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6화
제156화 들끓는 민심 (2)
연회가 끝나고 바로 다음 날.
카드론과 네더만을 비롯한 테이난가 병력은 곧바로 테이난가를 향해 떠났다.
테이난가의 배신은 반드시 총독에게 닿을 터였다.
그의 보복은 당연한 바.
빠르게 복귀해야 했다.
그들과 함께 피노센에 온 병력의 대부분은 독립군 소속이었기에 태반을 피노센에 상주시켜 놓고, 카드론은 이곳에 온 병력 중 2,000에 가까운 테이난가의 병력만을 이끌고 움직였다.
그리고 나 또한 그 무리에 속해 있었다.
긴 행렬이 피노센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성벽 위에서 루시안을 비롯한 이들이 우리를 지켜봤다.
점차 멀어지는 피노센.
“휘유. 이제 또 고된 여정이 되겠네요.”
이리엘이 눈앞에 길게 늘어선 행렬을 보며 말했다. 나란히 줄지어 이동하는 병사들이 우리의 시선 앞으로 기다랗게 깔려 있었다.
“그러게 여기 남으라니까.”
“그리 섭섭한 말씀을 하십니까. 저희가 제네스 님을 옆에서 챙기지 않으면 누가 챙깁니까.”
알렌 녀석이 콧김을 뿜으며 나섰다.
“저는 이 이야기에서 중도 하차할 생각이 없다 이 말입니다!”
“저도 마찬가지예요!”
둘은 쓸데없이 비장했다.
“저희는 걱정 마십시오. 제 몸 하나는 거뜬히 지킬 수 있으니 말이죠.”
“맞아요. 우리도 익스퍼트 초급이라구요. 나름 괜찮은 전력이죠. 게다가 네스도 함께구요.”
“깡! 깡!”
내가 테이난가를 따라 이동하는 이유는 적의 습격을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제국을 배신한 이들의 행군이었다.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을 터.
테이난가로 돌아가는 길은 가시밭길이 될 확률이 높았다. 내가 이들을 따라나선 이유 중 하나도 그것에 있었다.
그래서 두 녀석 모두 여기 버려두고 가려고 했더니 굳이 따르겠단다.
“알아서들 해라.”
지금처럼 가까이서 지켜 주지는 못할 터였다. 내가 지켜야 할 이들은 이제 이들뿐만이 아니었다.
모두를 지킬 수야 없겠지만, 그들을 위협하는 적들을 베는 것이 내 몫이었다.
“늑대 무리로부터 양을 지키는 양치기가 된 기분이구먼그래.”
네더만이었다.
그를 보며 이리엘이 픽 웃으며 말했다.
“갑자기 늑대와 양치기 소년에 관한 우화가 떠오르네요. 그 소년에게는 미안하지만, 중년이 되었다면 딱 네더만 씨 같았을 거예요.”
“아. 그 이야기는 나도 잘 알지. 양치기 소년이 자라서 나처럼 헌앙한 인물이 될 줄이야. 역시 인생은 끝까지 살아 봐야 아는 거로구만.”
제멋대로 해석하며 웃는 네더만이었다.
그렇게 녀석들의 시답잖은 농담을 들으며 얼마나 나아갔을까.
가도를 두른 깊은 풀숲에서 살기를 실은 바람이 불어왔다.
“적이다. 대비하도록.”
나는 일행들에게 상황을 알리고 말에서 내려 은은한 살기를 거슬러 올랐다. 그들은 기습을 노리고 있었는지 산간에서 은밀히 기동하고 있었다.
병력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들의 목적은 섬멸이 아닌 괴롭힘에 있었다. 적은 병력으로 계속해서 교란하여 우리를 지치게 만들려는 전술인 듯했다.
파밧!
나는 그들의 앞으로 불쑥 솟아났다.
풀숲을 가르며 나타난 나를 보고, 녀석들은 일제히 동공을 크게 확장했다. 기습을 위해 왔을 텐데, 오히려 기습을 당한 격이다.
촤-악!
희끗하게 뿌려진 칼날의 궤적 위로 핏물이 솟아올랐다. 나는 수풀 사이를 누비며 적들의 목을 빠르게 베어 갔다.
“희, 흰 사자다!”
내 존재를 죽기 전에 알아챈 이들이 다급히 소리쳤다. 그들은 다급히 소리치며 뿔뿔이 흩어졌다. 적들에게 흰 사자가 대열에 함께 있음을 알리기 위해 일부러 가면을 썼다.
내가 있는 걸 알게 되면 기습에 부담이 될 테니.
도망치는 이들의 뒤를 굳이 쫓지는 않았다.
뿌우우우-!
저편에서 뿔피리가 울고 있었다.
아군의 것이었다. 앞쪽에도 적의 매복이 있는 듯했다. 여러 곳에서 쳐들어올 셈이었던 거 같은데.
전방에는 카드론과 네더만이 있으니 염려할 필요는 없다.
나는 다시금 전방을 향해 내달렸다.
금세 적의 무리가 시야에 담긴다.
피슈슈슈슛!
푸른 검기가 부드러운 곡선의 궤적을 그리며 쏘아졌다.
나무 사이를 가로질러 적의 등을 꿰뚫는 비검기.
그것에 꿰인 이들이 일제히 허물어졌다.
나는 부지런히 움직여 적을 쓸어 갔다.
장내는 금세 정리가 되었다.
빠르게 대응한 덕분에 피해는 크지 않았지만, 앞으로도 이와 같은 자잘한 기습들이 계속될 터였다. 테이난가로 돌아가기까지 지난한 여정이 될 테지.
그렇게 한 달가량의 시간이 지났다.
“테이난가다!”
“우와아-!”
“드디어 돌아왔다!”
우리는 단단히 솟아 있는 테이난성을 바라보고 있었다. 고된 여정으로 더욱이 그리웠을 그 성을 보며 병사들은 함성을 질러 댔다.
현재 총독부에서는 테이난을 두르는 포위망을 구축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테이난성에 도달하기가 더욱 고되었다. 일정이 조금만 늦춰졌어도 병사들의 태반은 이곳에 도달하지 못했을 터였다.
총독부에서 작심하고 테이난성을 침공할 거란 이야기가 맴돌고 있었다.
실제로도 그랬다.
테이난을 완전히 고립시키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천해의 요새라 불리는 테이난가이지만, 일대 전체가 포위된다면 오래 버틸 수 없다.
식량이 문제였다.
자급자족으로는 한계가 있을 테니까.
“무한의 속검이 오고 있다더군.”
카드론이 말했다. 한 달이 넘어가는 고된 여정으로 그의 얼굴은 평소와 달리 수척해 있었다.
그가 근심을 이었다.
“어쩌면 그 또한 그랜드 소드 마스터일지 모르네. 소드 마스터에 이른 지 20년의 세월이 지났으니.”
바르안 알센도르.
발렌시아 대륙 역대 최연소 소드 마스터.
나 또한 그의 명성을 잘 알았다.
전생의 내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대륙 제일에 올라 있던 자였다.
검을 쥐어 본 자라면 기사건 용병이건 그를 모르는 이가 없었다.
그가 가진 이름의 무게는 한없이 무거웠다.
“그는 대륙 제일검이야.”
카드론 또한 그의 존재를 무겁게 생각하고 있었다.
“걱정 마라.”
“자신 있나?”
“물론.”
“듣기 좋은 소리군.”
카드론은 헛숨을 뱉으면서도 입꼬리를 들어 올렸다. 그는 금세 웃음기를 지우며 말했다.
“기억하게. 프렌치아는 자네 없이 독립할 수 없음을.”
프렌치아 임시정부는 나의 무력을 기반으로 세워져 있었다. 정확히는 흰 사자의 상징성이 큰 무기였다. 기둥이 무너지면 건물은 허물어진다.
나의 죽음은 곧 프렌치아의 패배와 직결되어 있다. 카드론은 깊게 숨을 뱉으며 말을 이었다.
“제국이 이렇게까지나 프렌치아에 공을 들일 줄은 몰랐군. 다른 이도 아닌 무한의 속검을 보내다니.”
딱 보니, 통합한 것에 미련이 있는 말투였다.
제국이 이리 적극적으로 나설지 몰랐을 테지.
확실히 의외이기는 했다.
제국은 현재 서부 대륙을 통일하는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따라서 프렌치아에 소극적으로 대응할 거란 의견이 중론이었다. 레이크 또한 그리 말했는데, 그들의 대응은 생각보다 기민하고 저돌적이었다.
곧장 레트로이나 6검을 보내더니, 이번에는 무한의 속검까지.
내가 말했다.
“딴생각하지 마라.”
“자네의 목이 붙어 있는 한, 그럴 생각은 없네.”
녀석은 한쪽으로 나의 패배를 가정해서 머리를 굴리고 있을 터였다. 하지만 섣부르게 움직이지는 않을 거다. 그는 바보가 아니니까.
내가 말했다.
“포위당하면 얼마나 버틸 수 있지?”
“최대한 비축해 놓기는 했지. 여분 식량까지 하면, 두 달은 버틸 거다. 뭐, 최악으로 가정하면 세 달까지도 어떻게 되겠지만, 그 이후로는 무리야.”
최대 세 달이면 시간은 넉넉했다.
그 안에 무한의 속검과 결판이 날 테니.
* * *
테이난성이 단단한 포위벽에 고립되자 흰 사자가 따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홀로, 테이난가 근처 도시에 주둔하고 있는 부대와 변절 가문들을 쓸고 다니기 시작한 것이다.
이번에는 공표도, 언질도 없었다.
어느 날 불쑥 나타나 무너뜨릴 뿐.
자연스레 테이난가 주변을 포위하고 있던 병력의 두께가 얇아질 수밖에 없었다.
지원할 병력도 없는 데다 다들 흰 사자의 표적이 되는 것을 꺼리고 있었다.
“네놈이 이렇게 나온다 이거지?”
해당 내용을 보고 받은 아르멜의 미간이 사납게 구겨졌다. 무한의 속검과의 대전을 위해 자중할 거라는 예상과 달리 녀석은 이리저리 날뛰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테이난가 멀리까지 벗어나지는 않을 터였다. 그 말인즉, 무한의 속검과 결판을 내기 전까지는 총독부로 올 수 없다는 의미. 자신의 목이 위협당할 걱정은 없었다.
그리고 어차피 흰 사자는 곧 죽을 거다.
아무리 녀석이 날뛴다 한들 어찌 그분을 꺾을 수 있으랴.
아르멜은 바르안 알센도르를 떠올렸다.
그저 마주한 것만으로도 고개를 꺾게 만드는 위엄을 지닌 대륙 제일의 기사.
레트로이나 6검과 마주했었으나, 그들에게서도 이 정도의 위엄은 느끼지 못했다.
마치 황제를 알현한 것 같은 압박감이었다.
그런 분을 감히 사자 새끼가 이겨 낼 수 있을 리 없었다.
“작전대로 진행하도록 해.”
아르멜의 명령에 부관이 고개를 숙이고 물러섰다. 이미 이에 따른 대비는 해 둔 상태였다.
‘더 이상 네놈 뜻대로 되지는 않을 것이다. 어디 날뛰고 싶으면 더 날뛰어 봐라.’
아르멜은 입가를 씰룩였다.
“그럴수록 프렌치아의 국민만 죽어 나갈 테니.”
화르륵.
세찬 불길이 타올랐다.
하나의 마을이 통째로 타오르고 있었다. 거리에는 시체들이 즐비했다. 아이고 노인이고 남자고 여자고, 구별 없이 모두 살해되어 있었다.
“살아남은 이는 없습니다.”
병사의 보고에 지휘관의 고개가 묵묵히 끄덕여졌다. 비명이 가득했던 마을은 어느새 무언가 타들어 가는 소리만이 들려왔다.
병사들이 말머리를 돌렸다.
그들의 가슴팍에는 제국군을 상징하는 블랙 드래곤이 박혀 있었다.
“이런 빌어먹을 새끼들이!”
카드론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밤사이 마을 하나가 통째로 불타올랐다. 테이난가 권역 내에 속한 마을이었다. 거주하고 있던 민간인이 모두 죽은 것이다.
“군인이란 놈들이!”
제국군은 아무 저항도 할 수 없는 민간인들을 무참히 죽였다.
전쟁에도 법도가 있는 법이었다.
게다가, 따지고 보면 그들 또한 프렌치아 총독부의 통제를 받는 국민이었다. 그럼에도 프렌치아 국민이란 이유로 그들을 죽이다니.
“총독부에서 전해 온 경고문입니다.”
카드론은 서신의 내용을 보고는 미간을 와락 구겼다.
“제네스에게 기별하거라.”
* * *
카드론의 표정은 심각했다.
그는 내게 곧장 서신을 건넸다.
“하룻밤 사이 마을 하나가 날아갔다네. 무고하게 죽은 이들만 300명이 넘어갈 거야.”
“선을 넘는군.”
대륙에도 전쟁법이 있다. 지금이야 각기 나라를 이루며 살아가고 있지만, 머나먼 과거에는 인간이라는 종 아래 하나로 뭉쳐, 몬스터를 몰아냈던 역사가 있었다.
그 이후로 여러 나라로 갈라져 나왔지만, 여전히 그 잔재는 대륙법과 공용어 등으로 인류가 세운 문명의 기반으로 남아 있었다.
하나, 지금 총독부의 행태는 대륙법을 어기는 처사였다. 전쟁 중이라 해도 민간인을 죽이는 건 명백한 범죄. 하지만 그들은 이미 그 법을 안중에 두지 않은 지 오래였다.
“일단은 자중하고 있어야겠네.”
카드론이 말했다.
그의 말대로 지금은 녀석의 뜻을 따라 주는 수밖에 없었다.
흰 사자가 총독부에 속한 가문과 부대를 건드릴 시, 총독부 또한 프렌치아 국민이 속한 마을을 하나씩 날려 버리겠다는 경고문이었다.
국민을 위한다면 지금과 같이 총독부에 반하는 행위는 중단하라는 의미.
무한의 속검이 테이난가에 도달할 때까지 시간을 벌고자 하는 것이겠지.
자신들의 승리를 확신하기에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일단 저들이 이렇게까지 나온 이상, 나도 잠자코 있을 수밖에 없다.
하나, 이때는 누구도 알지 못했다.
이 사건이 프렌치아에 얼마나 큰 불길을 불러일으킬지.
총독부의 만행에 국민들이 크게 동요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