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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후 천하제일인이 되어 귀환했다-109화 (109/228)

제109화

제109화 가짜 왕세자 (7)

고대의 건축물이 늘어선 도시.

그 중심에 산처럼 홀로 솟은 제단이 있었다.

커다란 벽돌을 층층이 쌓아 올려 만든 사각뿔 형상의 거대한 구조물.

최상단부는 뿔이 수평으로 절단된 듯 평평하다.

그 너른 공간이 바로 의식을 치르는 장소라고 했다.

“병사들이 쫙 깔려 있을 텐데.”

흰 사자의 입가에서 두려움이 깃든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내가 말했다.

“겁먹을 필요 없다.”

“하! 겁은 무슨.”

콧방귀를 끼며 호탕한 척 구는 흰 사자.

그런 것치고는 상당히 불안해 보인다.

왕세자라 떵떵거리던 녀석이 겁은 더럽게도 많다.

그럼에도 옆에 선 이리엘에게 멋진 척하는 녀석.

“걱정 마십시오. 제가 지켜 드리겠습니다.”

“아, 예.”

이리엘도 그저 어색하게 웃는다.

검을 제대로 잡아 본 적도 없는 녀석이 익스퍼트에 이른 이리엘을 지켜 주겠다니.

나는 그런 놈의 뒤통수를 후릴까 하다가 꾹 참고 입을 열었다.

“쓸데없는 말 말고 얌전히 걷기나 해. 그 정도는 할 수 있겠지.”

“물론이다. 나를 걷지도 못하는 애로 보는 것이냐.”

물론 이 녀석이 걸음마도 못 뗀 아이는 아니었다.

하나, 그것은 일반적인 상황에서고.

녀석은 곧 전장의 한복판을 걸어야 한다. 핏물이 낭자하고 절단된 시체가 늘어진 전장을.

처음 겪는 이가 의연히 가로지를만한 곳은 아니었다.

가면으로 표정을 숨길 수 있으니 그건 다행이기는 한데, 할렌트를 속일 수 있을는지는 장담할 수 없다.

그래도 한번 해 보는 수밖에.

할렌트가 직접 실토하게 만드는 것이 왕세자의 진위를 가리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니까.

“가자.”

우리는 도시를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마차는 버리고 두 발로 걸었다.

마차를 타면 깊숙이 침투하기야 쉽겠지만, 작전상 우리는 가짜 왕세자와 접촉한 적이 없는 사람들이어야 했다.

이들에게 광산의 소식은 닿지 않았을 테니 능히 가능할 터였다.

저 앞으로 도시의 입구가 보였다.

도시의 정문은 아무런 경계 없이 활짝 열려 있었다.

경비병들이 존재하기는 했지만, 한껏 풀어진 태도다.

“음?”

우리를 발견한 경비병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제 눈을 의심하는 듯했다.

그 얼굴이 이내 당혹스러움으로 물든다.

섬에 틀어박혀 있던 이들이 흰 사자의 존재를 아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우리가 적이란 건 쉬이 알 수 있을 터.

하지만 그래봐야 이미 늦었다.

점멸하듯 흩어진 신형이 녀석들의 사이를 가로질렀다.

촤-악!

나는 찰나에 녀석들의 목을 베며 지나쳤다.

걸음 뒤에서 핏물이 치솟아 올랐다.

“헙!”

저편에서 가짜 왕세자 녀석이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적이다! 적이 쳐들어왔다!”

나를 보고는 사색에 질려 경종을 울리는 이들.

고요했던 도시에 소란이 일기 시작했다.

“이제부터 정신 똑바로 차려라.”

나는 뒤로 다가온 가짜 녀석에게 경고했다.

우리는 그를 중심으로 삼각편대를 이루고 있었다.

전방은 내가, 좌우측 후방에는 네더만과 알렌이.

이리엘은 가짜 옆에서 혹시 모를 위협에 대비했다.

“웬 놈들이냐!”

다급하게 앞을 막아 오는 제국군들.

실력은 광산 때와 같이 형편없었다.

섬에 박아 놓은 이들의 전력이 얼마나 되겠는가.

나는 검을 뿌리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콰과과과광!

허공을 헤집는 궤적.

그를 따라 개화하는 검기 다발.

쏘아진 비검기가 궤도 안에 놓인 이들을 격살하며 내달렸다.

나는 압도적인 면모를 선보이며 앞을 막아 오는 이들을 가차 없이 베었다.

제국군은 전열을 구축할 새도 없이 갈려 나갔다.

의도적으로 압도적인 모습을 보였다. 지휘관을 불러내기 위해.

그러다 보면 결국 할렌트까지 딸려 나오겠지.

나는 천천히 나아갔다.

적들의 포위 벽은 점차 두터워져 갔지만, 괘념치 않았다.

알렌에게는 좀 버겁겠으나, 여유가 있는 나와 네더만의 지원으로 삼각편대를 유지하는 것에 문제는 없었다.

“으아악!”

“물러서지 마라!”

“끄악!”

“달려들어!”

적들의 처절한 비명과 고함으로 점철된 전장.

가짜 왕세자는 내가 깔아 놓은 붉은 핏물 위를 묵묵히 뒤따랐다.

옆에 선 이리엘 때문인지 녀석은 생각보다 의연하게 굴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저편에서 공간을 격하는 기세가 전해졌다.

칼날의 예리함을 품은 바람이 서늘히 불어온다.

“아리아트 기사단이다!”

“다들 길을 비켜!”

“너네는 이제 뒈졌어, 새끼들아!”

요란법석을 떨며 좌우로 갈라지는 병사들.

그들 사이로 묵직한 기세를 담은 기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대략 50에 이르는 병력.

기개 있는 표정의 기사들이 우리 앞을 막아선다.

나는 일단 잠자코 있었다.

꽤 실력 있는 자들이다만, 내가 느낀 기세는 이들의 것이 아니었다.

도열한 기사들을 좌우로 물리며 걸어오는 한 남자.

저벅, 저벅.

머리칼을 단정히 넘긴 중년의 사내.

여유로운 걸음걸이에서 위압을 담은 귀족의 기품이 넘치듯 흐른다. 거기에 무표정의 얼굴에서 전해지는 서늘함과 냉철함까지.

비슷한 옷차림에 같은 얼굴을 가졌지만, 가짜 녀석과는 확연히 비교되는 품위였다.

가진 무력을 떠나 한 나라의 정점에 선 자가 뿜어내는 존재감은 확실히 달랐다.

녀석이 등장하는 순간, 일대의 공간이 무겁게 가라앉는다.

마치 반경의 세계가 들고 일어나 몸집을 키우는 듯했다.

과연, 할렌트 바레인.

나는 그 위압적인 자태를 마주하며 한편에 남아 있던 아쉬움을 풀었다.

확실히 내가 알던 외숙부가 맞았다.

그래, 이 정도는 되어야지.

나는 허접하고 볼품없는 놈을 베기 위해 먼 길을 달려온 것이 아니었다.

그는 적장이지만, 확실히 목을 벨 만한 가치를 가진 사내다.

그의 부재는 총독부에 커다란 균열을 가져올 터.

하나, 정작 그의 시선은 내 뒤를 향하고 있었다.

그의 입가에서 사람을 짓누르는 듯한 무거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여기까지 찾아올 줄이야. 솔직히 놀랍군.”

놀랐다는 것치고 그는 무심히 말을 이었다.

“조금 더 기다리지 그랬나. 그랬다면 제대로 환영해 줄 수 있었을 텐데 말이야.”

흰 사자의 전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임에도 여유로운 태도.

무력이 정확히 가늠되지는 않지만, 어쩌면 이 자식.

소드 마스터일지도 모르겠다.

은은히 느껴지는 전력이 그랬다.

이 여유 또한 나를 감당할 수 있다는 것에서 오는 여유겠지.

그때 뒤편에 서 있던 네더만이 앞으로 나서며 입을 열었다. 가장 전방에 있던 나는 자연스레 걸음을 물려, 그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약속된 상황이었다.

“여, 총독 나리. 대화는 나랑 나누셔야 될 거 같은데. 가면 쓴 걸 보면 알겠지만, 낯을 많이 가리는 친구라.”

할렌트는 그제야 네더만을 바라보며 이채를 띠었다. 나는 그 눈동자가 한차례 일렁이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지금껏 무심했던 녀석을 봤을 때 생각보다 더 큰 동요.

네더만 녀석도 그런 그를 보며 히죽거리고 있었다. 할렌트가 입매를 비틀며 싸늘히 조소했다.

“오랜만이군, 그레더만.”

“오, 나를 잊지 않은 건가? 하긴 내 얼굴이 잊기 어렵게 잘생기긴 했지.”

“그 저급한 혓바닥은 여전하구나.”

“오랜만에 만난 전우인데 표정 좀 풉시다. 정 없는 건 나이가 들어도 여전하구만.”

네더만의 본명과 할렌트와의 관계.

나는 어젯밤에 대략적인 상황을 녀석에게 들어 알고 있었다.

네더만 또한 과거에 레오니랜서 소속의 기사였다고 했다.

카드론과는 동기고, 당시 그들의 조장이었던 자가 할렌트였다고.

네더만 녀석은 별거 아닌 것처럼 짧게 말했으나 꽤 깊은 인연이었다.

“용케 살아 있었구나.”

“세상에 즐거운 일이 얼마나 많은데. 벽에 똥칠할 때까지는 살아야지.”

“용 사냥꾼이 네놈일 줄 알았다.”

녹빛의 오러와 익스퍼트 최상급에 이른 강자.

네더만을 알고 있었다면 쉬이 유추할 수 있었을 터. 네더만은 씩 웃으며 말했다.

“날 생각하고 있었다니 영광인걸. 그런데 어쩌나. 나는 중년 남자에게는 별 관심이 없는데 말이야.”

“한심하기는.”

“그나저나 까탈스러운 분께서 섬에 틀어박혀서 뭐 하신데?”

“말만 앞서는 것도 여전하고.”

“옛 추억에 잠기는 건 아니지? 나라를 팔아먹은 총독 나리께서.”

“그럴 이유는 없지. 그래도 놀랍기는 하군. 너 같은 놈이 독립군을 할 줄이야.”

“사실 나도 놀랐어.”

네더만이 어깨를 으쓱하자, 할렌트가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

“여기는 어떻게 알고 왔지?”

“일자리 소개를 받았걸랑? 그런데 놈들을 따라와 보니 여기던데. 이게 어찌 된 영문인지.”

“운이 좋았군.”

네더만의 말에, 할렌트는 곧장 대략적인 상황을 파악한 듯했다.

네더만은 장난기 어린 표정을 싸늘히 굳히며 입을 열었다.

“대체 어디까지 추락한 거지? 그 할렌트 바레인이 이런 좀스러운 짓을 다하고.”

“희생 없는 결과는 없다. 그저 더 나은 결과를 위해 선택했을 뿐.”

“국민들을 납치해 인체 실험하는 이를 지원하고. 그들을 속여 노역하게 만드는 추잡한 일들이 대체 무슨 결과를 위한 희생인데?”

“고작 그런 투정을 부리러 여기까지 온 것인가.”

할렌트는 어떠한 동요도 없이 되물었다.

그리고 그 반응은 네더만의 말을 인정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즉, 우리가 가짜 왕세자에게 말해 준 프렌치아의 현 상황이 진실이라는 의미.

가짜 왕세자 또한 할렌트가 자신에게 거짓을 말하고 있었다는 걸 알았겠지.

일단, 프렌치아의 상황을 자연스레 증명한 네더만은 바로 본론에 들어갔다.

“투정이라니, 내가 아직도 꼬꼬마로 보이나? 술과 도박을 즐길 줄 아는 어른이 된 지 한참인데. 좀 섭섭해.”

할렌트가 묵묵히 기다리자, 네더만은 음흉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나저나 세자 저하는 어디 계시지? 우리는 세자 저하를 뵈러 왔는데.”

“제법 들을 줄 아는 귀를 가졌나 보구나.”

“이거 왜 이러실까. 일부러 흘리셨으면서.”

“머리도 제법 있는 것 같고.”

할렌트가 입매를 비틀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왕세자에 관한 정보는 우연히 독립군에 들어온 것이 아니었다.

총독부 쪽에서 가짜 왕세자가 등장할 훗날을 대비해 은근히 흘리고 있었겠지.

하지만 그것을 따라 여기까지 도달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사실 우리가 이곳에 올 수 있었던 것도 순전히 우연의 중첩이었으니까.

굽이치는 해협 소속의 독립군과의 만남부터 「불멸의 도시」를 얻은 것, 또 알스를 구하기 위해 이곳에 온 것까지.

모두 우연의 일치일 뿐이었다.

네더만이 말했다.

“이렇게나 오랜만에 전우도 만났겠다, 술은 없지만 우리 탁 까놓고 이야기하자고. 대체 가짜 왕세자를 만들어 뭘 어쩌겠다는 건데?”

“왕세자가 가짜라고?”

“우리 흰 사자께서 총독부에서 너와 똑같은 가짜를 보았거든. 그제야 상황이 이해되더군. 테나스타 광장에서 처형당한 왕세자가 어떻게 되살아났는지 말이야.”

“그때가 가짜일 수도 있지.”

할렌트가 씩 웃으며 말했다.

역시 순순히 밝히지는 않는 건가.

할렌트가 말을 이었다.

“너희들이 왕세자에게 관심을 갖듯 나는 흰 사자에 대해 궁금한 게 많은데 말이야. 가면 뒤의 정체도 그렇고.”

거래를 하자는 건가?

네더만도 그렇게 받아들였는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뭐 내 궁금증만 해결해 준다면 흰 사자의 얼굴쯤이야 흔쾌히 공개하지. 낯을 가리고 부끄러움이 많은 친구이기는 하지만, 중년의 사내 앞에서 얼굴을 붉히는 남자는 아니라고.”

“그거 다행이군.”

“그렇지? 그러니 걱정 말라고. 그새 성적 취향이 바뀌지는 않았을 거 아냐.”

“본론이나 해라.”

“아 참, 그렇지. 당신 성적 취향이 궁금했던 건 아니니 오해하지 말고. 우선 내 의문에 대해 답 좀 해 줘 봐. 대체 가짜 왕세자를 데리고 뭘 하려는 건데. 이미 권력의 정점인 총독 나리께서 굳이 가짜 왕세자를 만든 이유를, 나는 도통 모르겠더라고. 적어도 성적 취향 때문은 아닐 거 아냐.”

“말에 쓸데없는 사족을 붙이는 건 여전하구나. 그런데 어쩌나.”

할렌트는 네더만을 바라보던 시선을 내게로 옮기며 말을 이었다.

“나는 가면 뒤에 얼굴을 이미 본 것 같은데.”

역시 이 정도로 속아 넘어가지는 않나.

하여간 눈치 하나는 빠르다니까.

녀석의 싸늘한 음성이 흘렀다.

“네가 흰 사자인가.”

네더만이 혀를 차며 나를 돌아보았다.

“이럴 줄 알았지. 능구렁이 같은 작자라 했잖나.”

할렌트는 흥미로운 눈빛으로 내게 질문을 이어 갔다.

“생각보다 굉장히 젊군. 고작 그 나이에 소드 마스터에 올랐다고?”

더 이상 얌전히 있을 필요가 없던 나는 앞으로 나서며 입을 열었다.

“이제부터 질문은 내가 한다. 조금이라도 오래 살고 싶으면 묻는 말에 순순히 답하는 게 좋을 거야.”

걸음을 따라 감추고 있던 존재감이 자연스레 풀어지며 사위를 장악한다. 할렌트 뒤편에 서 있던 기사들의 표정이 일제히 굳어졌다.

나는 할렌트를 직시하며 말을 이었다.

“목이 베이면 말을 하고 싶어도 못할 테니.”

“어린 나이에 힘을 얻어서 그런가. 꽤나 오만하구나”

“아니. 내가 질문하는 것보다 네가 직접 묻는 게 좋겠군.”

나는 흰 사자를 바라보았다.

내가 흰 사자란 걸 알았다면 가면 안에 있는 자가 가짜 왕세자인 것도 어렵지 않게 유추했을 터.

내 고갯짓에 가짜 왕세자는 흰 사자 가면을 벗었다.

할렌트를 바라보는 그의 동공이 포식자를 마주한 초식동물처럼 파르르 떨렸다.

지금까지의 대화만으로도 프렌치아의 상황이 자신이 알고 있던 상황과는 다르다는 걸 쉬이 알았을 거였다.

그것은 할렌트와의 신뢰를 부수는 기다란 균열을 만들었을 터.

가짜 왕세자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저들이 말하더군요. 모두 제가 잘못 알고 있다고…….”

“맞다.”

할렌트의 수긍에 안색이 하얗게 얼어붙은 그는, 힘겹게 입을 떼었다.

“……저는.”

마른침을 삼킨 그가 묻는다.

“가짜입니까?”

“그래.”

일말의 망설임 없이 나오는 대답.

“너는 내가 만든 가짜다.”

할렌트의 말에 가짜 왕세자의 얼굴이 산산이 부서지는 듯했다. 그가 충격에 한차례 휘청이자 이리엘이 그런 그를 부축했다. 그녀 또한 충격적인 사실에 얼굴이 파랗게 질려 있었다.

동요한 것은 네더만과 알렌도 마찬가지.

나 또한 그가 순순히 인정한 것에 놀랐다.

발뺌도 없이 이렇게 말해 줄 줄이야.

덕분에 상황은 수월하게 흘러갔다.

가짜 왕세자는 충격에 넋이 완전히 나간 것 같지만.

할렌트는 무심히 말을 이었다.

“이제 와 그것이 중요하느냐?”

마치 아무 일도 아니라는 양.

“네가 가짜든 진짜든 너는 지난 10년을 이곳에서 왕세자로 살았다. 저들도 네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확신하지 못하지. 내가 널 진짜라고 하면, 너는 진짜가 될 것이다. 넌 어찌 살아가고 싶으냐.”

“…….”

가짜 왕세자는 아무런 답을 하지 못했다. 답을 할 정신이 없다고 보는 게 맞았다. 그의 동공은 반쯤 풀어져 있었다. 할렌트는 그런 그를 싸늘히 바라보며 혀를 찼다.

“한심한 놈.”

그는 가짜 왕세자가 받은 충격에는 안중을 두지 않고 우리를 보았다.

“이걸로 장난은 끝인가? 고작 이것이 궁금해서 이런 수를 벌인 것이야?”

네더만이 코웃음을 치며 답했다.

“하여간, 재수 없는 꼴은 여전하군. 혼자만 잘났지. 아주 오뚝한 콧대가 여전해. 나라를 팔아먹은 제국의 하수인 주제에 말이야.”

“네놈도 멍청한 건 여전하구나. 내가 여태 왜 너희들의 장난에 놀아 줬을 것 같으냐.”

할렌트는 싸늘히 조소했다.

“그저 여흥일 뿐이었다. 먼 길 오느라 고생한 노고를 치하해 주기 위해서이기도 했지.”

할렌트가 씩 웃었다.

지독히 차가운 웃음이었다.

“오랜만에 본 얼굴이 반갑기도 했고.”

그의 시선이 내게 향한다.

“또한 궁금했던 얼굴도 보았으니, 그것에 대한 상이었느니라.”

“X랄하고 있네.”

“그리고 이제는 너희들이 진실을 알아도 상관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말한 할렌트가 한 손을 들었다.

“잘 찾아왔으나, 이미 늦었다.”

그리고 손가락을 튕겼다.

따악!

그와 동시에 시야는 이지러졌고.

솨아아-.

우리는 어느새 무채색 숲이 보이는 해변에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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