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1화
제101화 운이 좋았다 (1)
술에 진탕 절어 있는 녀석들을 정리하는 건 정말이지 순식간이었다.
어느새 내 앞으로는 열두 명의 사내가 눈탱이가 밤탱이가 된 채 무릎이 꿇려 있었다.
나는 그들 앞에 의자를 놓고 앉아 다리를 꼬았다.
내 뒤로는 네더만, 알렌, 이리엘이 섰다.
내가 말했다.
“우리는 독립군이다. 너희들이 하는 일을 모두 알고 왔음이야. 살고 싶으면 내가 하는 질문에 성실히 답변하도록.”
“X랄하고 자빠졌네! 내가 네깟 프렌치 놈들한테 굴복할 거 같으냐!”
살벌한 인상을 가진 녀석이 호기롭게 소리쳤다.
뒷골목에서 오래 굴렀는지 실력은 없는 게 성격은 야생의 동물처럼 거칠고 사나운 면이 있었다.
나는 몸을 일으켰다.
“마음대로 해라.”
그리고 긴말 없이 분근착골을 시전했다.
“끄아아악!”
녀석은 내가 혈을 짚자마자 고통에 몸부림치며 비명을 질러 댔다.
그리고 잠시 후.
야생의 패기가 온데간데없어진 녀석이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면서 빌고 있었다.
“흐엉! 제발 뭐든 물어만 봐 주십쇼! 제가 아는 것이라면 전부 다 말씀드리겠습니다앙!”
이제 좀 대화할 자세가 된 듯하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위르안 상단에서 보내온 이들을 너희가 담당해 왔음을 알고 있다. 그들에 관한 기록을 내와라.”
“죄, 죄송하지만, 그 부분에 관해서는 따로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다만…….”
나는 쥐새끼처럼 벌벌 떠는 녀석을 빤히 바라보았다. 내 눈빛에, 그는 억울하다는 듯 항변해 왔다.
“정말입니다! 진심으로요. 부모님까지 걸 수 있습니다!”
확실히 진심으로 보였다.
나는 녀석의 머리통을 가차 없이 후려쳤다.
빠각!
“끄아악!”
녀석은 고래고래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나뒹굴었다.
버르장머리 없는 자식.
살아 보겠다고 부모를 팔다니.
혀를 찬 나는 질문을 바꿔 물었다.
“그럼 그들을 어디로 보냈지?”
“……그것도 모르는데요.”
“그렇구나.”
나는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사색에 질린 녀석이 손사래를 치며 황급히 말을 이었다.
“진짜입니다! 저희도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고요! 그쪽에서 사람이 오면 그저 데리고 있다가 넘기는 게 다입니다!”
일단 거짓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이 녀석들도 그저 중간 다리밖에 되지 않는 듯한데.
“그쪽이 어디야.”
“저도 자세히는 모릅니다. 진짜입니다. 저희는 그냥 그들이 오면 프렌치 놈들을 넘길 뿐이라고요.”
빠각!
“끄아아악!”
나는 뒹굴고 있는 녀석에게 싸늘히 말했다.
“한 번만 내 앞에서 프렌치란 말을 꺼내 보거라. 네놈의 혓바닥이 어떻게 생겼는지 친히 가르쳐 줄 테니.”
“흡!”
숨을 들이켜며 두 손으로 입을 막은 녀석이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들은 언제 오지?”
“……매번 따로 연락이 오는데요. 운이 좋게도 아마 이틀 후면 만나 보실 수 있을 듯합니다. 이맘때쯤이면 본래 위르안 상단에서 징병된 이들이 도착할 시간이거든요. 이번에는 아직 오지 않았지만요.”
상황이 대충 이해가 갔다.
만약 내가 위르안 상단을 작살내지 않았다면, 이번에 징병되었던 이들 중 일부는 지금쯤 이곳에 도착해 있었을 터.
그 덕에 시기가 딱 맞은 것이다.
“잘됐군. 그들과는 어디서 만나지?”
“저 아래 작은 포구가 있습니다. 매번 그곳에서 만나 사람들을 넘겼습니다.”
“그들이 배를 타고 움직이나 보지?”
“확신하지는 못하지만 아마 그럴 겁니다. 간혹 내륙의 상황을 물은 적도 있었습니다.”
정황상 징병된 사람들을 섬으로 데려가 노역을 시키는가 본데.
그렇다면 녀석들은 위르안 상단의 소식을 듣지 못했을 확률이 높았다.
그런 작은 소문이 섬까지 닿기에는 너무 커다란 사건이 터져 버린 까닭.
현재 프렌치아는 흰 사자가 총독을 베었다는 소식으로 뜨겁게 타오르고 있었다.
진짜 할렌트가 나와 이 소문을 정정하지 않는 한, 사람들은 모두 총독이 죽었다 여길 터.
위르안 상단의 소식은 그 커다란 파도에 휩쓸려 포르센에 닿지도 못했다.
그들과 거래를 하던 이 녀석조차 그 참사를 모르는 듯하니.
아마 수뇌부가 한날한시에 모두 죽어 버린 탓도 있으리라.
남은 자들은 본부를 수습하느라, 이런 녀석들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었겠지.
어쨌거나, 우리에게는 좋은 기회였다.
내가 말했다.
“우리가 그 배를 타겠다.”
“……예?”
녀석이 당황한 듯 눈을 흐렸다.
뒤편에서 알렌이 조용히 속삭여 왔다.
“그런데 인원이 너무 적으면 의심하지 않을까요?”
“그렇기야 하겠지.”
우리는 고작해야 넷.
구성원의 면면을 봤을 때, 쉽게 속아 넘어가지 않을 거다. 나는 내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있는 녀석들에게 시선을 옮겼다.
“너희들도 함께 간다.”
녀석들의 눈이 일제히 휘둥그레졌다.
이번에는 네더만이 말을 걸어 왔다.
“혹 이들의 얼굴을 알아볼 수도 있지 않겠나.”
“그 부분은 걱정할 필요 없다. 못 알아보게 만들면 되니까.”
“흐익.”
녀석들은 내 현명한 처사에 탄성을 터트렸다. 개중 한 녀석이 용기를 내어 조심스레 손을 들었다.
“저, 그들은 저희 얼굴을 모를 겁니다.”
“그래?”
“네.”
내 대답에 녀석들이 살았다는 듯 활짝 웃었다.
나는 그런 이들에게 다시 한번 사형 선고를 내렸다.
“그래도 혹시 모르잖아.”
“…….”
녀석들의 표정이 일제히 침울해진다.
이제야 얼굴들이 좀 볼만하군.
아까부터 나와 말을 섞던 녀석이 굽신거리며 말을 걸어왔다.
“저는 그들과 이야기를 나눠야 해서 얼굴이 멀쩡한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항상 제가 사람들을 인계해 왔거든요.”
딱 봐도 이곳에 우두머리 같은데.
그런 녀석이 홀로 살길을 찾았다고 헤헤거리다니.
쯔쯧.
“그래. 그건 네 말이 맞다.”
괘씸하기는 해도 이 녀석은 우리를 그들에게 인계해 주어야 하니, 얼굴이 멀쩡해야 하는 게 맞다.
그러니.
“넌 지금 맞자.”
“네?”
반문하는 녀석의 얼굴이 주먹에 가려졌다.
퍼버버버벅!
소나기처럼 퍼붓는 주먹질.
나는 녀석의 얼굴만 집중적으로 때려 주었다.
주르하처럼은 못해도 나도 이 정도는 할 수 있다.
“끄어어.”
주먹을 거두니 탱탱 부어 있는 얼굴이 보였다.
조금 전까지 이야기를 나누었음에도 그놈이 이놈인지 모를 정도다.
나는 내가 만든 작품을 보며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때, 이 정도면 모르겠지?”
시험 삼아 때려 봤는데 효과는 확실했다.
알렌이 고개를 끄덕이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절대 모르겠는데요?”
“허, 사람의 얼굴을 이 정도나 바꿀 수 있다니. 훌륭하구만.”
네더만도 감탄사를 터트리며 혀를 내둘렀다.
나는 만족스럽게 입꼬리를 올리곤 바닥에 널브러져 신음하는 녀석에게 말했다.
“이틀이면 붓기가 빠질 거다. 일부러 그렇게 때렸거든. 내가 이쪽으로는 선수니 걱정할 거 없다.”
살가죽이랑 근육만 두드렸다.
마나 유저 하급에 이른 놈이니 금방 회복될 거다. 나는 그 뒤편에서 창백하게 질려 있는 이들에게 말했다.
“그들의 배에서 내리는 즉시 너희들은 돌려보내 줄 것이다. 하지만. 도중에 허튼수작을 부리면 목을 벨 것이니, 살고 싶다면 얌전히 따르는 게 좋을 거야.”
“…….”
“대답.”
“예! 알겠습니다!”
녀석들은 한입으로 말하는 것처럼 쩌렁쩌렁하게 합창을 했다.
몇 대 처맞더니 군기가 바짝 들었다.
이들과 배를 타는 게 번거롭기야 하겠지만, 일단 이 방법이 최선이다.
배를 가지고 온 놈들에게 본진의 위치를 실토하게 하는 방법이 가장 간단할 수는 있으나, 배를 따로 가지고 와 호송할 정도면 보안이 철저한 곳일 수 있다.
가짜 할렌트처럼 금제까지 걸려 있지는 않을 거 같지만, 분근착골의 수법이 통하지 않거나 독을 삼키며 자살하는 등의 변수가 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니 일단 속이고 들어가는 게 가장 확실하다.
분근착골은 그 계획이 실패했을 때 사용하면 되는 것이고.
“노예들을 데려가는 것치고는 보안이 상당하네요.”
이리엘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의심하고 있는 바였다.
어쩌면 일이 생각보다 수월하게 풀릴지도 몰랐다.
그랬기에 번거롭더라도 보다 안정적인 방법을 선택한 것이고.
혹시 모르니까.
* * *
개X같은 새끼.
호르구는 멍든 얼굴 위로 날달걀을 빙빙 돌리며 이를 악물었다.
한밤중에 난데없이 쳐들어와 사람 꼴을 이 모양으로 만들어 놓다니.
정말이지 잔혹하기 그지없는 놈이었다.
‘조금 있으면 곧 뒈질 거니까, 참는다.’
놈이 죽는 걸 직접 보지 못하는 게 천추의 한이지만 그 정도로 만족하는 수밖에.
자신들의 계획은 간단했다.
일단, 이들의 일을 도와주는 척 하는 것이다.
부하 놈들은 그들과 함께 섬으로 가겠지.
잘은 몰라도 그곳은 총독부 휘하의 섬이었다.
하지만 이들의 전력은 고작해야 넷.
실력이 만만찮은 놈들이지만, 그 안으로 들어가면 살아 돌아올 수 없을 게 빤했다.
그러니 이리 순순히 도와주는 것이고.
그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기도 했다.
빌어먹을.
하지만 나쁘게 생각할 건 없었다.
놈들은 본인들이 가는 곳이 제 무덤인 줄도 모르고, 자신들이 순순히 도와주는 줄 착각하고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꼬셔 죽겠다.
“크크큭.”
절로 새어나오는 웃음에 홀로 어깨를 들썩거리던 호르구는, 이내 고개까지 젖히며 크게 웃었다.
“움하하하하!”
녀석들이 살려 달라고 비는 꼴만 상상해도 속이 뻥 뚫리는 것처럼 시원해져 온다.
그러니 이리 호탕한 웃음이 나올 수밖에.
“왜 처웃어.”
“끄아아악!”
갑작스레 들려온 목소리에 호르구는 번개라도 맞은 사람처럼 몸을 부르르 떨며 비명을 질러 댔다.
목소리의 주인공이 그에게는 사신과 다르지 않은 탓이다.
튕기듯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난 호르구는 귀신같이 등장한 사내를 바라보았다.
“오, 오셨습니까.”
“그래. 애들 얼굴 좀 만져 주고 왔다.”
태연한 표정에 등줄기가 다 오싹하다.
저 빌어먹을 새끼.
사람 얼굴을 짓밟아 놓고 왔다는 걸 저리 뻔뻔하게 말하다니.
악마가 따로 없음이다.
부하 놈들의 면면이 이틀 전 자신처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망가졌을 걸 생각하니,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는 격언을 실감하는 호르구였다.
그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당시의 끔찍한 고통이 머리를 스친 탓.
제네스가 말했다.
“준비는 끝났나?”
“예. 이제 부하 놈들의 얼굴도 준비됐으니 출발하기만 하면 됩니다.”
“얼굴의 붓기가 다 빠졌군.”
“아, 이제 다 나았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딱 이틀 걸렸지 뭡니까. 역시 대단하십니다. 헤헤.”
호르구는 속으로는 제네스를 무참히 씹어 대면서도 겉으로는 개처럼 꼬리를 흔들며 연신 비위를 맞췄다.
제네스는 그런 그의 머리통을 가차 없이 후려쳤다.
빠각!
“끄아아악!”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 * *
달빛이 훤히 드리운 밤.
열댓 명의 장정들이 포구의 어두운 그늘 아래 줄지어 서 있다.
나는 그곳과 멀찍이 떨어진 지붕 위에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녀석들을 믿지는 않지만, 대가리가 아무리 돌이라도 지금 배신해서는 답이 없다는 걸 잘 알 터.
적어도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는 순순히 우리의 뜻을 따를 거다.
그 후에는 배신하든 말든 상관없다.
우리는 그곳에 도착하기만 하면 되니까.
“달이 휘영청 뜬 게 사기 치기 딱 좋은 날이네요.”
이리엘이 옆에서 태평한 소리를 늘어놓았다.
“정작 사기 치는 당사자들의 표정은 그리 좋아 보이지 않던데.”
“안타까운 일이죠. 어쩌겠어요.”
이리엘이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을 이었다.
“그래도 둘 다 제법 잘 어울리던걸요.”
“그렇기는 하더군.”
나는 분장한 채 저들과 섞여 있는 네더만과 알렌을 떠올렸다.
머리를 풀어 헤치고 처량한 꼴이 된 그들은 제법 볼만했다.
정작 본인들은 질색했지만.
그 둘과 반대로 우리는 평소와 같은 상태로 그들을 멀찍이서 지켜보고 있었다.
우리가 두 조로 나뉜 이유는 간단했다.
일단, 나는 저렇게 변장할 생각이 없고.
이리엘은 자세히 보면 여자인 걸 모를 수가 없는 얼굴이다.
그래서 나와 그녀는 따로 빠져 그들의 뒤를 쫓기로 했다.
“오, 방금 봤어요?”
접선하기로 한 이들이 아직 나타나지 않은 무료한 상황.
이리엘은 하늘을 보며 시간을 때우고 있었다.
하여간 별 보는 건 꽤나 좋아한다니까.
“유성우였다고요! 소원 빌어야지.”
이리엘이 두 손을 모으며 눈을 감았다. 나는 그녀를 가만히 보다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쏟아질 것 같은 별 무리가 강물처럼 흐르고 있었다. 소원을 다 빌었는지, 이리엘이 눈을 뜨며 말했다.
“오늘따라 유독 밤하늘이 예쁘네요. 저들만 없었으면 밤새 보는 건데. 제가 지붕 위에서 별 보는 걸 엄청 좋아하거든요.”
“안다.”
“네? 어떻게 알아요?”
나는 잠시 멈칫했다.
가만 보니 이리엘이 별을 좋아한다고 말한 적이 없는 것 같다.
전생의 기억이란 의미.
간혹 전생과 지금의 기억이 이렇듯 헷갈릴 때가 있다.
나는 짐짓 당혹스러웠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말했다.
“네가 말해 줬으니까.”
“아, 그랬나?”
“기억력도 안 좋아진 걸 보니, 머리를 다치긴 했나 보구나.”
“참 나. 왜 자꾸 머리 다친 사람 취급이에요!”
“요새 네가 이상하게 굴잖아.”
“제가 뭘요!”
입을 빼쭉 내민 이리엘이 고개를 팩 돌렸다.
저 성질머리는 여전한 것 같다만. 요새 하는 짓 보면 무슨 고민이 있어 보였다.
나는 그 이유를 나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정확히는 전생의 나 때문이라고 여기는 중이다.
지금 상황에 그녀가 할 만한 고민은 그것밖에 없으니까.
제가 그거 말고 무슨 고민이 있겠나.
아무래도 전생의 내가 살아 있을 수도 있다고 믿고 있는 탓이겠지.
이모텔섬에 가게 된다면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니.
나야 가짜라고 확신하지만, 그녀는 아니었다.
나는 그런 그녀의 고민을 그냥 모른 척했다.
내가 하는 말들은 그녀에게 별 도움이 되지 않을 테니.
그때 이리엘이 눈을 번뜩이며 조용히 속삭였다.
“저기 온 것 같아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답했다.
안 그래도 보고 있던 참이다.
도열해 있는 이들 앞으로 검은 그림자가 걸어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