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1화
제151화 오르엔 대교 (3)
밤사이 강을 건너려던 작전에 실패한 적의 군영은 고요했다.
총력전을 준비하겠지.
지금까지와 달리 피해를 감안하고 병력을 밀어붙일 작정으로 보였다.
해가 정오에 걸렸을 때, 적들은 움직였다.
적진이 꿈틀거리며 깨어나고 있었다.
수많은 병력이 득실거리는 벌레 떼처럼 줄지어 밀려왔다.
나는 반대편 강가에서 그런 녀석들을 일단 지켜보았다.
무슨 작전인지 알아야 그에 맞는 대응을 할 게 아닌가.
적들은 뭍에 나란히 대오를 이뤘다.
곳곳에서 전열이 갈라지며, 그 사이로 로브를 걸친 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마법사였다.
멀찍이 간격을 두고 수평으로 늘어선 마법사들의 수는, 300에 이를 듯했다.
그들의 손바닥은 하나같이 강의 수면을 겨누고 있었다.
아무래도 무슨 마법을 준비했나 본데.
마법사들이 일제히 마법을 영창하자, 그들의 손에서 새하얀 운무가 피어났다. 그것은 원기둥의 형태로 빠르게 자라났다.
구름처럼 자라난 원기둥이 흐르는 강물과 맞닿는다.
쩌저저저저적!
흐르던 수면이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뿌연 원기둥이 닿아 형성된 얼음은, 접촉점부터 방사형으로 자라나며 강을 빠르게 집어 삼켜갔다. 마치 파도가 밀려오는 것처럼 얼어붙은 면적이 반대편 뭍을 향해 밀려갔다. 그것을 따라 밀려온 차가운 공기가 폐를 훑고 나와 입김으로 흩어졌다.
하루아침에 한겨울이 찾아온 듯했다.
구오오오오오.
잠시 후, 폭 50m에 이르는 강이 완전히 얼어붙어 대지를 만들었다. 대교보다 더욱 거대한 얼음 대교였다.
가로길이가 50m 정도로 보였다.
마법사들은 마법을 끝내자마자 탈진한 것처럼 모두 제자리에 허물어졌다. 모르기는 몰라도 마석까지 이용해 모든 마나를 쏟아부었겠지.
그 덕분에 병사들이 강을 건널 얼음길이 열렸다.
“전군 돌격하라-!”
지휘관의 고성과 함께 적군이 밀어닥치기 시작한다. 그들의 목적은 내가 아닌 이 강을 건너는 것에 있었다.
맞은편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나도 발을 굴러 그들에게 향했다.
파밧.
신형이 흐릿해지는 순간, 나는 강의 중심부에 서 있었다.
그들보다 월등히 빠른 속도였다.
병사들의 무게를 지탱할 만큼 두껍게 언 얼음이었다. 한 번에 부수기는 나 또한 쉽지 않았다.
그래도 일단 부수기는 해야겠지.
나는 검을 꺼내지 않고 손바닥을 모아 합장한 뒤 눈을 감았다.
심상의 세계에 온전히 집중하기 위해서였다.
우우우웅!
의지에 공명한 세 개의 단전이 대차게 진동하며 일제히 내력을 쏟아 내기 시작했다. 댐에서 방류된 물처럼 콸콸 흐르는 진기가 십이경맥을 질주한다.
구구구구구구!
너른 왕도와 같이 깨끗하게 개통된 혈도는, 급류처럼 사납게 쏟아지는 내력을 말끔히 받아 내며 원하는 길로 인도했다.
하나로 흐르던 내력이 일순, 두 갈래로 갈라진다.
천령신공 심법편.
무극천승심결(無極天昇心結).
극의 화룡승천(火龍乘天).
열화의 장(章)과 광풍의 장(章)이 동시에 펼쳐졌다.
콰아아아아!
불꽃의 폭발이 내 주위로 구름처럼 터져 나간다.
그 열기를 따라 일대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렇게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빠르게 뻗어 나가던 불꽃의 구름이 일순, 멈춘다.
그리고 시간이 되감기듯 내게 다시 빨려 들어오며 나선으로 휘감긴다.
콰아아아아-!
나를 중심으로 휘감겨 승천하는 바람이 있었다.
나선으로 회전하며 하늘로 오르는 회오리바람, 용오름.
그 기류를 불꽃이 타고 오른다.
콰르르르르!
얼어붙은 강의 중심에서 불기둥이 자라나고 있었다.
나는 그 중심에서 계속해서 내력을 발산했다.
눈덩이가 굴러가며 스스로 크기를 키우듯, 불꽃을 품은 용오름은 일대의 대기를 휘감으며 더욱 크기를 키웠다.
콰과과과과과과!
얼어붙었던 대지가 그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깨지고 부서지며 갈라진다.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단단한 빙하가 흔들리고 있었다.
퍼즐 조각처럼 산산이 부서져 흩어지는 얼음 조각들.
그것이 녹아내린다.
뜨거운 열풍이 대기의 수분마저 증발시키며 일대를 달구고 있었다.
부서진 얼음 조각들은 녹아내리며 강물 아래로 삼켜져 갔다.
그렇게 어느 정도 얼음을 부수어낸 나는, 열화의 장(章)의 운영을 멈추고, 광풍의 장(章)에만 집중하기 시작했다.
새로이 피어나는 불꽃이 사라지자, 불기둥의 뿌리에서부터 강물이 빨려 올라가며 물기둥이 만들어진다.
쿠구구구구구!
그 거대한 흐름에 반쯤 녹았던 얼음덩어리들이 부딪치고 휘말리며 허물어진다.
회전에 회전을 더하는 바람.
그것을 타고 오른 물기둥의 무게와 압력을 나 또한 견디기가 버거워졌다.
그래서 그만두었다.
콰아아아아앙-!
일대를 휘감던 바람의 동력이 일순 꺼지며, 높게 치솟았던 물기둥이 일시에 터져 나갔다.
빨려 올라갔던 물줄기가 폭발하며 사방으로 비산한다.
마치 하늘에서 폭포가 쏟아지는 듯했다.
쿠과과과과!
물길이 담은 무게가 철근처럼 무겁게 지반을 내려치며 일대를 해일처럼 쓸고 지나간다.
승천하는 바람으로 인해 허공에 떠올라 있던 나는, 천천히 수면 위로 내려섰다.
그리고 눈을 떴다.
일대는 거대한 태풍이 쓸고 지나간 듯 폐허가 되어 있었다.
범람한 강물이 밀물처럼 뭍을 쓸고 있었다.
후두두둑.
하늘에서는 강물이 여전히 비처럼 떨어져 내리고 있었고, 용오름에 빨려 올라갔던 병사들도 이곳저곳에서 후두둑 떨어져 내렸다.
나는 그 중심에 홀로 서 있었다.
“후우우.”
깊게 호흡을 가다듬었다.
간만에 단전이 휑한 느낌이 들었다.
적들은 밀려드는 물살을 피해 다급히 퇴각하고 있었다.
* * *
페치말로는 허망한 눈길로 흰 사자를 주시했다.
‘……이자는 마법도 쓴단 말인가?’
그는 흰 사자가 만들어 낸 광경 앞에서 군단장이라는 본분도 잊고 그저 멍하니 서 있었다.
믿기지 않는 광경에 정신이 현실과 이격되어 버렸다. 퇴각하는 병사들의 모습이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조금 전 불기둥이었다가 물기둥이었던 그 거대한 토네이도가 망막에 새겨진 듯 뇌리에 박혀 있었다.
어찌 인간이 하늘에 닿는 거대한 토네이도를 만들어 낼 수 있단 말인가.
대마도사라 불리는 이들이나 가능할까?
그런데 그것을 검을 든 자가 해냈다.
그가 가진 전력의 끝이 가늠이 되지 않았다.
두 번의 전투만으로 마음속에 세워져 있던 자부심이 꺾여 버렸다.
흰 사자는 단순히 소드 마스터로 정의할 수 있는 자가 아니었다.
“……군단장님.”
침음에 잠긴 부관의 부름에, 페치말로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그는 어금니를 한번 까득 물고는 낮게 읊조렸다.
“회군한다.”
별다른 수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대로 무리하게 강을 건너는 것보다는 차라리 협곡을 통하는 게 나을 듯했다. 상류의 수심은 발목에 잠길 정도로 낮았다. 지금의 오르엔강은 여러 지류가 모여 커진 강인 탓이다. 눈앞의 강은 병력의 우위를 이용하기에 한계가 있었다.
“지휘 체계가 정비되는 즉시 이동할 준비를 하도록.”
일주일이 넘는 시간이 더 소요되겠지만, 조악한 배를 만드는 것에도 한계가 있다. 그러니 차라리 그게 나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총독부 병력 중에 저자를 막을 수 있는 자가 있기는 할까?
피노센에 도달한다고 해도 저자를 뚫을 수 있을까?
눈앞에서 본 그의 전력을 상기해 보면 그것이 가능할 것 같지 않았다.
제국의 검이 오지 않는 이상.
아니, 레트로이나 6검마저 당하지 않았나.
웬만한 전력으로는 그를 막아 낼 수 없을 거다.
‘알센도르 경이 아니라면…….’
역대 최연소로 소드 마스터의 경지에 올라, 지난 20년간 대륙 제일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무한의 속검, 바르안 알센도르.
그분이라면 흰 사자의 목을 칠 수 있을 것이다.
“회군한다!”
다시금 대오를 갖춘 제국의 병사들이 줄지어 이동하고 있었다.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적들을, 시민들은 성벽에 올라 바라보았다.
“적들이 회군한다!”
“흰 사자가 승리했다!”
“우와아아-!”
성벽에 올라선 이들의 외침에 성 전체에 활기가 차오른다.
승리의 함성이 불길처럼 빠르게 번져 가고 있었다.
“이게 정말로 말이 되는 일인가!”
“자네도 봤나?”
눈을 마주치며 얼싸안는 이들.
“정녕, 이게 꿈이 아니라고?”
그들은 승리를 만끽하면서도 이 순간이 믿기지 않았다. 듣기로 8만에 이르는 병력이라고 했다. 성벽에 올라서 보면 개미 떼처럼 우글거리는 병력이 평야에 길게 늘어서 있었다.
수많은 적이 죽었지만, 겉으로 봤을 때는 별 차이가 없어 보였다.
고작 한 명이서 막아 낼 수 있는 규모가 아니었다.
그런데 그들이 회군하고 있었다.
저걸 어찌 혼자서 막아 내겠는가 싶었지만, 흰 사자는 그것을 해냈다.
평야를 메운 병력이 고작 한 사내를 넘지 못해 등을 돌린 것이다.
오르엔강의 물결도 작은 돌부리를 넘지 못하고 갈라진다는 그 말이 딱 맞았다.
“나를 당장 한 대 때려 주게!”
철썩!
“더럽게 아프군! 이건 꿈이 아니야!”
“나도 한 대 쳐 주게!”
철썩!
현실을 확인하는 이들이 만들어낸 찰진 소리가 곳곳에서 울렸다.
하루아침에 맞은 해방.
프렌치아의 독립은 아니었지만, 스도스성의 사람들은 누구보다 먼저 그 해방을 맞보았다.
성을 통치하던 스도스 가문이 하루아침에 무너졌다. 농장을 관리하며 패악을 부리던 제국 놈들이 죽었다. 그 밑에서 알랑방귀를 뀌며 살아가던 이들도 죽었다. 사람들을 핍박하며 못된 짓을 일삼던 이들이 하루아침에 모두 죽어 버렸다.
그것만 해도 꿈만 같았는데.
그것을 본 것만으로도 여한이 없을 것 같았는데.
대륙을 제 맘대로 휘젓는 그 제국군이, 흰 사자를 넘지 못해 회군하고 있었다.
“뒈져라! 이 제국 새끼들아!”
누군가가 참지 않고 소리쳤다.
“꺼져 버려!”
“꼴좋다! X발 새끼들!”
사람들은 성벽 위에서 회군하고 있는 제국군을 향해 욕설을 뱉어 댔다. 지금까지의 설움을 토해 냈다.
그간 응어리진 울분이 오늘만큼은 고성에 섞여 시원하게 뚫렸다.
그러다 이내 사람들은 모두 흰 사자를 연호하기 시작했다.
“흰 사자!”
“흰 사자!”
스도스성의 열기는 좀처럼 가라앉을 줄 몰랐고, 밤새도록 승리의 함성과 축제 분위기가 시들지 않고 이어졌다.
그렇게 스도스 성이 승리의 함성으로 가득 차 있던 시각.
테이난가 진영에 도착한 네더만은 카드론과 조우하고 있었다.
“여. 오랜만이야.”
막사 입구를 젖히며 네더만이 능글맞은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러고는 카드론을 보며 못마땅한 눈초리를 보냈다.
“얼굴 많이 좋아졌네.”
“좋아지기는 뭐가 좋아져.”
카드론은 눈썹을 사정없이 비틀며 불편한 심기를 표했다.
“내가 노냐, 인마!”
“노는 거 아니었어?”
네더만은 호화로운 카드론의 막사를 보며 새끼손가락으로 귀를 팠다. 그 성의 없는 태도에 카드론은 관자놀이가 다 지끈거렸다.
‘저놈하고 대화하면 나만 손해지.’
이제는 저 얼굴만 봐도 괜히 두통이 오는 것 같다. 카드론이 부글거리는 속을 꾹 참고 말했다.
“그쪽 상황은 어때?”
“계획대로 잘 진행되고 있다.”
피노센 쪽 진영에서는 협곡이 좁아지는 길목에 협곡을 잇는 토성을 쌓고 있었다. 적의 걸음을 잡기 위함이었고, 적을 보다 오래 협곡 안에 붙들어 놓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뱀의 몸뚱이처럼 구불거리는 협곡은 적들의 모든 병력을 능히 품을 수 있을 만큼 길었다.
“이쪽은 어때? 잘 진행되고 있어?”
네더만의 물음에 카드론은 입매를 비틀었다.
“물론. 내가 진행하는데 문제가 있을 리가.”
“정확히는 내 덕이지.”
네더만은 엄지로 본인의 가슴팍을 찌르며 콧대를 세웠다.
후방에서 연합군의 본대를 따르고 있는 카드론은 이곳저곳에서 전투 식량을 끌어모아 본대로 지원하고 있었다.
네더만을 비롯한 이들이 그들의 식량을 불태워 버린 탓이다. 긴 협곡을 건너기 위해서는 꽤 많은 식량을 비축해 놓아야 했기에 그쪽에서는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닐 거다.
카드론이 입매를 비틀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녀석들의 뒤통수가 점점 보이는군.”
“역시 뒤통수치는 건, 네가 전문가지.”
네더만의 말에 카드론이 눈에 불을 켰다. 가문의 이득을 위해 이쪽저쪽으로 움직였지만, 박쥐라는 소리가 듣기 좋은 건 아니었다.
특히, 이 자식한테는 듣고 싶지 않았다.
카드론이 손에 들고 있던 서류 뭉치를 집어던지며 소리쳤다.
“괜히 사람 속 뒤집지 말고 나가, 자식아!”
그로부터 일주일 후.
선봉에 서서 협곡을 나아가고 있던 하리아디가의 진영 앞으로 적의 토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짧은 시간에 쌓아 올린 것치고는 견고해 보였지만, 성벽마저도 넘을 수 있는 병력 앞에서 그것은 작은 방지 턱에 불과했다.
“어쩔 작정이오.”
히도르센이 현 사령관인 알롱드에게 물었다.
알롱드는 단정히 정돈된 수염을 쓸며 말했다.
“단번에 뚫는 것이 좋지 않겠소.”
협곡이다 보니, 한 열에 세울 수 있는 병력의 수가 제한적이었다.
전열을 좁고 길게 유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수적 우위를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어려운 것이다.
게다가 좁고 깊은 협곡은 식량 조달에도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이곳을 빠르게 뚫고 나가 피노센을 포위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전략이었다.
“테이난가의 진군 속도가 느려지고 있어서 문제요.”
히도르센이 말했다. 알롱드 또한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모르지 않았다. 적들이 끊어 낸 보급로 때문에, 식량을 충당하느라 후발대의 진군 속도가 느려지고 있었다.
때문에 당초 계획보다 간격이 있었다.
자칫 각개격파를 당할 수도 있는 일.
물론, 프렌치아 임시정부에는 그 정도의 병력이 없었으나 혹시 모를 일이었다.
지금까지 적들의 움직임을 보았을 때, 기습을 노리고 있을 확률이 높았으니까.
어느 정도 경계를 할 필요는 있었다.
“테이난가가 늦어지고는 있지만, 오히려 이를 빌미로 공성전에서 테이난가에 선봉을 양도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히도르센은 알롱드의 말을 이해했다.
치열한 전장은 공성전에서 벌어질 터. 그때쯤이면 테이난가를 공표한 흰 사자의 행위가, 연합군을 흔들려는 목적이었는지 아니면 진심이었는지 알게 될 터였다.
만약 연합군을 흔들려는 목적이었다면, 토성을 뚫었다는 것을 명분으로 테이난가에게 선봉을 넘길 수 있을 터.
“확실히 그게 좋겠소.”
히도르센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
겉으로는 세 가문의 연합이었지만, 내부로는 다시 두 가문이 손잡자는 이야기가 은밀히 이어지고 있었다.
“그럼 오늘 밤, 바로 함락해 버립시다.”
“그럽시다.”
기다랗게 쌓인 토성.
그 위에서 리포드와 드라칸은 저편에 자리를 잡는 제국군을 바라보았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늘어선 전열. 그것이 협곡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깎아지른 절벽이 늘어선 이 베르타 협곡은, 폭이 넓어지고 좁아지기를 반복하는 협곡이었다. 독립군은 좁아지는 지역에 토성을 쌓고 적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리포드가 궐련을 물며 말했다.
“개자식들. 더럽게도 많이 왔네.”
“모조리 죽이려면 밤이 짧겠어.”
드라칸은 결연히 창대를 쥐었다.
토성의 뒤로는 수천에 이르는 병사들이 모여 있었다. 적의 대군 앞에서는 단출했지만, 사기는 하늘을 찌를 듯 높았다.
“빌어먹을. 밤은 길어야 제맛인데.”
리포드는 툴툴거리며 연기를 뿜었다. 흩어지는 담배 연기 사이로, 저편에서부터 어둠이 밀려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