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1화
제81화 수도, 마그네트
창마저 닫혀 밀폐된 마차.
우리는 누구의 시선도 닫지 않는 그 안에서 극진한 대접을 받고 있었다.
그런 우리의 뒤를 짐마차를 개조해 만들어진 수레 두 대가 덜그럭거리며 따랐다.
주위로는 털북숭이, 쥐새끼, 가자미 외에 여섯 명의 용병이 말을 타고 있었다.
페르펜시를 떠난 무리였다.
모집일까지는 아직 시일이 남아 있었으나, 나는 그것을 무시하고 일정을 바로 진행했다.
당연히 그것에 누구도 불평하지 못했다.
우리는 떠나는 이들의 가족들이 보내는, 눈물의 배웅을 뒤로하고 길을 떠났다.
그 일이 벌써 이틀 전이다.
스윽.
불현듯 알렌 녀석이 창을 열고 뒤쪽을 슬쩍 보았다.
그는 데이지가 마음에 걸리는지 이따금 창을 열어 수레에 타고 있는 데이지를 바라보곤 했다.
애처로운 눈빛이 아주 볼만하다.
“왜? 너도 저거 타고 오지 않고.”
“그래도 됩니까?”
내 말에, 알렌이 반색하며 눈을 빛냈다.
나는 가차 없이 녀석의 머리통을 후렸다.
빡!
“끄악!”
“생각하고 말 안 하지.”
“끙, 저도 농담이었거든요!”
알렌이 입술을 댓 발 내밀었다.
이리엘이 옆에서 알렌 편을 들었다.
“성격이 왜 그렇게 꼬였어요. 그래서 연애나 제대로 할 수 있겠어요?”
알렌도 그 의견에 편승하여 불만을 토로했다.
“제네스 님은 누군가를 이토록 열렬히 사랑해 본 적 없으시니까 제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시는 겁니다.”
사랑에 빠지면 눈이 회까닥 돈다고 한다.
지금 알렌이 그랬다.
“괜한 소리 말고 얌전히 가.”
“이보다 얼마나 더 얌전히 가요. 마차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데.”
이리엘이 어이가 없다는 듯 투덜거렸다.
누군가 창을 두드린 건 그때였다.
톡톡.
창을 여니, 눈탱이가 밤탱이가 된 털북숭이 녀석이 조심스레 일정을 보고해 왔다.
“크레온 님, 오늘은 저 앞에 보이는 숲 지대에서 자리를 잡을까 하는데요. 그래도 되겠습니까?”
“네가 애냐?”
“예?”
“한심한 놈. 이 몸이 거기까지 신경을 써야겠느냐. 그 정도는 스스로 결정할 줄도 알아야지. 이래서 내가 천박한 것들과는 어울리기를 싫어하는 것이다. 썩 꺼져라.”
“……아. 예, 알겠-.”
탁!
나는 녀석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창을 닫았다.
“속은 시원하기는 한데, 정말 대단하시네요.”
이리엘은 그런 나를 악마 보듯 바라보고 있었다.
알렌도 감탄을 토하며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어떻게 사람을 저렇게 잘 괴롭히시는지.”
이들이 이렇게 반응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일단 나는 언젠가처럼 크레온 바스티스가 되어 있었다.
저들은 아무런 의심 없이 내 말을 믿었다.
힘이 갖춰지면 가짜가 진짜가 되는 건 매우 쉬운 일이니.
내가 그렇다는데, 자기들이 확인할 방법이 있나.
하지만 알렌과 이리엘이 감탄하는 건 내가 신분을 훌륭하게 사칭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었다.
나는 어제 녀석이 내게 보고 없이 야영지를 구축했을 때, 내게 물어보지 않았다고 성을 냈다.
그리고 오늘은 내게 물어보았다고 성을 냈다.
털북숭이 녀석 입장에서는 대체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하나 돌아 버릴 지경일 거다.
나는 매사 그런 식으로 털북숭이, 쥐새끼, 가자미 놈들을 지독히 괴롭히고 있었다.
녀석들은 그것이 어찌나 고통스러웠는지 살까지 쪽 빠졌다.
나로서는 만족스럽기 그지없는 결과다.
나는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눈을 감았다.
감각을 청각에 집중하자, 여러 소리가 귓가에 담긴다.
“아오, 저 지X맞은 새끼.”
“왜 또 뭐라는데.”
“아니, X발.”
저편에서 내 뒷담화를 하는 녀석들의 목소리가 선명히 들려왔다.
괘념치 않았다.
더 괴롭혀 주면 되니까.
이번에는 청각을 뒤쪽에 집중했다.
뒤따라오는 이들의 상황을 살피기 위해서였다.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는 목소리가 귓가에 담겼다.
“우리는 무슨 일을 하게 될까요?”
“모르겠어요. 딱히 들은 바 없죠?”
“네. 힘들겠죠?”
“그렇지 않을까요. 돈도 많이 주는데.”
“제가 듣기로 여자들은 주로 간호 쪽으로 빠진다던데.”
“아, 그래요? 나 피 무서워하는데…….”
등받이가 있는 수레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여자들.
마차 뒤를 따르는 첫 번째 수레에는 여자들이, 두 번째 수레에는 남자들이 타 있었다.
처음에는 묵직한 침묵만이 흐르더니, 이틀째가 되니 그래도 적응이 됐는지 가벼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 또한, 자신들이 하게 될 일이 편하지만은 않으리란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돈을 벌기 위해 잠깐의 고통을 인내할 생각이겠지.
그 인내의 시간이 평생이 될 줄 모르고.
그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푼돈에 자신의 일생을 내주었다.
가엾은 자들.
그런 이들을, 그날 밤 녀석들은 비웃고 있었다.
다시금 차오르는 화에 눈썹이 꿈틀거린다.
마차에 내리면 일단 놈들의 머리통부터 쥐어박아야겠다.
감히 누가 저들의 선택을 비웃을 수 있단 말인가.
비쩍 곯은 삶이었을 거다.
그들은 그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 내려온 동아줄을 잡았을 뿐이다.
이들이 이 자리에 있는 건 무지해서가 아니었다.
그들은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고자 하는 이들이었다.
자신을 위해. 가족을 위해.
더 나은 삶을 위해.
그런 이들의 심리를 이용한 총독부.
그 개X끼들이 문제인 거지.
나는 이들을 비웃었던 떨거지 놈들의 목을 당장에 베고 싶은 걸 깊은 인내로 참아 내고 있었다.
이따위 짓을 벌인 놈들을, 뿌리까지 완전히 뽑아내기 위해.
* * *
용병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며 야영지를 만들어 가고 있었다.
마차에서 내린 제네스와 알렌, 이리엘은 얼굴을 덮는 깊은 후드를 쓴 채 그것을 지켜보았다.
함께 가는 이들에게 얼굴을 보이지 않기 위해서였다.
이리엘은 그들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제네스에게 말을 걸었다.
“무슨 생각 해요?”
“저것들을 어떻게 괴롭혀야 잘 괴롭혔다고 소문이 날까 고민 중이다.”
“그쪽으로 장인이시잖아요.”
“고민하기에 장인인 게지. 왜?”
“그냥요. 요새 알렌 형님이 저쪽에만 신경 쓰니 심심하잖아요.”
로브를 푹 뒤집어쓰고 있는 알렌은 아까부터 데이지만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는 거의 중증 수준이다.
녀석이 그녀를 바라보고만 있는 이유는 우리가 후드를 뒤집어쓴 이유와 같았다.
여기 있는 누구도 우리의 얼굴과 정체를 모르게 해야 했다.
때문에 녀석은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낑낑거리며 애처롭게 바라만 보고 있는 거다.
그래도 밤마다 은밀히 사랑을 속삭이더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한가 보지?
“알렌 형님이 데이지 씨를 진짜 좋아하는 거 같아요. 그런데 둘이 정말 잘 어울리지 않아요?”
이리엘이 부럽다는 듯 눈을 맞추고 있는 알렌과 데이지를 바라보았다.
제네스는 콧방귀를 끼며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저는 요새 형님이 귀향한다고 할까 봐 겁난다니까요.”
“겁나기는.”
“당연히 응원할 일이기는 하죠. 하지만 형님이 귀향하면 제- 아니, 우리 위대한 크레온 님의 수발은 저 혼자 들어야 할 거 아닙니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고요.”
이리엘의 말에, 제네스는 알렌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확실히 지금 하는 짓을 봐서는 데이지를 따라 귀향하겠다고 설칠지도 몰랐다.
독립군에게 귀향이란, 더 이상 독립군 활동을 하지 않겠다는 의미.
저렇게 불꽃같은 사랑에 빠진 이상, 알렌 녀석도 결국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겠지.
사랑하는 사람과 단란한 가정을 이루는 것은 독립군 활동과 공존하기 어려운 꿈이니.
이리엘 또한 독립군으로서 살아가며 많이 봐 왔을 거다.
일상으로 돌아가 현실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이들을.
독립보다 가정의 안정을 선택한 이들을.
무엇을 선택하든 잘못된 것은 아니었다.
“제 인생이다. 알아서 선택하겠지.”
“그렇겠죠. 저는 형님이 어떤 선택을 하든 응원할 거예요. 알렌 형님은 참 좋은 남편이 될 거 같거든요. 누구와 달리 말이죠.”
“왜 나를 보고 말하지?”
“왜겠어요.”
“어이가 없군.”
“제- 아니, 크레온 님은 아내를 어떻게 대할지 딱 봐도 훤히 보여요.”
이리엘은 자신있게 말할 수 있었다.
제네스랑 결혼하는 여자는 평생 고생길을 걷게 될 거다.
밖에서도 이런데, 안에서는 얼마나 유난을 떨며 잔소리를 해 대겠는가.
툭하면 청소를 제대로 안 했다는 둥, 창틀에 먼지가 있다는 둥, 스프는 짜고, 고기는 질기고, 빨래는 덜 말랐다며 귀에서 피가 철철 흐르게 만들 테지.
어휴.
그 잔소리가 벌써 귓가에 생생히 들리는 것 같아 생각만으로도 절로 한숨이 새어 나왔다.
그런데.
‘나 지금 무슨 생각 하고 있는 거야?’
잠시 상상의 나래를 펼치던 이리엘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제네스와 결혼한 여자를 상상하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본인을 대입해 버린 까닭이다.
제네스의 잔소리에 귀에서 피가 나고 있는 여인은 다름 아닌 자신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미쳤어! 미쳤어!”
난데없이 제 머리통을 쥐어박는 이리엘을, 제네스는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도와주랴?”
“됐거든요!”
이리엘이 왜 이러는지 도통 알 수 없는 제네스였다.
그는 저 작은 머리통이 무언가 잘못된 게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괘념치 않았다.
이리엘의 난장에 익숙한 까닭이다.
잠시 후 마음이 조금은 진정된 이리엘이 다시금 말을 걸어 왔다.
본인도 민망했는지, 헛기침을 섞으면서 조심스레 말문을 떼었다.
“큼큼.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물어봐도 돼요?”
“그냥 물어. 묻지 말래도 물을 거면서.”
“별다른 의미가 있는 질문은 아니고요. 그냥 단순히 호기심에 묻는 거니까 오해하지 말아요.”
“뭔데.”
“그, 세실리아 언니와의 혼인을 거절했잖아요. 거절한 이유가 뭐예요? 혹시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있어요? 아니면 결혼하기로 한 사람이 있다거나. 그냥 호기심에 묻는 거예요.”
“그냥. 카드론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럼 세실리아 언니는 마음에 들었어요?”
“아니.”
“좀 성의껏 대답해 봐요. 사람이 왜 그렇게 재미없게 굴어요. 좋아하는 사람은 있어요?”
“없는데.”
“결혼하기로 한 사람은요?”
이리엘의 물음에 제네스는 가만히 생각했다.
결혼하기로 한 사람이라…….
약혼까지 한 사람이 있기는 있었지.
전생에.
“없다. 그런 거.”
“결혼할 생각이 있기는 있구요?”
제네스는 이리엘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 시선에 이리엘은 괜히 얼굴이 달아오르는 기분이 들었다.
“왜, 왜요? 내 얼굴에 예쁨이라도 묻었어요?”
“갑자기 그런 건 왜 묻는 거냐.”
“그냥 알렌 형님은 곧 결혼할 거 같기도 하고. 그래서 그냥 물어본 거죠.”
“괜한 헛소리 말고 가서 잠이나 자.”
제네스의 냉담한 반응에 이리엘은 콧김을 뿜어냈다.
“우쒸! 안 그래도 저도 곧 자러 갈 생각이었거든요! 그리고 어차피 저도 그런 거, 하나도 안 궁금했어요.”
버럭 성질을 낸 이리엘은 발을 쿵쿵거리며 떠나갔다. 제네스는 그런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고개를 내저었다.
“하여간 성격하고는.”
신경질적으로 자리에 누워 모포를 뒤집어쓴 이리엘은 끓어오르는 분을 꾹꾹 삼켰다.
스스로를 향한 분노였다.
‘멍청아! 너 왜 자꾸 저 인간한테 신경 쓰는 건데! 저 인간 좋아하냐? 아니잖아! 그럼! 당연히 아니지! 그렇고말고!’
정말이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저런 남자를 좋아했다가는 인생이 고달파진다는 걸 잘 알고 있는 그녀였다.
크레이 지부를 운영하면서 다양한 귀부인들에게 들은 바로는, 저런 남자는 무조건 걸러야 한다는 걸 이리엘은 똑 부러지게 알고 있었다.
그녀는 스스로를 다독이며 억지로 눈을 감았다.
‘정신 차리자, 정신! 다 착각이라고 착각!’
* * *
다그닥. 다그닥.
말발굽이 일정한 박자로 울렸다.
여정은 별다른 일 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수레에 타고 있던 이들도 이제 완전히 긴장이 풀려서 주변의 풍광을 즐기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이제 곧 도착한대.”
“나 수도는 처음이야.”
“우리 수도에서 일하는 건가?”
“상담할 때 졸았어? 잠시 들렀다가 다른 데로 배치받게 될 거야.”
“아, 맞다. 슬슬 긴장되네. 어디로 가게 되려나.”
“같은 곳으로 갔으면 좋겠다.”
“진짜. 그럼 너무 좋을 텐데.”
나는 청각에 집중되었던 감각을 이번에는 시각으로 옮겼다.
마차의 열린 창으로 주변의 풍광이 눈에 들어왔다. 깔끔하게 깔린 가도 옆으로 푸른 초원이 드넓게 퍼졌고, 그 뒤로 우거진 숲 지대도 눈에 담겼다.
호레인숲이었다.
파도처럼 일렁이는 녹음을 보니, 불타는 왕궁을 뒤로하고 걸음을 재촉하던 그때가 떠올랐다.
씁쓸한 미소로 당시를 추억한 나는 전방으로 고개를 돌렸다.
저 멀리, 드높이 솟아 있는 웅대한 성벽이 눈에 담긴다.
수도, 마그네트가 드디어 그 위용을 드러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