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2화
제172화 나라를 위하는 국민 (8)
이른 아침.
프렌치아 국기가 펄럭이는 총독부의 성문 앞으로, 총독 아르멜의 목이 효수되어 있었다.
시간이 지나도 하강하지 않는 국기를 보며 사람들은 헛것이라도 본 듯 두 눈을 비볐다.
어젯밤 소란이 있었다는 건 알았지만, 그 결과는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특히나 저편에 제국군의 존재가 버젓이 있기에 더욱이 그랬다.
“……내 생애, 프렌치아 국기가 저 위에 걸리는 걸 다시 볼 줄이야.”
“독립군이 승리한 거라고!”
사람들은 승리의 기세를 타고 테나스타 광장으로 더욱 몰려들었다.
광장이 가득 차니 대로변에도 프렌치아의 국기를 든 이들이 긴 행렬을 이루었다.
여전히 제국군이 시퍼렇게 눈을 뜨고 있음에도 그랬다.
“프렌치아 독립 만세-!”
“프렌치아 독립 만세-!”
시민들의 함성이 마그네트를 들썩이고 있었다.
“저 은혜도 모르는 새끼들!”
마그네트에 주둔하고 있는 군단, 드래곤 발톱의 군단장 헤즐릿은 엄한 책상을 뒤집어엎었다.
“저것들을 기필코 찢어 죽일 것이야!”
꽉 쥔 주먹이 부르르 떨린다. 뒷목이 빳빳하게 당겨 왔다.
동문과 내성에 적들이 있었다.
제국군 입장에서는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상황.
지금 이 난관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판단이 쉽지 않았다.
우당탕탕!
헤즐릿은 집무실 내부를 뒤집어엎으며 생각했다.
일단 서부에서 오고 있는 지원군이 있다. 그들이 도착한다면 적들 또한 뒤를 잡히게 되는 셈. 뭣 같은 상황이기는 하나 아직 급할 건 없었다.
적은 동문에서는 바리케이드를 세웠고, 총독부를 점령한 것들은 성문을 단단히 걸어 잠그고 있었다.
적극적으로 달려들 생각이 없는 거다.
아마 자신들이 달려들기를 기다리는 거겠지.
그렇다면 먼저 나설 이유가 없다.
며칠 후면 지원군이 도착할 테니까.
일단은 그것을 기다리면서 상황을 지켜보-.
“군단장님!”
다급히 달려온 부관으로 헤즐릿의 생각은 이어질 수 없었다. 한바탕 고성을 지르려던 그는 하얗게 질린 부관의 얼굴을 보며 언성을 낮췄다.
“무슨 일이야?”
“서부에서 오던 병력들이 흰 사자가 이끄는 군대에 격퇴당했다고 합니다…….”
“뭐라!”
“현재 시내에 소문이 쫙 퍼졌습니다.”
헤즐릿의 얼굴이 종잇장처럼 구겨졌다.
지원군이 박살 났다니.
흰 사자의 전력을 생각했을 때, 지금까지 등장하지 않은 게 이상하다고는 생각했었다.
“이런 개같은 X끼들.”
적들이 성문을 닫고 배짱을 튕기는 이유가 있었던 거다.
이렇게 된 이상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었다.
적어도 흰 사자를 필두로 한 군대가 마그네트에 도착하기 전까지 내성이든 동문이든 수복을 해 놓아야 했다.
상황은 적들이 유리했지만, 아직 승패가 기운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제국군의 병력은 건재했다.
반면에 독립군의 병력은 태반이 정규군이 아니었다.
적의 기습으로 상황이 이렇게 됐지만, 정면으로 부딪친다면 그들을 충분히 압도할 자신이 헤즐릿에게는 있었다.
문제는 적들이 성문을 걸어 잠그고 있다는 건데.
적들을 밖으로 끌어낼 수만 있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을 터였다.
한참을 숙고한 헤즐릿은 마침내 결단을 내렸다.
“테나스타 광장에 프렌치아 국민들이 몰려 있다고?”
“광장뿐만이 아니라 대로변에도 난리가 아닙니다.”
헤즐릿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자리를 잡고 있는 적을 뚫기란 쉽지 않다. 그러니 녀석들을 밖으로 끌어내야겠지.
“그들을 모두 해산시켜라. 말을 듣지 않는 새끼들이 있으면 죽여도 좋다.”
“저항이 만만치 않을 텐데요.”
“칼도 쥐지 않은 것들이야. 저항하는 놈들은 모조리 목을 베도록.”
적의 사기는 하늘을 모르고 치솟아 있었다.
지금 상황에 공성전을 하는 건 여러모로 불리하다.
그러니 저들을 끌어내는 수밖에.
그 방법은 간단했다.
저들이 소중히 여기는 것들이 지천에 널려 있으므로.
두두두두-!
헤즐릿의 명을 따라 대로를 병사들이 달렸다.
그들은 만세를 부르짖는 국민들을 강제로 해산하기 시작했다.
“프렌치아 국기를 든 자는 모두 목을 벨 것이다!”
“당장 해산하라-! 반항하거나 따르지 않는 자는 모조리 죽이겠다!”
“무슨 말이오! 우리가 우리의 도시에서 무엇을 외치든 자유가 아니오!”
“맞소!”
“당신들이 무엇인데 하지 마라요!”
예상대로 시민들의 반발은 심했다.
그동안 민심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강압적인 행동을 취하지 못했다.
거기에 독립군까지 총독부를 차지했으니, 프렌치아 국민들의 기세가 하늘을 찌를 듯했다.
이젠 눈앞에 검도 두렵지 않나 보다.
그래서 베었다.
촤-악!
권리를 따지던 이의 몸에서 붉은 핏물이 치솟아 올랐다.
생을 잃은 이가 풀썩 쓰러졌다.
“…….”
일순 주변에 내리는 정적.
검을 휘두른 자가 피가 묻은 얼굴을 들어 올렸다. 그제야 그의 목소리가 사람들의 귓가에 가까워졌다.
“이 프렌치 새끼들은 꼭 처맞아야 정신을 차리지! 지금부터 저항하거나 명령을 따르지 않는 놈은 모조리 목을 벨 것이다! 뒈지고 싶지 않으면 집에 처박혀 있어!”
제국군의 호령이었다.
“다 밀어 버려!”
검을 쥔 이들이 달려들자, 시민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저항하거나 앞을 막는 자들도 있었으나, 제국군은 맨몸의 그들을 잔혹하게 살해했다.
“꺄아악-!”
“다들 도망쳐요-!”
비명과 고함이 일순간에 대로변을 장악하기 시작한다.
망설임 없는 칼날이 거리에 떨어지고 있었다. 그것은 잠깐이나마 기쁨으로 물들었던 수도에 찬물을 뿌렸다.
“오늘만 수없이 많은 이가 죽어 나갔다네. 이러고 있을 순 없네. 애꿎은 국민들만 죽어 나가고 있어!”
하라브의 다급한 음성에 레이크는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그를 바라보았다.
“성문은 열리지 않을 겁니다.”
적과의 전면전은 승패를 장담하기 어렵다. 만약 승리한다고 해도 그 피해는 막심할 터. 후에 도착할 지원군을 막을 저력이 없을지도 모른다.
또한, 수도를 수복한다고 해서 전쟁이 끝나는 것도 아니니.
최대한 병력을 아껴야 했다.
“그렇다고 이렇게 두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지 않나. 우리가 불러들인 이들일세.”
시위가 이토록 번진 것은 모두 자신들의 공이었다. 시민들을 선동하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많은 이들이 거리에 나오지 않았을 것이고, 애꿎은 이들이 죽을 이유도 없었다.
“어쩔 수 없습니다.”
레이크의 답은 건조했다.
“……자네는 예측하고 있었군.”
하라브의 표정이 싸늘히 굳는다. 레이크의 답변은 이미 이 상황을 들여다본 자의 것이었다.
그는 시민들을 선동할 때부터 지금과 같은 상황을 염두에 두었던 것이 틀림없었다.
레이크는 별다른 답을 하지 않았다.
“그때까지, 죽게 될 국민들은 그냥 두겠다는 건가?”
“그게 최선입니다.”
“허…….”
사실 시간적으로 여유로운 건 제국군이었다.
지원 병력이 오고 있었고, 내성과 동문의 일부를 빼앗겼다지만 전력은 독립군보다 우위에 있었다.
병사들의 수는 독립군이 많았지만, 그것은 허수에 불과했다.
만약 이 상태대로라면 적들은 굳이 피해를 감수하며 공성전을 벌일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흰 사자가 지원군을 격퇴했다는 거짓 정보를 흘렸다.
촉박해진 이들은 결국 시민들을 미끼로 사용하려 할 터.
하지만 그것에 독립군이 반응하지 않으면 그것은 오히려 벌집을 건드리는 일과도 같다.
시민들의 저항이 더욱 거세지면 적들은 더욱 조급해질 테고, 결국 피해를 감수하며 공성전을 벌이거나 퇴각할 터였다.
현 상황으로는 공성전을 벌일 확률이 가장 높았다.
이렇게 무력하게 퇴각하지는 않을 테니.
한편, 루시안 또한 지금과 같은 상황에 대해 보고를 들은 상태였다.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쉽지 않군.”
그는 발코니에 서서 전장의 흔적이 남은 왕궁을 내려다보았다.
이 작전을 구상했을 때부터 시민들의 피해는 예정되어 있었다.
루시안은 그들을 위해 움직이지 않을 터였다.
우스운 일이었다.
국민을 위한 전쟁이라 말하고 있지만, 그 전장에서 승리하기 위해 국민의 죽음을 방관하고 있으니.
그들의 죽음은 오롯이 루시안의 결정에 의해 나왔다.
전쟁이란 그렇게 모순투성이였다.
나라를 위해 싸운다지만, 결국 국민을 위한 일이라지만, 그 안에서 소모되고 상처받고 부서지는 것 역시 국민들이었다.
수많은 이가 죽어 나갈 거다.
그리고 그 아픔은 이 땅 위에 깊게 뿌리내리겠지.
그렇기에 그 끝은 반드시 승리여야만 했다.
‘미안하다.’
전쟁에 승리하기 위해 자신이 포기한 목숨들이었다.
보다 적은 피해를 입으며 완전히 승리하기 위해서 루시안은 이 길을 택했다.
-독립하면 뭐가 달라지기라도 하나?
-그것을 위해 흐르게 될 피는? 그것을 위해 죽게 될 이들은? 모두 하잘것없는 자들의 목숨일 테지.
드라칸의 목소리가 귓가에 윙윙 울렸다. 그를 설득해 냈지만, 그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어차피 전쟁의 피해자는 또 다른 국민이었다.
작은 것을 희생하여 큰 것을 얻는다는.
전쟁의 기본.
피 흘리지 않는 전쟁은 없다.
그리고 그 전쟁에서 작은 것이 되는 건 언제나 국민들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전쟁은 피할 수가 없었다.
루시안은 멀리 시선을 두었다.
‘정말 미안하다…….’
그곳엔 국가를 위해, 독립을 위해 힘없이 죽어 나가는 국민들이 있었다.
루시안은 그들에게 말했다.
‘나라를 위해 죽어다오.’
차마 밖으로 내뱉을 수 없는 말.
왕이 될 자로서 염치가 없는 말.
그들의 죽음이.
전쟁의 모순과 그 처절함이.
모두 그의 어깨 위로 쌓이고 있었다.
이제 자신은 왕이었다.
하나 인정해야 한다.
모두를 위한 세상은 없다.
모두를 위한 나라도 없다.
오직, 나라를 위하는 국민만이 있을 뿐이다.
왕은 그들이 흘린 핏물 위에 새로운 나라를 세울 뿐이었다.
그것이 왕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루시안은 왕으로서의 명백한 한계를, 그저 묵묵히 견뎠다.
그렇게 2일이 지났다.
내성은 여전히 굳건히 문을 닫고 대기하고 있었다.
그사이 국민들의 불만은 더욱 세차게 끓어오르고 있었다.
그들의 화살은 제국군을 향했다.
이미 평원을 뛰어놀았던 그들에게 고삐를 다시 채운다고 열기가 가라앉을 리 없었다.
그 상황에 발등에 불이 떨어진 건 오히려 제국군이었다.
이제 곧 흰 사자가 올 터였다.
그가 도착하기 전에 내성을 수복하고 동문의 병력까지 밀어내려면 지금부터 움직여야 했다.
헤즐릿은 결국 시간에 쫓겨 결단을 내렸다.
“전군 돌격하라-!”
제국군들은 한때 총독부였던 자신들의 내성을 향해 진군하기 시작했다.
“우와아아-!”
필사적인 공성전이 벌어졌다.
시간에 쫓긴 제국군은 득달같이 달려들었고, 독립군들 또한 전력을 다해 적들을 맞이해서 싸웠다.
총독부의 성벽은 높았고 성문은 단단했다.
흰 사자를 막기 위해 들였던 노고가 독립군을 지켜 주고 있었다.
하루가 지나고 다시 이틀이 지났다.
지루한 소모전이 이어지던 공성전.
아군도 적군도 계속되는 전투에 지쳐 있을 때, 동문의 바리케이드가 치워졌다.
선두에 선 드라칸이 적의 후미를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자! 아군을 만나러 가자!”
두두두두!
공성전으로, 시민들의 항쟁으로 지칠 대로 지친 제국군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사기도 곤두박질치고 있는 상황.
전장의 향방이 완전히 기운 것이다.
그리고 다시 처절한 전장이 있었다.
제국군 또한 분투했지만, 이미 적들의 군세가 안팎으로 들이닥친 상황.
전장의 결과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퇴각하라-!”
“모두 퇴각하라-!”
그들은 마그네트를 버리고 퇴각하기 시작했다.
“우와아아아-!”
그들의 뒤편에서 승리의 함성이 하늘을 찢을 듯 울려 퍼졌다.
퇴각한 제국군들의 행렬이 기다랗게 이어졌다.
“뭐, 뭐야?”
그리고 그들은 격퇴당하지 않고 멀쩡히 진군하고 있는 지원군을 확인할 수 있었다.
“대, 대체 어떻게?”
건재한 아군의 기다란 행렬을 보며 헤즐릿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체통도 위엄도 지킬 여력이 없었다.
독립군에게 완전히 속았음을 깨달은 탓이다.
“……하.”
헤즐릿은 허망함에 헛웃음을 터트렸다.
가만히 있었어도 될 일을, 적의 계력에 빠져 말아먹고 만 것이다.
지원군의 병력은 3만에 이르렀다.
자신들의 병력은 2만.
합치면 5만에 이르는 병력이지만, 마그네트의 성문은 적들의 병력보다 5배가 넘어가야 했다.
사기까지 바닥을 친 지금의 병력으로는 턱도 없었다.
적에게 완전히 패배한 것이다.
그렇게.
프렌치아 임시정부는 수도 마그네트를 완전히 수복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