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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후 천하제일인이 되어 귀환했다-170화 (170/228)

제170화

제170화 나라를 위하는 국민 (6)

동문이 폭발했을 때, 루시안은 호레인숲에 있었다.

현재 마그네트는 모든 성문을 닫은 채 스스로 봉쇄한 상황이었다. 그들은 독립군이 호레인숲 내부에서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지 전혀 눈치채지 못할 터였다.

절그럭, 절그럭.

고요한 숲에는 갑옷이 맞물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병사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줄지어 이동하고 있는 독립군의 선두가 푸르게 일렁이는 장막을 넘고 있었다. 장막 너머에는 석벽으로 이뤄진 복도가 기다랗게 뻗어 있었다.

루시안은 멀찍이서 그 푸른 막을 바라보았다.

“꿈에도 생각 못 했을 테지.”

그것은 다름 아닌 총독부와 연결된 지하도의 입구였다.

과거에는 왕세자가, 최근에는 가짜 할렌트가 이용했던 비밀 통로.

보통은 결계 마법으로 보호되어 있어 들어가는 것이 불가능하지만, 이미 한 번 제네스에 의해 갈라진 적이 있었기에 그것을 해체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현재 이 길의 존재를 알고 있던 이들은 제네스를 제외하고 모두 죽었다.

덕분에 루시안은 외성과 내성을 동시에 공략할 수 있었다.

정확히는 외성은 미끼.

진짜는 바로 이쪽이었다.

그렇기에 지금 내성으로 들어가는 병력은 정예 중의 정예만을 결집해 두었다.

각 파벌의 간부진부터 오래전 망명했다가 돌아온 기사까지.

독립군의 정수가 곧 방심한 총독저로 밀어닥칠 터였다.

“워워. 딱 때마침 도착한 거 같고만.”

말을 타고 등장한 이는 네더만이었다. 그의 뒤를 리포드, 이리엘 또한 함께 따르고 있었다.

“수고하셨습니다.”

루시안이 말했다. 네더만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이 정도야 기본 아니겠습니까. 다녀오면 명주나 주십시오.”

루시안은 픽 웃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다녀오지요.”

네더만과 리포드는 곧장 총독저로 들어가는 무리에 합류했다.

오늘 밤 총독부를 장악해야 했다.

느긋하게 휴식할 여유는 없었다.

왕궁의 비밀 통로는 일곱 명이 나란히 서면 가득 찰 정도로 좁았으나 길었다.

1만에 이르는 병력이 들어가려면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정예라 한들 이 정도의 병력으로 총독부를 장악하는 건 과거였다면 어림도 없는 일일 터였다.

하나, 지금이라면 가능했다.

많은 병력이 구멍 난 성문을 메꾸기 위해 지원을 갔을 터이고, 총독부가 자랑하던 특임대는 제네스에게 모두 전멸한 상태다.

거기에 까마귀 기사단 또한 스티스시에서 제네스에게 궤멸당한 상태였고.

게다가 제네스가 총독부를 홀로 꿰뚫는 과정에서 수많은 기사가 죽어 나갔다.

지금의 총독부는 이빨 빠진 사자와 다름이 없었다.

오늘, 총독부는 무너질 것이다.

* * *

“뭐라! 동문이 날아갔다니!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

아르멜이 화살을 맞은 노루처럼 펄쩍 뛰었다. 그의 낯빛이 하얗게 질려 간다. 핏기 하나 없이 창백한 얼굴이었다.

그럴 만도 했다.

성문이 날아갔다니.

“외성의 성문이 얼마나 단단하거늘! 그 성문이 어떻게 부서져! 흰 사자가 온 것이야?!”

“그, 그게, 내부에서 부수었다고 합니다.”

“뭐라?”

아르멜의 눈썹이 사납게 뒤틀리자, 소식을 가지고 온 병사가 지금까지 벌어진 일들을 재빨리 설명했다.

“이런 빌어먹을!”

쾅!

분통을 터트린 아르멜의 주먹질에 책상이 반으로 쪼개졌다. 아까 전 성문 강화를 지시했냐는 확인 요청이 있어 불안하기는 했지만, 이게 이런 사달을 불러일으킬 줄이야. 간덩이가 제대로 부은 종자들이었다.

“멍청한 새끼들이! 고작 가짜 공문에 놀아났단 말이냐!”

동문을 경비하고 있는 경비대를 힐난한 그가 말을 이었다.

“그래서 지금 상황은 어떻게 되고 있어!”

“일단, 성문 앞까지 병력을 빼내어 적들을 막고 있다고 합니다.”

“알았다. 총독부의 병력도 지원을 보내도록 해라.”

“예. 알겠습니다!”

그는 총독부의 지원을 요청하러 온 병사였다.

일단 성문을 단단히 막아야 한다.

날개가 달리지 않는 한 그들이 외성을 넘어 내성으로 올 수 있을 리는 없을 테니까.

일단 적들을 밀어내야 성문을 보수할 수 있을 터였다.

“성문을 보수하는 데는 얼마나 걸린다더냐!”

“아무리 빨라도 이틀은-.”

“장난해! 오늘 하루! 내일 저녁이 오기까지 무조건 막아야 한다!”

아르멜의 호령에 병사는 고개를 깊이 숙이고 갔다.

오늘 밤만 적들의 공세를 버티면 내일은 그래도 성문에 기대어 공성전을 벌일 수 있을 터였다.

아니, 반드시 그렇게 되어야 했다.

피해가 상당하기는 하겠지만, 그것은 적도 마찬가지일 터.

“후우.”

아르멜은 호흡을 가다듬으며 놀란 가슴을 진정했다. 흥분해서는 될 일도 그르치는 법이었다.

일단 흰 사자가 등장하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여유가 생겼다.

심정 같아서는 당장 프렌치아를 도망치고 싶지만, 그럴 수도 없다.

어차피 뒤는 죽음.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켜 내야 했다.

다행히 흰 사자도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으니. 무한의 속검을 이긴 뒤, 깊은 내상을 입었다는 소문이 사실일 수 있었다.

아직 단언할 수는 없지만, 이 전장에 흰 사자가 등장하지 않을 가능성도 배재할 수 없었다. 하나 그것은 그저 바람일 뿐.

최강의 전력을 가만둘 리 없지.

그를 언제 어떻게 활용할지 모르니 더 불안했다.

성문을 넘어 자신의 목을 따러 올지도 모를 일 아닌가.

“후우.”

아르멜은 몸을 떨었다. 안 그래도 불안한 상황에 성문까지 박살 나니 적의 칼날이 턱 끝까지 치고 올라온 듯하다.

“침착하자, 침착해. 마그네트의 성벽은 드높다.”

아르멜은 천천히 마음을 다스렸다.

아직 적들이 내성에 쳐들어온 것도 아니지 않은가.

마그네트의 드높은 성벽에 기댄다면 충분히 수성이 가능할 터였다.

전장이 길어질수록 불리해지는 건, 오히려 저들이었다.

피노센과 테이난에서의 패배로 전력의 구멍이 생겼지만, 여전히 프렌치아 국토에는 제국군이 상주해 있었고, 그들 또한 마그네트로 달려오는 중이었다.

지원군이 도착하게 되면 적들은 앞뒤로 제국군을 상대해야 했다.

그러니 그때까지만 버티면 되는 것이다.

길어야 일주일이려나.

“그래. 그 정도면 충분하지.”

생각이 정리되자, 머릿속이 차분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폭발음이 들려온 건, 그가 차 한 잔의 여유를 즐길 수 있을 만큼 평안을 힘겹게 찾았을 때였다.

콰앙-!

갑작스러운 폭발음과 함께 흔들리는 건물.

“뭐, 뭐야?”

아르멜은 당황한 채 허공을 두리번거렸다. 잘못 느꼈다고 하기에는 너무나 선명했지만, 오히려 자신의 감각을 의심하게 되었다.

총독저에 그 정도의 폭발이 있을 만한 이유가 없었다.

하나, 잠시 후 들려오는 고성이 그를 현실로 끌어당겼다.

옅게 들려오는 비명과 고함.

그리고 병장기가 맞부딪치는 소리.

전장의 소리였다.

“!!!!”

그의 눈이 지금까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게 뜨였다.

콰과과광!

총독저 심처의 벽면이 터져 나가는 동시에 쏟아져 나오는 독립군들이 있었다.

전방의 병력들은 후방의 병력들이 빠르게 나올 수 있도록 재빠르게 산개하며 총독저를 휩쓸기 시작했다.

적막했던 총독저가 순식간에 소란스러운 전장의 소리를 품기 시작한다.

“하. 이제야 좀 살 것 같네.”

네더만은 기다란 통로를 빠져나오며 긴 숨을 토했다. 그는 검을 허공에 몇 차례 그으며 몸을 풀고는, 빠르게 내달렸다.

와장창!

유리창을 깨며 정원에 내려서는 네더만.

총독저 앞에 깔린 너른 정원에는 독립군과 총독부 병력들이 엉켜 있었다.

“오랜만이네.”

네더만은 과거 왕궁이었던 총독부를 잠시 바라보았다. 왕궁에 담겨 있는 오래전 기억들이 자연스레 눈가를 스쳤다.

평안했던 왕궁부터 무너져 내리던 왕궁의 모습까지.

네더만은 검을 움켜쥐고 전장을 향해 뛰어들었다.

과거의 기억 위로 새로운 기억이 덧씌워지고 있었다.

* * *

구름 한 점 없는 밤하늘이 상공에 깔렸다. 별빛이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처럼 선명한 밤이었다.

루시안은 병사들을 집어삼키는 통로를 이리엘과 함께 보고 있었다.

“알렌 형님을 구해야 해. 보내 줘.”

“나랑 함께 가도 늦지 않아.”

“끄응.”

이리엘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입술을 꾹 물었다.

현재 전장은 총독저 근방에서 벌어지고 있을 거였다. 알렌이 잡혀 있을 감옥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했다.

깊은 한숨과 함께 마음을 잠시 내려놓은 이리엘이 입을 열었다.

“그래도 결국, 여기까지 왔네.”

“그러게 말이야.”

루시안이 살포시 미소를 지었다. 어딘가 슬픔이 묻어 있는 미소였다.

“아직도 10년 전 그날이 여전히 생생한데 말이지.”

프렌치아가 패망하던 날.

가문이 불타오르던 날.

루시안은 어린 이리엘의 손을 붙잡고 주르아든 왕국으로 향하고 있었다.

“하라브는 잘 있지?”

“그럼. 죽는다는 말을 입에 달고 있지만, 여전히 잘 있어.”

루시안은 여전히 그때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날의 사무침. 부모의 죽음과 자신의 꿈이었던 조국의 패망.

모든 꿈이 와르르 무너졌음에도 그는 슬퍼할 수 없었다. 주저앉을 수 없었다. 옆에 지켜 주어야 할 동생이 있었으니까.

“네가 무사해서 다행이야.”

“오빠는 아직도 내가 애로 보여?”

“어. 애로 보여.”

“참 나. 나도 이제 다 컸거든!”

“10년 전에도 그랬지, 아마.”

“그때는 덜 컸던 거 인정.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알아.”

루시안은 이리엘의 머리칼을 헝클어 주었다. 이리엘은 머리를 빼며 도끼눈을 떴다.

“애 취급하지 마시지!”

“기특해서 그런 건데.”

“그게 문제라고!”

“아아. 그래.”

루시안은 대충 대꾸했다. 이리엘은 입술을 댓 발 내밀며 말했다.

“그래도 이제 코앞이네. 우리가 목표로 했던 꿈이.”

“모두가 바라던 일이지.”

루시안의 눈가가 도열한 채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병사들을 훑었다.

상기된 표정 위로 떨림과 긴장이 느껴졌다.

루시안은 그들을 바라보며, 프렌치아의 독립 하나 만을 바라보며 보낸 무수한 시간들을 떠올렸다.

지난하고 고된 시간들.

밑바닥에서부터 시작해 상단을 일구고 주변의 작은 독립군 파벌을 흡수하며 북부의 흰사자를 일구기까지.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

자신을 도왔던 수많은 얼굴이 하나하나 눈가를 스친다.

여전히 곁에 남아 있는 자들도 있지만, 대부분이 죽었다.

루시안 또한 수많은 사선을 넘어왔다.

자칫 잘못했으면 이 자리에 올 수 없었을 섬찟한 순간들이 있었다.

천운이 따라 줬던 순간들도 많았고, 고난과 위기의 순간도 참 많았지.

하지만 꿋꿋이 견뎠다.

그 시간 속에서 자신들은 울고, 웃고, 아파하고 성장하며 결국 이 자리까지 왔다.

그 긴 시간들이.

그 많은 죽음들이.

이제야 진정한 의미를 찾아가고 있었다.

루시안은 저 먼 곳을 바라보았다.

어둠에 잠긴 녹음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지만, 루시안의 시선은 총독부가 자리한 왕성을 정확히 응시하고 있었다.

“오늘 밤, 저 위에 프렌치아의 국기가 걸릴 거야.”

그리고.

“다시는 내려가지 않을 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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