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4화
제144화 혁명의 칼 (1)
드라칸은 동물의 가죽으로 만들어진 의자에 앉아 한 손으로 머리를 받친 채 생각에 잠겨 있었다.
3일 전부터 거머리처럼 눌어붙어 있는 프렌치아 임시정부 녀석들 탓이다.
어쩔 수 없이 집 한 채는 내줬다만, 그들의 목적은 합병.
언젠가는 부딪쳐야 할 테지.
문밖에서 경박한 걸음이 들려온 건 그때였다.
“대장!”
문을 벌컥 열며 들어오는 푸조.
“뭔데 또 호들갑이야.”
언제나 호들갑인 녀석이기는 하지만, 이번에는 대충 그 이유가 예상이 갔다.
“그 녀석들이 오는데!”
“돌려보내.”
“그러려고 했지. 그런데 안 간데. 지금 스타치랑 이야기하고 있어.”
“나 없다고 그래.”
“없다고 했지. 그런데도 만나겠대. 바보들 아니야? 없는데 어떻게 만나.”
바보는 너겠지.
‘그들이 내가 없다는 말을 믿을 리가.’
열린 문틈으로 바깥의 소란이 들려왔다.
“막아!”
“가면 안 된다고!”
“어허, 잠시만 지나가겠네. 화장실이 급하다지 않나.”
입구로 다다다 달려간 푸조가 고개를 내밀고 상황을 살폈다. 그러고는 더욱 유난을 떨었다.
“지금 이쪽으로 오고 있는데! 한 놈이 엄청 강해. 칼집으로 우리 애들 다 쥐어패고 있다고! 나도 갈까?”
“됐어.”
드라칸은 심드렁하니 답했다.
무력에 자신이 있으니 저러는 거겠지.
스타치의 말로는 개중 한 명이 용 사냥꾼이라 했다. 드라칸이 직접 나서지 않는 한 그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이쯤 되면 막 가자는 건데.
결국, 이렇게 될 거 같기는 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행동만으로도 합병을 거부하겠다는 의사는 충분히 전해졌을 터.
그들과 합병하는 일은 없다.
“실례하겠습니다.”
잠시 후, 청발의 귀공자가 문을 넘어 들어왔다. 그 뒤로는 서늘한 백금발의 남자와 장난기 어린 미소를 가진 중년의 사내가 함께였다.
그들이 누구인지는 이미 알고 있었다.
드라칸은 의자에 앉은 채 그들을 바라보았다.
“사람이 없다고 했는데도 이렇게 들어오는 건 어디서 배워 먹은 예의지? 멸문한 가문의 귀족이라고 그토록 중시하던 예법마저 잊은 건가?”
“인사가 늦었습니다. 루시안이라고 합니다.”
루시안은 드라칸의 말은 들은 체도 않고 가볍게 묵례하고는 말을 이었다.
“워낙 바쁘신 것 같아 직접 찾아왔습니다.”
“만나기 싫다는 의미로 받아들이지 못했을 리는 없을 테고.”
“아, 그런 의미였나요?”
루시안은 짐짓 의뭉을 떨었다.
“나는 너희들과 할 이야기 없다.”
“제가 무슨 이야기를 할 줄 알고요.”
드라칸의 근육이 꿈틀거렸다.
“나랑 말장난이나 하자는 건가.”
“아뇨. 궁금해서 그렇습니다.”
“합병을 이야기하러 오지 않았다고 말하고 싶은 건가.”
“정확히 아시네요. 합병에 관해 이야기하러 왔습니다.”
“그래. 나는 그것에 관해서 할 말이 없다고. 그러니 합병이고 뭐고 너희들끼리 알아서 해라. 우리 혁명의 칼은 누구와도 합병할 생각이 없으니.”
“왜죠?”
“내가 그것까지 말해야 하나.”
“네. 말해 주시지요.”
참으로 뻔뻔한 자였다.
낯빛 하나 안 바꾸고 저리 구는 걸 보면.
드라칸은 서늘히 그를 바라보았다.
“말하고 싶지 않다면.”
“저라도 이야기할까요?”
“…….”
동부까지 합병했다더니.
역시나 쉽게 물러서지는 않을 듯했다.
“이유를 알아야 조율을 하든 포기를 하든 하지 않을까요.”
“너희들이 포기를? 웃기는 소리.”
드라칸이 코웃음을 쳤다.
저들이 말 몇 마디에 돌아설 리 없었다.
무력을 통해서라도 강제로 합병하려 할 테지.
혁명의 칼만 합병한다면, 네 개의 파벌이었던 독립군이 하나가 되니 말이다.
드라칸은 저들과의 전쟁마저도 각오했다.
어차피 저들의 신경은 총독부로 쏠릴 테니, 거처만 옮겨도 될 거다.
“프렌치아의 독립을 위해서 세력을 만드신 게 아니로군요.”
드라칸의 적대적인 태도를 보아, 나라의 독립을 위하는 자 같지 않았다. 그것보다는 개인적인 신념이 따로 있는 듯한데.
“혁명의 칼이 추구하는 바는 무엇입니까.”
“너 같은 귀족 놈들의 목을 베는 것.”
드라칸의 날선 눈빛이 루시안을 직시한다.
그 적대적인 시선에 루시안은 쓴웃음을 지었다.
‘쉽지 않겠네.’
작렬하는 태양과는 경우가 달랐다.
리포드는 그래도 합병할 마음이 있어 그 마음을 맞춰 가는 과정이었다면, 드라칸은 아예 결이 다르다.
프렌치아 임시정부를 적대 세력처럼 완전히 배척하고 있었다.
그것을 다르게 말하면, 그는 외부로부터 무언가를 강하게 지키려 하고 있었다.
문득 그가 상처 입은 맹수로 보였다. 폭우 속에서 갸르릉 거리는 새끼 고양이가 떠올랐다.
생존이 걸린 상황에서는 따스하게 내미는 손길마저 경계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아무래도 프렌치아 임시정부는 이들에게 생존을 위협하는 존재로 받아들여지는 듯했다.
그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대략적으로 알고 있었기에, 그의 마음이 무엇인지도 조금은 알 수 있었다.
“저 같은 귀족 놈들의 목을 베어서 어디에 쓰려고요? 벽에 걸어도 그다지 멋있지 않을 거 같은데요.”
루시안이 벽에 걸린 사슴의 머리를 보며 말했다.
“내가 당신에게 그것까지 말해야 하나.”
“기왕 치울 거, 후딱 치우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루시안이 생글거리며 말을 이었다.
“어차피 같은 노선이 아니라면요.”
드라칸에게 그 말은 서늘한 협박처럼 들렸다.
제 뜻을 따르지 않는다면 다른 방향으로 일을 진행하겠다는 의미.
귀족 놈들의 행태야 빤하지.
“협박하는 것이냐.”
“어느 정도는요. 저희는 당신들의 힘이 필요하거든요.”
“웃기는군. 우리는 네놈의 가축이 될 생각이 없다.”
“가축이라뇨. 저는 가축이 필요하지 않은데요. 그리고 아직 합병안에 대해서는 아무 말씀도 안 드렸습니다만.”
루시안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 어깨를 으쓱거렸다.
“계약하기 전과 후가 다른 게 귀족 놈들이지.”
“저는 적어도 당신이 생각하는 귀족 놈은 아닐 겁니다. 그럼 프렌치아의 독립은 전혀 바라지 않는 겁니까?”
“프렌치아의 독립을 바라냐고? 푸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