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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후 천하제일인이 되어 귀환했다-152화 (152/228)

제152화

제152화 두 개의 협곡 (1)

둥! 둥! 둥!

적진에서 북소리가 들려왔다.

짙게 깔린 어둠 사이로 일렁이는 횃불들이 흐르듯 다가오고 있었다.

토성에 오른 병사들은 활시위를 당긴 채 그들이 사정거리 내로 들어오는 것을 기다렸다. 북이 울리는 박자에 맞춰 심장이 쿵쿵 뛰었다.

“우와아아-!”

일순, 협곡을 뒤흔드는 함성과 함께 적들이 밀려오기 시작한다.

전장의 불씨가 타오른 것이다.

“발사-!”

리포드의 명령을 따라 팽팽히 당겨졌던 활시위가 일제히 화살을 쏘았다. 쏘아진 화살이 물고기처럼 요동치며 어둠을 가른다.

파바바바박.

검을 꼬나쥔 채 달려오던 병사들이 곳곳에서 허물어졌다. 그런 이들에 걸려 넘어지는 이들도 있었으나 대부분은 뛰어넘거나 혹은 그대로 밟으며 진격했다.

각 진영이 고함으로 가득 차오른다.

“계속해서 쏴라-!”

“토성을 넘어라!”

적들은 사다리를 이고 와 토성의 외벽에 걸었다.

토성의 외벽은 높이가 5m에 이를 정도로 높았고, 성문은 아예 만들어 놓지도 않았다.

토성은 짧은 시간에 만들어진 것치고 단단히 적들의 공세를 막아 내고 있었다.

적들이 진군하기도 전에 미리 뼈대를 만들어 놓았던 탓이다.

임시정부에게 이 전쟁은 이미 예견되어 있던 전쟁이었다.

대비할 시간은 충분했다.

그리고 그 철저한 준비가 적들의 진격을 효율적으로 막아 내고 있었다.

쿠르르르릉!

토성 앞에서 울음과 함께 무너지는 지반이 있었다. 구덩이를 파놓은 단순한 함정이었지만, 밀집되어 있던 적들은 엎어지고 고꾸라져 목이 부러지거나, 동료들에게 밟혀 압사당했다.

“가자-!”

리포드의 외침과 동시에 소수의 인원이 토성 밖으로 뛰어내렸다.

드라칸을 비롯한 동부와 남부의 간부진들.

콰과과광-!

이들의 무력에 토성 위에 걸쳐 있던 사다리가 나뭇가지처럼 힘없이 부서진다. 그들이 뿜어낸 푸른 섬광이 전열을 단숨에 가르고 있었다.

익스퍼트 중급쯤에 이르면 토성의 일부를 허물어트릴 검력을 가진다.

리포드를 비롯한 이들은 그런 기사들을 막을 요량으로 토성 앞에 선 것이다.

리포드와 드라칸은 모두 익스퍼트 최상급에 다다른 이들.

그들이 전면에 나섰다.

반면, 압도적인 물량으로 밀어붙이려는 적들의 병력은 질이 좋지 않았다.

그들의 정예는 후방으로 빠져 있었다.

콰과과과광!

리포드의 손끝에서 뿌려진 검격이 적의 대오를 단숨에 헤집는다.

그는 본인의 몸뚱이처럼 넓적한 대검을 양손으로 쥔 채 휘두르고 있었다. 그 검이 움직일 때마다 백색의 섬광이 비단처럼 흘렀다. 검이 얼마나 큰지 언뜻 방패로 보일 정도의 대검이었다.

그는 그런 대검을 나뭇가지 휘두르듯 거침없이 휘둘러 댔다.

“네놈들이 이 몸을 지나갈 수 있을 거 같으냐!”

리포드의 고성은 아군의 사기를 올리고 적군의 사기를 떨어뜨렸다.

그의 존재감은 하나의 성벽이라 불러도 무방할 만큼 듬직했다. 그는 인간 성벽이라는 이명을 제대로 증명하고 있었다.

힘을 내는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푸슈슈슈슛!

어둠 속에 스미어 공간을 가르는 묵직한 창격이 있었다. 곧게 뻗은 그림자가 검은 섬광을 뿜어냈다. 사방으로 휘몰아치는 드라칸의 창격은 단숨에 적들을 쓸어 갔다.

가히 전장을 헤집는 맹수와 같은 움직임.

둘의 전력이 적의 발걸음을 붙잡고 있었다.

리포드와 드라칸을 비롯한 이들은 손쉽게 적의 전열을 허물어뜨리며 토성에 단단함을 더했다.

하지만 오래 버틸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지금은 대부분이 익스퍼트에도 이르지 못한 병사들이었기에 가능한 일.

적의 기사단이라도 밀어닥치면 정면에서 맞서기는 버거울 수밖에 없다.

지금 밀어닥치는 병력은 독립군의 체력을 깎아 놓기 위한 칼받이들에 불과했다.

처음부터 기사단을 내놓지 않는 건 전장의 기본.

손익 관계로 봤을 때 익스퍼트에 오른 기사의 목숨값은, 일반 병사들과는 비교할 수가 없었다.

일반 병사들이야 손쉽게 양성할 수 있지만, 익스퍼트에 이른 기사 한 명을 양성하는 데는 오랜 시간과 투자가 필요하다.

그들 하나의 목숨값이 가문의 위세와 직결되는 바.

병력이 압도적인 상황에서 굳이 그들을 전장의 앞으로 내세울 이유가, 적들에게는 없었다.

소 잡는 데는 소 잡는 칼을 쓰겠다는 의미.

전장은 기사도 눈먼 칼에 죽을 수 있는 곳이다. 특히나 이렇게 좁은 공간에서 벌어지는 난전이라면 더욱이 그렇다.

그 점을 극대화하기 위해 독립군은 협곡이 좁아지는 지형에 토성을 설치한 것이고.

그리고 그런 이유들로 독립군은 적들의 병력을 수월하게 막아 내는 중이다.

“크아악!”

“막아!”

그럼에도 전장은 처절한 양상을 띠었다.

고함과 비명이 협곡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그리고 적의 시체가 토성 앞으로 새로운 벽을 세울 만큼 쌓였을 때, 적진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오셀란토 기사단이다!”

“어금니 기사단이다!”

뒤편에서 전황을 지켜보던 기사단이 출정한 것이다. 허공을 격하는 기세를 보아 그들의 정예는 아니었다. 하나, 그럼에도 기사들은 기사. 지금까지와 달리 최소 마나 유저 중급은 훌쩍 넘어선 이들일 터였다.

병력의 차이는 컸다.

그들까지 합세하자, 전장은 빠르게 밀리기 시작했다.

콰과과광!

곳곳에서 토성이 무너지는 굉음이 일었다.

마나를 품은 검격이 토성을 두드리고 있었다.

“뒤로 물러난다! 후퇴하라!”

적군과 엉겨 붙어 있던 독립군들은 리포드의 명을 따라 점차 걸음을 물렸다. 적들이 하나둘 토성을 넘어오고 있었다.

그렇게 토성을 허물고 넘어온 적들의 머리통 위로 물음표가 떠올랐다.

“응?”

필사적으로 달라붙던 독립군들이 뒤도 안 보고 도망치기 시작한 것이다. 진즉부터 후퇴하고 있었는지 토성에 남은 이들도 몇 없었다.

“쫓아라!”

지휘관들의 고함에 병사들 또한 그들을 쫓아 달리기 시작했다.

뒤편에서 폭발음이 들려온 건 그때였다.

콰아앙-! 콰앙-!

토성의 잔해가 폭발하며 그것을 이루고 있던 돌과 흙더미가 사방으로 비산했다.

근처에 있던 이들과 토성을 넘던 이들이 그 폭발에 휩쓸려 잔해들과 함께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크하하하!”

가장 후미에서 후퇴하고 있던 리포드는 그 장관을 보며 호탕하게 웃어 댔다.

토성 밑에는 폭발 마법이 새겨진 아티팩트를 심어 놓은 상태였다.

그로 인해 독립군들을 쫓던 무리의 허리가 뚝 끊어졌다.

“쫓아-!”

앞에서 우왕좌왕하는 병사들에게 다시금 내려지는 명령.

적군은 다시금 독립군의 뒤꽁무니를 쫓기 시작했다.

쿠르르르릉!

이번에는 지반 이곳저곳이 무너져 내리며 병사들을 삼킨다.

함정이 깔려 있었던 것이다.

그저 땅을 파고 흔적을 덮어 놓은 간단한 함정이었지만, 짙은 어둠은 그것을 구별하기 어렵게 했다.

함정의 수가 많은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함정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적들의 걸음은 자연스레 느려졌다.

“그대로 밀어붙여라!”

그럼에도 적들은 후퇴하는 독립군들을 끈질기게 쫓았다.

그렇게 추격전이 얼마나 이어졌을까.

선봉에 서서 독립군을 쫓던 이들이 일제히 걸음을 멈춰 섰다.

“…….”

그들 앞으로 또 하나의 토성이 세워져 있는 탓이다. 줄행랑을 치던 독립군들이 다시금 그 위에 정렬해 있었다.

“이 빌어먹을 새끼들이!”

추격을 지휘하던 지휘관은 그것을 보며 이를 악물었다. 적의 뒤를 바짝 쫓은 자신들만으로는 무리가 있었다. 뒤에서 오는 병력을 기다려야 했다.

그리고 잠시 후 다시 토성을 앞에 둔 공방전이 반복되었다.

* * *

다음 날 아침.

아직 협곡을 벗어나지 못한 연합군은 전진을 멈추고 진영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전열을 정비하기 위함이었다.

저편에는 또 하나의 토성이 있었다.

지난밤, 세 개의 토성을 넘었음에도 그랬다.

협곡의 남은 길로 보았을 때, 앞으로 이들이 세웠을 토성은 많아야 다섯 개.

병력의 피해가 있었다지만, 심각한 수준은 아니었다. 이틀 정도면 협곡을 벗어날 수 있을 듯했다.

“알롱드 사령관님.”

“무슨 일이지.”

“병사들의 건강 상태가 좀 이상합니다.”

알롱드가 미간을 찌푸렸다.

병사가 다급히 말을 이었다.

“복통을 호소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가벼이 넘기기에는 증상을 가진 이가 상당히 많습니다.”

병사들은 지금까지 모두 같은 음식을 먹어 왔을 터.

단체로 복통을 호소한다면 무언가 문제가 있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말이 되지 않는 게, 독이 있는 버섯이나 풀뿌리를 캐 먹어야 할 정도로 식량이 부족했던 적이 없었다. 모두 전투 식량으로 지급된 비스킷이나 건빵을 먹었을 텐데, 복통을 호소하다니.

“보급품 외에 따로 먹은 것이 있더냐?”

“아닙니다. 조사 결과 다른 걸 먹은 자는 없었습니다. 아무래도 전투 식량이 문제인 거 같습니다.”

“전투 식량이 문제라니!”

알롱드의 눈썹이 사납게 비틀렸다.

전투 식량의 보존성을 생각했을 때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확인해 보았느냐?”

“현재 위생병들이 확인 중에 있습니다.”

“당장 철저히 조사토록 하라!”

지금까지 후방에 있는 테이난가에서 조달해온 전투 식량을 섭취해 왔다.

만약 전투 식량에서 문제가 발생한다면 이것을 빌미로 그에게 책임을 물어도 별말 할 수 없을 터. 중간에 독립군 쪽에서 수작을 부렸는지는 모르겠지만, 보급품의 조달은 후방에 있는 테이난가의 책임이었다.

알롱드는 옆에 있던 부관에게 명령을 내렸다.

“테이난가는 지금 어디쯤 왔는지 확인해 보거라.”

그 시각.

알롱드가 찾는 테이난가의 병력은 협곡의 입구에 도달해 있었다.

연합군 본대와는 이제 반나절 거리.

본대는 독립군과의 전장과 휴식을 반복하고 있을 테니, 내일이면 그들과 조우할 수 있을 터였다.

네더만은 기다란 협곡을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지금쯤이면 슬슬 복통을 느끼고 있겠지?”

“그렇겠지.”

“죽을 맛이겠군.”

전투 식량을 담은 상자에 뿌려 놓은 것은 하리아나 버섯 가루.

잠복기가 3일쯤 되는 독버섯이었다.

심각한 독을 가진 버섯은 아니고, 그저 복통과 구토 증상이 2~3일쯤 지속되다가 마는 경미한 독을 품은 버섯이었다.

카드론은 연합군에게 보내는 전투 식량에 그 가루를 뿌려 보냈다.

향이 거의 없어 전투 식량을 먹어도 별다른 맛의 변화를 느끼지 못했을 거다.

가루를 묻힌 것이기에 많은 양은 아니었으나, 5일 전부터 보내기 시작했으니 지금쯤이면 슬슬 복통을 호소하는 이들이 불어나고 있을 거였다.

아직 연합군 쪽에서 별다른 기별이 없는 것으로 보아 이제 슬슬 반응이 올라오고 있을 터.

익스퍼트 이상에 이른 기사들에게는 별 효과가 없겠지만, 일반 병사들의 전력은 수직으로 떨어질 터였다.

전장을 뒤집기에 충분한 배경이 깔리고 있었다.

“여기서 군영을 구축했었나 보군.”

연합군이 머물다 간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었다.

이제 그들의 뒤통수가 점차 눈앞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하루가 지났다.

반나절 거리의 차이였던 연합군의 후미는 이제 코앞으로 당겨졌다.

지금까지 지나온 흔적들을 토대로 연합군은 하루에 낮과 밤, 두 번의 전장을 벌이며 토성을 넘고 있었다.

병사들의 복통 때문인지 진격 속도는 처음과 달리 느려져 있었고, 주변에도 병사들이 한 구토의 흔적이 발견되었다.

전황은 적당히 달아오른 셈.

상공의 저편에서는 어스름이 기어 오고 있었다.

그들은 곧 독립군과의 전장을 형성할 것이다.

카드론은 뒤로 돌아 자신을 따르는 병력들을 바라보았다. 나란히 줄지은 이들은 결연한 태도로 카드론을 바라보고 있었다.

테이난가의 깃발 아래 있지만, 북부의 흰사자와 굽이치는 해협 소속의 독립군들 위주의 병력이었다. 개중에는 북부의 흰사자 간부인 화렌카도 있었다.

‘드디어 시작이군.’

화렌카는 콧김을 뿜으며 카드론을 바라보았다.

‘최초의 변절자’라 불리는 카드론 후작이 굽이치는 해협의 수장일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 했던 그였다.

하지만 그 때문에 적의 무방비한 뒤통수를 세차게 후려칠 기회가 찾아왔다.

카드론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다들 그동안 독립군으로 살아오느라 고생 많았다.”

그래, 고생 많았지.

언제 올지도 모르는 막연한 독립을 위해 목숨까지 걸고, 더럽게 고생하며 살았다.

한마디로 인생을 포기했다.

개인의 삶을 모두 포기하고, 오직 독립이란 대의 아래 목숨을 걸었다.

화렌카 그 자신뿐만이 아니라, 모두가 그랬다.

이곳에 오기까지 긴 세월 동안 수많은 동료들이 죽어 나갔다.

화렌카는 그들의 죽음을, 그들의 얼굴을 한 번도 잊은 적이 없다.

모두 그의 가슴속에 사무쳐 있었다.

산 자들은 그렇게 죽은 자들의 열망까지도 가슴에 품었다.

그것이 산 자들의 몫이었다.

독립.

덕분에 이 안에 담긴 열망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진해지고 무거워져만 갔다.

“우리는 그동안 독립만을 위해 살아왔다. 그리고 그것을 위한 첫걸음을 지금 떼고자 한다.”

그리고 이제야.

독립군이 된 지 10년이 지나서야.

그 열망을 향해 첫발을 뗄 수 있게 되었다.

“적들의 뒤통수가 앞에 있다. 배신은 조용하고 은밀히 해야 하는 법. 진격의 함성은 승리한 뒤로 미룬다. 이제 반격의 서막이 들어 올려졌다.”

화렌카의 입꼬리가 기다랗게 찢어졌다.

검을 쥔 손이 근질거린다.

심장은 폭발할 듯 쿵쾅거렸다.

그 펌프질에 핏물이 혈관을 질주한다.

“우리는 암살자처럼 은밀하고 신속하게.”

죽음은 두렵지 않다.

눈앞에 보이는 건, 오직 베어야 할 적뿐.

가슴속에 불꽃이 세차게 타오른다.

“적의 뒤통수를 친다.”

카드론이 적의 후미를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그의 뒤를 불타오르는 전의를 품은 병사들이 따랐다.

자연스레 점차 쐐기꼴로 늘어지는 전열.

바닥을 차는 소리만이 협곡에 울려 퍼진다.

침묵에 잠긴 돌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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