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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후 천하제일인이 되어 귀환했다-57화 (57/228)

제57화

제57화 굽이치는 해협 (2)

일행들의 만류에도 나는 단호히 말했다.

“괜히 염려할 필요 없다. 놈은 날 막을 수 없을 테니.”

네더만은 박수로 감탄하며 고개를 내저었다.

“홀로 적들이 쌓은 방벽을 뚫고 로드르를 구하겠다니, 정말 엄청난 자신감이야. 아마 할렌트는 뒷짐을 지고 그 광경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겠지. 아니 그런가?”

내 말을 비꼰 네더만이 알렌과 이리엘을 보며 동조를 구했다. 이리엘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 의견에 동의하고 나섰다.

“이번만큼은 네더만 씨의 말이 맞는 거 같아요. 그들 또한 철저히 준비했을 거라고요. 아무리 소드 마스터라도 혼자 힘으로 가능할 리 없잖아요.”

“혼자서 간다고는 안 했는데.”

나는 네더만을 보며 말했다. 고개를 살래살래 젓고 있던 녀석은 몸을 움찔거리더니 나를 경계하듯 바라보았다.

“잠깐. 지금 그 눈빛은 뭔가? 설마 나와 함께 가자는 의미는 아니겠지?”

“눈치가 빨라 좋군.”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네더만은 황급히 입을 열었다.

“이보게, 우리가 함께 죽으러 갈 만큼 돈독한 사이는 아니지 않은가. 자네가 내 목숨을 구해 준 것이야 고맙게 생각하네만, 나도 결혼하고 애 낳고 지지고 볶으며 살다가 뒈져야 할 게 아닌가.”

“언제는 자유가 좋다며.”

“그때는 그랬지. 하지만 지금은 아닐세. 나는 이제 슬슬 2세 계획을 세울까 한다고. 한 번 죽을 뻔하니 가족의 소중함을 알겠더군. 나를 닮은 아이라니, 얼마나 귀엽겠는가.”

“걱정 마라. 다녀와서도 이룰 수 있으니.”

“다녀오지 못할 거 같으니 하는 말일세.”

나는 오리고기를 포크로 푹 찍으며 녀석을 보았다.

“그럼, 지금 죽을 테냐?”

“……빌어먹을. 매번 그런 식으로 협박을 하면 내가 따를 거라―”

“내 말이 그저 협박인 줄 아나 보군.”

“무슨 소리인가? 나는 이미 아까부터 자네를 따르고자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고. 그러니 그 나이프는 잠시 내려놓으시게. 나는 어른이야. 대화를 통해서도 의견을 맞출 수 있는 성인이란 말이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사용할 일 없어진 나이프를 식탁에 내려놓았다.

“그래서 언제쯤 출발할 생각인가? 죽기 전에 유언장이라도 남기려고 하는데.”

금세 태세를 전환하는 네더만에 나는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알 거 없다. 나 혼자 갈 생각이니까.”

내 말에 녀석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놈을 데려갈 생각은 애초에 없었다. 비꼬는 게 꼴 보기 싫어 골려 줬을 뿐.

그 효과는 확실했다.

녀석은 단숨에 태세를 전환하여 내 의견에 찬성하고 들었다.

“하하하! 역시 자네는 된 사람이라니까. 먼 길을 가야 할 테니 천천히, 많이 들게. 혹시 더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말하고. 오늘은 내가 자네를 위해서 거하게 한 턱 쏘겠네.”

녀석은 마치 죽다 살아난 사람처럼 호탕하게 웃어 댔다.

알렌이 염려 섞인 표정으로 물어 왔다.

“그럼 앞으로의 일정은 어떻게 하시려고요?”

“공개 처형까지는 아직 시간이 있으니 바뀔 건 없다. 우리는 일단 테이난으로 가서 굽이치는 해협의 수장을 만난다.”

“……네, 알겠습니다.”

알렌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누가 죽었냐?”

“네?”

“왜 얼굴이 죽상이냐고.”

“그거야, 제네스 님이 곧 돌아가실 거 같으니까 그렇죠.”

나는 침통한 녀석의 머리통을 쥐어박았다.

빡!

“끄악!”

“죽기는 누가 죽어.”

하여간, 꼭 맞을 짓을 한다니까.

* * *

그 시각 굽이치는 해협의 수장, 카드론은 전서조가 나른 쪽지를 읽고 있었다.

‘어떻게 그들과 연이 닿았지?’

네더만이 웬일로 일 처리를 제대로 하고 있는 듯하다.

초원의 들개를 죽인 북부의 흰사자 소속 독립군들이라면, 현재 북부를 들끓게 만들고 있는 소문의 당사자들이 분명했다.

작은 지면 탓에 제한된 정보만이 적혀 있었지만, 네더만은 아무래도 그들과 함께 움직이고 있었던 것처럼 보였다.

‘한 녀석이 설마 네더만이었나?’

소문에 흰사자가 둘이라는 이야기도 있었으니, 합리적인 추론이었다.

특임대, 초원의 들개마저 그들에게 당했다.

흰사자와 네더만이 힘을 합쳐 그들을 상대했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

그렇게 보면 과장되었다 여겼던 소문의 진상이 딱 맞아떨어졌다.

“그럼 북부의 흰사자 쪽에서도 최상급에 이른 자가 나왔단 말인데…… 누구지?”

북부에서 유명한 이들의 칭호가 차례차례 떠올랐지만, 딱히 누군가를 꼽을 수는 없었다.

어쩌면 이번에 새로운 인물을 영입했는지도 모를 일.

“꽤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군.”

북부의 흰사자는 다른 파벌에 비해 뒤늦게 두각을 드러낸 조직.

그럼에도 성장 속도가 빨라, 어느새 패망 직후부터 활동하던 세력들과도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에 이르러 있었다.

‘그리 달갑지는 않은데.’

다른 독립군 세력의 성장은 프렌치아의 독립으로만 보면 좋은 일이지만, 독립 이후에는 적이 될지도 모르는 자들이라 경계의 대상이기도 했다.

독립이란 대의 아래, 각자의 욕망을 품고 있었으니.

지금은 같은 편에 서 있지만, 언제 적이 될지 모르는 일인 거다.

‘잘하면 이건 내게 기회가 될지도.’

곰곰이 생각하던 카드론이 씩 웃음을 지었다.

그들이 왜 네더만과 함께 오고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이것은 어쩌면 흰사자를 자신들 쪽에 영입할 기회가 될지 몰랐다.

너무 적나라하게 움직이면 분란의 소지가 될 수 있으니, 그가 원하는 바를 은밀히 파악하여 충족해 줄 수 있다면 굽이치는 해협은 강력한 칼을 하나 더 쥐게 될 터.

‘과연 어떤 녀석이려나.’

그의 정체가 벌써 궁금하다.

부디 네더만처럼 나사 빠진 녀석은 아니길.

설마 네더만보다 제멋대로인 녀석이겠는가.

적어도 그 정도는 아닐 테지.

카드론은 그가 기왕이면 욕심이 많은 자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영입도 쉽고 다루기도 편할 테니까.

손에 쥔 쪽지를 벽난로에 던진 그는 입꼬리를 길게 말아 올렸다.

‘그와의 만남이 고대되는군.’

* * *

“드디어 보이네요.”

알렌이 손등으로 햇빛을 가린 채 말했다. 숲길을 벗어나니 절벽 위에 세워진 웅장한 성채가 자태를 드러내고 있었다.

“휘유. 이거 꽤 오랜만인데.”

네더만이 휘파람을 불며 테이난성을 바라보았다. 그 옆에서 이리엘이 감탄했다.

“확실히 지금까지 본 성 중에서 가장 거대한데요?”

테이난성은 프렌치아에서 손꼽히는 요새이니만큼, 겉에서부터 난공불락의 견고함이 느껴졌다.

서부의 산맥이라고도 불리는 테이난성은 수도로 향하는 관문 격의 성으로서, 굉장히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이기도 했다.

그런 성으로 들어가는 길은 가파르고 좁았다. 그 때문에 성문 앞으로는 대기하는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굽이치는 해협의 본부가 저 안에 있을 줄은 몰랐네요.”

알렌의 말에 네더만이 눈썹을 올렸다.

“테이난을 좀 아는가?”

“그럼요. 테이난 후작가(家)의 검술은 정평이 나 있지 않습니까. 현 영주 또한 젊었을 적 레오니랜서의 기사로서 임무를 수행했었다고 알려져 있고요. 뭐, 지금은 ‘최초의 변절자’로 불릴 뿐이지만요.”

“확실히 자네는 누구와 달리 모르는 게 없구만.”

“이 정도는 뭐 기본으로 알아야 하는 상식 아닙니까. 하하.”

가슴을 내밀며 호탕하게 웃은 알렌은, 금세 미간을 좁히며 말을 이었다.

“그나저나 꽤 기다려야겠는데요.”

그의 말마따나 각양각색의 사람들로 늘어선 줄은 줄어들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 모습을 보며 네더만이 설명을 보탰다.

“오래 기다릴 때는 하룻밤을 지내야 할 때도 있다더군.”

나로서는 딱 질색인 상황.

“하지만 그런 걱정은 붙들어 매라고. 자네들에게는 바로 이 몸이 있잖은가.”

네더만은 엄지손가락으로 본인을 가리키며 으스대더니 줄을 기다리지 않고 옆으로 빠져 그대로 길을 올랐다.

그런 그에게 이리엘이 황당한 눈길을 던졌다.

“뭐 해요? 취했어요?”

“취하다니. 술은 아직 입에도 대지 않았다네.”

“그런데 왜 그래요? 민폐 부리지 말고 빨리 이리 와요.”

“푸하하. 참 사람을 못 믿는 아가씨로군. 내가 괜히 그러겠나. 내 얼굴을 자세히 보라고. 적어도 사기꾼 관상은 아니지? 그저 나만 믿고 따라오면 되네.”

네더만이 시원하게 웃으며 앞장을 서자, 이리엘은 내게 시선을 돌려 물었다.

“누가 봐도 사기꾼 관상 아니에요?”

“속는 셈 치지 뭐. 믿는 구석이 있으니 저러지 않겠냐.”

내가 별다른 고민 없이 녀석의 뒤를 따르니, 이리엘과 알렌도 별다른 방도가 없었다.

우리는 네더만의 뒤를 따라 길게 늘어진 줄을 지나쳐 올랐다. 사람들은 그런 우리를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많은 관심 속에 성문 앞까지 이르자, 검문 중인 경비병들이 보였다.

그들은 줄을 무시한 채 올라오는 우리를 보며 경계 어린 눈빛을 던지고 있었다.

이렇게 긴 줄을 무시하고 온다는 건, 그만한 신분이 되거나 미X놈일 게 빤했으니까.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그는 다행히 우리를 섣부르게 미X놈으로 판단하지 않고 정중히 물었다.

네더만은 손을 들어 그에게 기다리라 명하더니, 늠름한 자태로 품에 손을 집어넣었다.

지체하지 않아도 될 통행패라도 가진 것일까?

잠시 후, 네더만은 먹음직스러운 육포 조각을 꺼내 그에게 보여 주었다.

통행패는 당연히 아니겠고, 뇌물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볼품없는 것이었다.

“……?”

그것을 바라 본 경비병의 표정이 참으로 볼만했다. 그의 뇌는 이 상황을 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알 수 없어 잠시 작동을 멈춘 듯했다.

그제야 자신이 꺼낸 육포 쪼가리를 본 네더만은 본인의 이마를 쳤다.

“이거 내가 실수했군.”

그는 경비병에게 그 육포 조각을 쥐여 주고는 자신의 짐을 본격적으로 뒤지기 시작했다.

“…….”

우리는 그런 그를 굉장히 못 미덥게 지켜보고 있었다.

“아, 여기 찾았네. 찾았어.”

환히 웃은 네더만이 멋들어진 금색 패를 꺼내어 경비병에게 보여 주었다.

육포 쪼가리보다는 확실히 그럴듯해 보였다.

금색 패를 보고 화들짝 놀란 경비병은 금세 의심의 눈빛을 지우며 깊이 고개를 숙였다.

그러고는 앞을 막아 세우던 이들을 물려 주었다.

“고맙네. 수고하라고.”

네더만은 경비병의 어깨를 두드리며 여유롭게 곁을 지나쳤고, 우리는 그 뒤를 따라 성문을 손쉽게 넘을 수 있었다.

“오오! 뭐예요? 그거 어디서 난 건데요?”

“진짜 웬일이래요?”

알렌과 이리엘은 성문을 벗어나자마자 네더만을 치켜세워 주었다. 기세가 오른 네더만은 머리를 멋들어지게 넘기며 허세를 부렸다.

“뭘, 이 정도 가지고. 나 이런 사람이라고. 촤하하!”

우리는 능숙하게 앞장서는 네더만을 따라 도심에 들어섰다. 깔끔하게 정돈된 대로가 기다랗게 뻗어 있고, 그 옆으로 높은 건물들이 단정하게 늘어서 있었다.

확실히 지금까지 들른 영지와 도시 중 가장 번화한 곳이었다. 그만큼 사람들도 많았고.

“높은 성벽 안에 이렇게 큰 도시를 품고 있었다니, 놀랍군요.”

알렌은 촌놈처럼 눈을 반짝이며 이곳저곳을 구경하더니 날카로운 눈빛을 빛냈다.

“그런데 여기는 제국민이 별로 없는 거 같네요.”

“테이난 후작이 워낙 폐쇄적인 놈이라 제국 놈들이 정착하기 쉽지 않거든.”

“그래서 그런가? 사람들의 표정이 좋아 보여요.”

확실히 알렌 말대로 다른 도시보다 사람 사는 냄새가 나기는 했다. 제국 놈들의 횡포가 덜하기 때문이겠지.

테이난 후작가는 프렌치아에서 손꼽혔던 명가.

변절자인 그들이 지배하는 영내이니 제국 놈들도 함부로 할 수는 없었을 거다.

네더만도 그에 동의하며 설명을 보탰다.

“다른 건 몰라도 제 것은 아낄 줄 아는 자니까.”

“그래 봤자 변절자죠.”

가만히 듣고 있던 이리엘이 입매를 씰룩이며 말했다.

그녀의 말대로 테이난 후작은 변절자일 뿐이었다. 그것도 프렌치아 귀족 중 가장 먼저 나라를 배신한 ‘최초의 변절자’.

때문에 그들의 변절은 나 또한 잘 알고 있었다.

네더만은 이리엘의 의견에도 흔쾌히 동의했다.

“이리 붙었다, 저리 붙었다 하는 박쥐 같은 녀석이지.”

“잘 아는 것처럼 말하네요.”

“나름 잘 알지.”

네더만이 씩 웃자, 알렌은 눈빛을 반짝이며 화제를 돌렸다.

“그런데 저희 어디로 가는 겁니까? 여기까지 왔으니 이제 그 정도는 말해 줄 수 있잖아요.”

녀석은 아무래도 굽이치는 해협의 본부가 궁금한 듯했다.

“내가 아직 말 안 해 줬던가?”

음흉하게 웃은 네더만이 손가락으로 한 곳을 가리켰다.

“우리는 지금 저곳으로 가는 중일세.”

그의 손끝은 저 멀리 보이는 영주 성을 가리키고 있었다. 활공하는 와이번이 그려진 테이난가의 표상이 그 정점에서 펄럭인다.

테이난가의 내성은 외성만큼이나 웅장함을 자랑하고 있었다.

“네?”

그것을 바라본 알렌이 멍청한 표정을 지으며 반문했다. 이리엘도 그 옆에서 이해되지 않는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네더만은 그 둘을 보며 장난 섞인 미소를 지었다.

“우리가 만날 사람이 바로 저기서 살거든.”

알렌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농담이시죠?”

“농담 아닌데? 내가 농담하는 거 봤어?”

“엄청 많이요!”

알렌과 이리엘이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동시에 답했다.

네더만이 나를 보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내가 말했다.

“너희들의 수장이 테이난 후작이었나.”

네더만이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서부 독립군을 대표하는 굽이치는 해협.

그곳의 수장은, 최초의 변절자, 테이난 후작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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