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2화
제72화 지나가야겠다 (2)
이 숲을 벌써 3일째 헤매고 있었다.
파레안숲의 면적이 보통의 남작령만큼이나 크다지만, 평소의 속도라면 이미 지나쳤어야 할 숲이었다.
“잠깐 쉬었다가 갈게요.”
추격대와 어느 정도 거리를 벌린 나는, 매화꽃이 흐드러지게 핀 나무 둥치 아래 로드르를 내려놓았다.
“쿨럭, 쿨럭!”
로드르가 폐를 쏟아 낼 것처럼 기침했다.
3일 동안 이어진 적들의 집요한 추격에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
적과의 충돌을 최소한으로 하고 있지만, 지금의 그는 내 등에 업혀 있는 것만으로도 체력의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당연했다.
그동안 끼니도 편히 챙기지 못하고 잠도 제대로 못 잤다.
적들은 우리에게 제대로 쉴 틈을 주지 않고 몰아치고 있었다. 따돌려도 어찌나 귀신같이 따라붙는지, 녀석들의 방어진 때문에 직선으로 뚫어야 할 숲을 강물처럼 굽이굽이 벗어나는 중이다.
빌어먹을 자식들.
그래도 어떻게든 틈을 만들어서 지금처럼 잠깐의 휴식과 끼니는 챙기고 있었다.
결국 관건은 그의 체력에 있으니까.
그의 기력이 조금만 회복돼도 이따위 포위망쯤 단숨에 뚫을 수 있을 텐데.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의 기력이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다.
“괜찮으세요?”
“……후, 괜찮네.”
안색이 하얗게 질린 그가 희미하게 웃어 보였다.
오히려 처음 만났을 때보다 안색이 안 좋다.
밥도 잘 먹이고, 틈만 나면 추궁과혈에 내공까지 밀어 넣어 주고 있는데도 그의 몸은 시간이 갈수록 쇠약해지고 있다.
보통 이 정도 하면 죽어 가던 이도 잠깐은 기력을 회복하는데.
그는 회복할 기색이 통 보이지 않는다.
무언가 그를 잡아먹기라도 하는 것처럼.
하지만 의사가 아닌 나는 그 원인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갈수록 몸을 사리게 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이상하네요. 추궁과혈에 기까지 불어넣어주면 죽어 가던 사람도 잠깐은 기력을 회복하는데. 아무래도 의사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어디 아픈 데가 있었습니까?”
“딱히 아팠던 적은 없었네. 그저, 죽을 때가 된 거겠지.”
“일단 시간을 벌었으니 푹 쉬세요.”
그는 힘겹게 고개를 끄덕이며 나무둥치에 몸을 기댔다.
무리해서 거리를 벌린 덕에 쉴 시간은 벌었지만, 몸이 상하기는 했을 거다.
그럼에도 어쩔 수 없었다.
이제 숲의 끝자락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평원에 들어서면 적들에게서 숨을 곳도 없다. 나는 그곳에서 어떻게든 승부를 볼 작정이었기에 그의 몸을 회복시켜 둘 필요가 있었다.
그는 힘겨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자네는 보면 볼수록 대단하군. 소드 마스터는 인간이 아닌 건가? 어떻게 사람이 그렇게까지 강해질 수 있는지.”
진심 어린 감탄사였다.
3일간 내 무력을 실컷 경험한 까닭이다. 하지만 나도 슬슬 피곤해지고 있었다.
허약한 노인을 수발하랴, 업고 뛰랴, 제대로 쉰 적이 없다.
환골탈태로 재구성된 내 신체는 인간의 한계를 아득히 넘어서 있었지만, 그럼에도 인간이었다.
이 정도로 지친 건 나도 간만이다.
아무래도 이것이 녀석들의 작전인 듯한데.
어차피 그래 봤자지만.
로드르가 길게 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마음이 무겁군.”
“또 그 소리입니까.”
나는 그를 못마땅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이번에는 날 두고 가라는 소리가 아닐세.”
“다행이네요. 저는 자꾸 같은 말만 하시길래 머리라도 다친 줄 알았거든요.”
“클클클.”
그는 내 뾰로통한 태도가 재미있다는 듯 웃음을 피어 냈다가 씁쓸한 미소로 끝을 맺었다.
그의 시선은 어느새 지나간 세월을 훑고 있었다.
“……그냥. 자네를 보니 신이 야속해서 그렇네. 그때 자네가 우리 곁에 있었다면 이렇게까지 많은 이들이 고통받지 않았을 것을. 하늘도 무심하시지.”
그가 안타까워하는 건 지나간 과거가 아니었다.
현재 국민들이 느끼고 있을 고통.
그의 자조적인 목소리에는 항상 무거운 책임이 얹어져 있었다.
로드르는 프렌치아에서 자행된 지난 10년간의 지옥이 모두 자신의 탓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그만큼 높은 자리에 있었고, 그가 가졌던 권력은 그만큼 무거운 책임을 요하기에.
나도 그 때문에 하나의 생을 건너와서도 이 고생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지만, 그의 어깨에 올려진 책임은 왕세자였던 나보다 더 무거울지 모른다.
그는 당시의 정국을 실제로 이끌던 자니까.
나는 그런 그를 보며 불현듯 물었다.
“어떤 나라를 꿈꿨습니까?”
나는 아버지와 대화하는 로드르를 우연히 본적이 있다.
그때 그 광경은 내게 상당히 충격적이어서,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그는 당시 내게 하늘과 다름없던 아버지이자 지엄한 왕에게 삿대질하며 큰 소리를 치고 있었다.
그 장면을 본 나는 내 두 눈을 의심해야 했다.
하지만 그건 일도 아니었다.
언젠가는 아버지와 멱살잡이를 하며 소리치고 있는 것도 본 적이 있으니까.
또 언젠가는 서로를 못 잡아먹어 안달이던 두 사람이, 어깨동무하며 호탕하게 웃던 모습도 기억이 난다.
왕과 신하라 볼 수 없을 만큼 스스럼없는 모습.
당시 그들이 나누던 이야기를 자세히 듣지는 못했지만, 그것이 나라를 위한 이야기란 것쯤은 알고 있었다.
나는 그가 아버지와 나눴던 이야기들이 새삼 궁금해졌다.
그와 함께 시간을 보낼수록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줄줄이 엮여 올라오는 까닭.
그는 내 질문에 픽 웃으며 입을 열었다.
“어떤 나라를 꿈꾸었느냐고? 참으로 오랜만에 듣는 질문이구나. 나 또한 참으로 오랜만에 하는 생각이기도 하고. 벌써 오래전에 먼 길을 떠난 녀석들이 생각나는군. 그 자식. 지금쯤 저승에서 편하게 쉬고 있겠지.”
“그 자식이 누굽니까.”
나는 예상하면서도 물었다.
그는 입을 댓 발 내밀며 말했다.
“누구겠어. 페드릭 쿤 프렌치아지.”
예상대로 그 자식은, 아버지를 의미했다.
“우리가 꿈꿨던 나라는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이상적이었어. 최대한 많은 이들이 행복하길 바랐으니까.”
그의 말에 나는, 나와 루시안을 떠올렸다.
참, 아버지나 아들이나 하는 짓은 매한가지였구만.
“다 큰 어른들이나 애들이나 다를 게 없네요.”
“그래. 애 같은 생각이었지. 국민을 위한 나라를 만든다는 건 사실 너무 어려운 일이야. 그러려면 배부른 귀족 놈들에게 모이는 부와 권력을 국민들에게 나눠 줘야 하거든. 그런데 재밌는 게 무엇인지 아는가? 그 일을 하려는 우리가 프렌치아에서 가장 배부른 귀족 놈들이었다는 거지.”
그의 말의 의미를 나는 이해했다.
그들이 원하던 개혁을 단순하게 정리하자면, 소수의 귀족에게만 집중되는 부와 권력을 국민들과 나누는 것.
하지만 그것을 주도하는 이들이 권력의 정점이라면.
과연 그 정책들이 정당성을 얻고 다른 귀족들의 동의를 얻을 수 있을까?
그것은 불가능했다.
귀족들은 왕과 재상이 국민들을 빌미로 자신들의 힘을 약화시키려 한다 생각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가장 먼저 권력과 부를 내놓는다면 어떻게 될까?
그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개혁을 이뤄 낼 힘을 잃게 되겠지.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정치를 해야지. 그들에게 살을 내주고 뼈를 깎아 와야지. 반목하고 설득하고 합의하면서 우리가 원하는 것을 조금씩 얻어 가는 거지. 하지만, 그러면서 우리는 확실한 벽을 느꼈어. 현실의 한계에 부딪혔달까? 그리고 깨달았지. 아, 세상을 바꾸는 건 윗대가리들이 할 수 있는 게 아니구나. 똑똑하다 자부하는 몇몇이 이뤄 낼 수 있는 게 아니구나, 라고.”
나는 씩 웃었다.
한 녀석의 말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왕이 청렴하면 세상이 바뀔 것 같은가? 귀족이 청렴하면 세상이 바뀔 거 같아? 살기야 좋아지겠지. 하지만 혁신적인 개혁은 이뤄지지 않아. 결국 같은 틀 안에서 행복과 불행이 나뉘는 것뿐이지. 그것은 굉장히 불안정한 정치체계일세. 역사가 그것을 증명하지. 오래된 왕조는 썩을 수밖에 없어.”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어떻게 해야 할 거 같은가?”
“국민이 해내야겠군요.”
내가 말했지만, 나의 대답은 아니었다.
이건 루시안의 대답이었다. 그가 내게 했던 말.
나는 그것을 끄집어냈을 뿐이다.
“그렇지!”
내 말에, 그는 옳거니 하며 눈빛을 빛냈다.
간만에 그의 눈동자가 생기를 되찾고 있었다.
푸르게 타오르는 눈빛이 별처럼 반짝였다.
나는 그 눈을 보며, 상단의 작은 정원에서 루시안과 함께 보았던 밤하늘이 떠올랐다.
왜일까.
나는 닿은 적 없는 두 사람이 하나로 이어져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각자의 시대를 살아간 각자의 이상이 하나의 이야기처럼 들려왔다.
그들은 국민으로부터 시작되는 개혁을 원했다.
세상이 진정 바뀌기 위해서는 그 바람이 밑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믿고 있었다.
로드르의 말대로 왕의 힘으로는 한계가 있으니.
재밌는 일이었다.
그 나약한 국민들이, 만인지상의 왕도 하지 못하는 일을 해낼 수 있다는 게.
그는 신나서 그에 관한 이야기를 떠들어 댔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처음으로 그에게서 생동감을 느꼈다.
다 죽어 가던 이가 언제 그랬냐는 듯 생기를 되찾고 있었다.
한참 동안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나는 입을 열었다.
“왕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갑자기 궁금했다.
이제 흐릿한 기억 속의 아버지가 그에게 어떤 왕이었는지.
로드르는 콧방귀를 끼며 입꼬리를 비틀었다.
“아주 나약한 놈이었지. 할 줄 아는 건 제 아들 자랑밖에 없는 놈이었어. 하지만 나는 단언할 수 있네. 내 생애 그를 섬길 수 있었던 건 너무나도 큰 행운이었다고. 세상에 국민을 위해 눈물을 흘릴 줄 아는 왕이 어디 흔한가. 국민을 위해 재상과 멱살잡이를 하고 주먹다짐하는 왕이 대체 어딨어. 참으로 나약하고 바보 같은 왕이었지. 그래서 나는 그 자식을 만난 걸 평생의 천운이라 여긴다네.”
물기를 머금은 로드르의 눈빛에는 여러 감정이 뒤섞여 있었다.
그 동공에 비친 내 눈빛도 마찬가지였다.
그를 보고 있으면 자꾸 아버지가 떠오른다.
하나의 삶을 지나쳐 왔어도, 나이를 이만큼이나 먹었어도 아버지라는 단어가 주는 울림은 깊었다.
로드르가 말을 이었다.
“전쟁만 터지지 않았어도 좀 더 나은 나라를 너희들에게 물려줄 수 있었거늘. 나는 항상 생각한다네. 전쟁에 휘말리지 않은 프렌치아는 어땠을지. 우리가 만든 나라는 어떤 모습이었을지 말이야. 끝까지 가지 못한 게 참으로 아쉬워……. 그저 삶을 모두 지나 보낸 늙은이의 넋두리라고 생각해 주게. 노망난 노인네의 허황된 생각일 뿐이지.”
“아직 끝나지 않았잖습니까.”
“그렇지. 자네들이 남아 있으니. 그래서 다행이라 생각하면서도. 고맙게 생각하면서도. 볼 낯이 없군.”
“아니요. 로드르 님이요. 다시 나라를 위해 일하셔야죠.”
“내가? 다 늙어 빠진 노인네가 무슨. 이제는 숨만 쉬기도 벅찬 몸일세.”
“조금 전까지 그렇게 열망에 가득 찬 눈빛을 보내 놓고서 그런 말씀을 하시면 안 믿깁니다.”
조금 전, 자신이 꿈꾸던 나라에 관해 이야기하던 로드르의 눈빛은 루시안의 것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그의 가슴속에는 여전히 그가 만들고 싶은 나라가 선명히 세워져 있었다.
“여전히 만들고 싶으시잖아요. 지금도, 새로운 프렌치아를 꿈꾸고 계시잖아요.”
“…….”
“한 번 더 뜨겁게 살고 싶으시잖아요.”
그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졌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빌어먹을 녀석. 잘한다 잘한다 하니까 노인네의 마음을 뒤흔들어? 그래. 그렇다면 어쩔 거냐, 이놈아.”
“독립.”
나는 그를 보았다.
“할 수 있습니다. 그때와 달리 제가 있으니까요. 이제 62살이면 적어도 10년은 더 사실 거 아닙니까.”
“예끼! 이왕 살려면 앞으로 20년은 더 살아야지. 나라가 그렇게 홱홱 바뀌는 줄 알아!”
그가 푸른 귀화를 피워 내며 호령했다.
마치 과거의 그를 보는 듯했다.
하여간 욕심 많은 늙은이다.
이상이 클 때부터 알았지.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제 등에 잘 붙어 계세요. 천수는 뛰어넘게 해 줄 테니까.”
“그래 이놈아. 제발 좀 부탁이다. 다 늙어 빠졌지만, 아직 머리가 굴러간다고. 너희들에게 이런 나라를 물려준 죄는 씻고 가야 할 게 아니냐.”
그는 반 농담처럼 말하고 있었지만, 그가 하는 말이 진심이란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여전히 프렌치아를 사랑하고 있다.
나는 그런 그를 보며, 그가 느끼고 있는 아쉬움을 공감했다.
프렌치아.
국민을 위해서라면, 재상에게 기꺼이 멱살도 내주는 왕이 있던 나라.
국민을 위해서라면, 왕의 멱살도 잡을 줄 알던 재상이 있던 나라.
그 나라가 조금만 더 오래 지속됐으면 어땠을까?
그의 말대로 프렌치아에 전쟁이 없었더라면.
그들의 뜻과 이상이 나와 루시안에게까지 이어졌다면.
우리는 우리가 원하던 프렌치아를 만들 수 있었을까?
……빌어먹을.
늙은 자와 이야기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감상에 빠져 버리고 말았다.
그의 가슴속에서 타오르던 불길이 내게도 옮겨붙은 듯하다.
가슴이 울리고 있었다.
전생의 것이라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깊고 짙은 고동.
전생의 삶이 색채를 더욱 진하게 칠하고 있음을 나는 느꼈다.
프렌치아에 담기는 감정의 무게가 무거워진다.
당연했다.
돌아온 이후, 나는 프렌치아의 독립만을 생각하며 지내고 있으니까.
그들의 아픔을 직접 눈앞에서 보고 있으니까.
감정이 점차로 짙어질 수밖에 없었다.
마치, 전생의 그때처럼…….
어느새 프렌치아의 독립이 단순한 전생의 책임을 넘어서, 내 새로운 사명으로 태동하고 있었다.
젠장.
그것이 달갑지만은 않다.
나는 내게 그런 울림을 주는 그에게 퉁명스레 말했다.
“손목이나 줘 봐요.”
언제나처럼 기를 불어 넣어 줄 요량이었다.
“그 모든 일을 하려면 건강하게 오래 살아야 할 게 아닙니까.”
나는 그의 나뭇가지처럼 가냘픈 손목을 잡고 기를 집어넣었다.
그의 몸속에서 반발이 느껴진 건 그때였다.
지금까지는 느껴지지 않던 이질적인 무언가가 그의 몸 안에 자리 잡고 있었다.
뭐지?
불길한 마음에 나는 그 기운을 가만히 살폈다.
그러고는 짧은 신음을 뱉었다.
“흠.”
나는 그제야 그가 왜 점차로 쇠약해지고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그의 몸 속에 있는 알 수 없는 무언가가, 그의 약한 몸을 갉아먹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