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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후 천하제일인이 되어 귀환했다-123화 (123/228)

제123화

제123화 본격적인 걸음 (4)

나는 방을 찾아온 루시안과 마주 앉아 있었다.

그런데 이 자식.

날 바라보는 눈빛이 묘하게 날이 서 있다.

내가 말했다.

“불만 있냐?”

“불만은 무슨.”

녀석이 너털웃음을 지으며 손사래를 쳤다.

하지만 분명 내게 꿍한 게 있는 눈치였다. 세실리아와 이리엘과의 만남 이후, 내게 꿍한 감정이 생겼다면 이유는 하나뿐이겠지.

“세실리아에게는 아무런 감정 없다.”

“응?”

“나와 먼저 혼담이 오갔던 것 때문에 그런 거잖아.”

“푸핫.”

루시안이 어이가 없는지 웃음을 터트렸다.

아무래도 잘못 짚었나 본데.

그럼 뭐지?

녀석이 말했다.

“그 부분에 관해서는 얘기 들었지만, 조금도 신경 쓰고 있지 않아. 신경 쓸 부분도 없고.”

“그럼 뭔데.”

“아무것도 아니야. 그런데 너는 결혼 안 해?”

나는 그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이 자식은 또 왜 이래?

테이난에만 오면 꼭 결혼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되는 거 같다.

“평생 혼자 살게?”

결혼이라.

딱히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여자를 모르지 않지만, 무림에서도 누군가와 깊게 교제한 적은 없었다.

정확히는 그럴 겨를이 없었다고 해야 맞다.

거기서도 여기서도.

마흔여섯 살이지만, 내가 무림에서 이룬 업적을 생각하면 미친 듯이 검만 휘둘러야 가능한 일이었다.

여기 와서도 마찬가지로 검을 휘두르며 살고 있고.

피에 전 삶에 결혼은 무슨.

모든 일이 마무리되면 다 내려놓고 편히 살 생각이기는 하지만.

그건 그렇고.

“그딴 건 왜 묻는 거야.”

“아무것도 아냐. 그냥. 하하.”

나는 어색하게 웃는 녀석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 자식, 아까부터 어디가 모자라 보이는데.

이리엘과 관련된 일인가?

루시안이 멍청한 짓을 할 때면 대부분 이리엘과 관련된 경우가 많았다.

괜히 동생 바보라 불리는 게 아니니까.

그렇다고 카드론처럼 나와의 정략결혼을 추진하려는 건 아닐 테고.

내 눈초리를 느꼈는지 루시안이 입을 열었다.

“그냥, 내가 정략결혼을 하다 보니 넌 결혼에 대해 생각이 있나 궁금해서. 단순히 그게 이유야.”

“시답잖기는.”

나는 혀를 차며 말했다.

“고작 그런 말을 하러 온 거냐.”

“그건 아니고.”

녀석이 씩 웃으며 표정을 정돈했다.

입가는 여전히 미소를 머금고 있지만, 진중한 태도.

이제야 제 모습을 찾은 것 같다.

“레이크랑 대화는 잘했어?”

“앞으로에 관해 이야기 좀 나눴지.”

“불만은 없었고?”

“불만은 무슨. 빨리 독립하려면 똑똑한 놈이 하라는 대로 해야지.”

이번에 녀석의 계획을 듣고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녀석은 나를 제대로 쓸 줄 안다.

내가 굳이 복잡하게 머리 쓸 필요가 없다는 거다.

그저 베라는 것을 베다 보면 독립이 눈앞에 와 있을 테지.

“생각보다 협조적이네. 어디를 가장 먼저 무너뜨리려고?”

“바레인가.”

“그럴 거라고는 생각했다. 여정이 빠듯했을 텐데 지금 피곤하지는 않지?”

“물론.”

“다른 게 아니라 묻고 싶은 게 있어서.”

이제야 나를 찾아온 본론을 말하려는 듯했다.

“로드르 님과 꽤 시간을 보냈다며. 어떤 조언을 해 주시지는 않으셨을까 하고.”

로드르 헤이어서는 현자로 불리던 나라의 재상.

그와의 만남을 루시안 또한 고대해 왔을 터였다.

이 부분에 대해 언젠가 물을 거라고 생각은 하고 있었다.

“조언이라 할 것까지는 없고, 그저 대화를 나눴지.”

나는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던 로드르와의 대화를 루시안에게 전해 주었다.

나는 당시의 대화를 토씨 하나 틀리지 않게 온전히 기억하고 있었다.

눈앞의 이 녀석에게 들려주기 위해서.

사실 그때 대화를 나눈 건, 내가 아니라 루시안이나 다름이 없다.

그가 했던 생각들을 내 입을 빌려 전해 준 것이니.

잠시 후, 모든 이야기가 끝났음에도 루시안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 대화들을 묵묵히 곱씹는 듯했다.

잠깐의 시간이 지난 뒤에야 그는 고개를 들었다.

“미안. 생각이 길었지.”

나는 고개를 저었다. 루시안이 아쉽다는 듯 입술을 뭉그러뜨렸다.

“더 이야기를 나눴다면 좋았을 것을…….”

홀로 중얼거린 녀석이 나를 보았다.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나 자세히 알았어?”

“뭐가?”

“내 국가관에 대해서. 너에게 이렇게 깊게까지는 이야기하지 못했던 거 같은데.”

“…….”

나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

뜨끔했기 때문이다.

녀석의 국가관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던 건 정원에서가 전부였다.

그럼에도 나는 로드르에게 상당히 많은 부분을 설명할 수 있었다.

전생에 그와 나눴던 대화들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에 비하면 부족한 생각들이었지만, 그것은 루시안의 국가관을 만드는 밑바탕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가 내게 들려줬던 것보다 더 많은 부분을 자연스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니 녀석이 이상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어쩐지 조금 난감해진 상황인지만, 나는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 말했다.

“대충 이런 생각을 했을까 해서 답한 거지. 왜, 아니야?”

“아니, 그건 아닌데 생각보다 내 말을 잘 이해했었구나 싶어서. 대충 들은 줄 알았거든.”

루시안이 빙긋 웃었다.

다행히 변명은 잘 통한 듯했다.

하긴 내가 전생에 왕세자로서 본인과 대화를 나눴다는 걸 어떻게 유추할 수 있겠는가.

그가 말했다.

“어쨌든 고맙다. 나 대신 너무 잘 설명해 줬어. 덕분에 좋은 대화가 이어질 수 있었던 거 같아. 확실히 로드르 님의 이야기를 들으니 생각 정리가 된다. 내가 그래도 제대로 가고 있구나, 하는 안도감도 들고.”

“이제 다스릴 나라만 있으면 되겠군.”

“그러니까. 제일 중요한 게 없네.”

녀석은 재밌다는 듯 쿡쿡거렸다.

“재밌냐.”

“뭐 어때. 곧 생길 건데.”

장난기가 섞여 있지만, 확신을 담은 표정.

처음 만났을 때와 달리, 그는 확실히 왕좌를 노리고 있는 듯했다.

내가 말했다.

“전보다 확고해진 눈빛이네.”

“티 났어? 사실 너무 아득하게만 느껴지던 일이라 닿지 못할 수도 있는 길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제는 확고해졌다.”

녀석의 눈빛이 푸르게 타올랐다.

“나는 왕이 될 거야.”

“그래.”

나는 녀석의 의견에 동의했다.

“넌 왕이 될 거다.”

“고맙다. 모두 네 덕분이야.”

하여간 민망한 말도 낯빛 하나 안 바꾸고 잘하지.

“낯간지럽기는.”

“진심이다.”

“됐다.”

루시안의 표현에 거부 반응이 일지만, 나 또한 녀석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었다.

나도 루시안에게 같은 감정을 느끼고 있었으니까.

루시안이라면 나보다 이 나라를 더 잘 이끌어 줄 거다.

그렇기에 나는 마음을 놓을 수 있고.

루시안이 기다랗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러니 네가 책임져.”

그의 장난기 어린 얼굴 위로 달빛이 비쳐 든다.

“내가 너 때문에 진짜 왕이 되고 싶어져 버렸으니까.”

참 나.

“책임지고 날 왕위에 올려.”

하여간 낯짝도 두껍지.

나한테 왕좌라도 맡겨 놨나.

하지만.

“내가 제대로 이끌어 줄 테니까.”

지금 녀석에게 가장 듣고 싶은 말이었다.

* * *

이후로도 회의는 몇 날 며칠 계속됐다.

나는 첫날 이후 모든 회의에 불참했다.

내가 할 일은 이미 정해져 있었고, 참으로 단순하니까.

하지만 그들은 앞으로의 일정에 대해 세세히 논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이제 우리는 다시 각자의 길로 흩어져 각각의 임무를 수행하게 될 터였다.

전서구로 주고받게 될 정보는 한정적일 수밖에 없고 보안의 문제도 있기에, 앞으로 수립된 계책들에 대해 전반적인 상황을 모두 이해하고 있어야 했다.

그 안에 담긴 정확한 맥락을 파악해야, 돌발 상황에서도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을 테니까.

그렇게 지난했던 회의는 드디어 오늘, 그 마지막에 도달해 있었다.

루시안과 레이크, 카드론에게는 훨씬 더 긴 여정이었을 테지만, 우리가 테이난에 온 지는 열흘이 된 시점이었다.

마지막 회의였기에 나 또한 자리에 착석해 있었다.

지루한 시간 끝에, 카드론이 회의의 종결을 알렸다.

“그럼 이걸로 앞으로의 일정에 대해 마무리는 된 듯하군.”

그의 말에, 레이크가 나서서 최종 마무리를 했다.

“그럼 마지막으로 각각의 임무를 간단히 정리하고 회의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레이크가 계속해서 말했다.

“우선 루시안 님과 저, 그리고 네더만 씨는 동부와 남부의 독립군들을 규합할 것입니다.”

루시안이 해야 할 일은 나머지 두 파벌을 통합하는 것.

그와 레이크의 호위는 네더만이 맡게 됐다.

녀석은 내 손아귀에서 벗어났다며 쾌재를 불러 내 손을 근질거리게 했다.

다음은 내 임무.

“제네스 님과 알렌 씨는 이번에 공표한 다섯 개의 가문 중 바레인가와 트레왈로가를 멸문해 주시면 되고요.”

현재 프렌치아는 우리 쪽에서 다섯 개의 가문을 심판하겠다고 공표한 일 때문에 크게 들썩이고 있었다.

총독의 목을 벤 지 얼마나 되었다고 이제 변절한 가문들까지 처단하겠다니.

요새 프렌치아는 조용할 날이 없었다.

그 바람에 다섯 개 가문 중 하나로 공표된 테이난에서도 기묘한 분위기가 술렁이고 있었고.

그들까지 명단에 포함한 이유는, 그들이 변절자들의 가문 중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고.

“카드론 님은 집결한 병력으로 앞으로의 전쟁을 준비해 주시면 됩니다.”

테이난을 독립군의 병력을 집결할 집결지로 사용하기 위해서였다.

현재 북부의 흰사자의 병력과 굽이치는 해협의 병력은 뿔뿔이 흩어져 있었다.

우리는 그들을 이 성으로 집결시킬 예정이었다.

흰 사자를 대비하기 위해 병력을 증강하는 건 자연스러운 수순이니까.

나머지 네 개의 가문 또한 각자 흰 사자를 방비하기 위한 대비를 할 테니, 그것으로 의심받을 일은 없었다.

그렇게 각자 임무를 간단히 상기하는 것으로 회의는 완전히 마무리됐다.

나야 언제나처럼 검을 휘두르면 그만이고, 루시안은 통합을, 세세한 준비는 카드론이 도맡을 터였다.

“자, 잠깐만요.”

그렇게 모든 이야기가 끝나자, 이리엘이 당황한 표정으로 손을 들었다.

“왜 나는 아무런 역할이 없는 거죠?”

그녀는 황당하다는 듯 레이크를 바라보고 있었다.

“혹시 나 까먹었어?”

완전히 잊힌 존재감을 어필하고 있던 그녀에게 청천벽력과 같은 말이 떨어진 건 그때였다.

루시안이었다.

“넌 이제 이 작전에서 빠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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