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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후 천하제일인이 되어 귀환했다-155화 (155/228)

제155화

제155화 들끓는 민심 (1)

전서구 한 마리가 총독부로 내려앉았다.

잠시 후 서신을 받아 든 총독 아르멜은 그것을 다 읽기도 전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뭐라-!”

도저히 가만히 앉아서 읽을 수 있는 내용이 아니었다. 파르르 떤 눈동자가 좌우로 바쁘게 움직이며 서신을 훑어 내려갔다.

털썩.

다리의 힘이 풀린 아르멜은 의자에 허물어지듯 주저앉았다. 그는 넋을 잃은 표정으로 깊은 탄식을 내뱉었다.

“……난 이제 끝났구나.”

서신은 완전한 패전을 알리고 있었다.

테이난가의 배신과 아리아나 왕국의 개입으로 총독부 병력 8만이 하루아침에 증발해 버리고 말았다.

가주를 잃은 하리아디가와 크로단가를 비롯한 여러 가문이 입은 피해 또한 컸다.

여지없는 처참한 패배.

말 그대로 대차게 말아먹고 말았다.

상황을 곰곰이 복기하던 아르멜은 별안간 눈에 핏발을 세우며 손에 쥔 서신을 구겨 쥐었다.

“이 빌어먹을 박쥐 새끼가!”

따지고 보니 지금까지의 작전은 모두 테이난 후작의 머릿속에서부터 기인한 것이었다.

그런 그가 배신자였다니.

몬스터에게 식재료로 사용하라며 제 몸을 갖다 바친 꼴이지 않은가.

세작이 그리 깊숙이 숨어 있었으니, 애초에 질 수밖에 없는 전쟁이었다.

그런데 대체 왜?

그는 누구보다 이익을 우선하는 박쥐 같은 자로 유명한 자이거늘.

그런 테이난 후작이 어째서 제국을 배신하고 프렌치아 임시정부에 붙었는가.

또한, 아리아나 왕국의 행보도 의외였다.

제국과 척을 지면서까지 프렌치아를 돕다니.

어떤 이해관계가 엮여 있는지 예상은 가지만, 두 세력 모두 프렌치아의 독립에 승부수를 건 것이었다.

그래서 더 괘씸하다.

“그나저나 이를 어찌한단 말인가.”

정신을 추스른 아르멜은 이제 본인이 처한 입장에 대해 상기하기 시작했다.

그는 의자에서 일어나 집무실을 뱅뱅 돌았다. 초조한 마음에 좀처럼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손톱까지 물어뜯으며 발을 동동 구르는 그였다.

어쨌거나 이 패배에 관해 책임을 질 사람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건 총독인 본인의 몫이 될 터.

이 난관을 타개할 방도가 필요했다.

젠장맞을.

간만에 머리를 굴리려고 하니 욕부터 나온다.

할렌트가 죽고 총독의 자리에 올랐을 때, 이제야 좀 앞날이 잘 풀리나 했더니만 독만 든 성배였다.

입술을 잘근잘근 물던 그는, 방법은 하나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전쟁에 대한 책임은 피해 갈 수 없다. 그러니 이 난관을 피하기 위해서는 치러야 할 죗값보다 값비싼 공을 세우는 것뿐이다.

‘그분이 오고 계시다. 흰 사자만 제거한다면 지금 있는 병력들로도 충분히 정리가 가능할 거야.’

며칠 전, 대륙 제일검인 무한의 검속, 바르안 알센도르가 프렌치아에 오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그분이라면 흰 사자의 목을 충분히 베어 낼 수 있을 터였다.

흰 사자가 아무리 날고 긴다고 한들, 대륙 제일에 오른 검을 당해 낼 수 있겠나.

‘이 상황을 최대한 이용하면 된다. 아직 끝난 게 아니니.’

아르멜은 각오를 다지며 입술을 꾹 물었다.

그렇게 아르멜이 공상에 젖어 있던 시각.

그의 동아줄과 다름없는 바르안 알센도르는 프렌치아의 국토에 발을 디디고 있었다.

‘이곳이 프렌치아군.’

바르안은 바쁘게 움직이는 항구를 천천히 둘러보았다.

그의 뒤를 열 명에 이르는 수행 기사들이 따랐다.

바르안이 가진 명성에 비하면 단출한 행렬이었으나, 흰 사자의 빠른 섬멸이 목적이었던 그는 일부러 하인들을 동행하지 않았다.

혼자 움직일까 하다가, 레트로이나 6검을 꺾은 흰 사자와의 대결이 수행 기사들에게도 좋은 경험이 될까 싶어 몇몇만 데리고 온 것이었다.

항구에서 본인의 일에 열중이던 몇몇이 그들의 흉갑에 그려진 문장(紋章)을 보며 눈을 휘둥그레 떴다.

대륙의 모든 가문의 문장을 외우고 있지는 않아도, 그것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자들은 결코 모를 수가 없는 문장이었다.

“아니, 어찌 저들이 프렌치아에?”

“왜, 아는 가문인가?”

“저 문장을 모른단 말인가?”

그들을 알아본 사내가 기함을 토하며 설명을 이었다.

“검은 방패는 제국의 5대 명가 중 하나이자 북부의 맹주, 알센도르가의 문장 아닌가!”

“헙!”

그 말을 들은 이들이 동시에 헛숨을 들이켰다.

“아무래도 흰 사자 때문에 온 것 같은데. 레트로이나 6검마저 당했으니 제국에서 가만히 있을 리가 없지.”

“그, 그럼 저 사람이?”

“아마도 그럴 것 같네.”

“겉으로는 평범해 보이는데.”

“우리 같은 이들이 겉만 보고 구분할 길이 있나.”

기사들 가장 앞에서 뒷짐을 진 채 여유롭게 걷고 있는 백발의 장년인.

그에게서는 범접하기 어려운 귀족적인 면모가 흐르고 있었지만, 그가 가진 명성의 무게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편안한 인상이었다.

“프렌치아에 정말 뭔 일이 일어나기는 하려나 보구만…….”

“그러니까 말이야. 대륙을 떨게 만드는 이들이 자꾸 모습을 드러내니.”

레트로이나 6검에다 무한의 속검까지.

그저 그 이름만으로 대륙을 떨게 만드는 위명을 가진 자들이었다.

이런 거물들은 10년 전의 전면전에서도 모습을 볼 수 없었거늘.

그것은 그만큼 흰 사자의 무력이 하늘에 닿아 있다는 방증이었다.

“그런데 만약에 말일세, 흰 사자가 저들마저 이기면 그때는 어떻게 되는 거지?”

“…….”

여태까지 술술 답하던 사내도 이번만큼은 쉽사리 답할 수가 없었다. 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잠시 고심하다가 입을 열었다.

“나도 잘은 모르겠네만, 아무래도.”

“아무래도?”

“제국에서 가만히 있지는 않겠지. 10년 전처럼 군대라도 이끌고 쳐들어오지 않겠나.”

그 이야기를 들은 남자의 낯빛이 하얗게 질렸다. 오래전 일이 떠오른 까닭이다. 10년 전, 그는 두 눈으로 제국의 함대를 직접 보았다.

바다를 가득 메웠던 군함들.

접안한 배에서 끊임없이 쏟아지던 병사들.

그리고 그로 인해 뒤바뀐 일상을 그는, 여전히 기억하고 있었다.

“우리 같은 사람들이야, 그저 몸을 사리고 있는 수밖에. 우리가 무슨 도움이 되겠나.”

저편에서 밀려오는 시커먼 전운에,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지켜보는 것 외에 아무것도 없었다.

“여기가 말로만 듣던 프렌치아구나.”

“하. 공기 진짜 좋다.”

제국에서 출발해 포르센 항구에 도달한 선박.

바르안이 내렸던 그 범선이었다. 그 안에서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남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개중 긴 자줏빛 머리칼을 가진 여자가 힘껏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으자자. 날카로운 영감님 때문에 참 힘들었어. 그치.”

“그러게 내가 다음 배 타자고 했잖아.”

옆에 선 남자가 그런 여자에게 못마땅한 눈빛을 던졌다.

“궁금하잖아, 대륙 제일검이 어떤 사람인지. 그가 흰 사자를 이길까?”

“모르지. 그래도 패배했으면 좋겠는데.”

“내 생각도 그래. 그래야 우리 차례가 올 테니까.”

둘은 눈을 맞추며 씩 웃었다.

눈에 띄지 않는 평복을 입은 그들이었지만, 그들은 평범과 거리가 먼 단체에 소속되어 있었다.

황제의 직속 친위대, 저스티스.

그들은 무한의 속검이 패했을 경우 흰 사자를 죽이라는 황제의 명을 받아 이곳에 왔다.

남자가 말했다.

“얼마나 강할까, 그 자식.”

“할렌트와 주르하도 당했어. 정말이지 엄청날 거야.”

“하긴. 폐하께서 무한의 속검을 보내 놓고도 우리까지 붙인 걸 보면.”

“녀석이 진짜 그 존재라면, 정말 재미있을 거라구.”

“나도 궁금하네. 이 세계의 정화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말이야.”

* * *

휘영청 뜬 달 아래 시끌벅적한 연회가 이어지고 있었다.

이번 전장의 승리를 축하하는 자리였다. 다들 피노센이 떠나가라 소리를 질러 대며 연회를 즐겼다.

지금까지 여러 전장이 있었으나 이 정도로 커다란 규모의 전쟁이 벌어진 것도, 이렇게 압도적인 대승을 이뤄 낸 것도 처음 있는 일이었다.

다들 정신을 차릴 여력이 없었다.

이 순간만큼은 모든 고뇌와 걱정이 증발해 있었다.

구름 위를 걷는 듯한 들뜬 기분에 취해 먹고 마시고 즐기는 자리였다.

“음하하하하! 내가 제국군의 목을 서른여섯이나 베었단 말이야! 그 이후로는 안 세어 봐서 모르겠지만!”

화렌카는 목젖이 딸랑거릴 정도로 호탕하게 웃었다. 맥주잔을 움켜쥔 그의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고작 그 정도냐. 나는 너무 많아서 세어 보지도 못하겠다.”

우르노 또한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채로 그 앞에 있었다. 평소 무뚝뚝한 그였지만, 취기가 머리끝까지 오르자 일곱 살 난 애처럼 웃음을 실실 흘렸다.

“하트웬 그 자식은 아무것도 모른 채 집에서 기도나 하고 있겠구만.”

“푸하하하!”

둘은 별 의미 없는 말에도 커다랗게 웃으며 술잔을 부딪쳤다.

“정말이지 이렇게나 기분이 좋았던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야. 죽어도 여한이 없겠어!”

화렌카가 빈 잔을 내려놓으며 호탕하게 소리치자, 우르노가 고개를 내저었다.

“죽어도 여한이 없기는. 아직 갈 길이 한참이다, 인마.”

“내가 그 녀석 처음 봤을 때부터 한눈에 알아봤다니까.”

“그 녀석?”

“제네스 말이야.”

“아.”

우르노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와의 첫 만남을 기억해 냈다.

“그때 네가 주제도 모르고 날뛰어서 판이 커졌었지.”

“그거 말고 자식아! 내가 그 녀석 실력 보고 이런 날이 올 줄 알았다니까. 푸흐흐.”

화렌카는 콧김을 뿜으며 옆에 있는 술통에서 맥주를 다시 가득 잔에 채웠다. 눈동자가 흐릿하게 풀린 그는 맥주의 반을 테이블에 흘렸다. 우르노는 고개를 내저으며 입을 열었다.

“벌써 취했냐? 그 자리에 있던 이들 중에 그 생각을 누가 못 했겠어.”

화렌카뿐만이 아니라, 제네스의 검을 봤던 독립군들은 모두 같은 생각을 했을 터였다. 이제 곧 프렌치아가 격동하게 될 거라는 예감. 그리고 그 중심에 그 서늘한 녀석이 있을 거라는 기대 말이다.

하지만 그런 막연한 상상도 현실을 따르지는 못했다.

그 녀석이 막강한 영향력을 가지게 될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흰 사자가 없었다면 이 자리는 결코 존재할 수 없었다.

“그 녀석이 날 일검에 제압했을 때부터 훤히 보였지. 정말이지 그런 놈이 어디서 뚝 떨어진 건지.”

고주망태가 된 화렌카와 우르노가 대화를 나누던 그 시각.

프렌치아 임시정부의 주요 인사들은 승리의 기쁨을 즐길 새도 없이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카드론까지 합류하며 통합 이후 처음으로 각 파벌의 수장이었던 자들이 모두 모인 자리였다.

가장 상석에 앉은 루시안이 말했다.

“다들 고생 많으셨습니다.”

모두의 시선을 집중시키는 그에게서, 이제 어엿한 왕의 품위가 흘렀다.

“우리는 크게 승리했지만, 이번 전쟁으로 2,357명의 사상자가 있었습니다. 집계된 이들만 해도 그렇지요. 물론 적의 사상자에 비하면 매우 적은 인원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가진 죽음의 무게가 가벼워지지는 않을 겁니다.”

루시안은 승리에 취하지도, 또 죽음에 취하지도 않은 채 의연하게 말을 이어 갔다.

“앞으로 훨씬 더 많은 동료와 국민이 죽게 될 겁니다. 프렌치아의 독립을 위해서, 새로 들어설 나라를 위해서.”

그가 좌중을 훑었다.

“지금까지 있었던, 또 앞으로 나오게 될 그 수많은 희생이 바래지 않도록 우리는 지금의 작은 승리에 취하지 않고 마음을 다잡아야 합니다.”

루시안이 결연하게 말을 이었다.

“우리는 이제 막 첫걸음을 떼었습니다. 이제 나아가 수도, 마그네트를 수복할 것이고.”

그의 푸른 눈이 세차게 타오르고 있었다.

“그 끝에서 프렌치아 왕국이 제국과 무관한 자주 국가임을 선포하게 될 것입니다.”

드라칸은 허리까지 꺾으며 웃음을 터트리고는 이내 싸늘한 눈빛을 떴다.

“독립하면 뭐가 달라지기라도 하나?”

“몰라서 묻는 건 아닐 테고요. 저의가 궁금하군요.”

“독립해도 어차피 마찬가지다. 군림하는 귀족 놈들의 모가지만 달라질 뿐이지. 그리고 그들 또한 국민들을 핍박하는 건 다를 바가 없을진대, 대체 무엇을 위해 독립을 원한다는 말이냐.”

그는 눈을 활활 불태우며 말을 이었다.

“프렌치아 때는 뭐 많이 달랐나? 그때는 만민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어? 네놈은 마치 독립만 이뤄지면 세상이 한순간에 꽃밭이 될 것처럼 말하는군.”

맹수의 그로울링 같은 목소리.

드라칸의 목소리에서 짙은 어둠이 전해진다. 루시안은 그제야 혁명의 칼이 정확히 어디를 겨누고 있는지 알 듯했다.

며칠간 이곳에 지내며 둘러본 이들은 위계가 없는 집단이었다.

위아래 구분도 없었고, 별다른 체계도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자유분방하고, 어떻게 보면 난잡하다.

인물들의 면면을 봐도 그렇다.

언사가 거칠고 격이 없다. 성정이 못되지 않지만 다듬어지지 않는 야생의 기운이 전해졌다.

지난 3일간 이곳에서 머물며 알게 된 것들이었다.

그렇게 얻은 조각들이 드라칸과의 대화를 통해 하나로 꿰어지고 있었다.

“만인이 행복하지는 않았지요.”

루시안은 순순히 드라칸의 말을 긍정했다.

그의 말이 맞았다.

프렌치아라고 밝은 면만 존재했겠는가.

모든 국민이 그 안에서 풍요를 누렸겠는가.

프렌치아 왕국이 건재할 때도 누군가는 지옥에서 살았다.

누군가의 삶은 분명 불행했다.

왕의 눈을 피해 횡포를 부리는 귀족도 있었고, 각종 악행을 저지르는 집단도 있었고, 하루하루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권세를 누리는 귀족들과 달리, 배고픔에 허덕이는 자들도 넘쳐났고 거처 없이 뒷골목을 전전하는 고아들도 많았다.

그 세상 속에서 누군가의 삶은 반드시 불행할 수밖에 없었다.

프렌치아는 결코 만인이 행복한 나라가 아니었다.

“어차피 독립을 해도 대가리만 바뀔 뿐이야. 나라가 바뀐다고 이 세상이 얼마나 달라지겠어.”

“많은 것들이 달라질 겁니다.”

“제국의 것들보다야 나을 수 있겠지. 하지만 그것을 위해 흐르게 될 피는? 그것을 위해 죽게 될 이들은? 모두 하잘것없는 자들의 목숨일 테지. 내 부하 놈들의 태반이 죽어 나가겠고, 나도 죽을지 몰라. 그 전쟁의 끝에서는 새로운 왕가가 탄생하겠지. 새로운 귀족 놈들이 등장할 테고. 그리고 그들이 부와 명예를 독식하게 될 거다. 하지만. 정작 전장에 나가 목숨을 걸고, 피를 흘리게 될 사람들. 그 수많은 이들의 삶은 지금과 얼마나 달라질까?”

드라칸은 단호했다.

“뒷골목을 전전하던 하류 인생이 독립이 이뤄진다고 멋들어진 정장을 입게 될까? 도둑질이나 하던 놈들이 점포를 차리고 상인이 될까? 결국 귀족 놈들만 배를 불릴 뿐이야. 그럼 우리는 대체 무엇을 위해 싸워야 하는 거지? 나는 네깟 놈들을 위해 피를 흘려 줄 생각이 없다. 다른 이들을 위해 싸울 생각도 없어. 우리 가족들, 그들을 위해 싸울 뿐이다. 우리가 왜 독립군이라 불리게 됐는지 알아? 그저 적대한 귀족 놈들이 제국 것들이라 그리 되었을 뿐이다.”

그는 차갑게 웃었다.

“프렌치아가 독립하게 된다면, 우리는 배부른 귀족 놈들의 곳간을 훔치는 도적들이 될 테지.”

드라칸은 입꼬리가 기다랗게 말려 올라갔다.

“기왕이면 도적 떼보다는 독립군이 더 폼 나잖아.”

“당신이 귀족이 될 수도 있을 텐데요.”

우당탕탕!

루시안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드라칸은 옆에 놓여 있던 작은 다과상을 들어 엎었다. 뒤집어진 상이 한편에 나가떨어져 바닥을 뒹굴었다.

“나는 귀족 따위 될 생각 없으니 꺼지시라고.”

드라칸이 얼굴까지 시뻘겋게 붉히며 이를 악물었다.

타오르는 눈동자가 금방이라도 이성이 날아갈 듯 흔들린다.

그만큼 동요했다는 증거.

루시안은 그런 드라칸을 보며 싸늘히 표정을 굳혔다. 루시안의 입가에서 서늘한 음성이 흘렀다.

“미련한 놈.”

드라칸의 눈썹이 사납게 비틀린다.

“네놈의 언사를 들어 보니, 천한 출생이 가려지지 않는구나.”

“뭐라!”

벌떡 일어난 그의 눈동자에 핏발이 섰다.

“네놈이 당장 이 자리에서 뒈지고 싶은 것이냐!”

“하는 짓도 천하기 짝이 없고.”

“이 개같은 자식이!”

이를 악문 드라칸이 뒤편에 걸려 있던 검은 묵창을 거칠게 집어 들며 기세를 피웠다. 첨예한 살기가 장내를 창졸간에 집어삼키며 내부를 흔들었다.

구오오오.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긴장감에, 내부의 공기가 팽팽히 당겨졌다. 네더만 또한 검병에 손을 슬며시 가져가 만약을 대비했다. 루시안은 그런 상황에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한번 날뛰어 보거라. 네 부하들을 모조리 죽이고 싶다면.”

으득.

드라칸은 이를 악문 채 창을 불끈 움켜쥘 뿐, 창을 휘두르지는 못했다. 앞에 있는 용 사냥꾼도 만만치 않지만, 그들의 뒤편에는 흰 사자가 있었다.

총독부마저 단신으로 뚫는 자를 막아 낼 전력은 없었다.

프렌치아 임시정부 수장의 목을 벤다면, 그들은 혁명의 칼의 뒤를 집요하게 쫓을 터.

저자의 목이 가진 무게는, 혁명의 칼에 속한 이들의 삶의 무게와 같았다.

모두 죽게 되겠지.

으득.

드라칸은 이를 악물고 받은 모욕을 짓씹으며 말했다.

“당장 꺼져라. 눈깔 돌아 버리기 전에.”

하지만 루시안은 그의 말을 들어줄 생각이 없었다. 그는 서슬 퍼런 축객령에도 태연히 말을 이어 갔다.

“너희들의 세력이 암흑가를 중점으로 퍼져 있음을 알고 있다.”

드라칸의 인중이 들썩였다.

“그래서 어쩌라고.”

“구성원들이 노예였던 자부터 매춘부에 도둑, 건달, 고아까지. 모두 그런 하잘것없는 존재들이라지.”

콰아아앙!

드라칸이 휘두른 창이 방의 측면을 부수며 커다란 구멍을 만들어 내었다. 그의 이성의 끈이 끊어질 듯 말 듯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었다.

“X발. 다시 말해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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