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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후 천하제일인이 되어 귀환했다-159화 (159/228)

제159화

제159화 대륙 제일검 (3)

바르안은 젊은 두 남녀를 빤히 바라보았다. 나이는 어리지만 황제의 직속 친위대 저스티스였다.

그들은 현재 전장의 최전선에서 혁혁한 공을 세우고 있는 이들.

북부에 있던 자신도 저스티스의 명성을 건너서 들어 왔다.

듣기로는 마법과 같은 이능을 가졌다는데, 믿을 만한 이야기는 되지 못했다.

전장의 이야기는 자주 과장되니 말이다.

“먼 길을 왔을 테니 여독 먼저 푸시게.”

바르안의 배려를 둘은 정중한 묵례로 받았다.

바르안은 그들이 떠난 자리를 보며 황제의 의중을 가늠했다. 제국에서부터 자신과 함께 온 이들이었다.

‘혹시 모를 나의 패배를 예견한 것인가?’

하나, 그랬다면 애초에 직속 친위대를 움직여도 됐을 일이었다. 가문의 병력도 전장에서 빼내지 않고 해결할 수 있었을 테지. 그럼에도 황제는 자신의 뒤에서 친위대를 움직였다.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

자신의 무력을 가늠해 보려는 것일 수도 있고, 자신의 패배를 염두에 둔 것일 수도 있고. 그저 젊은이들의 식견을 넓혀 주고자 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어느 하나 단정할 수는 없다.

황제의 의도는 쉬이 알 수 없었다.

그럼에도 바르안은 그들의 참관을 허락했다.

어차피 황제의 의도는 중요치 않았다.

자신은 흰 사자와의 생사결에 집중하면 될 터였다.

적어도 황제가 제국의 군영이 깔린 이곳에서 자신의 뒤를 노릴 이유는 없으니. 그들은 어쨌거나 아군이었다.

“직접 마주하니까, 살이 다 떨리네.”

막사로 돌아가는 길.

페르오가 말했다. 예리아 또한 눈을 반짝이며 들썩거렸다.

“완전 상상 이상이야! 몸이 절로 움찔움찔하더라니까!”

눈앞에서 마주한 대륙 제일검의 위엄은 허명이 아니었다. 배에서 몰래 훔쳐보던 것과는 확연히 달랐다. 무심한 눈길에도 서슬 퍼런 칼날이 담긴 듯했다.

마치 온몸을 낱낱이 해체하는 듯한 시선.

그것에 담긴 예기가 너무 날카로워, 하마터면 칼자루에 손이 갈 뻔했다.

그저 눈을 마주한 것만으로도 그랬다.

페르오는 괜히 툴툴거리며 말했다.

“그래 봤자야. 어차피 우리의 본질은 못 봐.”

“그렇긴 하지. 만약 우리가 힘을 합치면 어떻게 될까?”

“당연히 우리가 이기지.”

페르오는 일말의 망설임 없이 답했다.

바르안의 기도는 확실히 명성을 아우르고 있었지만, 충분히 감당할 자신이 있었다.

그가 제대로 기세를 피워 낸 것은 아니었으나, 부분은 전체를 나타내기도 한다. 드러난 부분만으로도 알 수 있는 것들이 있었다. 힘을 합치면 그를 충분히 넘어설 수 있다고 페르오는 판단했다.

그가 말했다.

“그런데 별다른 말은 없네.”

“그러게, 변명을 산더미처럼 준비했는데 말이지. 괜히 머리를 싸맸어.”

자신들이 이곳에 온 것에 관해 캐물을 거라 여겼지만, 그는 묻지 않았다. 궁금하지 않아서는 아닐 거다. 자신들의 입에서 진실이 나오지 않을 거라 판단한 것일 테지.

예리아가 눈썹을 들며 말했다.

“흰 사자의 무력은 어느 정도려나.”

“적어도 무한의 속검만큼은 하겠지. 폐하께서 우리를 괜히 보낸 건 아닐 테니까.”

“하긴. 지금까지는 그가 역천의 대가일 확률이 가장 크니까.”

“어차피 우리야 어떻게 되든 상관없잖아.”

“상관없기는!”

예리아가 입을 빼쭉 내밀며 말했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구경만 하다가 돌아가기는 그렇잖아. 얼마나 강한지 검을 맞대 보고 싶단 말이야!”

“뭐, 나도 그렇기는 해.”

* * *

솨아아.

낮게 깔린 바람이 들풀을 훑고 지나간다. 어머니의 손길처럼 부드럽게 흐르는 바람은 밤의 서늘함을 품고 있었다.

달빛마저 구름에 잠긴 밤이었다.

막사 뒤편에 놓인 널찍한 공터.

자신만을 위해 준비된 연무장에서 바르안은 몸을 풀고 있었다.

솨아악.

그의 검이 흐르는 대기를 천천히 가르고 지나간다. 그 궤적에 닿은 것들은 틀림없이 베였다.

느릿하게 흐르는 검이었음에도 그랬다.

가볍게 나풀거리는 가느다란 풀잎마저도 깨끗하게 양단되어 흩어졌다.

천천히 흐르는 검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한바탕 춤사위라도 벌이듯 바르안은 몸을 쉬지 않았다. 파도가 너울거리듯 그의 검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었다.

그렇게 그의 검무는 조금씩, 아주 조금씩, 고조되어 갔다.

찌르르 우는 풀벌레도 눈치채지 못할 만큼 미세하게 빨라지던 검은, 어느새 육안으로 확인되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공간을 찢어발겼다.

쇄쇄쇄쇅!

바르안의 팔이 흐릿하게 번지며 보이지 않는 검이 허공을 가른다.

잘려 나가며 소리치는 대기의 비명만이 검이 휘둘러지고 있음을 짐작케 했다.

그러다 일순, 그의 몸이 우뚝 멈췄다.

동시에 투명한 충격파가 주변을 휩쓸었다. 세찬 바람이 멀찍이 떨어져 있던 막사를 흔들며 지나간다. 마치 일대의 공간이 터져 나간 듯했다.

바르안의 손아귀에서 솟아나듯 모습을 드러낸 검은, 허공을 겨누고 있었다.

그의 호흡은 검을 휘두르지 않은 것처럼 깊고 차분했다.

‘몸 상태는 완벽하다.’

검을 허리춤에 넣으며 그는 생각했다.

‘그런데 왜 불안하지?’

오랜만에 느껴 보는 감정이었다.

저편에서 먹구름이 밀려오는 듯한 불길한 기분이 심상에 드리우고 있었다.

좀처럼 그 감정이 가시질 않는다.

그저 단순하게 치부할 감정이 아니었다.

바르안의 시선이 저편의 테이난성을 향한다.

성이 시야에 담기는 거리는 아니었지만, 그는 정확히 성이 있는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쉽지 않겠군.’

모든 것의 근원은 그 안에 있었다.

알 수 없는 존재감이 그의 심신을 벌써부터 짓눌러 오고 있었다. 직접 살갗으로 전해지는 기파는 아니었다.

그저 예감하고 있는 것이다.

저편에 무시무시한 존재가 도사리고 있음을.

그는 아무래도 흰 사자겠지.

“흥미롭군.”

바르안은 그 불온함을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대륙 제일검.

그 무게를 20년간 버텨 온 그였다.

그 무게감은 하늘을 짊어지고 있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검사들의 정점으로, 기사들의 하늘로 그 모든 걸 견뎌 온 바르안이었다.

흰 사자가 얼마나 강하건.

설혹, 눈앞에 패배가 있건.

그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다.

* * *

고요한 연무장.

나는 검을 긋고 있었다.

어둠을 가르는 칼날 위로 검을 둘러싸고 있는 것들이 얹어진다.

국민의 기대.

흰 사자로서의 역할.

프렌치아의 독립.

그 모든 것이 칼끝에 매달려 검의 무게를 더했다.

내일 있을 생사결에 걸린 것들은 이토록 많았고, 그토록 무거웠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한 손으로 쥐었다.

한 손으로 휘둘렀다.

칼날은 경쾌하게 허공을 갈랐다.

그 모든 것들이 날붙이 위로 두껍게 쌓여 가고 있음에도.

하나도 무겁지 않았다.

나는 하늘 아래 가장 강한 사람이었으니까.

나는 천하 제일인이었다. 검성이었다.

이 검에 메여있는 것들은 내게 무거운 짐이 아니었다.

내게는 그것들을 거뜬히 짊어질 힘이 있었다.

솨아아악.

공간을 휘감아 잘라 낸 검이 허리춤으로 빨려 들어가듯 사라진다.

손아귀에는 여전히 뇌운검의 감촉이 선명히 남아 있었다.

“대륙 제일이라.”

나는 저편을 바라보았다.

시선을 따라 뻗어가다 보면 그 선 위로 적의 군영이 걸쳐질 터였다.

그곳에서 날아온 시선이 느껴진다.

그것이 실재인지는 모른다.

그저 시공을 초월한 감각이었고,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육감이었다.

그저 느껴진다.

적의 시선과 내게 겨눠진 칼끝이.

그리고 일주일이 지났다.

이른 아침부터 테이난은 분주했다.

일이 많아서가 아니고, 오늘이 다른 날과 달리 커다란 의미를 가지는 탓이다.

드디어 오늘 대륙 제일검을 가르는 생사결이 있었다.

지난 일주일.

사람들은 눈 밑이 퀭해질 정도로 밤을 지새우며 기도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것뿐이었으니까.

“우와아-!”

“흰 사자! 흰 사자!”

“꼭 이겨 주십시오!”

성문을 향해 나아가는 작은 행렬이 있었다.

나는 그 중심에서 흰 사자 가면을 쓴 채 걸었다.

길가에 나온 이들이 흰 사자를 연호하며 목청껏 소리를 질러 댔다. 다들 승리를 기원하며 나를 응원하고 있었다.

떠들썩한 출정이었다.

카드론이 시각을 미리 공개한 탓.

이렇게 해야 승리했을 때 감격도 크고, 이렇게 해야 내가 죽어도 온 힘을 다해서 수성할 거라나.

행렬은 뜨거운 함성으로 가득 찬 대로를 건너 성문을 넘었다.

테이난가에는 성문이 하나였다. 항상 오르던 좁다란 길을 넘어 짧은 숲을 지나면 너른 평야가 깔려 있었다. 그 숲을 벗어나자, 저편에는 이미 적들이 제국의 국기를 펄럭이며 서 있었다.

그들 또한 조촐한 인원이었다.

각자의 진영에서 열 명까지만 동행하기로 정해 놓은 까닭이다.

“제네스 님, 너무 긴장하지 마시고 평소처럼 하시면 됩니다.”

알렌이 목소리를 사시나무 떨듯 떨어 댔다.

나보다 자기가 더 긴장했다.

“져도 되니까, 꼭 살아서 돌아와야 해요.”

그 옆에서 이리엘은 말도 안 되는 말을 건넸다.

생사결이었다. 패배는 곧 죽음. 적을 베지 못한 자는 살아 돌아올 수 없다.

그녀도 그것을 모르지는 않았을 거다.

이리엘의 표정은 아들내미를 전쟁터로 떠나보내는 어머니와 같았다. 금방이라도 손수건을 들고 눈가를 훔칠 기세다. 그녀의 표정을 보고 있자면 나는 이미 죽은 사람 같다.

“부디 이기고 돌아오게. 내 선택이 틀리지 않도록.”

카드론도 내 어깨를 두드렸다. 그 또한 결연한 표정이었다.

“갔다 오면 술 한번 거하게 살 테니, 이기고 돌아오라고. 지면 술값이야 굳겠지만.”

네더만도 마찬가지.

언제나 여유롭던 그의 표정도 어딘가 딱딱하다. 나는 각자의 방식대로 격려하는 이들에게 등을 돌렸다.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저편에서 한 사내가 천천히 걸어왔다.

나 또한 그를 향해 마주해 갔다.

다른 이들은 전장 가까이 올 수 없었다. 그들은 멀찍이서 이 생사결을 지켜볼 터였다.

저벅저벅.

적과 싸울 공간은 충분히 넓었다. 그럼에도 벌써부터 적의 기파가 구름처럼 밀려왔다.

간격이 좁혀지기도 전에 서로의 몸에서 풀어진 기파가 먼저 맞닿았다.

콰아아아.

서로를 가늠하는 기파가 마주하며 세찬 바람이 휘몰아친다. 일대의 공간이 무겁게 가라앉기 시작했다.

구구구구구.

휘몰아치는 기파를 감당하지 못한 평야 위로 실금이 갈라지며, 그 잔해들이 허공으로 두둥실 떠올랐다.

서로에게 쏘아지는 기파가 평형을 이루며 발생한 현상이었다.

나아가는 걸음을 따라 간격이 좁혀질수록 공간은 더욱 세차게 비틀렸다.

구름과도 같던 적의 기운이 해일처럼 드높아져 있었다.

대륙 제일검이란 위명에 걸맞은 기도였다.

적의 막강함에 핏물이 체내를 빠르게 질주한다.

그 묵직한 고동이 가슴팍을 쳤다.

발렌시아에 이 정도의 실력자가 있을 줄이야.

그의 명성은 전생부터 알고 있었지만, 생각 이상이었다.

서로를 향하던 걸음이 백 보를 사이에 두고 멈춘다.

백발을 넘긴 이가 눈앞에 있었다.

오랜 세월 정점에 서 있었던 그의 얼굴엔 세상을 초탈한 여유로움이 묻어 있었다.

그의 눈가가 이채를 띤다.

“말도 안 되게 젊군.”

나는 지금, 흰 사자 가면을 쓰고 있지 않았다. 시야를 조금이라도 가리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와 마주하기 전부터 예민한 육감이 적의 막강함을 전해 왔다. 눈앞의 이자는 어중간한 각오로 상대할 수 있는 자가 아니었다.

나 또한 집중해야 한다.

내가 말했다.

“살 만큼 살았다.”

“그런가. 긴말은 필요 없겠지.”

우리는 백 보를 사이에 두고 서 있었다.

그와 내게는 한 걸음에 닿을 수 있는 간격.

그는 천천히 검을 뽑아 들었다.

나 또한 마찬가지.

스르렁.

뇌운검의 검신이 짙은 울음을 흘리며 모습을 드러냈다.

우웅.

칼날 위로 밀려드는 내력에 묵직한 검명이 운다.

우리는 서로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시선이 칼날보다 먼저 부딪쳤다.

그리고 돌연, 신형이 흐릿하게 흩어진다.

그와 동시에 이는 힘의 격돌.

콰과과과과광!

서로를 향한 궤적이 얽히며 부서진 평야의 파편이 들고 일어섰다.

정면으로 맞부딪치는 두 개의 검.

이 전투 안에 담긴 것들은 무수히 많았다.

하나, 그 끝에서 드러날 가장 단순한 결과는, 이 생사결의 승자가 대륙 제일검이 될 거란 사실이다.

그것을 가릴 전장이, 지금 막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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