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8화
제118화 되찾은 삶 (2)
할렌트를 베고 찾은 일행은 무슨 일인지 다급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무슨 일이냐.”
“제네스 님!”
그제야 나를 본 알렌이 상기된 표정을 보였다. 녀석의 뒤로 바닥에 누운 늑대가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아무래도 저 녀석 때문에 호들갑인 듯한데.
“제네스 님!”
이번에는 이리엘이었다.
어떻게 좀 해 달라는 다급한 시선.
늑대 녀석을 자세히 보니 몸이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처럼 울룩불룩하고 있었다.
“갑자기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요.”
이리엘이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나라고 늑대의 몸 상태를 볼 수 있을 리 만무하지만, 이번에는 경우가 달랐다.
아무래도 아까 삼킨 마석 때문인 듯한데.
보통, 마석을 삼킨다고 이런 반응이 있지는 않다.
마석에 담긴 마나는 정제되어 있지 않은 것이니.
만약 그런 것을 삼켰다면 얼마 되지 않아 곧장 죽었겠지.
하나 녀석은 버티고 있었다.
녀석이 삼킨 마석은 차원의 틈을 벌리던 힘이 갑자기 소실되면서 찰나에 응축되어 생겨난 것.
아무래도 그 과정에서 깨끗이 정제되어, 내단과 같은 효능을 갖게 된 듯했다.
늑대 녀석의 상태를 보니 그랬다.
모르기는 몰라도 그 안에는 엄청난 양의 마력이 응축되어 있었을 테니.
탈이 안 나는 게 이상하지.
“비켜 봐라.”
나는 일단 인심을 써 보기로 했다.
이게 될지는 모르겠다만, 눈앞에서 생명이 터져 죽는 꼴을 보는 건 유쾌한 일이 아니니까.
누구의 늑대인지도 대충 예상이 가고.
“방법이 있어요?”
이리엘의 물음에, 나는 양 소매를 걷어붙이며 답했다.
“일단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해 봐야지. 살고 죽는 건 제 몫이고.”
나는 바닥에 널브러진 늑대를 가차 없이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퍼버버버버벅!
무수한 잔영을 남기며, 소나기처럼 떨어지는 주먹.
“무, 무슨?”
경악하는 알렌과 이리엘에, 네더만이 옆에서 설명을 보탰다.
“아무래도 마력의 흡수를 돕는 듯한데, 정말이지 가차 없군. 그나저나 저 늑대 자식 뭘 잘못 처먹었길래 저래?”
“모르겠어요.”
이리엘은 고개를 저으며 울상을 지었다.
알렌이 그런 그녀를 다독여 주었다.
“……괜찮을 거야.”
나는 그렇게 한참 동안 녀석의 몸을 인정사정없이 두드렸다. 주먹 한 방마다 추궁과혈 수법을 섞었더니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었다.
사람이었다면 기혈을 알고 있어 좀 편하겠다만, 내가 늑대의 기혈을 알 턱이 있나.
전신을 가열하게 때리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시간이 좀 지나니 내가 왜 처음 본 늑대 새끼 때문에 이 고생을 하는지 배알이 꼬였지만, 기왕 칼을 뽑았으니 무라도 썰어야지 않겠나.
빌어먹을.
과장을 좀 보태자면 할렌트와의 전투보다 더 힘을 빼고 있는 것 같다.
그래도 한참을 두들기니 차도가 좀 보였다.
터질 듯 울룩불룩하던 몸이 가라앉으며 옅은 빛 무리가 늑대의 몸을 감쌌다.
나는 그제야 주먹을 거두었다.
저편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던 네더만, 알렌과 달리 옆에서 쪼그려 앉아 있던 이리엘이 그런 내게 곧장 의문을 표했다.
“잘된 거예요?”
“몰라. 이 정도면 됐겠지. 내가 이렇게 고생했는데 죽어 버리기만 해 봐라. 탕으로 끓여 먹을 테다.”
나는 말귀도 알아듣지 못하는 녀석에게 엄포를 놨다.
“수고하셨어요. 대체 뭘 먹었길래 이러는지.”
“그나저나 어디서 난 늑대냐.”
“왕세자가 기르던 늑대예요.”
예상대로였다.
이리엘은 그제야 내게 녀석의 안부를 물었다.
“그런데 왕세자는요?”
나는 녀석이 어떻게 죽었는지 당시의 상황에 관해 이야기해 주었다.
네더만이 안타깝다는 듯 혀를 찼다.
“쯧. 그래도 강단은 있는 녀석이었군. 자네한테 기죽지 않을 때부터 알아보기는 했다만.”
알렌 또한 옆에서 침울하게 입을 열었다.
“……안타까운 일이네요.”
가장 충격이 큰 건 아무래도 이리엘이었다.
“…….”
그녀는 아무 말 없이 가만히 눈을 감고는 그의 죽음을 기렸다.
잠시 후 이리엘이 눈을 떴다.
맑은 눈동자가 슬프게 일렁였다.
“그의 삶이 너무 안타까워요. 이 좁은 섬에 틀어박혀서 제대로 살아 보지도 못하고…….”
“그러니까 말이야. 그런 녀석에게 가짜라고 그리 타박만 해 댔으니.”
네더만이 고개를 저으며 나를 보았다.
알렌도 옆에서 말을 보태며 나를 보았다.
“맞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너무 매몰차게 굴었던 건 아닐까 싶어요.”
“그러니까요. 이 상황에 가장 억울한 피해자는 그 사람이었는데 말이죠…….”
이리엘도 그 말을 끝으로 시선을 내게 두었다.
일제히 모인 눈빛들은 내게 할 말이 없냐고 묻고 있었다.
나는 그동안 그를 조금도 인정하지 않고 몰아붙이기만 했으니까.
어째 정황상 나도 죄인 비스름하게 된 거 같은데.
내가 말했다.
“가짜로 살았으나 진짜로 죽었으니 되었다.”
“되기는 뭐가 돼요. 사과는 했어요?”
“사과는 무슨. 진짜라고 인정은 해 줬다.”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인 이리엘은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침통하게 굴었다. 네더만이 그런 이들을 달랬다.
“어이, 친구들. 그렇게 기운 빠지지 말라고. 인생이 다 그런 거 아니겠나. 술 한잔 거하게 하면서 깔끔하게 보내 주자고.”
나는 왕세자의 죽음을 기리는 그들에게서 등을 돌렸다.
이용만 당한 그의 삶이 안타까울 테지.
내 시선은 도시 바깥을 향하고 있었다.
“녀석의 삶에 있어서는 그것이 최선이었다. 그거면 된 거야.”
저편에 늘어선 울창한 녹음의 숲 위로, 정오의 햇볕이 비쳐 들고 있었다.
“이제 돌아가자.”
* * *
다그닥, 다그닥.
우리는 저택에 있던 마차를 타고 여유롭게 숲길을 가로질렀다.
목적지는 움파움파족의 마을.
그곳이 거리상 광산보다 가깝기 때문이었다.
“용사분들이 오셨다!”
움파움파족의 마을로 들어서니, 그들은 꽃가루를 뿌리고 풀피리를 불며 성심껏 환대해 주었다.
다행히 우리를 까먹지는 않았나 보다.
“정말 수고 많았네.”
마중 나온 족장이 내 손을 꼭 포개어 잡으며 감사를 표했다.
“자네들 덕분에 우리는 까맣게 잊고 있었던 이모텔섬을 다시 기억해 낼 수 있었네.”
그의 눈가는 감격에 젖어 있었다.
이모텔섬이 색을 잃기 시작한 것은 10년 전.
이들의 건망증이라면 이모텔섬의 본 모습을 충분히 잊었을 만하다.
“오늘 밤은 거하게 연회를 베풀 작정인데, 어떤가? 우리와 함께 즐기겠나!”
“안 그래도 준비해 왔습니다.”
알렌이 우리 뒤편에 선 마차를 가리켰다.
마차에는 저택에 보관 중이던 고기와 술이 잔뜩 실려 있었다.
마차를 훑어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던 족장이 일순 눈을 반짝였다.
“저 빛나는 늑대는 보양식인가? 안 그래도 요새 기력이-.”
“무슨 소리예요! 네스는 제 늑대라고요!”
이리엘이 빽 하고 소리를 지르며 늑대를 감싸자, 족장은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그거 아쉽군. 왠지 건강에 좋을 듯 보였는데.”
“먹을 고기는 많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알렌이 그 사이를 중재하며 가져온 고기들을 보여 주었다.
“정말 많구만!”
족장과 부족원들은 깜짝 놀라며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러고는 입맛을 다셨다.
“그나저나 저 빛나는 늑대는 보양식인가?”
이리엘은 눈을 뒤집었다.
그렇게 한바탕 작은 소란이 지나고, 족장은 씁쓸하게 웃으며 마차에 실린 고기를 바라보았다.
“양이 상당히 많군. 며칠을 먹어도 충분하겠어.”
“그건 아닐 겁니다.”
알렌이 고개를 내저으며 웃었다.
“불러올 사람들이 더 있거든요.”
* * *
마을의 중심에서 커다란 불꽃이 타올랐다.
그 주위를 움파움파족은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며 돌았다. 흥이 오른 광부들도 그 무리에 함께 어울리며 축제를 즐기고 있었다.
모든 것이 풍족한, 즐거운 밤이었다.
나는 언제나처럼 한발 물러선 자리에서 술병을 기울이며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에효.”
이리엘이 한숨을 푹 내쉬며 내 옆에 철퍼덕 주저앉았다.
나는 그녀에게 눈짓을 하며 말했다.
“왜 한숨이야. 복 달아나게.”
“아저씨예요?”
이리엘은 내게 눈을 한번 흘기고는 병나발을 불었다. 산채, 황금 들녘에서 맛을 들이더니, 언젠가부터는 병나발이 아주 자연스럽다.
“둘은 아주 신났네요.”
이리엘의 시선이 알렌과 네더만을 한 번씩 훑었다.
알렌은 언제나처럼 몇몇을 데리고 내 이야기를 전파하고 있었고, 네더만은 부족의 여자들의 인기를 독차지하고 있었다.
녀석의 실없는 농담이 통하는지 주변에 앉은 이들이 꺄르르 웃음을 터트렸다.
하여간.
두 놈 다 입만 살았지.
“에효.”
옆에서 또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왜 자꾸 한숨이야.”
“네? 아, 저도 모르게 그만. 술이 들어가서 그런지 한숨이 절로 나오네요.”
그녀는 내가 묻지도 않은 말을 혼자서 술술 뱉어 댔다.
“괜히 마음이 싱숭생숭해서 그렇죠, 뭐.”
이리엘이 왜 청승을 떨고 있는지는 잘 알고 있었다.
왕세자의 죽음은 그녀에게 유독 아리게 다가왔을 것이다.
네더만, 알렌과 달리 그녀에게 왕세자는 큰 의미를 갖던 사람이니.
그가 가짜였다고 해도.
“얼굴이 똑같아서 그런지, 저하가 아닌 걸 알면서도 자꾸 저하 같기도 하고. 그걸 떠나서 10년간 그렇게 외롭게 살아왔는데, 세상 구경도 제대로 못 했으니 너무 안타깝잖아요.”
“행복하게 오래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는 세차게 타오르는 불길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단 하루를 살아도 제대로 살아야 하는 법이다.”
그는 거짓된 세상을 살았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끝끝내 진짜가 되었다.
안타까운 선택이었지만, 그 결단으로 그는 자신의 지난 삶을 진짜로 만들어 냈다.
그가 그런 선택을 하지 않고 생을 연명했다면, 제국의 꼭두각시로 살았을 테지.
부귀영화는 누렸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의 삶은 가짜가 되었을 터.
그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는 자신의 몸을 포털에 던졌다.
가짜로 사느니, 진짜로 죽었다.
그것이 그가 한 선택이었고, 그래서 나는 녀석을 왕세자로 인정한 것이다.
이리엘이 입을 빼죽 내밀며 말했다.
“그럼 뭐 해요. 죽었잖아요.”
나는 이리엘의 조그만 머리통을 한 대 후릴까 하다가 참고 말했다.
“녀석은 죽음으로써 자신을 살린 거다.”
내가 말했지만, 참으로 모순된 말이긴 하다.
죽음으로서 자신을 살렸다니.
그래도 이리엘은 말귀를 알아먹었는지 그 의미를 곱씹으며 잠자코 있었다.
그녀도 모르는 바는 아니었을 테니.
나도 술병을 기울일 뿐 별말을 하지 않았다.
사실, 이리엘의 말도 맞다.
어쨌거나 그는 죽었다.
그것이 올바른 결말일지라도, 죽음의 무게는 결코 가벼워지지 않는다.
이리엘은 한참 뒤에야 다시 말을 꺼냈다.
“이제 많은 게 달라지겠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총독을 베었다.
새로운 총독이 부임하겠지만, 할렌트의 목에 걸린 상징성은 컸다.
지금쯤이면 프렌치아에 그것을 모르는 자가 없을 터.
다들 할렌트의 목이 총독부에서 떨어진 것으로 아니까.
그러니 이제 우리도 다음 단계를 밟아 가야 했다.
다음 단계란 바로, 프렌치아의 독립.
이리엘은 그것이 선뜻 믿기지 않는 듯했다.
“그게 진짜로 가능할까요?”
“그래.”
나는 별 감흥 없이 답했다.
할렌트의 목을 베었듯, 프렌치아의 독립도 이루어질 것이다.
그녀가 나를 바라보았다.
빛이 일렁이는 눈길에는 염려와 기대가 함께 담겨 있었다.
“제국도 이겨 낼 자신 있어요?”
“물론이지.”
“믿어도 돼요?”
“그래.”
내 망설임 없는 대답에 그녀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네.”
그러고는 활짝 웃었다.
“믿을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