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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후 천하제일인이 되어 귀환했다-76화 (76/228)

제76화

제76화 수도를 향해 (1)

카드론이 가장 먼저 알려 온 정보는 네스테르 신전에 관한 부분이었다.

“조사해보니 신전까지 가담한 일은 아니고, 병동을 담당하던 일부 인사들만 연관이 있더군. 모두 색출하여 그에 합당한 벌을 내렸네.”

“무슨 목적이었던 거지?”

“인체 강화 실험.”

일순 머릿속을 스치는 이들이 있었다.

공동에서 만난, 짐승과 같던 자들.

“성인 남성 근력에 8배까지도 증가가 가능하다더군. 책임자였던 이는 흑마법사이면서 외과의사인 Dr. 주르하. 심문을 해봐도 그것 말고는 나오는 게 없더라고.”

“책임자로 부임한 건 언제부터지?”

“처음부터 책임자였다던대.”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지만, 처음부터 책임자였다면 크테러산맥과의 거리를 생각했을 때 동일 인물일 수는 없다.

일단 답을 알 수 없는 의문은 치우고.

“배후는 총독부인가?”

“확신할 수는 없지만, 정황상 그래.”

신전 내부에 병동을 짓고 그 안에 커다란 공간을 마련했다. 거기에 주기적으로 사람들을 납치하여 끔찍한 실험을 자행했고.

금전적인 부분부터 보안 문제까지, 뒤를 봐주는 세력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현 프렌치아에서 그런 일을 벌일 수 있는 건 총독부뿐.

그 말인즉, 할렌트의 통제하에 진행된 일이란 거다.

발각될 경우 비난을 피해 갈 수 없는 비윤리적인 일이니만큼, 총독 모르게 진행되었을 리 없었다.

그가 주도했으면 했지.

할렌트 바레인.

아주 끝까지 가는구나.

“그 외에 별다른 정보는 없었네. 실험에 관한 자료도 전무하더군. 연구와 집도는 Dr. 주르하가 했고 그들은 보조밖에 하지 않았다고 하네. 고문을 해 봐도 별다른 답을 얻을 수 없었어.”

나는 미심쩍은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가 황당하다는 듯 말했다.

“진짜라고. 내가 뭐 그런 실험을 이어서라도 할까 봐 의심하는 겐가.”

“어느 정도는.”

지금이야 같은 편인 척 굴고 있지만, 카드론은 박쥐와 같은 자.

겉과 속이 다른 음흉한 자이니만큼 무조건 신뢰하는 건 위험했다.

이렇게 간혹 의심을 해줘야 녀석도 경각심을 가질 터.

“신께 맹세하겠네. 그런 자료는 있지도 않았어. 만약 있었다고 해도 그런 비윤리적인 일은 하지 않아.”

“다른 곳과 연락을 주고받은 흔적은 없었고?”

“거, 내 변명은 듣지도 않는군. 그 부분에 관해서는 확인하고 있네만, 별다른 진척은 없어. 그만큼 은밀히 진행됐다는 이야기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별로 유의미한 정보는 없군.”

“……뭐 크게 보면 그렇기는 하지.”

카드론이 멋쩍은 듯 입맛을 다시며 말을 이었다.

“왕세자와 「불멸의 도시」에 관한 부분도 크게 다르지 않아.”

“일단 들어 보지.”

“우선 왕세자가 향했다는 이모텔섬. 어느 지도에도 표기되어 있지 않더군. 소해 쪽에 관한 여러 문헌을 살펴봤음에도 확인할 수 없었지. 포르센 지부에서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뛰고 있으니 조만간 좋은 소식이 있을지도 모르겠네만, 그것이 언제일 거라는 장담은 없어. 정보가 오가는 데 시일도 오래 걸리고.”

포르센이라면 프렌치아 서부에서 가장 큰 항구를 가진 도시였다.

카드론이 말을 이었다.

“이모텔섬이란 지명이 그들만의 암호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그 이름만으로는 찾기가 영 쉽지 않아.”

“그동안 한 게 없다는 말이군.”

“……끙.”

카드론은 신음을 흘리며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지만, 별달리 반박은 하지 못했다.

“「불멸의 도시」는 해석됐나?”

“……그것도 문제가 있지.”

그는 내 눈빛을 바라보고는 재빨리 변명을 이었다.

“룬어로 쓰인 게 아니더군.”

마법사의 서책이기에 룬어인 줄 알았더니 그건 아닌 모양.

“암호문을 만드느라 대륙의 다양한 문자들을 알고 있는 우리도 어떤 문자인지 그 연원을 찾을 수 없었네.”

“그렇다면 암호문 같은 건가?”

“아니, 일정한 법칙이 보이는 걸 보면 암호문은 아닌 것 같은데. 그 의미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아.”

나는 그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래서 여태 손가락만 빨고 있었다는 건가?”

“손가락만 빨았다니! 그동안 밤낮없이 일했거늘!”

카드론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잔뜩 약이 올랐나 본데.

나는 괘념치 않고 말을 이었다.

“그럼 그럴듯한 결과물을 내놓았어야지.”

한차례 부들거린 녀석은 심호흡을 길게 뱉으며 말을 이었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한 건 아니야. 이모텔섬을 찾으려 사료를 조사하던 중에 소해에 거주하는 소수민족에 대해 알게 되었는데. 놀랍게도 그 부족 사람들이 쓰던 문자가 「불멸의 도시」에 쓰인 문자들과 같더군.”

“아까는 연원을 못 알아냈다며.”

“처음에는 그랬단 말이었네.”

“어쨌거나 그것도 소해란 말이지.”

“뭔가 냄새가 난다고 할 수 있지.”

우연의 일치일지 모르지만, 두 정보가 가리키는 방향은 소해.

확신할 수 없지만 그의 말대로 뭔가 냄새가 난다.

“그 소수민족은 못 찾았나 보지?”

“오래전 사료라서. 일단 찾아보고는 있지만, 섬에서 각자의 문명을 이룩하던 부족들은 이미 대부분 없어졌어. 찾기도 어려울뿐더러 그 후손이 아직까지 남아 있을지 모르겠군.”

“어쨌거나 직접 가 보는 게 낫겠군.”

여기 앉아서 죽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어차피 그에 관한 정보를 얻는다고 해도 확인을 위해서는 소해로 갈 수밖에 없는 상황.

포르센 항구에서 일을 진행하는 게 가장 빠를 듯했다.

“바로 갈 작정인가?”

“아니. 수도를 들렀다가.”

카드론은 별다른 반응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내가 할렌트 바레인을 베기 위해 수도로 향하는지 몰랐다. 그저 ‘북부의 흰사자’의 일이라 생각할 테지.

“그럼 스티스시에서 있었던 일 좀 이야기해 주겠나.”

카드론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흥미로운 빛을 띠었다. 나는 당시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해 주었다. 짧고 간략하게.

질문은 금지했다.

모든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내가 말했다.

“다들 먼저 돌아가도록. 나는 카드론과 단둘이 나눌 말이 남았으니.”

“우리 흰 사자님은 오자마자 아주 바쁘네, 바뻐.”

네더만이 투덜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고 이리엘도 불안한 시선을 던지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세 녀석이 모두 문을 나서자 카드론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혼인에 관한 생각이 바뀌기라도 한 것인가?”

“그런 쓸데없는 소리나 하려고 남은 게 아니다.”

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것 말고는 따로 이야기할 부분이 없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내가 말했다.

“하나 묻지. 변절을 한 자가 왜 독립군 행세를 하고 있는 거냐?”

진즉에 묻고 싶었던 말이다.

로드르를 구하러 가는 동안 알렌과 이리엘을 이곳에 두어야 했기에 묻지 않았을 뿐.

“독립군 행세라니? 그게 무슨 섭섭한 말인가.”

“프렌치아를 위해서라는 말은 집어치우고 네 진짜 목적을 말해.”

사실 이유를 모르는 건 아니었다.

본인의 가문을 위해서겠지.

내 물음의 속뜻은, 가문에 어떤 이득이 있기에 독립군 노릇을 하고 있느냐는 거였다.

변절자인 그가 프렌치아를 위해 움직이고 있을 리는 없으니까.

더군다나 카드론은 제국과의 전쟁에 참전하지도 않고, 애초부터 중립을 선택한 ‘최초의 변절자’.

그와는 관계를 확실히 해 둘 필요가 있었다.

내 의도를 간파한 그가 씩 웃었다.

“나라를 배신했던 자가 독립군 노릇을 하고 있다니. 내가 생각해도 말이 안 되기는 해.”

그가 말을 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굽이치는 해협’은 독립 활동을 한 적이 없다네. 남들이 우리를 독립군이라 칭했을 뿐.”

그는 사실 그대로를 솔직히 털어놓았다.

“나는 그저 반(反)할렌트파였을 뿐이고, 그를 견제하고자 정보가 필요했던 것뿐이야. 그게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되고 말았지.”

서부 독립군의 대표라 일컬어지는 ‘굽이치는 해협’은, 독립을 위해 일하는 단체가 아닌 카드론의 개인 세력일 뿐이었다는 의미.

결국, 총독부와 바레인가(家)를 견제하기 위해 만들어진 정보 조직인데, 그 방향이 독립과 결이 비슷하기에 오해를 받게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그렇다고 굽이치는 해협이 독립군이 아닌 건 아니라고. 그저 시작이 그랬다는 것이지.”

나는 녀석의 음흉한 웃음을 보며, 그가 그 오해를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시작은 독립군이 아니었으나, 지금은 독립군 활동을 하며 완전한 독립군 행세를 하고 있다는 거다.

그 선택 안에는 나름의 계산이 있었겠지.

“그런데 독립군 행세가 이런 행운을 가져다줄 줄은 몰랐군.”

그가 나를 보며 길게 웃었다.

그 또한 현재 프렌치아에 격동의 바람이 불어오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녀석은, 그 끝에서 다시 한번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될 거다.

10년 전 그때처럼.

변절자이면서 독립군으로서, 그는 또다시 제국이냐 프렌치아냐를 선택하게 될 터.

그 때문에 나는 그 부분에 대해 내 의사를 전하는 와중이었다.

내가 알고 있노라고.

그러니 신중히 선택하라고.

하지만 이런 내 태도는 그에게 어떤 영향도 미치지 않을 거다.

그는 아마 이번에도 자신의 이득만을 보고 선택할 테니.

“내가 어찌할지는 예상하고 있는 거 같은데 이리 묻는 걸 보면 반쯤 협박인가?”

“협박은 무슨. 협박은 원하는 선택을 유도할 때나 사용하는 것이다. 나는 너에게 어떤 선택도 강요하지 않아. 그저 무엇을 선택하든 그에 합당한 결과가 따른다는 걸 상기하라는 것뿐.”

나는 그 말을 끝으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말했듯 선택은 어차피 이자의 몫이다.

나는 어떠한 강요도 하지 않는다. 무력은 이런 자들을 설득하기 좋은 힘이 아니다.

앞에서는 고개를 숙여도 뒤에서는 딴 주머니를 찰 놈이니까.

하지만 반대로 어느 선까지는 확실한 우리 편이기도 하다.

가령 내가 할렌트의 목을 베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때 새로운 총독의 자리를 노릴지, 아니면 현상을 유지하며 상황을 더 지켜볼지는 결국 그의 몫.

내가 할 일은 여기까지였다.

이런 박쥐 같은 놈들을 품는 건 정확히 루시안이 할 일이니까.

우리의 대화는 그것으로 끝이 났다.

그는 끝까지 웃음으로 나를 배웅했다.

하지만 다음에 다시 만났을 때, 서로가 적일지 아군일지는 오로지 그의 선택에 달려 있을 터였다.

* * *

“어째 이야기는 잘 나눴나?”

제네스가 나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네더만이 카드론의 집무실로 슬그머니 기어들어 왔다.

그들이 어떤 이야기를 나눴을지 대략 짐작되는 부분이 몇 가지 있었다.

카드론은 네더만을 보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잘 나눈 건지는 모르겠는데. 딱히 숨길 건 없더군.”

“그 자식, 뇌도 검으로 된 놈은 아니라니까.”

네더만은 투덜거리며 의자를 끌고 와 그 앞에 앉았다.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알아챈 까닭. 그가 물었다.

“어쩔 작정이야?”

“무언가를 결정하기에는 아직 이르고. 곧 선택해야 할 시간이 오지 않겠어?”

10년 전, 카드론은 프렌치아가 아닌 제국을 선택했었다.

제국의 승리를 예상했기 때문.

그리고 이번에도 마찬가지.

그는 승리할 거라 생각되는 세력에 테이난 가문을 배팅할 터였다.

“아직 결정은 못 했나 보네?”

“검만 보고 결정할 수는 없지.”

“하긴. 동감이야.”

네더만도 고개를 끄덕였다.

제네스가 날카롭게 벼려진 검이란 건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그는 그저 검일 뿐이다.

검은, 그것을 쥔 사람에 따라 쓰임이 달라진다.

결국 제네스란 검을 쥔 북부의 흰사자의 수장.

그 녀석을 만나 봐야 결정을 내릴 수 있겠지.

“내가 어떤 선택을 하든, 넌 따를 거냐?”

카드론은 네더만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상당히 진지한 태도에 네더만은 질색하며 손을 내둘렀다.

“웩, 뭐 하는 거야. 그딴 표정은 부하 놈들 앞에서 지으라고. 장난하나.”

“그래서 어쩔 거냐고.”

“머저리 같은 놈이. 뭘 어째. 나도 결국에는 검일 뿐이거늘.”

자신 또한 제네스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검은 주인을 위해 날을 벼릴 뿐이다.

카드론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함께하면서 제네스를 살살 구슬려 봐.”

“감 잃었어? 그게 되겠냐?”

“그냥 해 본 말이야.”

그게 말도 안 되는 일이란 건, 이제 카드론 또한 잘 알았다.

그놈을 누가 설득하겠는가.

그래서 더 북부의 흰사자의 수장이 어떤 자일지 궁금했다.

성격부터 무력까지 날카롭게 벼려진 저놈을 대체 무슨 수로 꾀어낸 것인지.

“실없기는.”

대강의 목적을 달성한 네더만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카드론은 그런 그를 향해 사나운 눈초리를 보냈다.

“조심히 다녀와라, 이 빌어먹을 놈아.”

피식 웃은 네더만은 뒤도 보지 않고 손짓을 하며 문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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