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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후 천하제일인이 되어 귀환했다-97화 (97/228)

제97화

제97화 타오르는 불길 (2)

다음 날.

우리는 수도를 떠나기 위해 지부 앞에 모여 있었다.

하라브를 비롯한 이들은 아쉬운 얼굴로 우리를 배웅했다.

“조금 더 쉬다 가지 않고…….”

하라브의 말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처리해야 할 일들이 남았습니다.”

“여간 바쁜 게 아니군.”

내가 벤 할렌트가 가짜라는 건 이제 모두 알고 있었다.

이제 진짜 할렌트를 베러 가야 한다는 것도.

할렌트가 아직 소해에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최대한 빠르게 포르센 항구에 가야 했다.

중간에 하르간강의 지류를 타고 이동한다면 3주면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도 잘 부탁하네.”

그는 내 손을 꼭 포개어 잡으며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라브는 내 어깨를 두드리고는 이리엘에게 시선을 돌렸다.

“아가씨, 항상 몸조심하셔야 합니다.”

“네, 걱정 마세요. 하라브도 건강 잘 챙기고 있어야 해요.”

“그럼요. 제 두 눈으로 해방의 날을 볼 때까지는 반드시 살아 있을 겁니다. 걱정 붙들어 매셔도 됩니다.”

하라브가 씩 웃으며 말했다.

그들이 인사를 나누는 사이, 유리아가 내게 쭈뼛쭈뼛 다가왔다.

“……저 이거 선물이에요!”

그녀는 몸을 배배 꼬며 수줍게 팔찌를 내밀었다.

“저번에 드린 행운의 팔찌보다 더 좋은 거예요. 전투 중에 끊어진 거 같길래 다시 만들어 봤어요.”

색색의 실이 꼬인 팔찌였다. 확실히 전보다 알록달록해졌다. 나는 그것을 받아 손목에 찼다. 받아 주지 않는다면 죽기라도 할 것 같은 간절한 눈빛에 그리해 줄 수밖에 없었다.

“감사합니다!”

유리아는 그 어느 때보다 환히 웃었다.

그런데 왜 네 팔에도 똑같은 게 있냐.

내게 준 것과 똑같은 팔찌가 유리아의 손목에 매여 있었다. 옷소매에 감춰져 은근히 드러나 있지만, 내 눈을 속일 수는 없다.

나는 그냥 모르는 척 받아 주었다.

열여섯 살 소녀의 감성을 받아 줄 만큼의 아량이 내게도 있었다.

어차피 바로 뺄 거니까.

알렌과 작별 인사를 나눈 다른 녀석들도 내게 와 한마디씩 건넸다.

시커먼 사내놈들이 감격에 젖은 표정으로 인사를 해 오니, 한 대씩 쥐어박고 싶은 심정뿐이다.

“가자.”

나는 그들을 대충 치우고 등을 돌렸다.

알렌과 이리엘이 나 대신 그들을 향해 끝까지 손을 흔들어 주었다.

우리는 그렇게 수도를 벗어나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조용하네요.”

대로를 걸으며 알렌이 말했다.

거리는 여느 때와 같이 복작이고 있었지만, 알렌의 의중은 그것이 아니었다.

어젯밤 그런 일이 있었는데도 총독부는 문을 단단히 걸어 잠근 채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었다.

때문에 표면적으로 마그네트는 전과 달라 보이지 않았다.

시민들의 표정에 깔린 기이한 열기와 헌병들의 긴장한 듯한 낯빛을 제외하면.

“그쪽에서도 마땅히 할 수 있는 조치가 없나 보죠, 뭐.”

이리엘이 꼬시다는 식으로 말하며 배시시 웃었다.

그들에게 무슨 수가 있겠는가.

흰 사자 단 한 명에게 다섯 개의 성문이 돌파당하고, 특임대 강철의 벽까지 전멸한 데다 총독 할렌트 바레인의 목까지 베였다.

당장에 그들이 할 수 있는 조치는 없었다.

그저 총독부의 문을 꽁꽁 싸매고 아무 일도 없었던 척 굴뿐.

제국 쪽에 원군을 요청하는 정도가 이어지는 수순일 거다.

덕분에 경계도 삼엄하지 않았다.

우리는 손쉽게 성문을 지나 말을 타고 달렸다.

두두두두!

요란하게 지반을 두드리는 말발굽 소리를 따라, 수도의 굳건한 외성이 점차로 멀어져 갔다.

* * *

총독부가 흰 사자에게 뚫린 지도 2주가 지났다.

그날 총독, 할렌트마저 목이 베였다는 사실은 어떤 소식보다 빠르게 프렌치아를 뒤덮고 있었다.

뜨거운 열망을 품은 불길이 프렌치아 전역에서 타올랐다.

할렌트 또한 그 소식을 지금 막 전해 들은 참이었다.

‘결국 총독부마저 뚫어 냈는가.’

자신이 깔아 놓은 덫을 뚫고 달아났을 때부터 예상은 하고 있었다.

녀석이 자신의 목을 물어뜯기 위해 총독부로 올 것임을.

해서 별다른 충격은 없었다.

하지만 괘씸한 것은 별개의 문제.

가짜의 목을 베는 것으로 만족할 줄 알았거늘, 총독부에 프렌치아 국기까지 내걸 줄이야.

지극히 선을 넘는 행동이었다.

하지만 괘념치 않았다.

모든 것은 자신의 등장과 함께 바로 잡힐 것이니.

그런데 그 녀석.

‘제가 벤 것이 가짜란 걸 알아차렸으려나.’

그가 가짜란 건 자신과 가짜인 그만 아는 사실.

최측근들까지도 녀석이 가짜인 걸 몰랐다.

위화감은 느꼈을 테지만 가짜라는 생각은 할 수 없었을 테니.

하지만 가짜 녀석이 죽음 앞에서 어떤 식으로 반응했을지 예측할 수 없어 긴가민가했다.

금제를 걸어 놓기는 했다지만, 만약 흰 사자가 자신을 아는 자라면 속여 넘기지는 못했을 거다.

‘나를 죽였다 착각하기를 바라는데 말이지.’

그래야 놈을 무릎 꿇렸을 때 더 큰 통쾌함이 오지 않겠나.

그때 상념을 방해하는 거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빌어먹을 자식 같으니라고. 이 몸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얼굴이건만.”

고개를 돌린 할렌트의 눈가에 해골바가지와 다름없이 생긴 추레한 노인이 담겼다. 고급스러운 벨벳 로브를 걸치고 있었지만, 그 처참한 얼굴은 가려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기괴하게 다가올 뿐.

그가 말을 이었다.

“그나저나 유용한 꼭두각시를 잃어 마음이 꽤 쓰리겠어. 클클클.”

“아쉽기는 하군요.”

“그 녀석, 지금쯤이면 아주 기고만장해 있겠는데?”

“잠깐은 승리의 기쁨을 누리라고 하지요.”

“크헬헬. 꽤 의연한 태도구만.”

“어차피 제 앞에 무릎 꿇게 될 놈이니까요.”

“그래? 한데 자네가 누군가에게 잠깐이라도 승리를 내주었던 적이 있었던가?”

Dr. 주르하의 물음에, 할렌트는 답하지 않았다.

그의 말이 사실이니까.

여태껏 자신은 단 한 번도 패배하지 않았다.

프렌치아는 언제나 자신의 손바닥 안에 있었으니.

하지만 흰 사자가 등장한 이후로 자꾸만 계획이 틀어지고 있었다.

잠시 침묵을 지키던 할렌트가 입을 열었다.

“분신을 둘이나 잃었다고 들었습니다.”

“빌어먹을 새끼지.”

주르하의 두개골이 부르르 떨렸다.

“만나게 되면 온몸을 갈기갈기 찢어 버릴 것이야.”

그의 퀭한 눈가로 세찬 분노의 불길이 타올랐다.

주르하의 분신은 자신의 것처럼 만들어진 가짜가 아니었다.

그는 그들이 가져간 것들과 그들이 독자적으로 쌓아 올렸을 경험까지 함께 잃었을 터.

그에게는 제 손가락을 잃은 것만큼이나 타격이 있었을 것이다.

할렌트가 다시 입을 열었다.

“한데, 녀석의 전력이 정확히 가늠되지가 않는군요. 총독부의 다섯 개의 성문을 단신으로 뚫었습니다. 특임대, 강철의 벽이 있음에도 그랬지요. 그가 벌인 행보는 소드 마스터라고 해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소드 마스터의 무력은 결코 무적의 힘이 아니었다.

성문을 뚫는 과정에서 체력적 부담을 분명히 느꼈을 터.

하지만 그럼에도 흰사자는 총독부에서 가장 단단한 성벽인 강철의 벽마저 뚫었다.

하지만 주르하는 여전히 여유로운 태도였다.

“제깟 놈이 그래 봤자지. 이 몸에게는 결코 상대가 되지 않을 것이야. 크헬헬헬.”

상대의 전력은 헤아릴 생각도 없는 주르하였다.

저 자신감하고는.

할렌트는 그런 그를 무시하며 본론을 물었다.

“혹, 이능을 가진 것은 아니겠지요.”

“아예 배제할 수만은 없지. 정말이지 난데없는 등장이니까.”

주르하는 그동안 프렌치아에 머물며 인체 실험을 진행해 왔다. 때문에 프렌치아의 정국에 대해서 모르지 않았다.

흰 사자의 등장은 정말이지 뜬금없는 일이었다.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자신들이 미처 알지 못하는 또 다른 힘이 있을 수도 있으니.

주르하가 말했다.

“나는 이제 바레인가로 가서 진행하던 일을 마무리할 것이다. 분신을 하나 두고 갈 테니, 이쪽 일은 알아서 마무리 짓도록.”

“그러죠.”

할렌트는 끄덕여 답했다.

이제 의식도 종착지를 향해 가고 있었다.

‘그러니.’

할렌트는 저편에 우뚝 솟은 제단을 바라보았다.

‘잠깐의 승리를 마음껏 누리고 있거라.’

* * *

팔레이트 상단의 후문.

그 앞에는 루시안을 비롯한 북부의 흰사자 소속의 독립군들이 모여 있었다.

“대장, 몸조심하십시오.”

하트웬의 말에, 루시안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예. 다들 수고 좀 해 주세요.”

“두 사람이 고생이지, 저희가 뭐 할 게 있다고요. 그나저나 두 사람이 떠나니 이제 좀 실감이 납니다.”

화렌카가 감격에 찬 눈빛으로 말했다.

그들은 떠나는 루시안과 레이크를 배웅하기 위해 이 자리에 와 있었다.

루시안이 말했다.

“그러게 말입니다. 저도 이제 좀 실감이 나네요.”

이곳에서 제네스, 이리엘, 알렌과 작별한 지도 어느덧 두 달이 넘어갔다.

계절은 서늘했던 초봄을 지나 따스함이 묻어나는 봄의 끝자락을 향해 가고 있었다.

하나의 계절도 채 지나지 않은 짧은 시간이 흘렀지만, 그사이 프렌치아의 상황은 많은 것이 달라져 있었다.

본격적인 움직임이 필요할 만큼.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그대로 길을 떠나는 루시안과 레이크.

하트웬과 화렌카는 그 뒷모습을 한참 동안이나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본부를 떠나는 게 대체 얼마만이야.”

루시안은 이제 시야에서 사라진 상단 쪽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이렇게 긴 시간 자리를 비우는 건 3년 만일 겁니다.”

레이크의 감흥 없는 말투에 루시안은 픽 웃으며 말했다.

“정말이지 편하게 있었군.”

“바빴지요.”

레이크가 대꾸했다.

여기저기 움직이지 않았을 뿐이지, 긴 시간 자신들은 바쁘게 움직여 왔다.

루시안을 처음 만났던 순간부터 지금에 이르는 8년의 긴 시간 동안 한시도 고삐를 놓지 않았다.

그랬기에 북부의 흰사자가 지금의 위치에 선 것이다.

프렌치아를 4 등분하는 독립군 세력 중 가장 늦게 결성됐음에도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그동안의 노고는 충분히 인정받을 만했다.

루시안이 말했다.

“생각보다 빨랐어.”

“천운이 닿은 덕분이죠.”

“그러게 말이야.”

루시안은 순순히 인정했다.

레이크가 말한 천운은 제네스와의 인연을 의미했다.

그가 없었다면 정말이지 오랜 시간이 걸렸을 거다.

루시안은 말을 이었다.

“너도 그렇고 내게는 과분한 인연이지.”

“아니요. 루시안 님이기에 품을 수 있던 겁니다.”

“그렇게 생각해 주면 고맙고.”

“루시안 님이 원하는 나라.”

레이크는 그런 그를 바라보았다.

“가지실 수 있을 겁니다.”

“나도, 왠지 그럴 수 있을 거 같네.”

루시안은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휘하에 최강의 검과 최고의 책략가가 있다. 어린아이가 이끈다고 해도 프렌치아의 독립을 이끌어 낼 것이 자명한 이들.

하지만 자신은 어린아이가 아니다.

이들의 힘을 빌려 위대한 왕국을 빚어내야겠지.

“자, 그럼 한번 달려 볼까?”

어느새 이들의 앞으로는 너른 평원이 깔려 있었다.

언젠가 제네스와 일행들이 달렸을 평원.

세찬 걸음이 그 위로 겹쳐지기 시작했다.

루시안은 그 평원을 달리며 이리엘을 떠올렸다.

‘잘 지내고 있을는지.’

떠날 때만 하더라도 제네스를 못 잡아먹어 안달이었는데 두 녀석, 어찌 지내고 있으려나 모르겠다.

그렇게 끝없는 광야를 얼마나 달렸을까.

어느새 그들은 파도처럼 일렁이는 웅대한 산악을 마주하고 있었다.

“프렌치아.”

루시안은 그 경관을 바라보며 조용히 읇조렸다.

이제 프렌치아의 국경이었다.

“오랜만이네.”

루시안은 그 풍광을 보며 가만히 웃었다.

기분 탓일까.

저 너머에서 기어 오는 열기가 심장을 두드리는 것 같다.

흰 사자가 남긴 족적을 따라 저변에 번지고 있는 열망.

북부의 흰사자는 그 중심에 서 있었다.

이제 다른 파벌의 독립군들 또한, 자신들이 명실공히 최강의 세력이 되었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거다.

제네스의 존재만으로도 그것이 가능했다.

당연한 일이다.

그가 짧은 시간에 벌인 행보만 나열해도 그를 대적할 만한 존재는 프렌치아에 없었다.

그로 인해 자신들의 위치 또한 공고해진 상황.

이제는 통합의 길로 들어설 차례였다.

첫 번째 목적지는 테이난.

가장 먼저, 서부를 대표하는 ‘굽이치는 해협’을 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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