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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후 천하제일인이 되어 귀환했다-105화 (105/228)

제105화

제105화 가짜 왕세자 (3)

나는 병사들 사이로 걸어 나오는 한 남자를 바라보았다.

익숙하면서도 낯선, 기묘한 감각.

소년이었던 전생의 내가 청년이 되어 눈앞에 있었다.

머릿속에 흐릿하게 남아 있던 얼굴이 선명히 되살아난다.

그래, 나 저렇게 생겼었지.

얼굴의 윤곽이 각지고 선도 굵어졌지만, 나는 그 얼굴 안에서 예전의 내 얼굴을 찾을 수 있었다.

그 녀석이 말했다.

“프렌치아의 독립군인 것이냐.”

변성기를 지나 굵어진 목소리가 귓가에 선명히 담겼다.

나는 그런 녀석을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

알렌이 나를 불안한 동공으로 바라보았다.

프렌치아의 왕가를 상징하는 은빛 머리칼과 은빛 눈동자.

왕가의 자손만이 가질 수 있는 색은 아니었지만, 왕가를 상징하는 색이었다.

“정녕 저하가 살아 계셨단 말인가……?”

네더만이 낮게 읊조렸다.

혼이 나간 목소리였다. 그 또한 가짜 왕세자의 얼굴을 알고 있었던 듯했다. 네더만의 반응을 본 가짜 왕세자가 흥미로운 눈빛을 빛냈다.

“호, 너는 나를 알아보는 모양이구나. 전에 나를 본 적이 있더냐.”

하지만 나는 저것이 연기임을 알고 있었다.

총독부의 가짜 할렌트가 그랬던 것처럼.

일행들에게도 따로 언질을 줬건만 저리 동요하는 것을 보니 이 정도로 똑같을 줄은 몰랐나 보다.

가짜 할렌트 때와 달리 극한의 상황이 아니다 보니, 연기도 훨씬 그럴듯했다. 총독부에 있던 자들이 괜히 가짜 할렌트에 속아 넘어간 게 아니었다.

만일 가짜 왕세자가 내 전생이 아니었다면, 나도 이렇게까지 확신할 수 없었을 테지.

내 행세를 하는 녀석의 목을 당장에 베고 싶었지만, 나는 일단 참았다.

녀석에게 알아낼 수 있는 정보가 꽤 있을 거였다.

일단 녀석이 얼마나 내 행세를 잘하는지 볼 요량으로 말을 걸었다.

“세자 저하는 10년 전, 테나스타 광장에서 처형당하셨다. 내가 그것을 보았고. 그런데 네가 저하라고?”

“못 믿는 것은 이해한다. 나도 당시의 이야기를 모두 알고 있느니라. 하지만 내가 진짜 왕세자란 건 사실이다.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지. 검을 내려놓고 진정한다면 모두 설명해 주겠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프렌치아의 왕세자라는 자가 제국군의 비호를 받고 있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 건가.”

“그 마음 또한 이해한다. 일단 검을 내려놓거라. 너희들에게 위해를 가하지 않으마. 그리고 모든 걸 설명해 주도록 하지. 그럼 너희도 나를, 나아가 제국을 이해할 수 있을 거다.”

제법 자연스러운 연기였다.

가짜 할렌트보다는 역할에 몰입도가 높아 보였다.

“그럼 그 설명은 상황이 마무리된 후에 들어 보도록 하지.”

나는 말을 끝내기 무섭게 녀석들에게 쇄도했다.

쏜살같이 쏘아진 신형을 따라 백색의 섬광이 이지러진다. 그 궤적 안에서 붉은 핏물과 함께 머리통 여럿이 일시에 치솟아 올랐다.

“이익. 빌어먹을 새끼가!”

우리에게 가짜 왕세자를 소개했던 자가 다급히 검을 뽑으며 나를 막아 왔다.

촤악-!

사선으로 내리그어진 검격이 찰나에 녀석의 몸뚱이를 가로질렀다.

“멈추래도!”

가짜 왕세자의 날카로운 고성이 그 뒤를 따랐다.

녀석의 뒤편에 있던 호위 기사들이 일제히 튀어나와 내게로 달려든다.

콰과과광!

찰나에 칼날이 얽히고설키며 굉음을 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쏟아지던 검세를 한 줄기 빛살이 가로지른다.

그 뒤를 붉은 핏물이 거스를 수 없는 인과의 굴레처럼 따랐다.

손끝에서 섬광이 번쩍일 때마다 녀석들은 별다른 반항도 못 하고 풀썩 쓰러졌다.

“어, 어찌……?”

찰나에 쓸려버린 호위 기사들을 보고 가짜 왕세자의 동공이 크게 확장됐다.

마치 귀신이라도 본 듯 하얗게 질리는 낯빛.

나는 단숨에 그 앞에 섰다.

그러곤 녀석의 수혈을 짚었다.

가짜 왕세자는 그대로 허물어지듯 잠들었고 나는 그런 녀석을 둘러메고 뒤편에 내려놓았다.

제국군에서 그를 위해하려는 자는 없을 터.

그를 두고 전장으로 다시 돌아가려던 나는, 그대로 걸음을 멈추었다.

“크아악!”

비명 가득한 그곳은 굳이 내가 뛰어들지 않아도 빠르게 정리되고 있었다.

네더만의 손이 흐릿해질 때마다 그 궤도에 놓여 있던 이들이 피를 뿜으며 쓰러졌다.

평소에는 실없이 구는 놈이지만, 제국군을 벨 때만큼은 용 사냥꾼이라는 칭호가 어울리는 신위를 보여 주고 있었다.

나는 전장에서 시선을 돌려 잠들어 있는 가짜 왕세자를 내려다보았다.

* * *

“크아악!”

저편에서 비명이 끊이지 않고 있었다.

돼지우리와 다르지 않은 거처에서 옹기종기 모여 있던 광부들은 그 소리에 귀를 쫑긋 세웠다.

“대체 무슨 일이지?”

“그러게 말일세.”

복도에서 들려오는 다급한 발걸음이 무슨 사달이 났음을 확신케 했다.

“입 안 닥쳐!”

웅성거림이 조금씩 번지자, 감독관들의 고함이 일었다.

숙소에 다시금 깊은 정적이 내렸다.

그런 이들의 귓가로는 여전히 누군가의 비명이 옅게 들려오고 있었다.

이들은 잠들지 못하고 청각에 모든 감각을 집중했다.

멀었던 비명 소리가 어느새 코앞까지 가까워져 있었다.

“막아!”

“끄아악!”

복도에서 들려오는 비명에, 화들짝 놀란 이들이 다급히 몸을 일으켜 경계 태세를 취했다.

광부들은 숨을 죽인 채 방문을 빤히 바라보았다.

어느 순간, 복도에서조차 아무런 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들은 그저 쥐 죽은 듯 가만히 있었다.

쾨쾨한 공기가 긴장감으로 팽팽히 당겨졌다.

다들 터질 것 같은 심장을 부여잡고 문만 바라보고 있었다.

단단한 철문이 뜯겨 나간 건 그때였다.

콰앙!

깜짝 놀란 몇몇이 몸을 움찔거리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활짝 열린 문 앞에는 낯선 그림자가 있었다.

“다들 나오세요.”

상냥한 음성이 그 그림자에게서 나왔다.

청아한 여성의 목소리.

마치 꿈이라도 꾸고 있는 듯했다.

“마당으로 나가시면 돼요.”

짧게 말하고는 다시 그림자가 사라졌다.

그러곤 옆방에서도 똑같은 일이 일어났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광부들은 동요하며 서로를 바라보았으나 떼 묻은 동료의 얼굴에는 어떠한 답도 쓰여 있지 않았다.

그들은 일단 그림자가 시키는 대로 했다.

방에 있던 이들이 조심스레 복도로 걸음을 옮겼다.

“헉!”

복도의 경관을 본 이들이 헛숨을 삼키며 입을 막았다. 복도에 감독관들의 시체가 늘어져 있었다.

그들은 까치발을 들고 그것을 피해 건물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더욱 믿기지 않는 광경을 보게 되었다.

“……이게 정녕 현실이란 말인가?”

곳곳에 제국군의 시체가 돌멩이처럼 굴러다니고 있었다.

그것을 피해 한곳에 자연스레 도열하는 광부들.

누가 시키지 않았음에도 그들은 그렇게 했다.

폭언과 가혹한 매질에 길들어져, 그러지 않는 것이 오히려 불안한 까닭.

잠시 후.

마당에 도열해 있는 광부들의 앞으로 붉은 단발머리의 여인이 내려섰다.

“…….”

그들은 그런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골골거리던 광부도 벌떡 일어나 마석을 캐내게 만들 만큼 아름다운 여자였다.

아무래도 이건 꿈인 것이 분명했다.

곳곳에서 제 뺨을 치는 소리가 철썩철썩 울려 퍼졌다. 가끔은 서로의 얼굴을 쳐 주기도 했다.

그것이 부담스러운 자는 팔을 꼬집었다.

그들은 그렇게 선명한 아픔을 느끼고 나서야 이 순간이 명백한 현심임을 깨달았다.

“다 정리된 건가?”

갑작스레 들려온 목소리에 모두의 고개가 일제히 한 방향으로 돌아갔다.

그녀 외에도 세 명의 사내가 장내로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정확히는 넷이었다.

개중 하나가 누군가를 어깨에 둘러메고 있는 탓이다.

차림새로 보아 정신 빠진 왕세자가 분명했다.

* * *

“그건 뭐예요?”

이리엘의 시선이 알렌의 어깨 위로 향했다.

잠든 가짜 왕세자가 그의 어깨에 빨랫감처럼 널려 있었다.

“내려놔.”

내 말에 알렌이 조심스레 녀석을 바닥에 놓았다.

내가 말했다.

“가짜 왕세자다.”

“네?”

이리엘이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바닥에 널브러진 녀석을 자세히 봤다.

그녀의 눈동자가 지진이라도 난 듯 세차게 흔들렸다.

찰나에 굳는 낯빛을 보니 그를 단번에 알아본 듯했다.

그녀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입을 막은 채 천천히 가짜 왕세자에게 다가왔다.

그러고는 자세를 낮춰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녀석을 뚫어져라 바라보던 그녀는 고개를 들어 나를 보았다.

“……저하가 맞아요. 분명해요.”

“내가 봐도 그런데, 이 녀석은 아니라는군.”

네더만이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을 덧붙였다.

이리엘이 나를 보며 말했다.

“당신도 저하의 얼굴을 알 거 아니에요.”

“그들이 같은 얼굴을 만들 수 있다고 말했잖아. 얼굴은 같지만 가짜다.”

내 말에 그녀는 아랫입술을 잘근 물더니 가짜 왕세자를 흔들었다. 똑같은 얼굴을 실제로 보니 쉽사리 믿기지 않는 듯하다.

“이봐요. 일어나 봐요.”

이리엘의 부름에도 그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녀는 그가 흔들어도 일어나지 않자 이번에는 손바닥으로 뺨을 두드렸다.

다급한 마음은 알겠다만.

철썩! 철썩!

힘이 너무 들어간 거 같은데.

“저기요! 정신 차려 보라구요!”

“잠시 재워 두었다. 그런다고 일어나지 않아.”

나는 이제는 아예 주먹까지 쥔 그녀를 말렸다.

“이 사람이 가짜라고요?”

“그렇대도.”

내 말에, 그녀는 나를 올려다보았다.

“어떻게 확신하는데요?”

“그 문제는 일단 나중에. 우선 이들부터.”

나는 턱짓으로 영문도 모른 채 도열해 있는 이들을 가리켰다.

이리엘도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며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상황이 마무리되는가 싶자, 무리 속에서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알렌?”

안 그래도 그를 찾고 있었을 알렌은, 본인을 부르는 목소리에 곧장 그를 바라보았다.

그제야 애타게 찾던 친구를 발견한 알렌이 크게 소리치며 달려갔다.

“알스!”

멧돼지처럼 돌진한 알렌에게 단숨에 사로잡힌 알스는 그의 품에서 버둥거렸다.

“크흡.”

알렌은 녀석의 얼굴이 퍼렇게 지릴 때쯤에서야 그를 놓아주었다.

“몸은 어때? 어디 다친 데는 없지?”

알렌은 그의 몸을 이리저리 훑으며 호들갑을 떨었다. 모자랐던 숨을 몰아쉰 알스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알렌을 바라보았다.

“……네가 어떻게 여기에?”

알렌이 그런 그의 등짝을 후려치며 말했다.

“어떻게 오기는, 인마. 널 구하러 왔지!”

“날 구하러?”

“그래! 페르펜시에서 팔레인 아저씨랑 헤리안 아주머니랑 데이지까지 모두 만났어. 할 이야기가 무진장 많아.”

“그만.”

나는 이어지려는 녀석들의 대화를 잘랐다.

모두의 시선이 자연스레 내게 향했다.

“해후는 따로 천천히 나눠라.”

녀석들 사이에 나눌 대화가 많은 건 알겠지만, 말했듯 지금은 그것을 풀어낼 때가 아니었다.

내가 말했다.

“여기서 가장 오래 일한 자가 누구지?”

내 물음에 다들 누군가를 찾으려 고개를 기웃거렸고, 그런 이들의 시선이 고정되는 곳에서 한 사내가 조심스레 손을 들었다.

“……접니다.”

5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남자였다.

“이곳에 몇 년 있었지?”

“8년입니다.”

“네가 알고 있는 이곳의 상황에 대해 말해 보도록.”

그는 자신이 알고 있는 상황에 대해 담담히 이야기했고, 나는 묵묵히 들었다.

이들이 채석한 마석이 불멸의 도시로 흘러들어 가고 있는 것 같은데, 그것 외에는 알지 못하는 듯했다.

어차피 이 부분은 가짜 왕세자에게 물으면 되고.

대략 상황을 들어 보니 광부들은 가족들에게 자신들의 월급이 보내지는 줄 알고 있었다.

거기에 언젠가는 이곳을 나갈 수 있을 거라고도 믿고 있었고.

기한은 10년이라고 했다.

개같은 새끼들.

노동력을 착취하기 위해 이들에게 거짓된 희망을 내건 것이다.

이들은 그것이 사실이라 믿으며 하루하루를 힘겹게 버텨 왔겠지.

처량하기 그지없는 몰골들이 이곳의 열악한 상황을 한눈에 알게 했다.

“네가 상황을 이야기해 주거라.”

내 말에 알렌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나간 시간이 덧없게 흩어질 잔혹한 진실이겠지만, 현실을 제대로 직시할 필요가 있었다.

우리는 그들을 이 지옥에서 건져 내 주러 온 것이므로.

하지만 알렌의 이야기가 시작되기도 전에 광부들은 이미 무너져 있었다.

우리가 전할 진실이 무엇인지 대부분 예상한 듯했다.

그들 또한 제국 놈들의 말이 믿어져서 믿은 건 아닐 터였다.

그저 하루를 버텨 내야 하기에, 그것밖에 방법이 없기에 믿었던 것이지.

본인들을 가축처럼 대하는 이들이 하는 말을 어찌 그대로 믿을 수 있었겠는가.

알렌은 천천히 현 상황과 우리가 이곳에 온 목적을 이야기해 나갔다.

그것을 함께 들을 필요가 없었던 나는, 바닥에 널브러진 가짜 왕세자를 가리켰다.

“녀석을 끌고 와라. 우리는 따로 이야기해 봐야겠다.”

알렌이 광부들과 이야기하는 동안, 나는 이 녀석과 대화를 나눌 작정이었다.

고개를 끄덕인 이리엘이 녀석을 품에 안으려고 하기에 나는 그것을 말렸다.

“아니, 내가 들지.”

나는 기절한 가짜 왕세자를 짐짝처럼 들었다.

이리엘이 가짜 왕세자를 나도 아닌데 나인 것처럼 대하는 모습이 꼴 보기 싫어 그랬다.

우리는 장내에서 살짝 벗어난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바닥에 녀석을 팽개치고 수혈을 풀자, 죽은 듯이 자던 녀석이 스르르 깨어나기 시작했다.

“끄응.”

짧은 신음과 함께 미간을 찌푸리는 녀석.

이리엘은 그 모습을 입술을 꾹 모으고 바라보고 있었다. 살아 있는 그를 보니 감정이 올라오는 듯했다. 커다란 눈망울에 금세 물기가 차오른다.

“……?”

반면, 잠에서 깬 가짜 왕세자는 본인을 내려다보고 있는 우리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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