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 후 천하제일인이 되어 귀환했다-112화 (112/228)

제112화

제112화 불멸의 군대 (3)

제단의 정상부.

평평한 상층부의 공간은 거대한 홀만큼이나 넓었다.

그 중심에 기하학적인 문양으로 그려진 마법진이 있었다.

황금색 수실로 화려하게 치장된 검은 사제복을 입은 가짜 왕세자가 그곳을 향해 걸었다.

“끼잉.”

불길함을 느낀 걸까?

함께 온 네스가 앓는 소리를 내었다. 이리엘은 그런 네스의 갈기를 쓸며 늑대를 달랬다.

“쯧.”

그것을 보며 할렌트는 혀를 찼다.

늑대를 매번 데려오는 가짜 왕세자의 행태가 못마땅한 까닭.

하지만 그도 그것만은 말리지 못했다.

자신이 없을 때도 왕세자는 이곳에 와 의식을 치렀다. 그때마다 데리고 오다 보니, 없으면 마음의 안정이 안 된단다.

다른 건 몰라도 의식을 위해서라면 허락할 수밖에.

이제 곧 길었던 기다림이 결실을 맺게 될 터였다.

마법진의 중앙에 들어가 앉은 왕세자는 중심에 그려진 원을, 기묘한 문양이 새겨진 왼손으로 짚었다.

우웅.

소맷자락을 펄럭이며 검은 오러를 머금는 왼팔.

동시에 검은 실선으로 그려져 있던 마법진에서 붉은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구오오오오.

“크으으.”

가짜 왕세자는 고통스러운지 인상을 찡그리며 신음을 삼켰다.

이리엘은 마법진에서 뿜어져 나오는 막대한 마력이 왕세자의 손바닥으로 밀려드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제 마지막 단계에 이르렀음이다.”

할렌트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이리엘은 염려스러운 얼굴로 가짜 왕세자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제단 위로 다급한 걸음이 들려왔다.

타다다닥.

소리를 쫓아 고개를 돌리자 당혹스러운 표정의 기사가 보였다. 할렌트의 고갯짓에 그는 곧장 본론을 꺼냈다.

“어제 왔던 녀석들이 또 왔습니다.”

기사의 말에, 이리엘은 시선을 멀리 두었다.

저편에서 먼지구름이 일고 있었다. 이리엘은 그것을 보며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제네스가 온 것이다.

“결국 왔군.”

보안 마법을 발동할 수 있는 아티팩트에 마력을 주입해 봤지만, 그들을 대상으로 잡을 수가 없었다. 어제 소모한 마력을 충전했음에도 그랬다.

‘움파움파족의 짓인가.’

아무래도 그들과 조우한 듯했다.

할렌트는 기사에게 명을 내렸다.

“아리아트 기사단을 데리고 가거라.”

* * *

콰과과과광!

나는 앞을 막아 오는 것들을 그대로 밀어 버리며 나아갔다.

“벌써 늦은 건 아닌지 몰라.”

네더만이 저편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의 말마따나 높이 솟은 제단의 정상에서 불온한 기운이 증폭되고 있었다.

상공에는 검은 먹구름이 나선으로 휘감겨 천천히 회전하고 있었고, 낮인데도 밤처럼 짙은 어둠이 사위에 내려앉아 있었다.

의식이 절정에 치달은 분위기였다.

“멈춰라.”

그런 우리의 앞을 막아 오는 기사들.

일대의 공간을 짓누르는 위압을 가진 이들이었다.

병력의 수가 어제보다 늘어 백에 이를 듯했다.

왕세자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감시하던 녀석들인 거 같은데.

존재가 드러나지도 않은 섬에 이 정도 병력을 두다니.

하여간 철두철미한 자다.

“내가 맡지.”

내가 말했다.

이미 네더만은 알렌을 데리고 멀찍이 물러선 상태였다.

나는 괘씸한 녀석을 바라보았다.

그는 씩 웃으며 엄지를 세웠다.

“그럼 잘 부탁한다고.”

저 능구렁이 같은 자식.

나는 눈썹을 한차례 꿈틀거리곤 앞을 막아선 자들을 보았다.

특임대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상당한 실력자들.

그들의 수장이 싸늘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홀로 우리를 상대하겠다니, 오만하기가 이를 데 없군.”

지금은 흰 사자 가면을 쓰고 있지 않은 상태.

내 어려 보이는 얼굴이 그들의 심기를 더욱 자극한 듯했다.

어제의 대화를 들었기에 내가 흰 사자라는 걸 모르지는 않을 텐데, 말하는 본새를 보니 내 전력에 대해서는 모르는 듯했다.

할렌트도 이들을 그저 시간 벌기용으로 던진 거 같은데.

나는 방심하고 있을 적을 언제나처럼 걱정했다.

“처음부터 전력을 다해야 할 거다.”

검병을 움켜쥐자, 뇌운검이 손아귀에 착 감겨 왔다.

“어디서 건방을 떨어!”

내 말에 심기가 더욱 불편해진 녀석들이 서슬 퍼런 안광을 발하며 쇄도해 왔다. 나는 그런 녀석들을 정면으로 마주했다.

콰과과과광!

“저 무지막지한 놈.”

네더만은 저편에서 굉음과 함께 일어나는 먼지구름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저 무지막지한 검격을 볼 때면 아군이길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이 자연스레 머리를 스친다.

“이쪽이에요!”

알렌이 손짓을 했다.

적들을 제네스에게 맡긴 두 사람은 제단을 향해 곧장 달려온 상태였다.

움파움파부족 덕분에 제단의 구조를 알고 있던 이들은, 의식이 치러지고 있는 제단의 상층부가 아닌 제단 내부로 진입하는 입구에 다다라 있었다.

의식을 멈출 수 있는 심장부로 가기 위해서였다.

“머, 멈춰라!”

그런 그들을 발견하고는 당황하며 소리치는 위병들.

자신들이 이쪽으로 올 줄은 예상치 못했는지 고작 둘뿐이었다.

“그런다고 멈추겠나.”

흐릿한 잔영을 남기며 쏘아진 네더만의 신형이 그들의 뒤편에서 우뚝 섰다.

동시에 위병들은 피를 뿜으며 무너져 내렸다.

단숨에 적을 베어 낸 네더만과 알렌은 손쉽게 입구를 열고 제단의 내부로 진입했다.

“와.”

문을 넘자마자 알렌은 탄성을 터트렸다.

널따란 개방감을 가진 공간이 죽 이어지고 있었다. 천장과 폭이 어찌나 높고 넓은지, 중간중간에 비치된 등불도 공간의 전부를 밝히지 못해 일부가 어둠에 잠겨 있었다.

구오오오오.

그 거대한 공간 깊숙이서 울음 같은 바람 소리가 들려왔다. 막대한 마력의 파동에 살갗의 솜털이 절로 일어났다.

이 길의 끝에 제단의 심장부가 있을 터였다.

“가자.”

“옙.”

알렌은 불멸초가 담긴 병을 꾹 쥐며 비장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둘은 어둠에 물든 공간을 내달렸다.

제단 내부에 경비병들은 따로 존재하지 않는 듯했다.

잠시 후, 그들의 앞으로 커다란 문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앞에는 한 사내가 옆에 검을 기대어 놓은 채 눈을 감고 앉아 있었다.

네더만과 알렌은 그와 간격을 두고 걸음을 멈췄다.

앉아 있음에도 칼날같이 예리한 기세가 공간을 날카로이 세우고 있었다.

“호, 제법인데.”

네더만은 그를 보며 짧게 감탄했다.

그가 상당한 강자임은 검을 부딪쳐 보지 않고도 알 수 있었다.

쉽게 지나칠 수 있는 자가 아니다.

가만히 앉아 있던 그가 천천히 눈을 떴다.

그의 강렬한 시선은 네더만을 향해 있었다.

“네가 용 사냥꾼이군.”

“나를 아는가? 이거 영광이구만. 그런데 어쩌나. 지금은 내가 좀 바빠서 자네와 담소를 나눌 여유가 없을 거 같은데. 여기서 조금 더 자고 있는 건 어떻겠나. 내 금방 볼일을 보고 오겠네.”

“혀가 길군.”

네더만은 웃으며 흔쾌히 긍정했다.

“내가 말장난을 꽤 좋아한다네. 나와 달리 자네는 상당히 과묵해 보이는구만. 그래서야 이 세상을 무슨 재미로 살아가겠나. 원한다면 혀가 길어지는 방법을 가르쳐 줄 수 있는데 말이야.”

그는 네더만의 말장난에도 별다른 반응 없이 몸을 일으키며 검을 뽑았다.

동시에 고동색 동공에 서늘한 안광이 서리며 진득한 살기가 폭발하듯 뿜어져 나왔다.

그 섬뜩하고 적나라한 기세에 알렌은 일순 다리의 힘이 풀릴 지경이었다.

마치 야생의 포식자를 마주한 것 같은 기분.

단지 기세를 마주한 것뿐인데도 금방이라도 죽을 것만 같은 강맹한 살기였다.

“전쟁터에서 굴러먹던 놈이군.”

네더만은 그 흉포한 기세를 마주하며 입매를 비틀었다. 셀 수 없이 많은 인간을 벤 자만이 가질 수 있는 기운이었다.

“어쩐지 들개 냄새가 난다 했더니.”

“저는 먼저 가 볼게요.”

조용히 속삭인 알렌이 스멀스멀 옆으로 물러섰다. 자신이 저자를 상대하는 동안 홀로 나아가겠다는 의미였다.

“괜찮겠나.”

네더만이 물었다.

덩치는 산만 하지만, 약해 빠진 녀석이었다.

혼자서는 위험했다.

“한시가 급하잖아요.”

알렌이 각오를 전하자, 네더만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들이 올 줄 몰랐는지 경계도 심하지 않은 것 같고 제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잘 아는 놈이니 만용은 부리지 않을 테지.

네더만이 말했다.

“무리하지 말고.”

“네. 이기실 수 있죠?”

“당연하지.”

“먼저 가서 기다릴게요.”

알렌이 말했다.

밖에서 느꼈던 기운과 상황으로 봤을 때 여유를 부릴 만한 상황은 아니었다.

자신도 손가락만 쪽쪽 빨고 있을 수는 없었다.

이 정도 되는 자가 문을 지키고 있으니, 문 너머의 경계는 오히려 허술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정문을 지키던 놈들 정도의 수준이라면 혼자서도 감당할 자신이 있었고.

“이 녀석은 보내고 화끈하게 한판 붙는 게 어때.”

네더만의 말에, 사내는 순순히 길을 비켜 주었다.

네더만을 감당하는 동시에 그를 신경 쓸 자신이 없는 까닭.

“조금 더 멀리…… 가 주시죠.”

알렌이 쭈뼛대며 말했다.

사내의 살벌한 기세에, 적이지만 절로 존댓말이 나왔다.

사내는 고개를 내젓고는 더 멀찍이 비켜 주었다.

네더만에게 엄지를 치켜세운 알렌은 이내 거대한 문 너머로 사라졌다.

문을 불안한 눈빛으로 보던 네더만은 사내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사내가 말했다.

“네가 독립군 중 최강이라지.”

그 물음에 네더만은 곧장 제네스를 떠올렸지만, 이내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뭐, 사람 중에는 그런 것 같은데.”

그 자식은 괴물이니까. 녀석을 제외하고는 최강을 논할 자신이 있었다.

“프렌치아의 검, 한번 견식해 보지.”

사내의 말에, 네더만은 검병을 꽉 움켜잡았다.

전신을 압박해 오는 살기가 일품이었다.

대체 얼마나 많은 이들을 벤 것인지.

둘은 서로를 날카롭게 바라보며 간격을 가늠했다.

두 명의 강자가 일으킨 기세에 주변 공기가 사정없이 요동쳤다.

네더만은 적의 전력을 가늠하며 어금니를 물었다.

‘확실히 쉽지 않겠군.’

한편, 문을 넘은 알렌은 너른 공간을 은밀히 나아가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또 하나의 문이 모습을 드러냈다.

알렌은 그 문을 조금의 소리도 나지 않게, 온 얼굴을 구기며 조심스레 열었다.

문이 조금씩 열리며 드러나는 내부.

살짝 벌어진 문틈으로 푸른빛이 일렁인다.

알렌은 실처럼 좁은 틈으로 가늘게 뜬 눈을 가져가 내부를 살폈다.

거대한 홀처럼 넓은 공간.

저편에 선 병사들이 거대한 화로에 마석을 삽으로 퍼 넣으며 푸른 불길을 지피고 있었고, 그 위로는 굴뚝처럼 기다랗게 뻗은 기둥이 있었다.

아마 제단의 정상부까지 이어지며 마력을 수급하는 듯했다.

“크헤헬헬헬! 드디어 길었던 의식도 막바지구나!”

알렌은 낯익은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며 몸을 틀어 시선을 옆으로 옮겼다.

섬을 나섰다던 Dr. 주르하가 그곳에 있었다.

녀석이 갑작스레 고개를 홱 돌려 입구를 바라본다.

좁은 문틈으로 그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알렌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거 쥐새끼가 숨어들어 있었군. 클클클.”

빌어먹을.

알렌은 아랫입술을 질끈 물었다.

적은 마법사.

널찍한 공간에서 등을 보이고 도망치는 것은 결코 좋은 수가 아니었다.

이렇게 된 이상 방법은 나아가는 것뿐이다.

끼이익.

알렌은 커다란 문을 활짝 열어젖히며 그 안으로 걸음을 디뎠다.

구오오.

동시에 단전에서 시작된 마력의 흐름이 체내를 휘감기 시작한다.

주변으로 옅은 돌풍이 일며, 칼날처럼 날 선 기세가 그를 중심으로 피어올랐다.

창졸간에 몸집을 부풀리는 존재감.

모두 허세신공의 공능이었다.

알렌은 여유로운 태도를 유지한 채 걸음을 멈췄다. 주르하는 그런 그를 보며 낯빛을 굳혔다.

“……쥐새끼는 아니었나.”

주르하는 기사가 아닌 마법사.

자신의 전력을 기세만으로 오해할 요지가 컸다.

허세신공이 제대로 먹힐 수 있다는 의미.

하지만 방심할 상황은 아니다.

그렇다고 위기에서 벗어난 것은 아니니까.

지금부터가 오히려 더 중요했다.

알렌은 속으로 쾌재를 부르면서도 겉으로는 진중히 입을 열었다.

“오랜만이군.”

“클클클. 나를 본 적 있나?”

주르하가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알렌이 싸늘히 말을 덧붙였다.

“봤다마다. 두 번 모두 내가 죽였으니. 대체 어떻게 살아 있는 거지?”

“네놈이 나를 두 번이나 죽였다고?”

안면을 사납게 일그러뜨리는 주르하.

자신을 두 번이나 죽일 정도의 강자인 데다 자신감에 찬 태도를 보니 녀석의 정체를 단숨에 파악할 수 있었다.

그 또한 흰 사자가 이 섬에 왔다는 사실을 들어 알고 있었으니까.

주르하의 동공이 파르르 떨렸다.

“그럼 설마 네놈이……?”

“그래.”

알렌의 입가에서 북해의 대기처럼 차디찬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내가 바로 그 흰 사자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