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7화
제157화 대륙 제일검 (1)
작은 촛불이 올려진 테이블 주위로 은밀히 모인 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사방이 막힌 밀실에서조차 누가 들을까 조용히 속삭였다.
“모두 총독부에서 내건 경고장을 봤을 겁니다.”
“우라질 새끼들.”
“어찌 그럴 수 있단 말인가.”
한 사내가 서두를 열자 고요했던 밀실에 잠시 소란이 일었다. 다들 분을 참지 못하고 분통을 터트리고 있었다. 처음 질문했던 사내가 결연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습니다.”
다들 그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일세. 검을 들지 않고도 독립을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이 있음이야.”
“자네 말이 맞네. 그러니 우리가 이리 모인 게 아닌가.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다고.”
“그래. 우리도 뭐라도 해야 할 게 아닌가.”
프렌치아에 독립군은 단 네 개의 파벌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다. 작은 힘을 모은 조직들도 수가 꽤 되었다. 또한, 독립을 바라는 모든 이들이 검을 쥐고 전선에 나선 것은 아니었다.
검을 쥐지 않고도 독립을 위해 싸우는 자들이 많았다.
“우리도 힘을 보태야 하네.”
밀실에 모인 이들의 신분은 다양했다.
음유 시인부터 소설가, 상인, 학문을 연구하는 학자들까지.
이들은 검을 쥘 수 없는 이들끼리 모여 만든 독립 단체였다. 그들은 밤새 의논하여 한 장의 선언서를 만들었다.
그 전문을 요약하면 이러했다.
프렌치아의 국민은 프렌치아의 자주독립을 지원하며, 제국의 강제 합병을 인정치 않으니 더 이상 자국의 국토에서 무력 폭행과 학살을 자행함으로써 프렌치아의 평화를 해치지 말 것이며, 국민의 목숨을 인질 삼아, 자국의 독립과 정의를 바로 세우고 있는 프렌치아 임시정부의 행보를 막지 말라는 내용이었다.
그 선언문은 금세 도시와 도시를 건너 프렌치아 전역에 뿌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곳곳에서 비슷한 내용에, 혹은 똑같은 내용의 선언서와 경고문이 봇물 터지듯 쏟아졌다.
누가 시켜서 퍼트린 일이 아니었다.
마음이 동한 이들이 그것을 직접 실어 날랐다. 국민의 뜻은 바람을 탄 불길처럼 자연스레 번지고 있었다.
개중에는 검과 창을 쥐고 직접 봉기하는 이들도 존재했다.
안 그래도 들끓고 있던 프렌치아가 거세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의 독립에 대한 열망은, 옷장 깊숙이 숨겨 놓은 가보처럼 그들의 심상 깊은 곳에 품어져 있었다. 다들 그 열망을 은밀히 교류하며 열기를 키워 갔다.
하나, 민간인을 학살한 총독부의 만행에 그 열기가 더 세차게 타오르며 대로변까지 흘러나왔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과거 프렌치아를 등지고 해외로 망명했던 이들도 프렌치아 임시정부의 설립 소식에 줄줄이 귀국하고 있었다.
그 열기는 당연히 수도, 마그네트에서도 뜨겁게 타오르고 있었다.
“현재 프렌치 놈들이 난리가 아닙니다. 헌병들로도 통제가 쉽지 않습니다.”
글 꽤나 읽고 쓴다는 이들이 모인 도시였다.
한 놈을 잡으면 또 다른 놈이 나와서 국민들을 부추기고 있었다.
관련한 자들을 모조리 잡아들이고 있음에도 열기가 식을 줄 몰랐다. 아무리 짓밟아 불길을 잠재워도 이쪽저쪽에서 새로운 불길이 끊임없이 피어올랐다.
아르멜이 윙윙거리는 날파리가 성가시다는 듯 미간을 구겼다.
“어차피 곧 사그라들 거다. 그깟 놈들이 힘을 뭉쳐 봐야 무얼 할 수 있겠느냐.”
그에게 그들의 열망은 그런 종류의 것이었다.
언제든 짓밟아 꺼트릴 수 있는, 하찮은 무언가.
“하여간 프렌치 새끼들이 끈질긴 건 알아줘야 한다니까.”
그 일렁임이 전과 달리 크다고는 하지만, 이 불길은 곧 꺼질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심지와 같은 흰 사자는 곧 무한의 속검에게 목이 따이고 말 테니까.
그 이후에 프렌치아 임시정부를 정리하면, 이 열기 또한 자연스레 사그라들 터였다.
* * *
들썩이는 프렌치아와 달리, 테이난가의 분위기는 적막했다.
사방을 포위한 제국군과 테이난성 사이로 폭풍 전야의 고요함이 흐르고 있었다.
적들은 테이난 성 일대에 군영을 구축한 뒤 무한의 속검을 기다리고 있었다.
흰 사자를 막을 수 있는 자가 그밖에 없는 탓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테이난 성을 두른 병력은 계속해서 쌓여 갔다.
제국군은 테이난 성을 꽁꽁 싸매듯 포위하여 조금의 틈도 용납지 않을 생각이었다.
독립군의 본진은 피노센에 있었지만, 거기까지는 너무 멀었다. 일단 테이난가를 무너뜨림으로써 허리를 끊어야 했다.
“요새 곳곳에서 봉기가 일어나고 있다더군.”
카드론이 말했다. 현재 테이난가는 완전히 고립된 상태였다. 그렇다 보니 외부의 소식에 늦을 수밖에 없었다.
“놀라운 일이지. 국민들이 한마음이 되었다는 이야기니까. 마치 10년 전을 보는 것 같군.”
과거, 프렌치아에 명운이 걸렸던 전쟁.
10년 전 벌어졌던 제국과의 전쟁에서도 국민들은 열과 성을 다해 싸웠었다.
내가 말했다.
“10년 전과는 다르다.”
“뭐 그때는 자네가 없었으니.”
“아니, 그거 말고.”
“그럼?”
“지금은 변절자들이 없지.”
“큼큼. 그렇기는 하지.”
카드론이 민망한 듯 헛기침을 했다.
그는 ‘최초의 변절자’.
당시에는 모두가 한뜻을 모으는 와중에도 카드론처럼 나서지 않는 자들도 존재했다. 오히려 뒤통수를 치는 귀족 놈들도 많았지. 하지만 이번에는 적어도 내부의 적은 없다. 정확히는 그 정도의 영향력을 가질 수 있는 내부의 인사는 카드론밖에 없었다.
내가 이곳에 온 또 다른 이유이기도 했다. 내가 곁에 있는 이상 다른 수작은 부리지 않을 테지.
카드론이 말을 돌렸다.
“어쨌거나 프렌치아는 지금 생각보다 더 뜨겁게 타오르고 있네.”
나도 솔직히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이렇게 범국민적으로 불길이 일 줄이야.
그만큼 국민들의 바람이 간절해졌다는 거겠지.
프렌치아가 금방이라도 분화할 것 같은 화산처럼 끓어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이 순간을 마무리 지을 화룡점정을 찍을 시점이 다가오고 있었다.
“여기서 자네가 무한의 속검만 이겨 준다면, 프렌치아는 정말이지 폭발할지도 모르겠군.”
지금 이 상황에 제국을 넘어 대륙에서 제일가는 검을 꺾는다면, 지금의 열망은 하나의 광기처럼 일어날지도 몰랐다.
지금도 감옥에 끌려가는 이들이 그 수를 셀 수 없을 정도로 했다.
그럼에도 이 열기가 식을 줄 몰랐다. 아니, 오히려 더 커지고 있었다. 적의 압정은 불길을 꺼트리는 바람에서, 불길을 키우는 바람이 되어 있었다.
그만큼 프렌치아는 세차게 타오르는 중이다.
카드론이 말했다.
“프렌치아가 원래 그런 나라지.”
이것은 국민의 성정이기도 했다. 평소에는 얌전한 듯하지만, 하나로 뭉치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마치 불과 같다.
그것은 오래전부터 이어진 역사로 증명되었던 일.
해서 흰 사자로 상징성까지 만들어서 민심을 동요시키고 있었는데, 아르멜 총독은 거기에 기름을 부은 것이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나와 무한의 속검과의 결전에 걸린 무게가 점차로 무거워지고 있었다.
* * *
“이거 아무래도 내가 악역이 된 거 같군.”
바르안은 마차의 창 너머로 프렌치아의 현황을 보았다. 사람들이 끌려가고 있었다. 프렌치아의 독립을 원하는 자들이, 제국과의 합병을 무효라 소리치고 있었다. 지나치는 도시마다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무력으로 진압한다고 해도 그것이 쉽게 사그라들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나라를 사랑하는 국민이로다.’
사람들의 눈빛은 확고한 신념을 품고 있었다. 국민들에게서 저런 눈빛을 볼 수 있을 줄은 몰랐다. 그만큼 제국에 대한 반감이 프렌치아 전역에 깔려 있었다.
지금이야 억지로 누르고 있지만, 그것은 금방이라도 터질 듯 불길했다.
만약, 자신이 패배하기라도 하는 날에는 제국은 난감한 상황에 빠지게 될 거다.
군중의 힘이란 것이 그렇다.
따로 떨어져 있을 때는 나약하지만, 그것이 하나로 뭉치면 오러 블레이드처럼 강한 힘을 갖는다.
때문에 귀족들은 민심을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한다.
“어떤 왕이었는지 궁금하군.”
프렌치아의 마지막 국왕이 불현듯 궁금했다. 국민들이 하나로 뭉친 데에는 총독부의 폭정이 기반이 되었겠지만, 독립군들이 이리 왕성히 활동한다는 건 그만큼 나라에 대한 애국심이 강하다는 이야기였다.
바르안은 그 열망의 근거가 궁금했다.
‘그래서 그토록 신경 썼나.’
그는 가만히 황제의 의도를 가늠했다.
프렌치아는 제국에서 바다를 건너야 닿을 수 있는 땅. 하지만 10년 전 황제는 내륙의 많은 왕국을 두고 프렌치아를 첫 목표로 삼았었다.
모두가 의아했던 상황.
어쩌면 황제는 프렌치아의 잠재력을 높게 본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만약 이들을 압정으로 다스리지 않고 잘 다독였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독립의 열기가 사그라들지 않았을까?
잠시 묵상하던 바르안은 고개를 저었다.
총독부의 압정은 애초에 이 열기를 죽이기 위한 것이었던 듯했다.
압정을 하지 않았다면 애초에 이 열망이 사위는 일 또한 없었겠지.
확실히 다루기가 까다로운 국민들이었다.
“무거운 전장이 되겠군.”
결국, 흰 사자와 벌일 결전의 결과에 따라 프렌치아의 명운이 갈릴 터.
흰 사자 또한 그것을 잘 알고 있을 테지.
그의 어깨에는 많은 것들이 올려져 있었다.
그리고 그 무게만큼, 그의 검은 강력할 것이다.
다그닥, 다그닥.
바르안이 탄 마차는 천천히 도시를 나아갔다.
그렇게 여러 도시를 지났다.
마차는 어느새 군영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열린 창으로 바람이 솔솔 불어온다.
주변으로 병사들이 세운 막사가 옹기종기 모여 평야를 메우고 있었다.
시선을 들자, 저 멀리 탑처럼 높이 세워진 성이 보였다.
요새라 불리어도 무방할 정도로 한눈에 봐도 뚫기가 쉽지 않은 성이었다.
‘저곳이 테이난.’
한차례 성을 감상한 바르안은 군영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아군의 사기를 살피기 위함이다.
병사들의 낯은 전장의 승패를 미리 가늠하는 중요한 척도.
그들의 얼굴은 미래를 비추는 거울이라 해도 무방했다. 쉬이 봐서는 안 될 사안이다.
“좋군.”
다행히 병사들의 낯이 좋았다. 얼굴의 혈색이 생기가 있었고 표정에 생동감이 담겨 있었다.
군영의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이는 바르안의 존재가 미치는 영향이 컸다.
대륙 제일검이 이 전장에 왔다.
어느 누가 승리를 자신하지 않는단 말인가.
바르안의 마차를 알아본 이들이 하나같이 경외에 찬 표정으로 고개를 깊이 숙였다.
그들에게 바르안은 승기를 확신케 하는 확실한 무구였다.
아무리 흰 사자라 할지라도 대륙 제일검을 이겨 낼 수 없을 터.
다들 그렇게 믿었다.
바르안은 지휘부로 향했다.
“충! 사령관, 츠미온이 바르안 알센도르 경을 뵙습니다!”
현재 테이난가를 빙 두르고 있는 연합 전선의 사령관, 츠미온.
별 하나의 계급장이 가슴팍에 붙어 있음에도 그는 신병이라도 된 것처럼 군기가 바짝 든 상태로 바르안을 맞이했다. 바르안은 가볍게 그의 인사를 받고는 자리에 앉았다.
“현재 상황은 어떠한가.”
“적에게서 별다른 움직임은 없습니다. 아무래도 버티기 작전에 돌입한 듯합니다. 한 달째 교전은 없었습니다.”
“아직은 여유로운 상황인가 보군.”
작은 교전도 없었다는 이야기는 적들이 내부의 생필품만으로 자급자족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 준비된 배신이었을 테니 그만한 대비는 해 놓았을 테지.
“앞으로 두 달은 더 버틸 수 있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빠르게 마무리하는 게 여러모로 좋겠어.”
적을 말려 죽이는 것도 방법이지만, 적은 포위망을 뚫지 못해 대기하고 있는 게 아니었다.
자신을 기다렸을 테지.
결국, 이 전장의 승패는 흰 사자와 바르안이 만들어 낸 결과에 따라 갈리게 될 것이다.
그 결전의 승자가 결국 전장의 승리마저 가져갈 테니.
“그럼 바로 날을 잡도록 하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