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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후 천하제일인이 되어 귀환했다-117화 (117/228)

제117화

제117화 되찾은 삶 (1)

할렌트는 나를 보며 씁쓸히 조소했다.

“이거, 10년간의 계획이 허망하게 무너져 버렸군.”

“걱정 마라.”

나는 그를 친절히 위로했다.

“너의 인생도 곧 끝날 테니.”

“살벌한 위로로군. 하나, 쉽지는 않을 게야.”

표정을 굳힌 그가 마력을 끌어올렸다.

공간을 뒤흔드는 사나운 기파가 그를 중심으로 몰아쳤다.

단단히 정제된 검처럼, 첨예하게 벼려진 기운이 높이 치솟아 올랐다.

검을 마주하지 않고도 알았다.

이 자식 역시.

소드 마스터에 이르렀나.

쾅!

할렌트의 신형이 흩어지며 그가 서 있던 자리가 터져 나갔다.

창졸간에 간격을 삼키며 측면을 베어 오는 검.

공간을 통째로 자르며 들어온다.

나는 검을 휘둘러 그것을 튕겨 냈다.

콰아앙!

두 개의 날붙이가 맞부딪치자 대기가 찢어지는 굉음이 일었다.

칼날의 남은 진동이 팔에 여운을 남긴다.

나는 다시금 검병을 꽉 움켜쥐었다.

녀석의 검이 제가 일으킨 굉음을 잘라 내며 쏘아지고 있었다.

콰아앙!

다시금 천지가 흔들리는 폭발음이 일었다가, 이내 중첩되듯 겹쳐지며 하나의 소리처럼 터져 나간다.

콰과과과과광!

검로가 어지럽게 설키며 서로를 향해 쏘아지고 있었다.

그 궤적에, 그것을 따라 일어난 충격파에, 일대의 공간이 잘리고 부서지며 찢겨 나갔다.

부서지고 으그러져 튀어 오른 지반의 파편이 먼지가 되어 흩어졌다.

최상급 경지에 이르지 못한 이는 눈에 담지도 못할 쾌속한 검격이 찰나에 엇갈리고 있었다.

한 호흡에 오가는 수십 번의 검격.

나는 집요하리만큼 따라붙는 녀석의 검을 막아 내면서도 여유롭게 입을 열었다.

“몸풀기는 그쯤 하지.”

“건방진 놈.”

어금니를 으득 문 할렌트가 푸른 안광을 토해 냈다.

동시에 칼끝에서 타오른 푸른 불꽃이 압축되고 정제되며 검 위로 덧대어지더니 선명한 칼날을 빚어낸다.

검강이었다.

형태로는 완전해 보였지만, 아직 진기의 운용이 미숙하다.

이제 갓 소드 마스터에 이른 듯 보였다.

그래도 발렌시아 대륙에서 만난 이들 중 개인의 기량은 가히 압도적.

솨아아아아!

사선으로 떨어져 내리는 검격에 일대 반경이 기다랗게 잘린다.

검강에 실린 예기가 칼날에 닿지 않는 공간까지 잘라 버리고 있었다. 나 또한 마찬가지로 검강을 빚어냈다.

키이이잉!

막대한 내력을 받아 낸 검이 날 선 울음을 토해 냈다.

콰아아앙!

강기가 격돌하며 천지가 개벽하는 충격파가 공간마저 비틀었다.

한 번의 마주침으로도 그랬다.

나는 간만에 묵직하게 손목을 타고 들어오는 충격을 즐기며 검을 휘둘렀다.

콰르르르릉!

찰나에 그어지는 검격에 제단의 상층부가 버티지 못하고 허물어지기 시작한다.

나와 할렌트는, 무너지는 제단의 파편 속에서도 계속해서 검격을 나눴다.

녀석의 손끝에서 바레인가의 비전 검술이 끊임없이 풀어져 나왔다.

사냥감을 놓치지 않는 늑대처럼 집요하게 달려드는 검.

나는 그 성난 궤적 안에서 세자 시절 견식했던 그의 검을 간간이 볼 수 있었다.

정확히는 새록새록 떠올랐다.

화려하고 변화무쌍한 상승의 검술도 결국 기초 검술 위에 쌓아 올린 토대에 불가하니까.

간만에 본 그의 검은, 왠지 오래전 그 시절을 떠올리게 했다.

그에게 기초 검술을 배웠던 시절.

당시 내게 그는 하늘과 같았다.

하지만 이제 입장이 달려졌다.

나는 그를 올려다보던 그때와 달리, 하늘에서 그를 내려다보듯 녀석의 검을 훤히 꿰뚫어 보고 있었다.

명백하고 아득한 격의 차이.

그가 전력을 다해 풀어내고 있는 쾌속한 검로가 한 올 한 올 풀어져 선명히 드러난다.

일검에 파훼하기 아쉬울 정도로 아름다운 궤적.

그러나 나는 그렇게 했다.

콰아아아아!

여태껏 녀석에게 맞춰 움직이던 나의 검이 돌연 존재를 드러냈다.

의지가 이는 순간 이미 검은 흐르고 있었다.

사방에서 달려드는 궤적을 지워 내며 그어지는 검.

단 하나의 선이 어지러이 엉킨 실타래를 단칼에 지워 버린다.

콰아아앙!

그 검격을 막아 낸 할렌트가 흐릿한 잔상을 남기며 바닥에 처박혔다. 그를 받아 낸 지반이 둥그렇게 움푹 파이며 뭉개졌다.

“크흑.”

짧은 신음과 함께 검붉은 핏물을 토해 내는 녀석.

그는 검으로 바닥을 짚으며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후.”

허리를 편 그가 입가에 묻은 피를 소매로 훔치며 제가 만든 구덩이에서 올라왔다.

우리는 반쯤 허물어진 제단 위에 서 있었다.

반듯이 평평했던 상층부는 이제 폐허와 다름이 없었다.

“대체 무슨 조화를 부린 것이냐. 어떻게 그 나이에 그만큼이나 강해진 것이지?”

“비법이라도 있을 거라 생각하나.”

“……그런가.”

그는 내 말을 이해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강해지는 것에 왕도는 없다.

그는 그것을 이해한 거다.

내가 말했다.

“고작 그 정도로 여유를 부렸나?”

누구보다 내 전력을 알고 있을 그였다.

그는 그럼에도 여유로운 태도를 보였다.

그것은 그저 패배를 인정한 초탈함이 아니었다.

내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그 또한 내 의혹을 확인시켜 주었다.

“물론, 아직 한 수가 남아 있음이야.”

확실히 아까와는 다르다.

내 검을 받아 보고 이제야 확신한 듯했다.

자신의 죽음을.

“프렌치아가 진정 제국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나? 네놈이 강한 건 인정하지만, 아무리 강하다한들, 혼자서 제국을 감당할 수는 없어.”

“아니.”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말했다.

“나는 그것이 가능한 사람이다.”

확신의 찬 시선이 녀석을 직시한다. 녀석은 그런 나를 보며 황당하다는 듯 헛웃음을 터트렸다.

“정말이지 터무니없는 자신감이군. 하긴 그런 생각이니 이런 일을 벌이고 있는 것이겠지.”

그 또한 내게 확신에 찬 시선을 던졌다.

“하지만 네가 아무리 강하다 한들 황제 폐하를 이길 수는 없다. 그분은 신과 다름없는 분이시다.”

“신은 개뿔.”

내 말에 그는 입꼬리를 비틀었다.

“직접 겪어 보면 알게 되겠지. 하지만 나를 이겼다고 생각하지는 마라. 아직 승부는 끝나지 않았으니.”

그리 말한 녀석이 무어라 웅얼거렸다.

들리지 않는 목소리.

일순 그를 중심으로 투명한 마력의 기파가 번졌다.

뭐지?

스러져 가던 녀석의 기세가 일순 수직으로 치솟아 올랐다.

동시에 태양처럼 타오르는 황금빛 안광.

녀석의 마력의 색이 변색됐다.

“덕분에 지금껏 아껴 두었던 걸 모두 무력에 갈아 넣었다. 이번에는 좀 다를 거야.”

확실히 숨겨 둔 한 수가 있었나 본데.

녀석이 발산한 기운이 온몸을 찌릿찌릿하게 훑고 지나간다.

전력의 상승폭이 기대 이상이었다.

거기에 마력의 기본 속성마저 변한 듯한데.

지금까지와 달리 정제되지 않은 광폭한 기운이었다.

넘치는 마력을 가다듬지 않고 멋대로 풀어놓은 것 같달까.

이번에는 다를 거란 그의 말이 허언으로 들리지 않았다.

내가 말했다.

“유언은 그것으로 끝인가.”

녀석은 괘씸하게도 내 질문에 답하지 않고 쇄도해 왔다.

아무래도 유언은 그것으로 끝인 듯했다.

* * *

콰아아앙-!

일대를 쓸어버리는 충격파가 연이어 터져 나갔다.

근방의 건물들이 압축된 돌풍에 뭉개지며 부스러지고 있었다.

흐릿한 잔상만을 남기며 격돌하는 두 줄기의 광채.

우르르르릉!

푸른빛과 황금빛이 충돌할 때마다 벼락이 치듯 번갯불이 튀고, 우레와 같은 굉음이 그 뒤를 따랐다. 인간의 탈을 아득히 벗어난 검격에 마치 재앙이 찾아온 듯했다.

“미X놈들 아냐.”

네더만이 말했다.

그들의 접전을 보고 있자니, 욕부터 튀어나왔다.

그는 후폭풍의 반경을 벗어난 건물의 옥상에서 둘의 격돌을 지켜보고 있었다.

거리가 상당함에도 오러 블레이드(검강)의 충돌로 일어난 광풍이 머리칼을 사납게 뒤흔들고 있었다.

“아무래도 할렌트도 소드 마스터에 들어섰나 본데.”

자신의 경지를 아득히 넘어선 기파에 미간이 절로 찌푸려졌다.

같은 검사로서 박탈감이 느껴지지 않을 리 없었다.

제네스는 몰라도 할렌트는 꽤 오랜 시간 함께였던 자였기에.

“아주 프렌치아에 경사가 났군.”

따지고 보면 할렌트 또한 프렌치아의 국민이었던 자.

패망하지 않았다면 제국과 마찬가지로 두 명의 소드 마스터를 가진 국가가 됐을 테지.

“총독질로 바빴을 텐데 언제 저렇게 강해진 거지?”

네더만은 불만을 참지 않고 툴툴거렸다.

“사람 초라해지게.”

그러면서도 네더만은 그들이 격돌하는 장면을 하나라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눈도 깜박이지 않고 집중했다.

거리가 먼 데다 들고 일어난 파편 탓에 눈에 담기는 것이 적었지만, 자신에게는 천운과 같은 기회였다.

생사결(生死決)을 벌이는 소드 마스터 간의 대결을 보다니.

이건 검사로서 억만금을 준다고 해도 가질 수 없는 진귀한 기회였다.

지금은 완전히 이해되지 않아도 언젠가 자신을 한 단계 성장시켜 줄 밑거름이 될 터.

네더만은 그들의 움직임을 머릿속에 새기듯 박아 넣고 있었다.

“저게 소드 마스터의 싸움이구나…….”

알렌 또한 옆에서 입을 쩍 벌린 채 전방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러게요. 저 둘 같은 인간 맞죠?”

이리엘도 전혀 다르지 않은 표정이었다.

둘의 눈동자는, 도박할 때만큼이나 반짝거리고 있는 네더만의 눈동자와 달리 흐리멍텅했다.

……·뭐가 보여야 말이지.

무언가 번쩍일 때마다 투명한 충격파가 일대의 지반을 쓸어버렸고, 공간이 내지르는 비명이 끊임없이 울려 퍼지고 있었으나, 그들은 눈뜬장님과 다르지 않았다.

그저 금빛과 푸른빛이 충돌하며 휘몰아치는, 휘황한 빛줄기만을 바라보고 있을 뿐.

마치 인간의 격을 아득히 넘는 존재가 이 땅에 강림한 듯했다.

이리엘이 말했다.

“누가 이기고 있어요?”

네더만은 묵묵부답이었다.

옆에서 부르는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그는 집중하고 있었다.

그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깨달은 이리엘은 떼를 부리지 않고, 옆에 있는 알렌을 보았다.

마침 알렌 또한 자신을 바라보았다.

“…….”

둘은 서로의 멍청한 표정을 보며 위로를 받고는 다시 전방을 바라보며 마음을 졸였다.

그리고 잠시 후.

일순, 수평으로 들이치는 섬광이 있었다.

콰아아아아-!

측면으로 시원하게 뻗어 나간 빛줄기가 창공을 가로지르며 저편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이내 숨이 막혀 올 정도의 강한 돌개바람이 휘몰아쳤다.

가히 폭발적인 마력의 방출.

인간의 손끝에서 일어난 참격이라고 믿기 어려웠다.

“후. 하여간.”

동시에 네더만이 긴 숨을 토해 내며 입을 열었다.

둘은 그런 그에게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어떻게 됐어요!”

“누가 이긴 겁니까!”

네더만은 고개를 살래살래 저으며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에는 허탈감이 짙게 묻어 있었다.

“저 괴물 녀석을 누가 감당하겠냐.”

네더만의 말에 둘의 표정이 금세 풀어졌다.

그 안에 담긴 진위를 모르지 않는 까닭.

그럼에도 시선은 여전히 네더만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상황을 설명해 달라는 의미.

네더만이 말을 이었다.

“할렌트는 분명 소드 마스터의 경지였다. 나로서도 가늠할 수 없는 아득한 격이었지. 총독의 자리에 올라 바빴을 이가 언제 그만큼이나 강해졌는지 모르겠다만. 그의 강함은 진짜였다.”

네더만은 고개를 무겁게 끄덕이며 할렌트를 인정했다.

“내가 본 자 중에 가장 강했지.”

그러고는 어이가 없다는 듯 허탈하게 웃었다.

“그런데 저 괴물은, 그것마저도 압도하는군.”

* * *

칼끝에서 뻗어 나간 기다란 섬광이 할렌트의 검격을 모조리 지워 내며 그의 목까지 갈랐다.

그만큼 날카롭게 벼려진 검이었다.

내력의 집중이 극의에 이른 검.

사위를 쓸어버렸던 푸른 섬광이 홀연히 흩어진다.

나는 아직 쓰러지지 않은 할렌트를 바라보았다.

목이 베였음에도 그는 잠시나마 서 있었다.

그의 목 위로 붉은 선이 그어진다.

그는 내게 무어라 말하고 싶어 하는 듯했지만, 뿜어진 핏물이 그것을 삼켰다.

푸확!

그것으로 끝이었다.

지난 10년간 프렌치아를 다스렸던 1대 총독이자, 수많은 국민들의 삶을 짓밟았던 변절자들의 왕.

할렌트 바레인.

그자의 목이 드디어 바닥에 떨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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