다.

“들어와 봐라, 이 개자식들아.”

“다들 죽지 말고 재주껏 살라고. 벌써 포기하기에는 인생이 덧없지 않나.”

네더만의 말에 드라칸이 창대를 움켜쥐었다.

“고작 여기서 죽을 거였다면, 진즉에 뒈졌을 거요.”

“너무 무리들 하지 마. 어차피 못 막아. 병사들이 최대한 퇴각할 수 있도록 시간을 벌어 보자고.”

성벽에 올라 있던 병사들 또한 퇴각하고 있었다.

여기서 전면으로 붙는 건 개죽음이나 다름이 없었다.

저들을 막아 내는 건 사실 불가능하니까.

“그러니 알아서 살아남으라고.”

“언제부터 그리 책임감이 넘치셨소.”

리포드가 입을 빼쭉거렸다. 평소 네더만의 행실을 봤을 때는 제일 먼저 내뺐어야 맞았다. 드라칸이 옆에서 말을 보탰다.

“사람이 변하면 뒈질 때가 돼서 그렇다던데.”

“빌어먹을 놈들. 그러게 말이다, 내가 왜 이 고생을 하고 있는지. 젠장. 왕관이 사람을 만든다더니 애새끼들 버리고 가기가 쉽지는 않네.”

네더만 또한 어느새 달라진 자신을 쉬이 알아보았다. 자신은 책임감과는 거리가 아득히 먼 사람이었으니까.

그런데 어깨 위에 하도 뭐를 많이 얹어 놔서 도저히 떨쳐 버릴 수가 없다.

“하긴. 혼자일 때와 지금이 같으면 그게 사람 새끼요.”

드라칸이 맞장구를 치자, 리포드는 황당하다는 듯 말했다.

“저 인간이 언제 사람 구실을 제대로 했는지 알아?”

쿠르르릉!

그때 성문이 세차게 울었다. 성문의 떨림이 더욱 심해지고 있었다. 벽의 이음새에서 부서진 잔해들이 뿌연 연기처럼 흘러나왔다.

그리고 이내.

콰아아아앙-!

커다란 굉음과 함께 성문의 잔해가 폭죽처럼 터져 나갔다.

그것과 함께 밀어닥치는 돌풍.

팔을 들어 눈을 가린 네더만은 자욱이 연기가 깔린 장내를 바라보았다.

“…….”

잠깐의 소강상태가 인다.

미친 듯이 밀어닥칠 거라는 예상과 달리 적들은 고요했다.

“?”

전장에 어울리지 않는 고요함에 모두 눈을 가늘게 뜨며 자욱한 먼지를 노려보았다. 먼지가 천천히 흩어지며, 그 안에 담긴 전경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었다.

“?”

다들 눈가에 물음표가 떠올랐다.

하나의 그림자가 성문 앞에 있었다.

그 윤곽이 선명함을 더하는 것에 따라, 그를 지켜보던 이들의 눈동자도 더없이 커져 간다.

“서, 설마.”

네더만의 얼굴에 급 화색이 돌았다.

너무나도 익숙한 뒷모습이기 때문이다.

너른 성문을 막기에는 작은 몸.

하나 그 존재감은 성문을 넘어, 일대를 두른 성벽보다 드높이 세워지고 있었다.

한 사람의 등장이 전장의 상황을 반전시킨다.

패배와 퇴각을 직감했던 전황이 단숨에 일변했다.

어둠에 잠겨 있던 전장 위로 기다란 햇볕이 비쳐 드는 듯했다.

“썩을 놈.”

네더만은 씩 웃었다.

그 빛이 얼마나 강렬한지, 어둠에 잠겨 있던 승리의 희망이 눈앞으로 선명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더럽게도 늦게 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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