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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후 천하제일인이 되어 귀환했다-136화 (136/228)

제136화

제136화 정체 (1)

레이나는 리포드에게 엄지를 치켜세워 보였다.

“멋졌어요, 대장.”

“뭘 그 정도 가지고.”

그녀는 조금 전 루시안과 있었던 일에 관해 말하고 있었다. 현재 그들은 저녁에 있을 연회를 준비하기 위해 개인 집무실로 돌아온 차였다.

“멋져 보인 건 처음인걸요.”

레이나의 말에 리포드는 헛웃음을 터트렸다.

“이걸 좋아해야 돼, 싫어해야 돼?”

“농담이에요. 사실 아주 가끔은 괜찮아 보일 때도 있거든요.”

“것도 썩 마음에 들지는 않는데?”

리포드는 씩 웃으며 의자에 몸을 푹 기댔다.

“그래도 마음은 한결 편하군. 무거운 짐 덩어리를 내려놓은 기분이랄까.”

지금껏 작렬하는 태양을 이끌며 많은 부담을 안고 살아왔다. 하루가 멀다 하고 독립을 위해 동료들이 죽어 나갔다. 그들의 목숨은 하나도 빠짐없이 그의 어깨 위로 쌓여 가고 있었다.

녀석들의 희생을 값지게 하기 위해서라도 독립은 반드시 이뤄져야 했다.

하나, 그 길은 갈수록 요원해져만 갔으니.

그 무게를 버틸 턱이 있나.

“그래도 용병단은 이끄셔야죠.”

“내가 싼 똥이니 치우기는 해야지.”

“어머. 저희가 똥이에요?”

“말이 그렇다는 이야기지.”

“저희는 리포드 님 옆에서 착 달라붙은 다음 절대 안 떨어질 테니까, 괜한 희망 가지지 마세요.”

“참 나.”

리포드는 고개를 내저었다. 짐을 다 벗어 던진 줄 알았더니 아직도 남은 짐 덩이가 산더미다.

“맨날 투덜거리는 대장이 뭐가 좋다고.”

“가끔은 일곱 살짜리 애 같기도 하고 자주 머리통을 쥐어박고 싶기는 하지만, 그래도요. 참, 못 미덥다는 말은 제가 실수로 빼먹었네요.”

“칭찬을 하든지 욕을 하든지 하나만 할래?”

“칭찬인데요.”

“대체 어디가.”

“모르면 말구요.”

리포드는 픽 웃고 말았다.

못난 자신도 이렇게 따르는 이들이 있으니 어깨 펴고 다녀야지.

“어쨌거나, 이제 앞으로만 달리면 되겠구만.”

“네. 그런데 가능할까요?”

“뭐가?”

“루시안 님이 말했던 모든 게.”

“모르지. 그래도 해 볼 만하지 않아?”

“그렇기는 해요.”

기약 없는 독립이었다.

하나, 그의 말을 듣고 나니 그것이 성큼 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정처 없던 여정에 확실한 길이 그려진 지도를 얻은 기분이랄까.

“일단, 우리는 지금처럼 우리가 할 수 있을 열심히 하면 돼. 그러려고 쫄다구 하는 거 아니겠냐. 큰 그림은 왕이 되고자 하는 사람을 믿고 맡겨 두자고. 이제 우리도 그의 배에 올라탄 셈이니.”

“네. 독립에 발 하나 담근 거죠.”

“바로 그거지! 역사에 이름 한번 제대로 남겨 보자고.”

리포드의 눈이 활활 타올랐다.

그렇게 타오르던 그의 눈가는, 어느새 연회장을 훑고 있었다.

왁자지껄.

다들 술에 전 개가 되어 서로를 얼싸안고 있었다.

흥이 나겠지.

세 개의 파벌이 하나로 합병을 했으니.

이제 그 흰 사자와 완전히 같은 편이라니.

정말이지 금방이라도 독립이 올 것 같은 분위기였다. 그 난장판 속에서 리포드에게 다가오는 자가 있었다.

술병을 쥔 채 흐느적거리는 남자.

‘……그레더만.’

이자가 용 사냥꾼일 줄이야.

가까이 온 네더만은 사냥감을 탐색하듯 킁킁거리며 리포드를 한 바퀴 훑었다. 리포드는 짐짓 시치미를 떼며 말했다.

“큼큼. 무슨 일이오.”

다시 정면에 선 네더만이 눈을 가늘게 떴다.

“아무래도 낯이 익단 말이지. 그렇다고 내가 남자랑 엮일 사이는 아니고 말이야. 자네 본래 여자였나?”

“거,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게요!”

“근데 왜 낯익냐고. 자네 나 모르나.”

“모르오.”

“아는 거 같은데.”

“절대 모르오.”

“몇 기였지?”

“백…….”

자연스레 답하던 리포드는 흠칫하며 말을 삼켰다.

빌어먹을.

네더만은 입꼬리를 기다랗게 올리고 있었다.

“역시, 레오니랜서 소속이었군. 도박장과 레오니랜서 중에 긴가민가했었거든.”

“아니오.”

“발뺌해도 늦었네. 기수가 나보다 아래인가 보구만. 몇 기인가.”

“뭐 나라도 망한 상황에 그게 대수겠소.”

“그래서 몇 기인데.”

“……174기요.”

“허, 세상 말세로군. 어찌 레오니랜서의 기사가 기수를 속이려 든단 말인가. 왕궁기사단의 명예가 이렇게 바닥에 처박히는구나.”

“거, 179기요. 됐소? 나라도 패망한 마당에 뭐 기수 놀이라도 하려는 게요!”

“물론이지! 한번 레오니랜서는 영원한 레오니랜서이거늘!”

“그, 그딴 게 어딨소!”

“여깄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당신은 아니오. 내가 잠자코 있을 때 관두시오.”

“응? 내가 왜? 나처럼 훌륭한 기사가 어딨다고. 아무래도 자네가 날 모르는가 보구만. 하긴 내가 175기니까, 까마득한 선배이기는 하지.”

레오니랜서는 2년마다 단원을 뽑았다.

그러니 4기수 차면 무려 8년의 차이.

속한 부대도 달랐을 테니 모를 수밖에.

하나, 리포드는 네더만을 아주 잘 아는 눈치였다.

“무슨 소리요. 레오니랜서의 수치라 불렸던 당신을 모르는 자가 어떻게 레오니랜서겠소!”

“내가 그런 무시무시한 칭호를 가지고 있었다고? 대체 언제부터? 처음 듣는 말인데.”

“당신이 노름판에서 레온다르를 넘긴 뒤부터였지 아마.”

레온다르란 레오니랜서의 소속의 기사로서 받게 되는 임명장 같은 검이었다. 보통은 가문의 가보로 장식장에 걸려 있게 되지만, 자신의 경우는 노름판에 맡겨 두었었다.

그것을 기억해 낸 네더만은 자신의 이마를 딱 쳤다.

“아, 맞다. 그랬었지. 기억이 새록새록 돋는군. 그때 왕실은 참으로 평화로웠는데 말이야.”

“그래서 용건이 뭐요? 그때 추억이나 나눠 보자 이거요?”

“아 그건 아니고. 자네 아무리 나라가 망했다지만 기본이 안 돼도 너무 안 되어 있어.”

“뭐가 말이오.”

“하늘같은 선배를 만났으면 응당, 가장 맛이 좋은 명주를 대령해야지! 맞기수가 그렇게 가르쳤나!”

리포드는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저쪽으로 가 보쇼. 사르페에게 가서 말하면 명주를 줄 거요. 그 자식도 술이라고 하면 사족을 못 쓰거든. 물론 나도 마찬가지고.”

“역시. 그럼 가던 길 가 보라고.”

머리를 간질이던 궁금증도 풀었겠다, 명주도 얻었겠다, 미련 없이 걸음을 옮기던 네더만은 갑자기 무언가 생각났는지 검지를 흔들며 걸음을 멈추었다.

“아차차.”

리포드를 돌아본 그가 말했다.

“자네 조만간 흰 사자가 이곳에 온다는 건 알고 있겠지?”

“그렇소만.”

“후배니까, 내가 친절히 알려 주는 걸세.”

무슨 말을 하려는지는 모르겠지만, 전혀 믿음이 가지는 않았다.

“그 자식 성격이 대륙 제일이라 해도 무방할 만큼 지랄 맞거든. 그냥 알아는 두라고. 기회가 되면 더 자세히 이야기해 주지.”

네더만은 실실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리포드는 그런 그에게 소리쳤다.

“금방 갈 테니 내 몫은 남겨 놓으쇼!”

그거 엄청 비싼 거라고.

‘……·괜히 알려 줬나.’

부리나케 달려가는 네더만의 뒷모습을 보니 술이 남아 있기를 바라는 건 드래곤의 코털을 뽑은 인간이 살아 있기를 바라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일 듯했다. 리포드는 입맛을 다시며 루시안과 레이크에게 향했다. 앞으로의 일정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서였다.

‘저 속 편한 작자 같으니라고.’

예전이나 지금이나 한량처럼 굴고 있는 인간을 보니 무지 부럽다.

제길.

인생은 저렇게 살아야 하거늘.

* * *

상점이 늘어선 시장에서 날카로운 비명이 터져 나왔다.

“꺄악!”

제국군에게 머리채를 잡혀 질질 끌려나온 여자가 바닥에 사납게 내팽개쳐졌다. 그런 그녀를 따라 나온 병사들 넷이 그녀의 뒤로 늘어서며 조소를 지었다.

“프렌치 주제에 감히.”

쓰러진 여자를 싸늘히 내려다보던 병사는 갑작스런 소란에 웅성거리는 이들을 향해 시퍼런 눈을 휘둘렀다.

“뭘 봐, 새끼들아. 구경났어!”

사람들이 시선을 피해 고개를 돌리자, 그는 다시금 여자에게 살기 어린 눈을 부라렸다.

“아주 요새 흰 사자 때문에 살맛이 나나 봐? 감히 내게 물품값을 요구하는 걸 보면.”

그녀는 곧장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빌었다.

“죄, 죄송합니다. 외상값은 없던 일로 해 드릴 테니 제발 한 번만 용서를-.”

“아니, 이미 늦었지.”

병사의 눈이 싸늘히 굳었다.

고작 이 정도로는 쌓인 분이 풀리지 않는다.

“그러게 왜 그랬어.”

스릉!

서슬 퍼런 검이 뽑히자, 여자의 낯빛도 일순 하얗게 질렸다. 그녀는 다급히 병사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지며 용서를 구했다. 그런 여자의 머리칼을 움켜쥔 병사가 주변을 둘러보며 소리쳤다.

“이년이 물품을 팔아다 독립군에 후원을 하고 있었다. 그것들이랑 엮이면 다 이렇게 되는 거야. 알겠어?”

“아니에요! 저는 정말 그런 적 없어요! 흑흑.”

무릎을 꿇은 여자는 사색에 질려 부인해 봤지만, 병사는 그런 그녀를 보며 씩 웃을 뿐이었다.

“내가 그렇다면 그런 거야.”

이를 드러내며 경고한 그가 다시 한번 소리쳤다.

“요새 다들 들떴지? 정신 차려, 새끼들아. 흰 사자가 아무리 날뛰어도 너희 것들은 제국을 넘어설 수 없으니까.”

계속해서 들려오는 흰 사자의 소식에 프렌치 놈들의 만면에 은은한 볕이 머물고 있었다. 그 기대와 희망에 찬 표정이, 그는 꼴사나워 견딜 수 없었다. 그는 바짓가랑이를 붙잡는 여자를 거칠게 뿌리쳤다.

“네까짓 게 감히 독립군과 내통을 해?”

“제가 무슨 독립군을! 아니에요!”

“닥쳐, 이것아. 넌 본보기로 목을 베어 주마!”

눈앞의 여자가 무고하다는 사실은 그에게 중요치 않았다. 감히 제국의 국기를 가슴팍에 달고 있는 자신에게 버릇없이 굴었다는 게 중요할 뿐.

요새 흰 사자 때문에 살 만한가 본데.

본인들이 처한 현실을 다시 인지시킬 필요가 있었다. 제국군의 눈이 광기로 번들거렸다.

그의 검이 수직으로 들려졌다.

검은 그림자가 그 옆에 내려선 건 그때였다.

“엉?”

갑작스러운 기척에 고개를 돌린 제국군의 뺨을 흐릿한 궤적이 훑었다.

쫘아악!

찰진 소리와 함께 바닥을 나뒹구는 병사.

갑작스러운 상황에 함께 있던 이들도 화들짝 놀라 그를 바라보았다. 바닥에 쓰러진 이가 신음과 함께 피를 뱉자, 허연 이가 후드득 떨어졌다.

“뭐 하는 짓이지.”

서늘한 음성에 그들은 눈만 끔뻑거릴 뿐 아무런 대응도 하지 못했다.

보고도 믿기지 않는 존재가 눈앞에 있는 까닭.

붉은 제복에, 가슴팍에 수놓아진 태양의 검 레트로이나. 그리고 숨통을 조여 오는 압도적인 기세.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간단했다.

레트로이나 6검.

그들이 눈앞에 있었다.

“충! 체르엔 시-.”

쫘아악!

흐릿해진 팔의 궤적이 거수경례하는 이의 뺨을 후려쳤다. 그것에 맞은 병사 또한 고꾸라지며 바닥에 얼굴을 처박았다.

쫘아악!

그리고 다시 한번 찰진 소리가 일었다. 멀뚱히 서 있던 다른 병사들 또한 뺨에서 불길이 일었다.

순식간에 바람에 날린 빨랫감처럼 바닥에 널브러진 이들.

“일어나라.”

케이언의 낮게 깔린 목소리에 바닥을 나뒹굴던 병사들은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나 차렷 자세를 취했다.

“다시 묻지. 지금 뭐 하는 짓인가.”

“그것이 이자가 독립-.”

퍼어억!

가차 없는 발길질이 사내의 말을 자르며 복부에 꽂혔다.

“끄어어…….”

사내는 숨이 넘어갈 듯한 신음과 함께 바닥에 쓰러져 침을 질질 흘렸다.

“한심한 새끼들. 일어나라.”

“끄으윽.”

다시 힘겹게 몸을 일으키는 병사들.

“내가 다 보고 있었음에도 감히 거짓을 고하는 게냐.”

고저 없는 서늘한 목소리에 병사들은 몸을 바르르 떨었다.

“죄, 죄송합니다!”

사색에 질린 그들은 피가 튈 정도로 크게 소리쳤다. 케이언은 그런 이들을 경멸의 눈빛으로 훑었다.

“제국의 국기를 가슴팍에 달고서 그런 짐승만도 못한 짓거리를 하다니.”

그는 바닥에 떨어져 있던 병사의 검을 손에 쥐었다.

“힘없는 이들을 핍박하려 검을 배웠더냐.”

“아닙니다!”

검을 보자 얼굴이 하얗게 얼어붙으며 몸이 경직되는 이들. 민간인을 위협하던 칼끝이 어느새 자신들에게 겨눠져 있었다.

“힘없는 이들을 핍박하려 군인이 되었더냐.”

“아닙니다!”

“네놈들은 제국의 명예를 더럽혔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칼끝이 흔들렸다.

동시에 피어나는 새하얀 섬광.

푸확-!

그 뒤를 시뻘건 핏물이 따랐다.

투두두둑.

일렬로 서 있던 병사들의 왼팔이 동시에 맥없이 바닥을 굴렀다.

“끄아아아악!”

병사들이 남은 팔뚝을 부여잡으며 울부짖었다.

“꼴사납게 굴지 말고 입 다물라. 그 목을 베어 버리기 전에.”

묵직한 음성이 끔찍한 고통 속에서 헤매는 그들의 귓속을 선연히 파고들었다.

머리가 하얗게 날아갈 것 같은 고통 속에서도 그들은 이를 악물고 자세를 바로 했다. 자칫 잘못했다가는 목이 떨어질 것을 느낀 탓이다.

“돌아가는 길에 이곳에 다시 들를 것이다. 이 여자에게 보복할 생각은 추후에도 하지 말라.”

“예! 알겠습니다아!”

핏발 선 눈이 붉게 물들었다. 고통을 참는 그들의 얼굴은 금방이라도 터질 듯 붉었다. 마력을 통해 지혈하고 있지만, 끔찍한 고통이 머릿속을 하얗게 불태우고 있었다.

“이 여인에게 고개 숙여 사과해라.”

“죄송합니다!”

팔을 잃은 군인들이 허리를 깊게 꺾자, 여자는 새파랗게 질려 고개를 마주 숙였다.

“괘, 괜찮습니다.”

케이언은 고개를 숙인 채 죄를 빌고 있는 이들을 죽일 듯 바라보았다. 제국군의 명예를 바닥에 처박은 이들의 목을 당장에 베고 싶었으나, 그것까지는 과한 처사였다.

그의 입가에서 냉담한 음성이 흘렀다.

“꺼져라.”

“충성-!”

남은 손으로 거수경례를 한 이들은 재빠르게 거리를 벗어났다. 그들의 뒤를 뚝뚝 떨어지는 붉은 핏물이 따랐다.

케이언은 경직되어 있는 여자에게 다가가 10골드를 건넸다.

“미안합니다. 그들이 지불하지 못한 값은 제가 변상하겠습니다.”

그들이 진 외상값은 모르지만, 이것이면 충분할 터였다. 여자는 황급히 눈을 뜨며 손사래를 쳤다.

“아, 아닙니다. 이렇게 큰돈은…….”

“받아 주십시오.”

강경한 케이언의 태도에 여자는 겁에 질린 얼굴로 돈주머니를 받았다. 거절할 용기가 없는 까닭이다.

“그럼 수고하십시오.”

케이언은 가볍게 고개를 까닥이고는 다시금 길을 걸었다. 그런 그를 나머지 다섯이 따랐다. 그들이 지나가자 시장에 늘어서 있던 이들이 좌우로 갈라지며 길을 비켰다.

여자는 그들의 등에 새겨진 기다란 검을 뚫어 그저 빤히 바라보았다.

* * *

웅성웅성.

알렌은 옆자리에서 웅성거리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은근히 귀를 가져다 대었다. 근래 동부를 흐르는 오레아닌산맥을 넘느라 일주일이 넘도록 바깥의 소식을 듣지 못했다.

자못 진지한 표정으로 대화를 나누는 이들의 표정을 봤을 때, 자신이 알지 못하는 새로운 소식이 있었나 싶었다.

그들의 말을 가만히 귀 기울여 듣던 알렌은 제가 궁금한 이야기가 더 이상 나오지 않자, 슬쩍 말을 걸었다.

“실례하겠습니다. 뭣 좀 물어도 될까요?”

낯선 사내의 등장에 그들은 알렌을 경계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알렌은 사람 좋은 웃음을 흘리며 입을 열었다.

“다른 건 아니고 제가 일주일 동안 오레아닌산맥을 넘느라 바깥소식에 어두워서 그런데, 뭐 새로운 소식이라도 있습니까?”

알렌의 말에, 이들은 순순히 새로운 소식을 알려 주었다. 이 일에 대해 도시에 모르는 사람이 없으니 낯선 사내가 어떤 사람인지는 크게 신경 쓸 일이 아니었다.

“며칠 전에 총독부에서 내린 벽보가 붙었는데, 지금 프렌치아에 레트로이나 6검이 왔다는군.”

“예에?!”

알렌의 눈이 순식간에 휘둥그레졌다. 어찌나 크게 떴는지 금방이라도 눈알이 툭 하고 떨어질 듯했다. 옆에서 가만히 주워듣고 있던 이리엘도 마찬가지였다.

“레, 레트로이나 6검이 여기는 왜요!”

화들짝 놀란 알렌에 사내들은 착잡한 눈길로 말을 이었다.

“왜겠나. 흰 사자를 죽이기 위해서지.”

충격적인 소식에 알렌의 몸은 나무토막처럼 딱딱하게 굳어 버렸다.

특임기사단이자 제국의 자존심이라 불리는 레트로이나 6검이 프렌치아에 왔다니.

이게 무슨 날벼락이란 말인가.

머릿속이 진짜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하얗게 이지러졌다.

정신 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던 알렌은 옆에 있지도 않은 제네스를 찾았다.

‘제네스 님.’

아무래도 이번에는 진짜로 큰일이 난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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