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5화
제165화 나라를 위하는 국민 (1)
수도에 도착한 일행들은 여관, ‘하라브의 아침’에서 하루를 시작하고 있었다.
마그네트 지부의 본부에 온 이리엘은 하라브를 보자마자 그에게 폭 안겨 들었다.
“하라브! 저희 왔어요!”
“허허, 오셨습니까! 무탈하셔서 다행입니다. 저도 다행히 죽지 않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라브는 그런 그녀를 따스하게 맞아 주었다. 이리엘의 뒤를 따라온 일행들의 면면을 훑은 유리아가 말했다.
“제네스 님은요?”
그녀의 손목에는 과거에 제네스에게 건넸던 팔찌가 여전히 매여 있었다.
알렌이 머쓱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유리아뿐만이 아니라, 뒤편에 서 있던 지부 사람들도 잔뜩 기대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오시지 않아.”
“하. 그럴 수가…… .”
유리아는 하늘이라도 무너진 것처럼 허망한 눈빛으로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이거 오랜만이구만.”
하라브의 시선이 알렌의 뒤를 향했다.
레이크가 고개를 꾸벅 숙이며 인사했다.
“그간 강녕하셨습니까.”
“물론일세. 자네가 이곳에 오다니, 또 무슨 일이 벌어지려는가 보군.”
“누군데요?”
다들 새로운 인물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라브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북부의 흰사자 참모였던 자이자 북부의 별이라 불렸던 이다. 이제는 프렌치아 임시정부의 참모가 된 듯하고.”
하라브의 말에 다들 힉, 하는 표정과 함께 그를 다시 보았다.
북부의 별, 늙은 여우.
그들 또한 그 위명을 알고 있었다. 자신들이 속했던 북부의 흰사자의 최고위 간부였으니 당연한 일이다. 직접 얼굴을 본 것은 처음이었지만.
“용 사냥꾼과 인간 성벽도 함께 왔습니다.”
레이크가 말했다. 네더만과 리포드는 숙소에 남아 있었다. 헌병들이 눈에 불을 켜고 돌아다니는 탓에 다 같이 움직일 수 없었다.
“헉!”
이번에도 다들 헛숨을 집어삼켰다.
독립군의 뼈대라 볼 수 있는 굵직굵직한 인물들이 갑작스레 튀어나오고 있었다.
지금이야 흰 사자의 위용이 압도적이라지만, 그전까지 독립군의 정점이자 독립군을 주름잡던 이들이었다.
북부의 별도 모자라 서부의 검과 동부의 방패까지 함께 왔다니.
정말이지 큰일이 벌어지려는 듯했다.
“대체 무슨 일을 벌이려는 겐가.”
하라브가 걱정과 기대가 하나로 뒤섞인 눈빛을 보냈다. 독립군이 진군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들려오고 있었다.
그들의 목적지가 수도, 마그네트라는 이야기도 은은히 돌던 상황.
레이크를 본 순간부터 그가 마그네트에 온 이유가 짐작되었지만, 입 밖으로 내지는 못하고 있었다.
왠지 그것을 말하는 순간, 지금의 기대가 꿈결처럼 흩어질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하나, 그 예상이 맞았다.
“이번에 저희는 수도, 마그네트를 수복할 생각입니다.”
“허…….”
그토록 바라던 일이 현실로 다가오자 하라브의 입가에서 옅은 숨이 흘렀다. 일순 다리가 풀어질 듯했다. 영혼이 목젖까지 튀어나왔다가 다시금 제자리로 돌아갔다.
“그렇게 된다면야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 같구만……. 그런데 그것이 가능하다는 말인가?”
하라브의 염려 섞인 시선이 레이크를 향했다.
수도, 마그네트의 성벽은 드높았다.
또 그 성문은 얼마나 단단한가.
통상 성을 함락하기 위해서는 공격하는 측이 농성하는 측보다 3배의 병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하지만, 수도 마그네트를 함락하기 위해서는 5배는 족히 넘어가야 했다.
일전에 제국 또한 이 성벽을 넘기 위해 수많은 병력을 불태웠었다.
한데 현재 수도 마그네트에 주둔하고 있는 병력만 해도 2만이었다. 수성을 위해 주변의 병력까지 집결한다면 4만까지도 가능하리라 내다보았다.
단순한 산술로 계산한다면, 20만에 이르는 대병력이 필요했다.
하지만 독립군의 병력은 아무리 많아도 7만을 넘지 못할 터였다.
봉기한 국민들도 상당수 참여했기에 병력의 질로 본다면 정규군에 미치지는 못할 것임에도 그랬다.
양측의 전력을 정확히는 모르지만, 그저 단순한 계산만으로도 마그네트를 수복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가능합니다.”
하나, 레이크는 그것이 가능하다 말했다.
“성벽의 단단함은 바깥을 향하고 있으니까요.”
* * *
일행들이 모두 떠나고 홀로 길을 나섰던 나는, 팔레이트 상단의 본단을 앞에 두고 있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와는 느낌이 사뭇 달랐다.
이곳이 달라진 게 아니라, 내가 달라졌다.
“오셨습니까-!”
응접실로 허겁지겁 달려온 하트웬이 말했다.
“귀 안 먹었다.”
“아. 예.”
그는 내가 떠날 때와 달리 굉장히 깍듯한 태도로 나를 대했다. 그리고 내가 이곳에 온 목적 또한 잘 알고 있었다.
“먼 길 오느라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녀석이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나는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바로 가지.”
“아. 예.”
그는 엉덩이의 온기가 의자에 묻기도 전에 다시금 벌떡 일어나 앞장섰다.
“그럼 이쪽으로 오시죠.”
하트웬을 따라 도착한 곳은 팔레이트 상단의 심처.
얼마나 귀중한 것을 숨겨 놓았는지, 돌벽으로 밀폐된 복도에는 빛 한 점 들어오지 않았다.
하트웬이 입구에 비치된 횃불을 들고 어두컴컴한 복도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도착한 복도의 끝.
그곳에는 막다른 벽이 놓여 있었다.
하트웬은 그 벽 중심에 손에 끼고 있는 반지를 댔다.
우웅.
옅은 마나의 울림과 함께 벽면에서 피어나는 마법진.
구구구궁.
잠시 후 벽이 좌우로 갈라지며 그 내부가 모습을 드러냈다.
은은한 조명이 깔린 내부는 값비싼 작품을 내건 전시실처럼 깔끔하게 꾸며져 있었다. 곳곳에 놓인 선반 위에는 한눈에 봐도 고급스러운 아티팩트와 무구들이 놓여 있었다.
하나, 이렇게 철저히 보관할 정도로 귀해 보이지는 않았다.
미끼라는 이야기.
“허술해 보이지만, 곳곳에 보안 마법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주인의 허락 없이는 누구도 이곳에서 물건을 훔치지는 못할 겁니다.”
그의 조용한 목소리가 내부에 울렸다.
하트웬은 자부심 넘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런 보안 체계 또한 팔레이트 상단의 주력 사업 중 하나라고 이리엘에게 들은 적이 있는 것 같다.
“바로 이곳입니다.”
내부 깊숙이 위치한 또 하나의 문을 넘자, 작은 홀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중심에는 허리께까지 오는 육각면체의 돌기둥이 있었다. 내가 받으러 온 물건은 그 위로 깔린 황금색 비단에 놓여 있었다.
“이것입니다.”
나는 다이아몬드처럼 다각으로 면이 깎인 검붉은 보석을 바라보았다.
‘신의 눈동자’라고 불리는 이 돌은, 우주에서 떨어진 운석에서 추출할 수 있는 마석이었다.
“안에 담긴 마력이 무려 1천만 mp를 넘어섰습니다.”
‘mp’란 마석이 품은 마나를 측정하는 단위였다. 발렌시아 대륙에서 채석하는 특상 마석의 mp가 10만인 걸 감안하면 말도 안 되는 마나를 품고 있었다.
“거기에다 지금껏 공식적으로 발표된 ‘신의 눈동자’의 마나 보유량의 10배를 웃돌고 있지요.”
레이크에게 듣기는 했다만, 이런 물건을 주르아든 왕국의 변방에 있는 상단이 가지고 있다니.
이것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귀보였다.
팔레이트 상단을 전부 팔아도 이것을 살 수 없을 터였다.
“용케도 얻었군.”
“천운이 닿았다는 것 정도만 알고 있습니다.”
레이크에게 듣기로는, 이것이 팔레이트 상단이 구매한 너른 목장에 떨어졌다고 했다.
마당에 돈벼락이 떨어진 격이다.
정말이지 천운이 닿았다고밖에 말할 수 없다. 하트웬은 그 돌덩이를 조심스레 싸서 내게 건넸고, 나는 그것을 받아 들었다.
“언제 출발하실 겁니까.”
“내일.”
“혹시 뭐 필요하신 거라도?”
“여비나 넉넉히 챙겨 주도록.”
카드론에게 받은 돈은 넉넉했지만, 여비란 게 넉넉하면 넉넉할수록 좋은 거 아니겠나.
그렇게 목적을 달성한 나는 방으로 돌아왔다.
어느새 해가 저물어 있었다.
오늘 하루 푹 쉬고, 내일 일찍 출발할 작정이었다.
방에는 적막이 흐르고 있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시끌벅적하던 때와는 확실히 달랐다.
알렌과 이리엘이 없으니 이리도 고요한 것을.
너무 익숙해졌나.
왠지 녀석들의 재잘거리는 목소리가 금방이라도 들려올 것만 같았다.
지금쯤 녀석들도 마그네트에 도착했을 테지.
나는 포갠 손바닥을 베개로 삼고 눈을 감았다.
* * *
무한의 속검이 패배했다는 소식에 제국뿐만 아니라 대륙 전역이 들끓고 있었다.
프렌치아를 향한 보복의 목소리가 제국 내부에서도 드높아졌다.
레트로이나 6검이 무너졌을 때도 시끄러웠지만, 이번에는 무한의 속검까지 패배했다.
제국의 자존심과 자부심이 한 사내에게 박살 나고 만 것이다.
전장의 확대를 반대하던 세력들도 프렌치아에 대한 보복전에 대해서만큼은 확실히 동의하고 있었다.
의도한 바였다.
무한의 속검을 먼 프렌치아까지 보낸 이유가 그것에 있었으니.
이로써, 프렌치아와의 전쟁을 반대하는 이들은 없을 터였다.
반대파마저도 한목소리를 내고 있으니 말이다.
황제, 아스라낙은 손으로 턱을 괸 채 검지를 까닥거렸다.
‘예상대로 녀석이었군.’
무한의 속검은 패배할 거라 여겼다.
확률적으로 그랬다.
그렇기에 친위대 둘까지 붙였다만, 그들마저 패배할 줄이야.
바르안을 넘어 페르오와 예리아까지 당한 것은 의외이기는 했다.
적어도 큰 피해를 입힐 수 있을 거라고 여겼거늘.
어쨌든 이로써 흰 사자의 강함이 어느 정도인지는 대강 예상이 간다.
아스라낙이 말했다.
“독립군이 진격하고 있다지.”
“예. 지금까지 확인된 바로는 그들이 수도, 마그네트를 향할 것이라 보고 있습니다.”
부복한 사내가 말했다.
아스라낙은 고개를 가만히 주억거렸다.
흰 사자의 무력을 생각했을 때, 그들은 마그네트를 능히 수복할 터였다.
“가용 가능한 저스티스는?”
“시간을 맞출 수 있는 인원은 넷뿐입니다.”
열둘 중 넷이 흰 사자에게 죽었다.
이제 남은 인원은 여덟.
개중 시간을 맞출 수 있는 인원은 넷뿐이었다.
하나, 괘념치 않았다.
저스티스는 개인의 무력을 토대로 세 개의 그룹으로 나뉘어 있었다.
흰 사자에게 당한 할렌트와 주르하, 예리아, 페이오까지.
모두 3등급의 전력.
이번 상황을 보았을 때, 1등급에 이른 녀석이라면 흰 사자와 자웅을 겨룰 듯했고 2등급 셋이면 그의 목을 벨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황제가 말했다.
“바로 검은 숲으로 가라고 전하라.”
황제는 그들을 프렌치아가 아닌 검은 숲으로 보냈다. 흰 사자가 마그네트가 아닌 검은 숲으로 갔을 것을 예상한 터였다.
제국의 병력을 막아 낼 수 없을 것이 분명함에도 그들의 전력이 총독부를 겨냥한 것이 그 증거였다.
그 흐름은 정해진 순리였다.
순리는 작은 것들로 뒤틀리지 않는다.
강물이 바다로 모이듯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황제는 적들의 움직임을 훤히 예견하고 있었다.
현재 가용 가능한 저스티스 인원은 1등급 하나에 2등급 셋.
1등급의 전력이 더 투입되었으면 좋았을 테지만, 그렇게 되면 시간이 지체된다.
하나, 이 정도만으로도 그의 목숨을 취하기에는 충분한 전력일 터.
흰 사자가 작전을 성공하든 실패하든 그는 검은 숲에서 죽게 될 것이고, 프렌치아는 다시 한번 패망의 길을 걷게 될 터였다.
어떤 경우라도 그 결과만은 변하지 않을 거라 자신하는 황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